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부활 제5주일: 나해
오늘 복음의 내용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관한 내용이다.
복음의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는 잘 알려진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평범한 내용 같지만,
그것은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는 "주님께 대한 두려움"과 "성령의 역사"로 성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보다도, 주님께 대한 성실성,
즉 주님께 대한 두려움과 성화하시는 성령의 힘, 즉 성령으로 가능하다.
포도나무의 비유는 역시 이것을 말한다.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예루살렘 교회와 일치하려고 한 것은(1코린 9,1),
성령의 특은이 교회 밖에서나 교회를 거슬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모든 카리스마를 다 해도 그 그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위대한 바오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에 대한 삶의 모습은 '말로서가 아니고 행동과 진실에 의한 상호신뢰와 참된 사랑으로' 사는
모습(1요한 3,18)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가지도 자기 탓이든, 타인의 잘못이든 간에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
복음: 요한 15,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아들은 우리가 아들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에게 참 포도나무가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포도나무라 하시며 그분과 성령 안에서 결합한 이들은 가지라고 하신다.
가지들은 포도나무와 연결됨으로써 포도를 맺는다.
우리는 삶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사악한 씨앗을 없애고, 말씀의 쟁기로 우리 마음을 갈아엎고,
계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신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2절)
가지들은 열매를 맺고 자라는 데 필요하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가지들은 모두 잘리고 만다.
예수님의 복음이라는 포도나무도 세상 곳곳으로 심어졌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예루살렘은 그래서 버려지고 말았다.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으로 우리가 단단히 결합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지라고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가지가 될 것이다.
그런 가지는 잘릴 것이고, 농부는 잘린 가지들을 쓰레기처럼 태워 버릴 것이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아버지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3절)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각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 사람의 숨겨진 뜻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어,
성령을 통해 인간의 헛된 욕망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어 깨끗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덕에 도달하게 할 것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4절)
가지가 포도 줄기로부터 생명의 수액을 받지 못한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도 우리를 기르시는 분과 결합하여 있다면 생명을 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분 안에 확고히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가지는 자신 생명의 수단이 되는 것을 줄기에서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안에 머무시는 것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다.
가지가 잘려도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가 움터 자라지만, 잘린 가지는 뿌리와 떨어져 죽고 만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5절)
가지가 줄기에서 생겨나듯, 주님으로부터 우리도 그분의 은총을 받아 부활과 구원의 뿌리로 지닌다.
아버지께서는 농부로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육체인 포도나무를 보살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나약하기에 선을 하려 해도 선을 베푸시는 분 없이는 아무것도 완성에 이를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다.
그때 그는 많은 열매도 적은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모자람이 없는 자산이며 모든 풍요로움의 근원이다.
그분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삶 속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
뿌리로부터 생명을 끌어 올리지 않는 죽은 가지와 같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8절)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삶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이지 사람의 영광이 아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여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것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광을 나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영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에서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하신 것이다.
그런 선행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은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10)라고 한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알 수 있는 것은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려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우리의 삶 속에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초기 교회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러러보았던 것 같이 사랑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고
늘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