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생활 30년 / 홍속렬
열여 덜 귀밑 뿌리 빨개 들어간 군대에서 30년을 살았습니다
이등병부터 원사까지 한 계단씩 올라간 나의 계급
24세 젊은 나이에 육군 상사로 진급이 되다 보니
길을 가다 장교들이 붙잡고 진짜 상사 맞나? 고 질문을 했습니다
너무 새파란 상사었으니까요.
나의 친구들은 이등병도 있었으니까요
월남에서 특별진급을 하다 보니 남보다 빨리 진급을 했고
새파란 상사 총각 상사가 되었습니다
흔히 상사는 늙수구레해야 상사다운데 난 새파란 청년이었으니까요
나는 군대가 좋았습니다
군대가 날 키워 줬습니다
군대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나왔습니다
그러니 군대 안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획일적이지만 자기 임무만 잘하면 가장 좋은 직장이며
보장받은 직장입니다.
요즘은 전문대학에 부사관 과가 신설되어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세월이 그만큼 변한 것이지요
나 때는 장기복무 한다면 우선 깔보기 일쑤었습니다
나는 그 멸시와 천대? 를 잘 이겨 나온 중 한 사람이고
시방은 군 연금을 받으며 안정된 삶 살아갑니다
군대 생활 중반쯤 육군대표 축구 감독직에 오릅니다
제대로 축구를 해보지 않은 매니아가 감독직을 맡아
승승장구합니다.
모든 것이 뱃속에서 배우 나오는 것이 아닌 노력과 수고와 연구로
이뤄지는 일이 곧 현실일진데 사람들은 경력만을 요구합니다
나만큼 맡은 일에 생명 걸고 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 말은 나의 좌우명입니다
최선을 다하니 성적이 아니 나올 수가 없지요
내가 팀을 맡은 1977년부터 80년까지 육군 충의 축구 육군대표 축구단의 성적은 아마 실업팀 중 전후무후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육해공군이 한데 뭉친 상무로 전환이 되며 육군사관학교에서 축구를 한 장교들이 자릴 차지하고 나는 그 뒷 치다꺼리를 감당하는 뒷자리로 물러 나게 됩니다
하기야 군대 생활 중에 하사관의 설움을 뼈로 겪었기에 잘 참고 이겨 나가
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쳤지만 어디까지나 축구는 내 전문분야이며 많은 국비를 들여 양성한 장교 특히 육사를 졸업하고 전방부대나 일선 부대에서 일해야 군이 발전하는데 일부 잘못된 사고를가진 장교들이 내 자리를 빼앗고 일 해보니 성적이 날리만무 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제사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어 성적이 날리없습니다. 팀이 엉망이 되어 갈 무렵 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다시 끌어오는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불려 들어간 것이 세 번
부대장이 바뀔 때마다 보직이 바뀌는 나의 설움?
그래 정년이 7년이나 남았는데 전역을 했습니다
시방 많은 세월 지난 후 생각해보면
한국군대는 시방은 부사관이라 하지요. 부사관과 장교의 턱을 전문 직종으로 업무을 구별 해 줘야 발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 같은 군대?
아련한 향수를 갖게 되는데 그런데도 나는 군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무리 부강한 나라라 해도 국가가 유지하기 위한 보호장치는 있어야하죠. 군인들의 횡포는 많이 사라진 우리나라는 그래도 선진군대가 아닌가 싶어요. 군인들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나라는 결국 적대국에 넘어갈 수밖에없지요. 값진 청춘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노년도 건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년시절의 자부심으로 행복한 시간들 값지게 누리세요.
네
ㅈ가 군대생활을 시작 할땐 5,16이 믹 시작해서
개혁이 시작되던 때라 군대도 많이 좋아지던 시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