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개강이 되어(직업이 가르치는일이라) 무지하게 바쁠 듯하여 글을 길게는 못쓸 것 같아 그전에 알럽에 뭔가 하나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오늘에서야 씁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테니스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네요..
암튼 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중학생때 저희 친누나가 홍익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누나가 들어가자마자 테니스 동아리를 들더군요.. 그러면서 테니스에 푹 빠지더니 매달 '월드테니스' 라는 잡지를 어디서 구해오는 겁니다.. 요즘도 그 잡지가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 잡지를 보면서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요..
이 잡지를 보면서 여자테니스쪽은 '나브라틸로바' 라는 철녀 가 독주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남성미 넘치는 외모로 인하여 남자가 아니냐 라는 의심을 받았던 참 인기없게 생긴 선수였는데, 미국의 크리스 에버트 로이드 시대를 종결시키고 거의 적수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의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나름 이쁘게 생겼지만 미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소녀가 이 나브라틸로바의 시대를 일순간에 무너뜨립니다.. 자존심 강한 철녀는 혜성처럼 등장한 독일의 슈테피 그라프 라고 하는 소녀의 라켓을 검사해봐야 한다고 떠들지만 소용없었죠.. 라켓은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저는 나브라틸로바를 너무 싫어해서 그라프 라는 소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테니스 여제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독일의 최고 여자 운동선수로 꼽히며 안드레 애거시의 부인으로도 잘 알려져있는 슈테피 그라프는 그렇게 등장했습니다.. 불과 18세의 나이로 말이죠..
여기서 잠깐 그라프의 커리어를 살펴보죠.. 그라프의 전성기는 1987년부터 시작됩니다..
87년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우승
88년 4대 그랜드슬램 석권, + 88서울올림픽 금메달
89년 호주오픈, 윔블던, US오픈 우승
일단 18살부터 20살까지 9개의 메이저 대회를 석권합니다.. 그냥 미친거죠.. 특히 1988년에는 테니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한해의 그랜드슬램 모두 석권과 올림픽 금메달까지 거머쥡니다.. 흔히들 골든 그랜드슬램이라고 하죠..
제 기억에 가끔 아주 가끔 그라프에게 태클걸던 선수는 스페인의 산체스 비카리오 밖에는 없었을 정도로 적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 그라프에게 도전장을 내민 또다른 소녀가 등장합니다.. 겨우 17세의 원조 괴성녀 모니카 셀레스입니다..
샤라포바의 괴성은 좀 섹시한 면(?)이 있지만 셀레스의 괴성은 그냥 괴성입니다.. -_-;;
사실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이 두 선수의 라이벌리는 여태껏 제가 봐왔던 여자 스포츠의 그 어떤 라이벌리보다 재밌는 여러가지 요소가 많거든요.. ㅎㅎㅎ
셀레스는 17세의 나이로 메이져에 데뷔했는데 그녀의 90년부터의 커리어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90년 프랑스오픈 우승
91년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US오픈 우승
92년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US오픈 우승
93년 호주오픈 우승
93년 호주오픈 우승까지가 셀레스의 전성기입니다.. 총 8회우승이고 이 기간동안 그라프는 90년 호주오픈과 91,92년 윔블던만 제패하는데 결승에서는 대부분 이 두선수가 맞붙었습니다..
셀레스의 전성기가 짧았던 이유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93년 독일에서 열린 함부르크 오픈이라는 대회도중 관중석에서 난입한 관중의 칼부림으로 인하여 등을 찔리면서, 더이상 라이벌리는 존재하지 않았던거죠..
그라프는 역대 최강의 포핸드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백핸드는 주로 슬라이스 타법(깍아서 치는..) 을 구사했는데 상대적인 약점이었죠.. 오늘날 페더러와 여러모로 상당히 유사한 선수였습니다.. 흔히들 나달을 천재라고 묘사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진정한 테니스 천재는 그라프와 페더러라고 생각합니다.. 그라프와 페더러는 원래 테니스 선수가 될 생각이 없던 꼬마시절 우연히 그 재능을 발견하여 프로선수가 된 케이스입니다.. 반면 나달과 셀레스는 오히려 노력형이라고 볼 수 있죠..
당시에는 포핸드, 백핸드 모두 한손으로 치는 타법이 대세였습니다.. 가끔 백핸드를 투핸드로 치는 선수는 몇명 있었는데 셀레스는 희한하게도 포핸드와 백핸드를 모두 투핸드로 치는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구별이 안가는 선수였죠.. 그런데 그 양손으로 치는 타법과 더불어 스트로크의 정확도와 공격성이 너무나 뛰어나서 상대방의 범실을 유도하기도 전에 그냥 스트로크 싸움 자체가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선수가 셀레스였습니다.. 그나마 그라프만이 역대급 포핸드의 파워로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그라프의 팬이었기 때문에 셀레스가 참 싫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테니스팬들이 셀레스보다 그라프를 더 좋아했다는 사실이었죠..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그라프는 외모적으로 이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유럽의 백인들이 좋아하는 우아한 귀족의 자태가 흐르고 있었고, 셀레스는 좀 못되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라프는 서방진영을 상징하는 서독 출신의 선수였고, 셀레스는 당시 인종청소로 유명한 분쟁지역인 세르비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국가의 백인들이 셀레스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셀레스는 칼침 사건 이후 미국에 귀화하게 됩니다..
92년 US오픈 결승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워낙 오래되었기에..) 두 선수의 라이벌리가 상징적으로 묘사된 경기였습니다.. 세트스코어 1대1에서 3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남자경기의 5세트와 여자경기의 3세트는 타이브레이크 제도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듀스체제로 가는거였죠..
그라프는 셀레스를 이길 기회가 무수히 많았지만 결국 10대8로 지면서 셀레스에게 우승컵을 내주게 됩니다.. 10대8 경기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경기였다는 것이죠..
이 경기후 그라프는 인터뷰에서 경기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I don't remember' 라고 간단히 답하면서 다음에는 절대 셀레스에게 지지 않겠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습니다.. 사실 그라프의 팬이었던 제가 봐도 그 경기가 희망적이었던 게 그라프가 예전처럼 셀레스에게 밀렸다는 인상보다는 오히려 게임을 주도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즉 셀레스에게 적응해간다는 느낌? 그런게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라이벌전이 더욱 기대가 되었죠..
하지만 그 다음해 셀레스는 칼침을 맞으며 공백기간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 복귀하지만 결국 별다른 활약없이 쓸쓸하게 잊혀져 갑니다.. 참 안타까운 선수였죠.. 그라프의 팬이면서도 셀레스의 칼침사건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라프가 셀레스를 이제는 이길 수 있다라는 믿음이 생기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라프는 셀레스가 없는 기간동안 다시 독주체제를 갖춥니다.. 그러면서 결국 99년 은퇴할때까지 메이져 22개 대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30살의 나이에 은퇴합니다..
그라프의 마지막 메이저 우승은 99년 프랑스 오픈입니다.. 당시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상대가 알프스 소녀라고 불리우는 마르티나 힝기스였습니다.. 당시 힝기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죠.. 운좋게도 전 그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었는데, 참 드라마틱한 경기였습니다.. 힝기스가 압도적으로 전성기 지난 노장 그라프를 압도하고 있을때쯤 2세트에 심판의 오심이 나옵니다.. 여기서 힝기스는 멘붕이 옵니다.. 강하게 어필하면서 평정심을 잃더니, 관중들의 야유까지 받습니다.. 한순간 관중들의 적이 되어버린 알프스 소녀는 마지막 노장의 투혼에 결국 굴복하면서 지고 맙니다..
힝기스도 참 좋아하는 선수였습니다.. 플레이스타일이 참 이쁘고 귀여웠죠.. 다만 테니스 선수이자 모델에 가까웠던 안나 쿠르니코바와 함께 복식경기를 치루면서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죠.. (사실 당시 여자테니스계의 레즈비언 문제가 심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쿠르니코바의 월등한 외모와 본인을 동질화시키는 듯한 표정과 행동이 간혹 보일때마다 귀엽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힝기스는 별다른 장점이 없는 듯 하면서도 90년대 후반에 오랫동안 랭킹 1위를 고수한 비법이 바로 풋워크였습니다.. 한마디로 나달같은 선수였다고 할까요?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뛰어난 수비실력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멘붕을 가져왔죠.. 이런 선수들의 공통점은? 바로 부상입니다.. 안타깝죠.. 나달도 그래서 위험해 보이구요.. 힝기스는 발목부상을 견디지 못하고 조기 은퇴를 선언해 버립니다.. 아마 제 기억에 메이저 대회 5개정도 우승했을 겁니다..
아~! 힝기스와 주니어시절 주니어 랭킹 1위를 다투던 선수가 누군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죠..? 바로 예능 늦둥이 윤종신씨의 부인인 전미라 선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선수 중에 주니어 시절에는 잘나갔던 선수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무대로 가면 무조건 사라지는거죠.. 그런면에서 이형택 선수는 정말 대단했던 거구요..
힝기스 이후 여자테니스는 남자테니스와 마찬가지로 파워로 승부하는 선수들이 득세합니다.. 뭐 윌리엄스 자매만 보면 딱 답이 나오지요.. 그래서 예전만큼의 재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레미 린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느바 무대의 동양인 포인트가드가 되었듯이, 불가능할 것 같은 한국의 그랜드 슬램 우승자를 바라보며 테니스를 보고는 있습니다.. 물론 큰 기대는 안하지만요..
한동안 이제 겨우 14개월된 제 아들에게 테니스를 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죠.. ㅎㅎㅎ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가브리엘라 사비티니의 팬이었는데 이 선수가 스타성은 있는데 1인자자리를 위협하기엔 한두끝이 모자랐죠. 오히려 여러 선수들이 옹기종기 1위다툼하는 지금 나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사바티니 또한 나브라틸로바처럼 중성적인 매력때문에 돋보이는 선수였습니다.. 사실 사바티니가 레즈비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라고 밝혀지긴 했는데 문제는 그 이후 여자테니스선수들 중에 레즈비언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테니스 대회들은 대부분 tour형식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집을 떠나 홀로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테랑급 선수들이 이제 갓 투어에 진출한 신인선수들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언론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선수들의 부모들 중에는 보호차원에서 자녀와 함께 투어를 다니는 현상도 꽤 많았더랬죠..
전 셀레스선수를 복귀후에 모습만 봐서 그라프를 그정도까지 몰아부쳤는지는 몰랐는데.. 좋은글 잘봤습니다.
저도.. 전미라 박성희가 그렇게 아쉬워더랬습니다. 사실.. 남자쪽보다.. 여자쪽에서. 세계정상급의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확신하는.. 편이라.. 그리고. 저는 그라프도. 힝기스도 좋아했지만.. 역시.. 여자 테니스는 8강권. 선수들이 맘에 들더라고요.... 과거 사바티니 피어스 한투호바. 이런선수들이.. 좋았더랬는데... 확실히.. 캐프리아티나. 데븐포트.. 이런선수들은.. 보기만 되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은 감정이입이 되면서.. 응원하게 된던데...
님 댓글보니 전 제니퍼 캐프리아티의 센세이셔널한 데뷔무대가 떠오르네요.. 베커, 그라프만큼의 엄청난 10대 돌풍이었는데 그 이후 약쟁이가 되면서..ㅠㅠㅠ
비슷한 시기의 샘프라스 커리어 라이벌리가 떠오르네요. 테니스는 뛰는것만 봐도 토나올것같아요 이건 뭐 왠만한 체력 아니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
잘읽었습니다 저도힝기스참좋아했었어요~^^
좋은 글 아침 출근길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테니스와 낚시를 하며 살겠더러는 생각을 갖게 해준 기억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얼마전 제가 흥분해서 죄송했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네요^^
낯익은 이름이 많이 나오네요... 좋은글 잘 읽어습니다.. 기억에 힝기스 선수 귀여운 외모 아니였나요? 급 궁금하네요...ㅎㅎ
여자선수들중에서는 상당한 외모의 소유자였죠.. 이마가 좀 넓은 편이었지만 외모도 플레이스타일도 심판한테 어필하는 모습도 모두 귀여운 선수였죠.. 다만 쿠르니코바와 왜그렇게 같이 다녔는지 의문입니다.. 쿠르니코바만 돋보이더라구요 ㅠㅠ
힝기스는 스타일과 달리 프렌치 오픈 우승만 없네요
근데 보통 선수들이 단식 쪽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단복식 같이 한게 선수생명을 갉아먹은게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저도 그라프를 좋아하긴 했지만 칼침 사건이 없었다면 셀레스의 시대가 더 지속되었을 확률이 높았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셀레스는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그 사건이후 셀레스팬들이 그라프를 더욱 싫어하게 된 이유가 그 난입관중이 그라프의 팬이어서 계속 그라프를 이기는 셀레스가 얄미워서 그랬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95년 US오픈 결승은 아직 저도 보지 못했네요.. ^^;;
샤라포바의 괴성은 좀 섹시한 면(?)이 있지만 셀레스의 괴성은 그냥 괴성입니다.. 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브라틸로바 그 때 남자랑 경기하고 그랬던거 같은데. 토요일에 학교 마치고 봤던 기억이 납니다.
글 잘 봤습니다.. 사진이 몇개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저도 사진 넣고 싶었는데 저 글 쓰는데도 상당히 오래 걸려서 귀차니즘 모드때문에... ㅠㅠ
저에게 NO1.은 안나 쿠르니코바^^ㅋㅋ
그라프 셀레스 상대전적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상대전적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셀레스가 앞서지 않을까 싶내요. 그라프는 셀레스의 전성기때 밀리는 모숩이 많았습니다 모니카가 2년간 6개의 타이틀을 가져간 걸로 봐도 그렇고...
두 사람간의 상대전적은 10승 5패로 그라프가 앞섭니다.
심지어 셀레스가 불운의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도 그라프가 전적은 더 앞섰죠.
알렉산드로스님 감사합니다.. 저도 정확한 전적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셀레스가 중요한 결승전에서 그라프를 이기는 모습이 많았기 때문인지 임팩트적인 부분이 컸다고 봅니다..
알렉산드로스 // 답변 감사합니다.^^
남자건 여자건 파워플레이어가 더 유리한건 어쩔수 없는 추세인것 같습니다. 사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기술은 게임을 셋팅하야하는데 반해 파워는 기본능력이니까요. 파워가 딸린다면 상대의 서비스게임때 너무 힘들죠. 더구나 요샌 라켓도 엄청 발달했죠. 선수들이 백핸드를 두손으로 후려갈기고 베이스라인 끝에서 스트로크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습니다. 여자 테니스는 남자보다 파워 의존도가 더 높았다고 봐요. 요샌 잘 안봐서 모르겠지만 윌리엄스 자매, 데이븐포트,클리스터스, 샤라포바, 사피나 등 힝기스를 제외하면 전부 하드히터들이 정상을 지켜왔죠. 저는 이제는 걍 테니스란 그런 경기라고 생각하고 봅니다.
동감합니다.. 예전에는 선수들의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런것들을 비교해가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 파워를 갖춘 완성형이 아니면 탑랭커가 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재미가 반감된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나달같은 독특한 테니스를 추구하는 선수가 더 정감이 가더라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당시 그라프와 힝기스의 결승전을 라이브로 봤던 기억이 나네요. 힝기스 응원하고 있었는데...ㅡ.ㅜ
힝기스 팬1인
다시 심심해지면 남자테니스 얘기도 해주세요. 완전 기대됩니다.
당분간은 좀 힘들 듯 합니다..ㅠㅠ 여기 게시판에 남자테니스 고수님들이 몇분 계시는 것 같은데 저도 좀 부탁드리고 싶네요 ㅎㅎ 얼마전에 제가 여기에 쓴 글이 있긴 한데 시간이 나면 꼭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저도 예전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안드레 아가시가 장발을 날리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경기를 했었죠. 그후부터 해외 테니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대회가 1988년 KAL오픈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대회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애거시는 18세의 나이로 준우승을 차지했었죠..^^
신기한게 남자 테니스는 앤디 로딕, 윌프레도 송가 같은 짐승들을 좋아하는데 반해 여자 테니스느 좀 더 여성스러운 선수들을 좋아해온 것 같아요. 그라프와 셀레스 때는 어리고 못 봐서 모르지만 힝기스와 더불어 꾸준히 응원했던 다니엘라 한투코바..까지 압도적인 파워는 가지지 못한 선수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메이저호구로 무시받지만 워즈니아키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고, 요즘 추세에 마지 않으면서도 탑랭커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쁜 선수만 좋아한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