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자장매 완상
지기들에게 아침마다 안부로 나누는 시조는 엊그제 구룡산 기슭에서 쑥을 캐고 들린 분재원 홍매를 글감으로 삼았다. “남산리 회산분재 온실에 키운 홍매 / 옹이가 숭숭하고 둥치에 움이 터서 / 철보다 일찍 피운 꽃 향기로움 더한다 // 잔가지 잘라 꽂고 때로는 접목으로 / 한평생 묘목 길러 손마디 거칠어져 / 분재도 주인장 닮아 공력 깊어 보인다” ‘농장주 닮은 홍매’ 전문이다.
우수 이후 닥친 한파가 한동안 기승을 부리다 꼬리를 내리려는 즈음이다. 월요일 날이 밝아온 식후 자연학교 등굣길은 열차 교통편을 이용하려고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에서 물금까지 표를 끊었다. 정한 시각에 닿은 객차에 올라 진례터널을 통과 진영역과 한림정역에 정차했다가 낙동강 강심에 놓인 철교를 건너 삼랑진에서 강변 따라 내려갔다.
원동역을 지난 물금역에 내려 역전에서 양산 시가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봉산을 등지고 형성된 물금 신도시는 2호선 지하철이 뻗쳐온 부산대학 병원이 중심이었다. 양산으로 가서 구 터미널에서 통도사 방면 신평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상북과 하북을 거쳐 내원사로 나뉘는 용연을 지나자 통도사 입구였다. 지산리 어디쯤은 퇴임한 대통령의 사저가 있을 것으로 짐작 되었다.
조계종 종단이 운영하는 중고등학교 근처에서 한산한 거리를 걸어 영축총림 산문으로 들어섰다. 사찰 들머리부터 길바닥이 포장되지 않은 맨흙으로 노송들이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솔바람이 춤을 추듯 한다고 해서 ‘무풍한송로’로 명명된 숲길은 자동차로 달려 경내 주차장으로 든 이들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다. 평일 아침나절이라 산문을 찾은 이들이 적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고승들이 사리로 잠든 수십 개에 이른 부도와 탑비가 가지런한 제단에서 다시 한번 일주 내삼문을 지나자 성보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이었고 고찰 경내로 들어섰다. 좌우 사천왕상에 두 손 모으고 문턱을 통과하자 절집을 찾아온 명분과 대면하게 되었다. 영각 주변에 자라는 고매들은 추위에 멈칫하면서도 부푸는 망울들이 꽃잎을 펼치려는 즈음이라 설레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통도사 매화를 두고 흔히 ‘자장매’라 칭하는데 임란 후 소실된 전각 중 영각을 지어 조사 존영을 봉안하니 주변에 매실나무가 움터 자랐단다. 구법승 지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불보사찰로 창건된 통도사였다. 그 매화는 자장매로 이름이 붙여져 4백 년 가까이 맥을 잇는 고매로 자라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이면 탐매객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때면 대한 무렵부터 망울을 터뜨리기도 하는 자장매인데 올해는 입춘에 이은 우수까지 두 차례 닥친 한파로 개화가 늦은 편이었다. 주말을 넘긴 월요일이라 탐매객이 적어 마음에 들었다. 탐매에서 반쯤 핀 매화가 필요조건이라면 구경꾼이 적음은 충분조건이었다. 수년 전 들렸을 적 이젤을 세워 유화를 그리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어느 해는 빗속에 우산을 펼쳐 쓰고 찾았다.
분홍빛 꽃망울이 한두 개씩 피기 시작한 고매 그루를 치올려다 보며 탑돌이 하듯 주변을 맴돌다가 금강계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법회가 열리는 전각 바깥에서 손만 모으고 청법전을 지난 개울가에서 안양암으로 올라 영축산 기슭으로 향했다. 성파 종정과 도자 장경각이 있는 서운암을 비롯한 여러 암자 가운데 영축산 지기가 한 곳에 모인 극락암으로 올라 늦은 점심 공양을 받았다.
산 중턱에서 발아래를 굽어보고 우거진 솔숲에서 차량이 뜸하고 인적 없는 길을 걸어 다시 영각 곁으로 갔다. 오후 햇살이 퍼지니 매화는 아까보다 몇 송이 더 꽃잎을 펼친 듯했다. 경내 여러 암자 중 비구니가 머무는 보타암 스님 일행이 탐매를 나와 주변을 서성였다. 코끝에 스치는 매향을 등 뒤로 하고 산문을 나오면서 카페로 리모델링한 수송정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래로 갔다. 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