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광(요한)신부님
1921년 7월 10일 서울출생
1945년 11월21일 서품/ 1953~1967 의정부성당 3대 주임신부
신부님은 1967년 8월에 세종로본당으로 부임하신 후 1973년 5월에 떠나실 때 까지 성당 증축과 유치원 개원,
영복산 묘지개발, 주보창간, 평신도의 월 1회 주일미사 강론 등 내적, 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시고 업적을 남기신 신부님이십니다.
이계광 신부(세례자요한·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가 지난 12월 26일 선종하셨습니다. 향년 91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2012년12월 28일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서울대교구 용인 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신부님은 1945년 11월 21일 사제서품을 받으신후 인천 답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성신중고등학교 교사,
영등포동·중림동본당 보좌, 삼각지·황해도 옹진본당 주임, 군종사제(육군), 의정부2동본당 주임, 성모병원 경리처장,
세종로·가회동·중곡동·일산·대림동·여의도동·성북동본당 주임을 거쳐 1996년 3월 사목일선에서 물러나셨습니다
내가 신부님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은 "쟝발장"이 미리엘 신부를 평생 못 잊고
신부님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거듭 낳은 것처럼 나 또한 신부님으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계광(요한)신부님을 내 인생길에서 만나뵙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66년 8월인가(이젠 군대 제대날짜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원래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땐 교회의 주일학교 다니기를 좋아 했었습니다.
외숙모를 "엄마"라고 긴가 민가 믿으면서 살았던 어린시절에 '주일학교'
다니는 게 왜 그리 좋았던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배웠던 찬송가 중에 "십자가 군병"과
"귀하고 귀한 성경" 등 찬송가는 아직도 80이 넘은 이 노구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서대문에 있는 국제대학(이화대학교재단/야간대학)에 다닐 때엔 성가대에 자진해서 가입해서
가운을 입고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 대학에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채플'에 참석하지 않으면
학점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러나 이 국제대학에서 천주교 신자인 CMO 루시아를 만나서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세종로성당에서 천주교리를 6개월간 배우고 난후, 영세를 받고나서
'관면혼배'를 받았습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백수건달로 직장이 없었으니 성당에다 내는 헌금이나
혼배성사하는데 드는 비용도 땡전 한푼 내지 않았습니다.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지 이계광신부님께서는 나를 어여삐 보시어 인간들이 설정한 제약을
풀어 주시고 합당한 마음이 들게 영육간의 고민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20대 후반이었던 내게 자가용 운전수 자리를 소개하시어 취직을 시켜 주셨습니다.
신진자동차 이사 였던 이종화씨의 부인 신식씨가 쓰는 자가용을 운전하게 하신겁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화진성당에 가서 신부님덕에 수녀님들이
차려 준 점심을 얻어 먹었던 기억이 기분좋게 상기되기도 합니다.
신식 사모님은 성당을 꾸미는 조화장식에 능숙하셨는데 성당일을 너무 좋아 하시고 신심이
너무 좋으셨던지 찌게를 불에 올려 놓고도 한달음에 150미터 떨어져 있는 성당을
오가고는 하셨습니다. 그리고 꽃꽂이 강습도 여자대학으로 다니셨기에 기분좋은델 많이
갔었습니다. 젊은 여대생들이 많았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이계광신부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내 본명은 '아킬레오'
'아킬레오(Achilleus)'란 순교자는 로마군인이었다가 탈영하여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되었으나
후에 잡혀서 귀양을 간 곳에서 참수당했다고 합니다.
형제 장윤철의 본명은 도시테오 (Dositheus)랍니다. AD 530년경 수도사 출신으로 성인반열에 오른분으로
축일이 2월23일 ~! 바로 윤처리 생일이랍니다~! 윤철의 대부 다니엘 (김현주)님이 추천해준 세례명이랍니다~!
다른 형제 김성덕--->스테파노 이영애 ---> 스테파니 윤광덕 --->시몬 SKT는?
종교를 갖고 믿음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노구를 이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의 요소가 아니라
건강의 필수요건으로도 아주 중요하고 값있는 것이란 사실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멀티종교인이 되다보니 순교란 것을 할 수도 없고 신앙심이
옛사람들의 10분지 1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내 아들 이든에게 신부님께서 영세를 해 주셨는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운전수생활을 접고 공무원시험을 봐서
합격이되어 국가의 녹을 먹기 시작하면서 직장이 있는 고척동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종로성당
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신부님을 찾아 뵙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천주님께 감사드리고,
그의 종이셨던 이계광(요한)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살아 생전 신부님을 찾아 뵙지 않은 죄를 뉘우치며 늦게나마 신부님의 선종을 애도합니다.
제 인생길에서 신부님을 만나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주여,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소서"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