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站) 원제 : 「층계참」 / 박주병
새벽이라 그런지 춘분이 지났지만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갑다. 좁다란 골목에 신문을 배달하느라 오토바이가 돼지 멱을 따면서 골목 양쪽을 갈지자형으로 달린다. 피하기가 어렵다. 늙은이가 꼴사납게 청바지 차림으로 꼭두새벽에 망령이 났나, 뭣 하러 골목에 나왔느냐는 듯 내 곁을 스칠 때에는 힐끔 곁눈질을 하며 더 웽웽거린다. 새벽이라고 마음놓고 걷다간 큰일난다. 새벽이라고 마음놓고 달리다간 오토바이 타는 사람도 큰일난다. 모두가 큰일난다.
옛날에는 신문 배달하는 아이는 겨드랑이에 신문을 끼고 골목을 누비며 쫓아 다녔다. 조금 발전하여 고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다리가 짧은 아이가 성인용 자전거를 타자니 엉덩이가 이리 배딱 저리 배딱 보기에 안쓰럽게 하더니 오토바이로 분탕치는 요즘의 나이 든 배달부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건 배달부만이 아니다. 음력 사오월, 보리는 아직 여물지도 않았는데 여투어 둔 묵은 식량은 바닥이 나는 게 우리의 농촌이었다. 누렇게 부황증이 난 얼굴로 나물을 뜯고 송기(松肌)를 벗기기기도 했다.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라서 보릿고개 세대들이 많이 남아 있건만 그런 걸 까맣게 잊어 버렸을까. 불로장생, 못 이룬 진시황의 꿈을 이루겠다고 안달이 나 있다.
입으로는 공맹(孔孟)과 퇴율(退栗)을 들먹이지만 마음은 늘 토색질이나 일삼던 양반들, 마침내 왜놈한테 나라가 먹혀 버렸다. 삼십육 년, 이만하면 정신을 어지간히 차렸겠다 싶어 하늘이 풀어준 줄이나 알아차렸어야 할 터인데 그 다음에 벌어진 슬프고도 슬픈 사연들. 그 반세기 풍상을랑 거론치 않는다 하더라도 요즈음 듣자니 단군 할아버지 뵈오러 백두산에 들어가자면 되놈한테 입장료를 내야 하는 모양이고 아무리 심성이 고약한 왜놈이기로서니 멀쩡한 우리 땅을 두고 그 꾀 많은 놈들이 잊을 만하면 남의 부아를 지르니 그저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이럭저럭 고생 끝에 밥술깨나 먹게 되어 불행 중 다행이다 싶었는데 어느 날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장이 푹 꺼져 버렸다. 한강의 다리가 부러지는가 하면 서울의 한 백화점이 와르르 쾅, 폼페이가 되어 버렸다.
이른바 대형사고도 하도 꼬리를 물고 물어 어느 놈이 형이고 어느 놈이 아우인지 분간이 가지 않더니 분간이 가는 일이 하나 터졌다. 뒤숭숭한 소문이 연애 소문처럼 번지면서 4천억이 어쩌고저쩌고 우리네야 뭔 소린지 통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가, 설마 했더니 설마가 사람 잡았다. 나랏님 두 분께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감옥 문을 여는 꼬락서니라니 어허, 가만히 주위를 둘러봐도 욕하는 사람뿐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선불 맞은 멧돼지 같은 오토바이에서부터 각종 메가톤급 사건 사고며 나랏님의 도둑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총체적인 현상이 우리의 총체적 수준일까, 뭘까.
옛날 대학시절의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가 하루는 가정교사 자리를 구한다기에 너 왜 그러느냐 했더니 부모가 국회의원이고 의사이지 자기는 자기일 뿐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고놈 제법이구나 싶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제법인 것은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의 부모이구나 싶어진다. 그 아들이 속을 썩이던 나랏님, 그 나랏님이 사시는 동네의 뒷산만큼이나 커 보이는 그 친구의 아버지 같은, 이런 사람이 아쉬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산꼭대기에 올라왔다. 수많은 층계를 밟고 올라왔다. 운동이 되라고 조금 빨리 올라왔더니 숨이 차다. 후유, 하고 숨을 몰아쉰다. 기분이 상쾌하다. 사람들이 꽤 많다. 체조를 하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 야호를 외치는 사람, 개를 데리고 노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그리고 어디에도 빈 의자는 없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너럭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공직의 층계를 오르다가 작년에 정년으로 물러났다. 남은 층계는 아마도 내려가는 층계일 게다. 층계는 내려가기가 더 조심스럽다. 내려갈 때에는 올라올 때보다 더 천천히 쉬엄쉬엄 내려갈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역이 있고 휴게소가 있지만 옛날에도 역로(驛路)에는 역참(驛站)이란 것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역을 站이라 한다. 층계에는 흔히 중간쯤에 조금 넓은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을 층계참(層階站) 또는 계단참(階段站)이라 한다. 서양에서는 Landing이라 한다.
높이 쌓는 층계에는 층계참을 여러 개 만든다. 한 잔의 술이 잔참(盞站:盞臺, 托盤)에서 站站이 쉬어가며 다할 때 술자리는 운치가 난다. 일을 오래도록 할 일꾼은 站을 먹는다. 나라를 맡은 사람들이 술꾼이며 일꾼만도 못했다는 걸 말하기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站站이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았더라도 도둑질을 했을까. 오토바이 신문 배달부한테는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站은 계절에도 있다. 겨울에 나무는 쉰다. 그냥 쉬는가?
첫댓글 오죽했으면 "민나 도로보 데스"라는 물이 유행했겠는지요. 드디어 "김영란법"까지 만들어서 세상이 많이 정화 되었는데, 딱 한 군데 정화조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의 정신을 일대 개혁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