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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검찰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 그날이 오면
도마 안중근[安重根] 1879. 9. 2. ~ 1910. 3. 26.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1906년 삼흥학교[三興學校] 설립
1907년 연해주(沿海州) 의병운동에 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이토히로부미 사살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라.
- 도마 안중근(1879~1910)
국가 존망의 위기를 보면 천명을 받을 것 같이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은 먼저 정의를 생각하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속에 가시가 생긴다.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사나이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적을 무찌르려 의지를 쌓았더니 이제야 뜻한 대로 좋은 때를 만났구나.
때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때를 만나는가?
북쪽바람 차기도 하나 내 피는 뜨겁구나.
쌓였던 원한을 한번 털어놓으면 어김없이 꼭 도적을 잡으리라.
우리 동포 형제자매들아. 이 공업을 잊지 말라.
만세,만세,만세, 대한독립 만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윤봉길[尹奉吉] 1908. 6. 21. ~ 1932. 12. 19.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결행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육군형무소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국
너희도 만일 피가있고 뼈가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살고 싶은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나만 나혼자만 잘먹고 잘살다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내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세상을 떠난 1932년 윤의사의 나이 25세
유관순[柳寬順] 1902. 12. 16. ~ 1920. 9. 28.
1919년 3.1운동 주도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1920년 옥중에서 사망한 열사의 나이 불과 18세-
유관순 열사는 천안헌병대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불굴의 독립의지를 표출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로 부모를 잃고, 오빠까지 감옥에서 만나게 된 열사는 최후의 법정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말하면서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는 당당함과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다.
홍범도[洪範圖] 1868.8.27. ~ 1943.10.25.
대한독립군 사령관
1910 러시아로 망명, 성명회, 권업회, 대한국민의회 등 활동
1920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오동전투 대승, 청산리전투 참가
천도( 天道)가 순환하고 민심이 응합하야, 아(我)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上)으로 임시정부가 유하야 군국대사를 주하며, 하(下)로 민중이 단결하야 만세를 제창할 새 어시호(於是乎) 아(我)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독립군이 출동되었도다(…)당당한 독립군으로 신(身)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투하야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야 자손만대에 행복을 여(與)함이 아(我) 독립군의 목적이오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라.
- 대한독립군 대장으로서 선생이 공포한 유고문(諭告文) 중에서 (1919. 12)
독립군에 의해 연달아 참패를 당한 일제는 이번에는 약 250명의 병력으로 ‘월강추격대’를 편성하여 1920년 6월 7일 봉오동(鳳梧洞)으로 진군해 왔다. 이곳에는 이미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선생의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및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이 통합하여 조직한 대한북로독군부군(大韓北路督軍府軍), 그리고 이흥수가 이끄는 대한신민단이 일본군 침입자들을 맞아 전투를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 통합부대는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지형의 봉오동 골짜기 안으로 일본군 추격대를 유인하여 격파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선생이 이끈 독립군 통합부대가 승전하게 된 요인은 지형을 이용한 전술 구사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독립정신이었다.
단재[丹齋] 신채호 [申采浩, 1880.12.8~1936.2.21]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사학자·언론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약하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고,
신민회, 국채보상운동 등에 참가하여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우리 조선은 (…)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조선혁명선언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작성한 일제의 요인(要人)과 기관을 암살 파괴할 폭탄, 단총(短銃)과 함께 의열단원들이 휴대하는 필수품의 하나였으며 이들이 활동하는 국내, 중국, 일본 등 각지에 널리 뿌려졌다.
강도(强盜)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여 온간 만행을 거침 없이 자행하는 강도정치가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혁명으로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하는 것이 조선민족의 정당한 수단이다.
이 선언은 국내외 동포들에게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독립사상을 한층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일제 당국은 큰 전율과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도산[島山] 안창호 [安昌浩, 1878.11.9~1938.3.10]
독립협회(獨立協會), 신민회(新民會), 흥사단(興士團)한말의 독립운동가·사상가.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온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어, 오늘 대한사회에 주인 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자기 민족사회가 어떠한 위난과 비운에 처하였든지 자기의 동족이 어떻게 못나고 잘못하든지 자기 민족을 위하여 하던 일을 몇 번 실패하든지(…)자기의 지성으로 자기 민족사회의 처지와 경우를 의지하여 그 민족을 건지어 낼 구체적 방법과 계획을 세우고 그 방침과 계획대로 자기의 몸이 죽는 데까지 노력하는 자가 그 민족사회의 책임을 중히 알고 일하는 주인이외다.
-<동아일보>에 실린 선생의 글 [주인(主人)인가 여인(旅人)인가](1925.1.25)-
안창호 선생은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적대시하지 말 것과 전적으로 탈이념주의, 민족해방운동 지상주의에 입각해 민족통합을 이루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독립운동계의 각 계파가 역량을 축척하고 발전해 나가지 못하고 원시적 힘겨루기만으로 역량을 소모하는 현실에서 선생은 국제주의자와 계급혁명론자들에게는 민족의 가치를 호소하고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그들의 약화된 투쟁성에 대해 퇴행적이라고 비판하며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을 유화시키고 상대의 사상과 노선을 상호 포용하는 제3의 노선을 제시하며 열렬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가보훈처 선정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100인
칠흑같은 일제의 침묵 속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앞장 선 모든 분들의 헌신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2021. 08. 15
조국을 위해 구국의 일념을 다한 모든 순국선열 애국지사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대한 독립 만세
大韓 獨立 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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