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국이 SBS를 그만둔 이유 #2
지금도 생각건대, SBS 드라마조직 헤드들이나 P감독이나, 또 이 모든 상황을 묵과하고 도왔던 제작 총괄 K형이나 SBS P사장님이나. 모두들 참으로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어렸다. 그들의 편의와 업무 성과를 위해 사람들을 숫자로 놓고 주판알 튀기듯 이리저리 놀린다는 일은 얼마나 비인간적 참상인가. 그들의 손에 누군가는 생계를 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에 수복할 길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게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기존 B팀 스테프들 교체는 물 흐르듯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물갈이 작업’이 다 끝난 뒤에 A팀으로 가서 촬영하라는 업무명령을 받게 되었다. P감독은 물갈이된 B팀에 복귀하자 마자 ‘복잡한 씬, 어려운 씬, 규모가 큰 씬은 배제하고 대충 찍기 어렵지 않고 편안한 스케쥴로 똑바로 짜서 갖고오라’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이에 액션씬, 감정씬, 대규모 군중씬 모두가 A팀이 소화해야 할 촬영 스케쥴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P감독이 어린애같은 찡찡거림으로 현장 사보타지를 이어가는 동안, A팀 스텝들은 피로와, 추위와, 고독과, 서러움과 싸우며 한땀한땀 묵묵히 걸었다. 그 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이 작품에 대해 또 이 작품을 만드는 모두에 대해 갖는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들게 5부를 찍어 편집을 넘겼지만, CG 작업이 늦어지면서 결국 전대 미문의 방송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크로마키와 수중 촬영 스튜디오가, 편집과 후반작업 가이드로 박아둔 무신경한 폰트의 업무지시용 자막들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아마 인천 송도에서였을 것이다. 현장에서 이를 악 물고 촬영을 이어가던 A팀 스테프들이, 방송 결과물을 지켜보며 넋을 잃었다. 한 어린 스크립터는, 핸드폰 속 방송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럴 수는 없어요. 이건 말도 안돼요…’라며 닭똥같은 굵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현장에 있었던 모든 스텝들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 애정과 헌신을 갖고 들어온 모두라면, 그 방송사고를 목도하며 참담한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테니까.
회사와, H모 당시 드라마 본부장과, P 감독과, 제작부 총괄 K피디와 제작본부장 K.
그 모두에게 아주 깊고 순도 높은 분노를 느꼈다.
드라마가 뭐라고? 아니, 대체 돈이란게 뭐라고?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지 못할 수가 있는가?
그 정도의 이기심이나 어리석음이라면, 가히 악 이라 불러도 좋은 것일 거라고.
3년여가 지난 지금도 생각한다.
-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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