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시대의 잔상] 정병경.
ㅡ옛 친구ㅡ
친구를 보면 옛시절이 돌이켜진다. 주기적으로 만나던 벗들을 한동안 못 보다가 모처럼 만나니 추억이 되살아난다. 17명이 오랜만에 마주 앉게 되어 감회롭다. 여러 사정으로 마음만 와 있는 친구들이 다수다. '코로나19'가 생활의 패턴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활동에 제약받는 시간이 길었다.
근래 주변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감을 실감한다. 주거는 물론 식생활마저도 서구화 되어간다. 미디어 발달로 생활에 유익한 정보가 넘친다. 적응하다 보면 의식이 바뀌어 진다.
브런치와 커피 음료를 주식으로 즐기는 연령대가 시나브로 늘고 있다. 숭늉 마시는 세대도 시대에 적응해야 할 싯점이다. 취향이 변하지 않으면 동행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보일러 난방으로 바뀌어 구들장 온돌방 체험이 쉽지 않다. 침대가 몸에 익숙해지고 있다. 서구 문명의 생활에 정착되어 간다.
미사리 '어시장'에서 오찬 후 인근 '이옥진 시인마을 제빵소'로 들어선다. 근간에 문을 연 이李 시인의 베이커리 카페다. 한강 조망권이 좋아 문전성시다.
미사지구와 조정경기장 부근이어서 접근성이 용이하다. 다른 작가들의 시비詩碑가 정원 곳곳에 어울려 있다.
정성을 기울인 조각 정원과 산책로, 옥상 테라스에 대해 애써 설명 할 필요가 없다.
3천여 평인 주차 공간과 5층 건물에 들어선 찻집의 예술적 가치를 가늠해본다. 주인공 이옥진의 '미사리 꽃' 시詩 일부를 읽는다.
"저 높은 벽이라고 느낄때
담쟁이는 묵묵히
벽을 향해 올라간다
그늘지고 매마른 땅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담쟁이는
앞으로 앞으로 오르기만 했다."
(하략)
우리는 높은 벽에 올라 꽃을 피운 담쟁이다.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며 민초는 초라했다. 일제 강점기에 망국의 한을 품은 애국자를 떠올려본다. 동족 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다. 장미꽃이 한가롭게 피어날 여유가 없다. 눈물겨운 시절의 추억이 끔찍하다.
고깃국이나 한정식보다 뚝딱 해결되는 비빔밥과 김밥이 입에 익숙해 있다. 당시에 즐기던 메뉴를 되새기며 입맛을 다신다.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온 시절의 식성이 오랜 세월을 이어온다.
ㅡ의식 변화ㅡ
우리 세대의 친구들은 다자녀 가족이다. 열 두 남매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자란 친구가 많다. 궁핍하게 살면서 마음은 풍요롭게 정을 쌓으며 지내온 세대다.
친구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보면 벗이 나인지 착각한다. 점심 먹은 시간보다 차마시는 시간이 길다. 말벗이나 형제들 중 하나 둘 곁을 떠나고 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이 닥칠 걱정을 하게 된다. 인지상정이다.
홀로 지내거나 한 두 자녀 거느리는 삶이 마냥 행복할까. 궁할 때 친구와 정을 나누던 옛 시절이 잔상殘像으로 남는다. 물질이 풍요로운데 빈곤을 느끼는 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탓이다.
매일 새로운 정보 속에서 하루를 즐기는 게 우리 세대의 과제다. 인내심 기르며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옛 시절과 현재를 접목하는 온고지신을 새삼 되새겨본다.
2022.07.23.
첫댓글 이옥진의 '미사리 꽃'에서
담쟁이의 속성을 잘 표현했네요.
한강 조망권이 좋은 찻집에 다녀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