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계의 시조이자 원주원씨의 시조라고 주장하더니
원성백계와 시중공계 일각에서 원경(元鏡)공에 대한 고증이 들어가자 결국 원경(元鏡)공은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실토했네요.
지금까지
원경공을 각종 고문헌을 예시하며(물론 원문의 상당부분을 각색하였지만)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인것 처럼 행세하고 역사학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나 지자체 기록물중 원주원씨와 관련된 부분과 각종 성씨관련 사전(인터넷 사전등)에도
원주원씨의 시조는 원경공이라고 고쳐놓고 최근 몇년전에는 이를 근거로 원경공이하 12세 기도(起圖)공을 포함한 시조설단까지
만들어놨는데, 이 모든 것이 운곡선생 20대손인 원영환 현 춘천문화원장겸 운곡대종회 이사님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작품이라면
이런 황망한 현실을 누가 책임져야되는 건가요.
그리고 이를 근거로 1985년경을 전후하여 3계합보를 만들려고 했던(물론 원경공에 대한 문제로 파기는 되었지만)
같은 원주원씨인 원성백계나 시중공계나 운곡계의 입장은 뭐가 되는 것이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11만여 원문중 상당수가 아직도 원주원씨의 시조는 원경공이고 원경공은 실존인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 또한 누가 져야되는 건가요.
그리고 신화나 전설은 수천년 수백년전부터 구전으로 대대손손 전해내려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지금도 생존하신 분이 각종 고문헌(구당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자치통감 등)을 근거로 하여 만든 허구적인 주장을
신화나 전설이라고 포장하거나 강변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운곡계 3차 족보인 정해보(1767년 발간)에 이르러
운곡선생 묘갈이나 그 후손들의 묘갈, 그리고 운곡선생 기록물이나 각종 고문헌 등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않은 원경공이
아무런 고증도 없이 정해보에 수록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꼼꼼히 확인해봐야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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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7일 <원영환>교수 님을 만나러 참례했으나 뵙지를 못하고 전화 통화만 했습니다. <원경>대부는 전설적 인물임을 강조했습니다."<출저:원주원가/운곡계의 시조제 중에서/비오>
1767년 정해보 이후
고려 광종 11년(서기 960년)8학사중 한명으로 동래했다는 원경공에 대한 기록<始祖 鏡>
"高麗佐命功臣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平章事/配驪興李氏父府院君祐新祖大提學正珪/中原弘農人高麗光宗十一年以太學士奉使東來時池辛洪郭張李河八鏡同來"
<1767년 정해보~1960년 경자보 까지/그 이전 족보에는 원경공에 대한 기록이 전무>
1986년 발간한 운곡계 족보인 병인보 자손록에
고구려 보장왕 2년(서기 643년) 당나라에서 넘어온 8학사중 한명으로 동래했다는 원경공에 대한 기록<鏡>
"高句麗佐命功臣大唐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平章事,,,,중략,,, 高句麗 寶臧王 二年 西紀 六百四十三年,,,후략"<1986년 병인보에 처음 등장/당시 역사학자였던 현 원영환 춘천 문화원장이 직접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