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책장을 펼치며/ 김영미
서쪽을 향해 조그만 창을 낸다
구름의 책장을 펼치면
노을은 가장 낮은 곳에 머무는 경전이 되어
노년의 다감한 눈빛에 머문다
태어나던 날의 눈 부신 빛 내림
누리를 향해 달려가는 학창 시절의 바람
누가 준 적선이 아닌데 잊고 산 시간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준 이들에게
이제야 고마움이 뭉클뭉클 와닿는데
한해 끄트머리 구름의 밀월을 넘겨다보며
세상을 향한 부채에 대해 곰곰 살핀다
우리가 살아온 내력만큼
지상의 따듯한 전설이 책갈피에 쌓이고
맞잡은 손과 손이 피돌기 세상을 펼치면
노을빛은 더욱더 아름다울 거라고
햇빛과 나무숲 비와 바람 속을 지나오며
선조들에서 후손들로 이어온
두근거리는 맥박과 핏줄은 살아있어
어깨동무하며 동행하는 친구와 동료들
하나하나 짊어진 무게가
하늘을 모르던 어깨를 누른다
하늘로 향한 연통을 세우며
아궁이 저쪽의 안부를 살핀다
산간지방 어디쯤 가야만 고개 들것 같은
그 겨울의 온기와
그 앞에 옹기종기 앉은 뒷산 짐승들의 뒤안길
쉽사리 줄어들지 않던 겨울의 이야기들
무심결에 스쳐 간 기억 저편엔
한없이 받고서 돌려주지 못한 빚이 너무 많아
따듯했던 그 마음에 군불 지피며
모두를 향한 굴뚝을 내고
노을빛 가슴에 하늘을 품는다
[시작메모]
빚이라는 것.
문득 부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작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부채에서부터 원죄라는 근본적 부채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불안이라는 표식으로 남겨진 부채적 죄책감이 있겠지요.
그럼에도 그 무거움이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힘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빚의 재발견에 관한 생각과 내일을 향한 희망을 부풀리며, 설계하고 다짐하곤 합니다.
해가 떠오르는 하늘의 붉음과 저물녘 하늘을 바라보는 빛의 감흥이 다르듯
소녀 시절의 생각과 노년을 향하는 생각에는 연통을 놓아야만 그 체적과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태양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었고,
오늘이란 하루는 늘 같은 시간과 공간을 부여하고 있어도 그 무게감은 그때그때 다르게 마음에 닿고 있으니,
성현들이 전하는 비움의 진리를 생각하며 가슴에 난로 하나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8회] 구름의 책장을 펼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