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매조도 / 박주병
방병성주(蚌病成珠), 조개가 병들어 진주를 이룰 수도 있듯 가치는 우환(憂患)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우환은 더러 도저한 철학을 낳고 그 철학이 수렴하여서는 시가 되기도 하고 펴서는 그림이며 저술이 되기도 한다. 정다산(丁茶山)의 ‘매조서정도’(梅鳥抒情圖)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이 매조서정도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걸 손바닥만 하게 축소하여 영인한 거다.
매화 그림은 새를 등장시킨 매조도이든 매화만을 그린 것이든 대개 나무는 험상궂은 고목(古木)으로 그려서 풍상에 찌든 노인을 연상케 하고 꽃은 단엽으로 그려 그 청초함이 정녀(貞女)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그림에서 다산은 나무의 몸체와 밑동은 그려 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그림을 보면 세로로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전체의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위쪽만 두 개의 매화 가지로 안배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여백인데 그 여백은 크고 작은 글자들로 꽉 메워지다시피 되어 있다. 여백이 여백으로만 남겨지는 여느 매화 그림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낭창거릴 듯 두 개의 가느다란 매화 가지가 그림의 상단 오른쪽 귀퉁이에서 완만하게 아래로 처지면서 왼쪽으로 뻗었다. 절지(折枝)는 한없이 어려도 드문 착화(著花)를 보면 풍상의 세월이 흐를 대로 흘렀다. 고매(古梅)이다. 아랫 가지의 한 중간쯤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새는, 아랫도리는 사북에서 교차되는 두 개의 벌어진 가위다리처럼 엉겨 있고 몸통은 가위 다리를 벌린 듯 갈라져 있지만 부리를 치킨 대가리는 두 마리가 다 같이 왼쪽을 향해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사북을 축으로 한, 가위의 두 다리가 금방이라도 접치어지고 다시 벌어질 듯 그렇게 새들은 앉아 있다. 이것은 아마도 스스로 야광주(夜光珠)에 비겼던 그의 역저 『주역사전』(周易四箋)에 나오는 이른바「반합」(牉合)의 뜻을 그림에 담으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1) 가위다리를 친 아랫도리는 ‘혼배행례’(婚配行禮)를, 한 방향으로 응시하는 자태는 ‘부부정가’(夫婦正家)의 원리를 나타내어 그의 이른바 「반합」의 뜻이 드러난 듯 숨은 듯하다. 이 그림은 『주역사전』이 완성된 5년 뒤, 그의 나이 52세(순조 13, 계유, 1813) 때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야광주는 이 그림 속에서도 그 광채를 발하고 있을 터이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이 두 마리 새는 딸에게 부부의 도리를 그림으로 가르치려 한 것일 수도 있다. 다산의 숱한 가계(家誡)에서 보듯, 자식을 바로 가르치려 하는 다산의 열의는 적거의 처지가 되고부터 더 절절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의 왼쪽 여백에 씌어 있는 작은 글씨의 후기에서도 그렇다.
내가 강진에 귀양살이한 지가 수년이 넘었다. 홍(洪)부인이 헌 치마 여섯 폭을 보내 왔는데 해가 묵어서 붉은 빛이 바랬다. 이것을 잘라 네 개의 첩(帖)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내고 그 나머지로 작은 가리개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보낸다.⎯⎯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敝裙六幅 歲久紅濡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다산은 딸을 강진으로 데려와서 강진에 사는 친구 윤서유(尹書有)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윤창모(尹昌模, 1795~1856)에게 시집보내고 난 뒤 울적한 심정을 달랠 길 없었던 모양이다. 이 그림은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린 거다. “가경 18년(순조 13, 계유, 1813) 7월 14일에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라고 하였으니 다산은 갓 마흔 살에 아내와 이별한 지 12년이 되었고, 풍병을 앓고 있는 것도 12년, 너무 일찍 일그러진 52세의 초로가 되어 버렸다. 예나 이제나 늙어지면 외로운 법인데 하물며 귀양살이하는 죄인이겠는가. 이들 내외는 한창 좋은 시절을 이렇게 하여 다 보낸 거다. 붉은 빛이 바랜 그 치마는 시집올 때 입고 온 다홍치마(紅裳, 紅裙)였고 그것을 보내는 마음이나 받는 마음이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슴이 저려 온다. 부인의 체취라곤 이 치마뿐인데 이제 그 치마 여섯 폭(「霞帔帖題」에서는 ‘敝裙五幅’이라고 되어 있다. 착각일 뿐 같은 치마다.)을 잘라서 두 아들에게는 3년 전(다산 49세, 순조 10, 경오, 1810)에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어 거기에 근검(勤儉)을 가르치는 교훈을 써서 보내고 2) 딸에겐 매조도를 그려 보내고는 있지만, 통한의 세월을 살아 온 그의 심신은 푹 썩어 허물어져 가는 늙은 매화의 밑동처럼 되고 말았으리라. 행서체와 초서체를 섞어서 연달아 내리쓴 화제(畵題), 그 시어들이 여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에서 도리어 그의 적적한 심정을 읽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백이 여백으로만 남겨지지 않은 건 까닭이 여기에 있으리라. 사언으로 끊어서 번역문과 함께 적어 본다.
翩翩飛鳥 훌쩍 날아온 새
息我庭梅 내 집 뜨락 매화나무에 사는구나
有烈其芳 아름다운 그 향기에
惠然其來 즐거이 왔나 보다
爰止爰棲 머물기도 하고 깃들기도 하여
樂爾家室 제 집인 양 즐기는구나
華之旣榮 꽃 피어 흐드러졌으니
有蕡其實 많은 열매 맺겠네
다산 가신 지 170년(2006년 기준), 나는 다산의 이 시에 외람되게 한 수를 덧붙여서 읊어 본다.
孰謂我畵 누가 내 그림에
素無根査 둥치가 없다 하는가
風霜所腐 풍상에 썩은 밑동
不忍畵之 내가 차마 못 그린다
아내가 미워지고 딸한테서 서운한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가끔 이 매조도를 들여다본다. 갑자기 창 밖에는 봄볕이 가득하고 나는 스르르 낮잠이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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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牉合에 대해서는 졸저『周易反正』(서울: 學古房 2013), pp. 303〜306 참조.
2)「又示二子家誡」에 ‘勤儉’의 구체적 내용이 나온다. 하피(霞帔)란 홍군(紅裙)의 전용된 말이다.「霞帔帖」이 2006. 4. 2. KBS 명품진품 시간에 처음으로 출품되었다. 감정가 1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