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제목의 시詩(그림자가 나의 스승)
“내가 내 그림자가 미워서 달아나면 그림자도 달린다. 내가 없으면 곧 그림자도 없고, 내가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내가 있어도 그림자를 없게 하는 법도 있으련만, 나는 그 법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림자가 밉거든 그늘에 있으면 떼어버릴 수 있다고, 그늘도 물건의 그림자거니 사람들의 그 말이 더없이 어리석다, 나도 없고 물건도 없으면 그림자나 그늘이 어찌 생길까 나는 그림자에게 소리 내어 물으나 그림자는 대답도 없이 그저 거기에 있다. 마치 안회가 어리석은 것처럼 묵묵히 알고서도 깊이 생각만 하고 모른체 하나 보다. 하나하나 흉내를 다 내면서 오직 나는 말이 많은데, 그것만은 취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음일 뿐이다. ‘말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그림자가 나를 본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아야겠다.“
고려 말의 문장가로 직제학 벼슬을 지내다가 신돈辛旽의 눈 밖에 나서 파면되어 야인생활을 했던 이달충李達衷의 시다. 그의 <제정집霽亭集>에 실린 시 제목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제목의 시이다.
<산중에 있으니 종일토록 찾는 이 없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며 홀로 골짜기 시내를 거니니 적적하여 함께 얘기할 사람 없고, 오직 그림자만이 나를 떠나지 않으니 이것이 가상하여 시 한 편을 지어 주노라.>
“그림자가 나를 본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겠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가? 그의 시처럼 오로지 그림자만 벗하여 거닐 때가 있다.
물소리,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들리는 것이라곤 내 발자국 소리, 주위를 둘러보아야 인가도 없이 홀로 서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그림자만이 나와 벗하는 시간이다.
“외로운 나그네는 그림자가 동행한다.”는 말처럼
저녁 해 조금 밖에 안 남았는데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서고, 나는 왜 이렇듯 길에 서 있는가? 묻다가 보면 내가 내 그림자에게 묻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숲 사이 솔 거문고 소리, 돌 위의 샘물 소리, 고요히 들으면 이 모두가 다 천지자연天地自然의 풍류風流임을 안다. 풀 섶의 안개 빛, 물속의 구름 그림자, 한가로이 보면 건곤최상乾坤最上의 문장文章임을 안다. “<채근담> 자연自然편 33에 실린 글이고,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에 등장하는 자기 시간에는 장한 듯이 떠들지만
그다음에는 말을 못하는 가련한 배우
그것은 바보의 지껄이는 이야기
시끄러운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의미는 하나도 없다.“ <맥베드>에 실린 글이다.
당신은 어느 때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는가?
2023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