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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함락하고 나서 아이두이의 동맹 도시까지 차지하여 완전히 갈리아 내륙 쪽에서 쫒아낼 생각으로 전진하였다. 한편 남은 소수의 병력이라도 긁어모으려는 아이두이를 완전히 절망에 빠지게했다. 강을 따라 이동하다가 아르베니족에게 섬멸당하고 만 것이다. 이 공로를 세운 사람은 자기 호위병과 투석병 2분대만으로 놀라운 용기를 보여줘 4명의 수행원을 얻었다.
겨울이 오고나서 왕은 점점 기력이 쇠하여 우울해졌다.[gloomy] 이를 본 주변 부족 대표자들 중 몇몇이 아마 이번 전투에서는 크게 손해볼 것으로 예상하고 조금씩 빠져나갔다. 여기에 작은 사건이 벌어져 영향력을 점점 아들에게로 옮기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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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가 그의 뛰어난[?] 외교술이 그의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들은 그저 첫 째로 태어난 자식이 외에는 별 관심을 받지 못 했다. 어느 날 로마족으로부터 외교관이 찾아와 휴전을 청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휴전을 거부했다.
외교관은 그에게 손을 올려놓고 이 손으로 갈리아 지방에 대해 묘사한다음 쎄게 덮으면서 책상을 치며 이 손바닥처럼 갈리아지방을 엎어버릴 꺼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똑같이 손바닥을 위로 하고 엎으면서 니가 돌아갈 때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엎어버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외교관이 본국으로 떠날 때 그는 안녕히 가라면서 주먹을 치켜세우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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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전투를 하기 알맞기 시작할 때 왕은 부족한 백병전 병사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병대와 지형 그리고 십만슬링양병설을 믿고서 전투를 걸었다. 전투를 건 쪽은 이쪽이지만 전진을 해 가까이 붙는 쪽은 아이두이측이였다.
첫댓글 십만슬링어 ㅋㅋㅋㅋㅋㅋㅋ 항상 재밋게 보고잇습니다~
적자가 갈수록 심각 ㅠㅅㅠ...
적자안습..남은 병력으로 무지 싸워야 한다능.
안쓰는 병사들은 그냥 마을에 푸시는게..
직접 아이두이 또는 아르베니를 하면 왜 처음 켈트끼리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지 알게 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