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국이 SBS를 그만둔 이유 #1
명약관화, 참으로 불보듯 뻔하다.
SBS 드라마라는 조직은 어쩌면 이렇게 변함없이 이기적이고 악한가.
2019년 2월. 주진모 형님 한예슬 누님 주연의 SBS 수목드라마 <빅이슈> 현장에 서브 연출자로 합류했다. 메인 연출자의 건강 악화와, 세트장 화재를 비롯한 여러 악재가 겹쳐있어 팀은 그야말로 난맥상이었다. 회사는 당시 메인 연출자인 L 선배를 촬영 현장에서 배제하려 했다. 표면적 사유는 비정상적으로 악화된 선배의 간수치였지만, 실상은 그가 고집하는 연출적 요구사항들이 예산을 한정없이 펑크내고 있다고 판단한 게 컸을 것이다.
드라마 1,2주차 초반 방영분 시청률은 기대만큼 높지 않았고, SBS가 <빅이슈>를 통해 큰 금전적 성공이나 높은 비평적 평가를 거둘 가능성은 요원해보였다. 회사는 이제 위험을 감수한 끝에 더 큰 성공을 기도하기보다는, 이미 눈 앞에 선연하게 다가온 막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다. 예산 삭감은 드라마 현장을 고달프게 한다. 촬영일수 제한, 단역 출연료 삭감, 배우 출연 회차 제한, 무리하게 이어지는 강행군의 촬영 스케쥴. 드라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비인간적 행태들의 9할은 돈 문제다. 현장에 돈을 덜 푼다는건, 그만큼 그들의 인간성을 깎아내겠다는 뜻이다. 대본이 뽑혀나오는 속도가 급박한 제작 스케쥴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와 송민선 조감독 형님을 비롯한 코어스텝들은 어떻게든 이 드라마를, 빅이슈를 영영 죽이지 않을 수 있도록 심폐소생에 열중했다.
메인 연출이던 L선배가 갓 입봉연차가 된 젊은 연출자인 내 손을 붙들고 촬영을 도와달라 부탁했을 때, 나는 그저 ‘고맙게 받아들어 하겠다’고만 했다. 그간 SBS 드라마조직에서 내가 받아온 ‘걸레’니, ‘병신’이니, ‘허언증 환자’니, ‘위선자’니 하는 손가락질과 꼬리표를 생각하면, 이런 기회가 내게 온 것 만으로도 큰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목드라마에, 내가 평소 흠모하던 배우들과 이 바닥의 실력자 스테프들을 모아놓은 좋은 터전 아니던가. L형은, ‘내가 곧 복귀 할테니 그 때 까지 현장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금방 건강을 회복해 복귀하겠다는 형의 약속은 결국, 내 합류 이후 5부 부터 마지막 16부 촬영을 마무리하는 동안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L형의 간수치가 정상범위로 복귀한 뒤에도 회사는 그의 복귀를 여러 핑계를 대가며 막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미 L형이 메가폰을 내려놓은 뒤의 상황을 그려두고서 나머지 제반사항들을 비인간적으로 정리해나가기 시작한 터였다.
당장 내가 연출로 합류해 현장에서 일주일 정도 손발을 맞추었던 B팀 스텝 대부분이 갈려나갔다. 촬영, 조명, 장비, 동시녹음팀 전체가 통으로 교체됐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거대 방송사로부터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아들어야 했다. 영문을 몰라 당황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SBS 김모 제작프로듀서에게 해명과 설명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우리도 모른다’였다.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이미 뒤에서 B팀 스텝을 물갈이하기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현장에선 내게 ‘고생 많다’며 거짓 미소를 내놓으며, 검은 뱃속에서 꺼내든 망나니칼로, 말 그대로 ‘아무 죄 없고 힘 없는’ 스텝들 모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메인 감독인 L형은 이제 현장에 돌아오지 못할 터였고, 그렇다면 지금 메인 연출자 대신 A팀 메가폰을 잡고 있던, 원래 B팀 연출로 이 작품에 합류했던 P감독이 메인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혹한 스케쥴과 제작상황을 고려하면, ‘내 말 잘 듣고 따르는 스텝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B팀 코어 스테프들을 교체하고 싶다’는 P감독의 직간접적 요구를 회사는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그 요구가 정당하거나 합당했는가의 여부는 떠나서 말이다. O바.
- 2부에서 계속
@sbsnews @sbsdrama.official @junghwan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