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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43회
공자 경보(慶父)는 字가 중(仲)이고, 노장공(魯莊公)의 이복형이었다. 그리고 경보의 동복아우가 있었는데, 이름은 아(牙)이고 字는 숙(叔)이었다. 장공에게도 동복아우가 있었는데, 공자 우(友)였다. 그는 태어날 때 손바닥에 ‘友’ 자 무늬가 있어 그것으로 이름을 짓고, 字는 계(季)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계우(季友)라 불렀다.
[원래 백(伯)·중(仲)·숙(叔)·계(季)는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다. 나이로는 경보가 장공보다 형이지만, 장공은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경보를 仲이라 한 것이다.]
형제 세 사람이 똑같이 대부가 되었지만, 적서(嫡庶)의 구분도 있고 또 계우가 가장 현명했기 때문에 장공은 계우를 가장 신임하였다.
[제25회에, 장공의 이복형 공자 경보, 이복아우 공자 아, 동복아우 계우도 모두 국정에 참여했다고 하였다.]
장공은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낭대(郎臺)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당씨(黨氏)의 딸 맹임(孟任)을 보았다.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내시를 보내 불렀는데, 맹임은 따르지 않았다. 장공이 내시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나를 따르면 부인으로 삼을 것이라고 전해라.”
맹임은 장공이 맹세를 하면 승낙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장공이 맹세하자, 맹임은 팔을 베어 피를 흘려 신에게 맹세하였다. 장공은 낭대에서 맹임과 동침하고, 수레에 태워 궁으로 데리고 갔다.
1년이 지나 맹임은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반(般)이라 하였다. 장공은 맹임을 부인으로 삼으려고 모후인 문강에게 청했는데, 문강은 허락하지 않았다.
문강은 아들을 반드시 자신의 친정과 혼인시키려고 하여, 갓 태어난 제양공의 딸과 약혼을 하게 하였다. 따라서 양공의 딸 강씨(姜氏)가 나이가 어리므로, 20년을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혼인하게 되었다.
[제27회에, 문강은 작 땅에서 제양공과 놀아나면서, 노장공에게 제양공의 어린 딸과 혼약하라고 강요하였다. 제38회에, 노장공 재위 24년 37세에 강씨와 혼인하였는데, 그녀가 애강(哀姜)이다.]
맹임은 비록 부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20년 동안 육궁의 주인 노릇을 했다. 애강이 노나라로 와서 부인이 되었을 때, 맹임은 이미 병이 들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얼마 후 맹임이 죽자, 장공은 첩의 예로써 장례를 지냈다.
애강은 오래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고, 언니를 따라 함께 온 여동생 숙강(叔姜)이 아들을 하나 낳아 이름을 계(啟)라고 하였다.
그 전에 수구자(須句子)의 딸인 풍씨(風氏)라는 첩이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이름을 신(申)이라 하였다. 풍씨가 아들 신을 장공의 후사로 삼으려고 계우에게 부탁하자, 계우가 말했다.
“공자 반이 연장자입니다.”
그리하여 풍씨는 마음을 접었다.
애강이 비록 부인이 되기는 했지만, 장공은 그녀가 부친을 죽인 원수의 집안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겉으로는 예모를 갖추었지만, 심중으로는 총애할 수가 없었다.
장공의 총애를 받지 못한 애강은 체격이 헌칠하고 잘 생긴 공자 경보를 좋아하게 되어, 마침내 그와 사통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정분이 깊어지자, 경보는 아우 숙아까지 일당으로 끌어들여 훗날 경보가 군주가 되고 숙아가 재상이 되기로 약정하였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淫風鄭衛只尋常 鄭·衛의 음풍은 예사로울 뿐이니
更有齊風不可當 齊의 음풍에 당할 바가 아니로다.
堪笑魯邦偏締好 魯가 齊와 우호 맺음이 웃음거리인데
文姜之後有哀姜 문강 후에 또 애강이 있었도다.
[지금까지 정나라에서 음란한 일이 일어난 얘기는 없었다. 논어(論語)에 정나라 음악이 음란하다는 말은 있다. 제23회에, 위선공(衛宣公)은 공자 시절, 부친 장공의 첩 이강과 사통하였고, 또 며느리로 맞이한 선강을 자신이 가로챘다. 제양공(齊襄公)과 문강은 오누이 간에 사통했다.]
노장공 32년, 겨울 내내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내려고, 그 전날 대부 양씨(梁氏)의 집 뜰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양씨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공자 반이 그녀를 좋아하여 은밀히 왕래하면서 훗날 부인으로 삼겠다는 맹세까지 한 터였다.
그날 양씨의 딸이 담장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음악 연주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마부 낙(犖)이 담장 밖에서 양녀의 아름다운 자색을 보고, 담장 아래에서 노래를 지어 부르며 그녀에게 수작을 걸었다.
桃之夭夭兮 복사꽃의 아름다움이여
凌冬而益芳 겨울을 견뎌내 더욱 향기롭구나.
中心如結兮 내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不能踰牆 담장을 넘을 수 없네.
願同翼羽兮 부디 함께 날개를 펼쳐
化為鴛鴦 한 쌍의 원앙이 되었으면.
공자 반도 양씨 집에서 기우제를 위한 음악을 구경하고 있다가, 노랫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마부 낙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공자 반은 크게 노하여, 좌우에 명하여 낙을 붙잡아 채찍으로 3백 대를 때렸다. 피가 땅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낙이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하자, 공자 반은 그를 놓아주었다.
공자 반이 장공에게 그 일을 아뢰자, 장공이 말했다.
“낙이란 놈이 무례하였으니, 채찍질을 할 것이 아니라 죽였어야 했다. 낙이란 놈은 용맹하고 민첩하기가 천하에 비할 바가 없는 놈이다. 이제 그놈에게 채찍질을 했으니, 필시 너에게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원래 마부 낙은 힘이 뛰어난 자로 유명했다. 예전에 제나라 임치성 직문(稷門)의 성루에 올라갔다가 몸을 날려 아래로 내려왔는데, 땅에 내려오자 다시 도약하여 손으로 성루의 지붕 모서리를 잡고서 흔들었는데 성루 전체가 진동했었다. 장공이 낙을 죽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용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자 반이 말했다.
“그놈은 한낱 필부일 뿐이니,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부 낙은 과연 공자 반에게 원한을 품고, 경보의 문하에 투신하였다.
다음 해 가을, 장공은 병이 위독해지자 경보가 의심되어 일부러 숙아를 먼저 불러 자신의 사후 일에 대해 물었다. 예상한 대로 숙아는 경보의 재능을 칭찬하였다.
“경보가 노나라의 주인이 된다면, 사직도 그 덕을 볼 것입니다. 형제가 뒤를 잇는 것은 노나라의 상례입니다.”
장공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숙아가 나가고 다시 계우를 불러 물었더니, 계우가 대답하였다.
“주군께서는 맹임에게 맹세하셨습니다. 이제 그 모친이 죽었는데, 다시 그 아들까지 폐하시겠습니까?”
장공이 말했다.
“숙아는 과인에게 경보를 후사로 세우라고 권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보는 잔인하고 친애가 없어, 군주의 그릇이 아닙니다. 숙아는 동복형에 대한 사사로움이 있으니,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은 목숨을 걸고 공자 반을 받들겠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계우는 궁을 나가면서 내시에게 장공의 말이라고 하면서, 숙아에게 가서 대부 침계(鍼季)의 집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군명이 당도할 것이라고 급히 전하게 하였다.
숙아는 과연 침계의 집으로 갔다. 계우는 짐독(鴆毒)을 탄 술 한 병을 봉하여 침계에게 보내, 숙아를 독살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숙아에게 보내는 서신을 썼다.
[‘짐독’은 짐새의 깃에 있는 맹독이다.]
주군의 명으로, 공자에게 죽음을 내리노라. 공자가 이 술을 마시고 죽으면, 자손들은 대대로 그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멸할 것이다.
숙아는 서신을 보고서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는데, 침계가 귀를 붙잡고 강제로 먹였다. 잠시 후 숙아는 아홉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계우가 숙아를 독살한 일을 논하였다.
周公誅管安周室 주공(周公)이 관숙을 죽여 주왕실을 안정시켰는데
季友酖牙靖魯邦 계우는 숙아를 독살하여 노나라를 편안케 하였네.
為國滅親真大義 나라를 위해 멸친(滅親)한 것은 진정 대의이지만
六朝底事忍相戕 육 조시대엔 그런 일로 차마 서로 죽이지 못하였네.
[관숙(管叔)은 주공의 아우인데, 주공에게 반감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공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육조(六朝)’는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수(隋)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양자강 남쪽에 있었던 여섯 왕조인 오(吳)·동진(東晋)·송(宋)·제(齊)·양(梁)·진(陳)을 말한다.]
그날 저녁 장공이 훙거하였다. 계우는 공자 반을 받들어 군위에 세워 국상을 치르고, 내년에 개원한다고 나라 안에 알렸다. 각국에서는 조문 사절을 보내왔다.
겨울 10월에, 공자 반의 외조부인 당신(黨臣)이 세상을 떠났는데, 공자 반은 늘 외가인 당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문상을 갔다.
그때 공자 경보는 마부 낙을 은밀히 불러 말했다.
“넌 등에 채찍 맞은 원한을 기억하고 있느냐? 무릇 교룡(蛟龍)이라 하더라도 물을 떠나면 필부라도 제압할 수 있는 법이다. 너는 반에게 보복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위해 일을 주도해 주겠다.”
낙이 말했다.
“공자께서 도와주신다면, 어찌 감히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낙은 비수를 품고 한밤중에 당대부의 집으로 갔다. 때는 이미 자정이 되었다. 낙은 담장을 넘어가 방 밖에 숨어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어린 내시가 문을 열고 물을 기르러 나왔다. 낙은 그 틈에 침실로 재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공자 반은 침상에 걸터앉아 신을 신고 있다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낙이 말했다.
“작년에 채찍 맞은 원한을 갚으러 왔다!”
공자 반은 급히 침상 머리에 있는 검을 들어 내리쳤다. 낙은 머리에 칼을 맞고 상처를 입었지만, 왼손으로 검을 막으면서 오른손으로 비수를 쥐고 반의 옆구리를 찔렀다. 반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다.
침실로 돌아오던 내시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뛰어가 당씨 가족들에게 알렸다. 당씨 가족들이 일제히 달려와 낙을 공격하였다. 낙은 이미 머리에 상처를 입어 싸울 수도 없었는데, 당씨 가족들이 마구 휘둘러대는 칼을 맞고 육니(肉泥)가 되고 말았다.
계우는 공자 반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보의 소행임을 알고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陳나라로 달아났다.
경보는 모른 척하고, 모든 죄를 마부 낙에게 뒤집어씌워 그 가족을 몰살하고 나라 사람들에게 해명하였다.
장공의 부인 애강이 경보를 군위에 옹립하려 하자, 경보가 말했다.
“두 공자가 아직 살아 있으니, 다 죽이기 전에는 군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애강이 말했다.
“그러면 신(申)을 옹립해야 합니까?”
경보가 말했다.
“신은 이미 장성했으므로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계(啓)를 옹립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경보는 공자 반의 상을 발표하고, 부고를 전한다는 명분으로 친히 제나라로 갔다. 공자 반의 변고를 알리고, 수초에게 많은 뇌물을 건넸다. 그리고 돌아와 공자 계를 군위에 옹립하였다. 그때 공자 계는 여덟 살이었는데, 그가 노민공(魯閔公)이다.
민공은 숙강의 아들이며, 숙강은 장공 부인 애강의 여동생이다. 따라서 민공은 제환공의 외조카이다. 민공은 안으로는 애강이 두렵고 바깥으로는 경보가 두려워, 외가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다.
민공은 몰래 사람을 제환공에게 보내 사정을 알리고, 낙고(落姑) 땅에서 만났다. 민공은 제환공의 옷자락을 붙잡고 은밀히 공자 경보가 내란을 일으킨 일을 호소하였는데,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환공이 말했다.
“지금 노나라 대부 가운데 누가 가장 현명한가?”
민공이 말했다.
“공자 계우가 가장 현명한데, 지금 陳나라로 피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를 불러들이지 않는가?”
“경보가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과인의 뜻이라고 하면,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민공은 사람을 陳나라로 보내, 제환공의 명으로 계우를 불렀다. 그리고 민공은 낭(郎) 땅으로 가서, 계우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수레를 타고 귀국하였다. 민공은 계우를 재상으로 임명하면서 齊侯의 명이라고 하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때가 주혜왕(周惠王) 6년으로, 노민공 원년이었다.
그해 겨울, 제환공은 노나라 君臣이 그 지위에 불안을 느낄까 염려되어, 대부 중손추로 하여금 노나라로 가서 魯侯에게 문안하면서 경보의 동정을 살펴보게 하였다.
노민공은 중손추를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후에 중손추는 공자 신을 만나 노나라 일에 대해 담론을 나누었는데, 말에 조리가 있었다. 중손추는 혼자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릴 그릇이다!”
중손추는 계우에게 공자 신을 잘 보살피라고 부탁하면서, 빨리 경보를 제거하라고 권하였다. 그러자 계우는 손바닥 하나를 내보였다. 중손추는 고장난명(孤掌難鳴)의 뜻을 알아차리고, 계우에게 말했다.
“제가 우리 주군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보는 중손추를 만나 많은 뇌물을 내놓았다. 그러자 중손추가 말했다.
“참으로 공자께서 사직에 충성한다면, 과군께서도 이 선물을 받으실 겁니다. 어찌 저한테 주십니까?”
중손추가 뇌물을 받지 않자, 경보는 송구해 하며 물러갔다.
중손추가 민공을 작별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제환공에게 말했다.
“경보를 제거하지 않으면, 노나라의 난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군대를 보내 그를 제거하면 어떻겠소?”
중손추가 말했다,
“경보의 흉악함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군대를 보내 토벌하는 것은 명분이 없습니다. 신이 그의 뜻을 살펴본즉, 남의 밑에 안주할 자가 아닙니다. 필시 또 다른 변고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가 변고를 일으켰을 때 죽이면, 그건 패자의 일이 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좋소.”
노민공 2년, 경보는 군위를 찬탈할 마음이 더욱 급해졌지만, 민공이 齊侯의 조카인데다 계우가 재상으로서 충심으로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지기가 보고하였다.
“대부 복기(卜齮)가 찾아왔습니다.”
경보가 서재에서 복기를 만났는데, 그는 노기등등(怒氣騰騰)한 모습이었다. 경보가 찾아온 까닭을 묻자, 복기가 하소연하였다.
“제가 가진 전답이 태부(太傅) 신불해(慎不害)의 장원과 가까이 있는데, 신불해가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제가 주공께 가서 고소했더니, 주공께서는 사부(師傅)만 편들어 저에게 도리어 그 땅을 양보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공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공자께서 주공께 한 말씀 드려 주십시오.”
경보는 종자들을 물리치고서 복기에게 말했다.
“주공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리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비록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만약 큰일을 행할 수 있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신불해를 죽일 수 있는데, 어떻소?”
복기가 말했다.
“계우가 있어서, 성공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경보가 말했다.
“주공은 아직 동심(童心)이 있어서, 밤이면 무위문(武闈門)을 나가서 길거리를 놀러 다니고 있소. 그대가 사람을 무위문 밖에 매복시켰다가, 그가 나오기를 기다려 찔러 죽이시오. 그리고서 도적의 소행이라고 하면 누가 알 수 있겠소? 내가 국모의 명이라 하면서 군위에 오르면, 계우를 축출하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일 것이오.”
복기는 경보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여반장’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아주 쉽다는 말이다.]
복기는 용사를 찾다가, 추아(秋亞)라는 자를 얻었다. 복기는 추아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주고, 무위문 밖에 잠복하게 하였다. 과연 밤이 되자 민공이 밖으로 나서는데, 추아가 갑자기 달려들어 비수로 민공을 찔러 죽였다. 민공의 수행원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추아를 붙잡았다. 그때 복기가 가병들을 거느리고 달려와서 추아를 빼앗아갔다. 그때 경보는 신불해를 살해하였다.
계우는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급히 공자 신의 집을 찾아갔다. 자고 있는 공자 신을 깨워 경보가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고, 두 사람은 함께 주(邾)나라로 달아났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子般遭弒閔公戕 공자 반이 시해되고 민공도 죽었는데
操刃當時誰主張 칼을 쥐어준 자가 당시 누구였던가?
魯亂盡由宮閫起 노나라의 반란은 모두 궁중에서 일어났으니
娶妻何必定齊姜 하필이면 부인을 제나라에서 얻었단 말인가?
한편, 노나라 사람들은 평소 계우에게 복종했는데, 魯侯가 피살되고 상국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복기와 경보에게 원한을 품었다. 그날 나라 안의 저자거리는 모두 문을 닫고 천여 명이 사람들이 모여 먼저 복기의 집을 포위하고서 온 가족을 몰살해 버렸다. 그리고 경보를 공격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경보는 인심이 떠난 것을 알고, 도망칠 궁리를 했다.
“齊侯는 예전에 거(莒)나라의 힘을 빌려 본국으로 돌아갔으므로, 제나라는 거나라에 은혜를 입었다. 내가 거나라로 가면 제나라에 내 입장을 이해시키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문강이 거나라 의원과 정을 나눈 일도 있었고, 애강은 문강의 조카딸이다. 그런 인연으로 거나라에 의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29회에, 소백(제환공)은 거나라 여인의 소생이었으므로 포숙아와 함께 거나라로 피신하였다. 제30회에, 소백은 거나라의 병거 백승을 빌려 제나라로 돌아가 군위에 올랐다. 제38회에, 문강은 진맥하러 온 거나라 의원과 정을 통하고 거나라로 가서 의원 집에 머물기도 하였다.]
경보는 미복(微服)을 입고 상인으로 가장하여, 수레에 재물을 가득 싣고 거나라로 달아났다.
애강은 경보가 거나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의 불안을 느끼고 역시 거나라로 몸을 피하려고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부인께서는 경보로 인하여 나라사람들에게 죄를 지었는데, 이제 또 같은 나라로 가서 합치면 누가 용납해 주겠습니까? 계우가 주(邾)나라에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부인께서는 주나라로 가서 계우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애강은 주나라로 가서 계우를 만나려고 했으나, 계우는 만나주지 않았다.
계우는 경보와 애강이 모두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 신과 함께 노나라로 돌아가 사신을 제나라로 보내 변고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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