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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개혁 세력이 왜 승리해야 하는가?
세상을 바꾸자면 시대사적 요청의 핵심 사항을 사회의 보편적 원리이자 원칙으로 확고히 수립해내야 한다.
현시기의 시대사적 요청은 민이 주인의 권리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기, 민생 파탄, 민주주의 위기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총선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데, 과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시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회는 각기 자기의 독자적인 사회 운영 원리와 원칙에 의해 돌아갑니다. 노예제 사회는 노예제의 운영 원리와 원칙에 의해서, 신분제 사회는 신분제의 운영 원리와 원칙에 의해서, 자본제 사회는 자본의 운영 원리와 원칙에 의해서 돌아갑니다. 그 때문에 세상을 바꾸자면 이런 사회 운영 원리와 원칙을 바꿔야 합니다. 한마디로 현시기의 시대사적 요청의 핵심 사항을 받아들여 한국 사회의 확고한 보편적 운영 원리이자 원칙으로 확립시켜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사적 요청이라는 것은 지난날 사회가 운영되는 원리와 원칙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사회 운영 원리와 원칙을 말합니다. 그 때문에 지난날의 사회를 부분적이고 일면적으로 비판하는 차원에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차원에서 바꿔낼 수 있는 핵심 원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차원의 비판으로서는 지난날의 사회 운영 원리가 대부분 관철된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겠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군사독재 세력이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하게 된 이후 여러 번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개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리어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시대사적 요청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정권들에 대한 일면적이고 부분적인 비판 차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면적이고 부분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서는 백날 가도 개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가 이미 한국 사회를 부분적이고 일면적으로만 조금 바꾸고 나머지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거기서 전면적인 개혁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썩은 씨앗에서 싹이 트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만든 사회 운영 원리와 원칙을 질적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사적 요청의 핵심 사항을 받아들여 사회의 보편적인 운영 원리이자 원칙으로 확고히 수립해 나가야 하고, 그래야만 한국 사회의 개혁을 실질적으로 성공시켜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상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느냐가 분명해야 그에 따라 주체 역량을 강화하면서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제반 조건을 마련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대사적 요청의 핵심 사항을 들고 나서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그 요구를 파악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여러 관점과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과연 그 속에서 모두가 인정하고 합의할 수 있는 그 정당성과 명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세계에서 인간 자신의 이해관계와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이 아닐 수 없으므로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사적 요청에 대한 파악은 결국 인간의 주체적 요구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주체적 요구가 수만 가지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요구가 무엇이든 간에 원리적으로 볼 때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려 한다는 이 주체적 요구의 원리와 원칙보다 더 높은 경지는 없습니다.
돈을 벌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든 그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려는 근본 목적을 필연코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돈을 버는 것과 과학기술 자체가 목적으로 된다면 인간이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돈의 노예가 되고 과학기술에 부속되어 고통받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는 주체적 요구가 최상의 경지이자 근본 목적으로 된다면 결국 이 각도에서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시대적 요청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주인답게 삶을 살아가려는 이 주체적 요구는 단번에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시대적 발전 단계를 겪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입니다.
맨 처음은 원시사회입니다. 아직 인간으로 자각하지 못한 단계입니다. 여기서 먼저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국가를 세움으로써 원시사회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개척하자면 집단적인 힘을 동원해야만 하고, 그러자면 사회를 구성하여 질서 체계를 잡아야 하는데, 바로 여기서 국가를 수립하여 해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먼저 자각한 이들은 자기들만이 인간이라고 주장했고 나머지는 동물이나 도구와 같은 노예로 여기고 부려먹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사람을 동물이나 도구와 똑같은 존재로 여길 수 있느냐면서 항의하며 대항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사람으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너와 나는 타고난 혈통과 신분이 다르다고 하면서 신분적 차별을 가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노예제 사회와는 질적인 차이를 가지지만 또 한편으로 신분적 차별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사회를 신분제 사회라고 하지 않고 봉토를 주었다는 점에서 봉건제 사회라고 말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봉토와 신분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주된 역할을 했는가를 따져볼 때 봉토가 아니라 신분이 주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즉 제후나 대신, 백작이나 후작 등의 신분이나 관직을 부여하면 그에 따라 봉록이 따라왔고, 신분적인 자격이 박탈당하게 되면 그에 따라 봉록도 빼앗기거나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면 봉건제 사회라기보다는 신분제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의 주체적 요구를 중심 원리로 놓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신분적 차별이 가해지자, 이번에는 어떻게 어느 누구는 고귀한 사람이 되고 또 어느 누구는 하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신분제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입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이용해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노동자를 맘대로 부려먹게 되었습니다. 서로 평등하게 계약한다고 하지만 노동력이라는 것이 어디 다른 데서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고, 또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을 수 없기에 불공정한 게임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는 이유는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인간 외적 조건이 불평등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외적 조건에 제약받게 되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은 형식적인 측면으로 물러나고 사실상 자유와 평등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이 인간 외적인 조건을 어떻게든지 풀어야만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외적 조건을 푸는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이 외적 조건은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외적 조건, 더 크게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차원의 문제로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려면 결국 인간의 주체적 요구가 전면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인간이 세상에서 주인답게 삶을 누리고 살아가는 존재로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풀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현시기의 시대사적 요청이 드러납니다. 인간 외적 조건을 비롯해 인간과 세계와의 모든 관계에서 인간이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이고 전면적으로 행사하고 누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간의 관계 원리가 지난날의 자유와 평등의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문제로, 즉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과 사회, 나아가 인간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단계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가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관계로 접근되면 당연히 자유와 평등은 실질적으로 누리게 됩니다. 이로 볼 때 현시기의 시대사적 요청은 사람이 주인의 권리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니만큼, 바로 이 시대적 요청의 핵심 사항이 사회의 보편적인 운영 원리이자 원칙으로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 시대적 발전 단계에서는 모든 부분에서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해야 하기에 부분적이고 일면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부분적이고 일면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사람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해야 한다는 현시기의 시대적 요청을 거부하고 지난날처럼 권력자들의 시혜나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낡은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 이상 한국 사회가 지탱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분적이고 일면적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고, 또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대와 탄핵 차원에서 멈춰서도 안 됩니다. 시대사적 요청에 맞는 새로운 사회 운영 원리가 사회의 보편적 원칙이자 원리로 확고히 수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누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애국법과 조국통일법의 제정(“우리겨레연구소 카페”의 “정호일의 민의 소리” 2023. 12. 18일 글 참조), 빈부 격차의 해소(2023. 12. 26일 글 참조), 각종 대중단체의 이해와 요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질서 체계 수립(2024. 2. 19일 글 참조) 등을 그 핵심적 요구 사안으로 들고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 핵심적 요구 사항을 도도한 흐름의 물결로 만들어 가느냐 못 하느냐가 결국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의 관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개혁 세력이 왜 승리해야 하는지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면서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2024. 3. 25.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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