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해남, 머나먼 완도의 이정표들을 지나며, 어느새 한반도의 남쪽 끝점에 가까워지며, 주변의 풍광은 농촌에서 어촌으로 바뀌어갔다. 버스의 창문을 열 수 있었다면, 아마도 바다의 짠내음이 밀어닥쳤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 이걸 보기 위해 다섯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강진을 지나 해남을 지나 완도로 넘어가는 길은, 시간을 대략 2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분위기다. 왕복 2차선의 고집스런 국도가 그렇고, 작고 초라한 촌가(村家)들이 그러하며, 현대화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 논과 밭이 그러하다.
완도대교는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 작고 초라해서 기절초풍할 뻔 했다. 완도는 워낙에 육지와 가까워서 다리가 놓인 것이 이미 오래 전 일인 듯했다. 새 다리가 놓여진 옆으로 허름하고 비좁은 옛날 다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완도 대교 실망 실망 대실망.
그러나 진짜 완도 기행은 여기서부터다. 해안선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연결된 2차선 국도를 따라가노라면 운전자가 무척이나 억울할 만큼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남해안 특유의 리아스식 형상과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름모를 숱한 섬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지겹다고 하겠지만, 다섯 시간을 넘게 달려온 여행자에게는, 축복이다.
09시 20분에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한 고속버스는 15시 40분에야 완도 읍내로 접어들었다. 5시간 40분이라던 예상 소요시간보다 40분이나 더 지연됐다. 읍내가 시작되는 곳부터 뻥뚫려있는 왕복 6차선의 대로는 어딘지 모르게 허황된 느낌이 들었다. 완도 읍내는 그야말로 자그마한 지방의 읍소재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읍내 건너편의 선착장에선 장보고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거리에는 80년대 롤라장에서 볼 수 있었을 법한 헤어스타일로 한껏 멋을 낸 불량소녀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그애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불량소년들이 껄렁껄렁 돌아다녀서, 중딩을 가장 무서워 하는 나로써는 마음껏 읍내를 활보하기가 무서웠네.
낯선 고장에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터미널 대합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다음 목적지의 차편을 확인하는 것. 어느새 지방 여행시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쫓기는 사람처럼 그저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차를 갈아타고 떠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완도의 터미널에서는 우선 목포로 가는 직행버스 표를 끊었다. 한 시간 반 후에 있는 막차였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지방의 국도를 유유히 누비는 직행버스 여행은 아주 알콩달콩한 재미가 있으니까. 메이저급 노선의 쾌적한 최신형 고속버스가 아니라 로컬 노선의 낡고 후진 직행버스는 또한 여행자의 호사스런 노스탤지어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터미널 앞의 식당에 들어가 너무 늦어버린 점심을 주문했다. [전복된장찌게]라는 메뉴가 눈에 쏘옥 들어왔다. 주문을 하자 아주머니가 가게 앞의 수조에서 전복 두 마리를 꺼내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그 비싼 전복을 두 마리나 넣고도 7000원이라면 이건 해외 토픽 감이군! 밥상을 받고 보면 예의 가짓수 많은 반찬에 저 안에 전복 두 마리가 숨쉬고 있을 정갈한 된장 뚝배기.
숟갈로 휘휘 저어 떠먹는데 전복은 없고 굴만 자꾸 나왔다. 알고보니 전복은 껍질 채로 맨 밑에서 잠자고 있었네. 전복. 생김새는 얄궂어도 맛은 좋아라. 시간대가 어중간해서인지 한산한 가운데 저쪽 테이블에는 아마도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왔을 법한 40대의 화이트 칼라 풍의 양반이 밥을 먹고 있었다. 주인장에게 주변의 볼거리와 이동거리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데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주인장은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 어딥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선뜻 못하고 있었다. [낙조]라는 현학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저나 저 양반은 처자식은 어디 두고 저렇게 혼자 떠나왔을까.
결국에 해지는 거야 아무데서나 봐도 좋다는 얘기, 신지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좋기는 한데 걸어서는 못간다는 얘기 등을 뒤로 한채 식당을 나와 좀 더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예의 서울의 차림새를 경계하는 현지 청소년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하릴없이 터미널 대합실로 돌아갔네. 여기도 한적한 읍내거리와는 달리 대합실 안은 만원이었다.
대합실은 만원.
드넓지도 좁다랗지도 않은 박차장 건너편에는 아마도 90년대에 들어왔다가 쇠락하고 말았을 법한 [SPAR]라는 편의점 단층 건물이 보였다. 세상에, 이 척박한 변방의 읍내에 [SPAR]라니. 야심이 너무 컸던 것이 아닌가. 생경한 풍경이었다.
첫댓글 보는 시각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
전복 두마리로 된장국 끓인다해서 좋았다가 말았곘군요~~그 중년에 길을 묻는게 꼭 저와같네요~~저도 혼자랍니다,
현제의완도사정을 완도대교에서부터 완도읍터미널까지 잘평가하여주셧내요...지금 어느군단위에가보아도 완도같은대는아마없을껌니다.4대를 국회의원하신양반님께서 남겨놓은 완도의실정이기도허지요...솔직히말씀드린다면...글고 현,제일높의신분이벌리고있는 완도실정이기도하구요...지금도 별로필요없는공사가 아주많구요..청소년문화쌘타도??....그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