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입을 다문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지나며
네게만 들려주는 비밀을 고를 수 있다는 것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
- 조온윤 詩『도서부의 즐거움』
- 시집〈도넛을 나누는 기분〉창비교육
일전 한 젊은 시인과 인터뷰를 하던 중에, 요즘의 즐거움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우물쭈물 답을 미루다가, 유튜브로부터 헤어나질 못하는지라 괴로울 뿐이라고 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그의 동문서답이 실은 정확한 대답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한다. 하루 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오 분만 더 보자. 이것까지만 보자. 그렇게 한두 시간이 우습게 ‘녹아내린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다음이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어느새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른바 도파민 중독이다. 그 끝에 유쾌함이 남으면 좋을 텐데 찾아오는 건 극도의 허무요, 개운치 않은 자괴감이기 마련이다. 젊은 시인의 고백은 이와 같은 의미일 것이며 나의 웃음은 적극적인 동감인 셈이다. 며칠 전 책을 읽던 중 자꾸만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 급한 사람처럼 읽느라 시선의 속도가 문장의 속도를 자꾸 앞서는 게 아닌가. 부지불식간에 모바일 콘텐츠에 길들고 만 탓이리라. 수십 년 책과 함께 살았는데 이토록 간단히 허물어지고 말다니. 씁쓸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무언가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다. 하지만 중독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나. 요즘 나는 내 몸의 시간을 책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천히 감각하고 천천히 생각하며 천천히 쓰고 말하기. 이 당연한 일이 과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단기간에 취한 달콤함을 잊기란 몸도 마음도 쉽지 않을 터. 단단히 각오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