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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의신언(闕疑愼言)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그 나머지만 신중하게 말하다
闕 : 빠뜨릴 궐(門/10)
疑 : 의심할 의(疋/9)
愼 : 삼갈 신(忄/10)
言 : 말씀 언(言/0)
흔히 우리가 정확한 지식으로 알고서 인용하는 것 가운데 알고 보면 사실 아닌 것이 의외로 많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하거나, 신문 잡지 등에 글을 쓰면 금방 퍼져 많은 사람들이 인용한다. 더구나 오늘날은 SNS, 유튜브 등에 한 번 올라오면 순식간에 펴져 확실한 사실처럼 돼 버린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몇 차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아역사공정(東北亞歷史工程)이 있은 이래로 우리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신 선생이 쓴 어떤 글에도 이 말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월남의 국가주석을 지낸 호지명(胡志明)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좋아해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어 책이 너덜너덜해졌다”라는 이야기가 널리 전파됐다. 다산 연구가 박석무(朴錫武) 이사장이 자기의 저서에 이 말을 인용했다. 그 뒤 누가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어떤 신문의 기사를 보고 인용했다고 밝혔다. 최근 월남 호지명 기념관 등에 문의해 보니 그런 증거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고 한다.
“중화민국 장개석(蔣介石) 총통이 우리나라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을 존경해 그의 문집 ‘화담집(花潭集)’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화담집’의 내용은 아주 단조로워 그 가운데 장개석을 매혹시킬 만한 내용도 있을 것 같지 않다.
1904년 노일전쟁(露日戰爭) 때 아프리카를 돌아 동해로 향하던 무적의 러시아 발틱함대를 거제도 앞바다에서 침몰시켜 결정적 전공을 세운 일본 해군 대장 도고(東鄕)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에 견주어 칭찬하자 “나를 영국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하는 것은 감히 받아들일 수 없소”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을 숭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모 출판사에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서 가시가 돋아난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말입니다”라고 선전하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 아니고 ‘추구(抽句)’라는 아동용 한문책에 나오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는 글씨를 썼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모든 책에 안 의사의 말로 돼 있다.
엉터리가 계속 널리 퍼져서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점점 구분해낼 길이 없어진다. 글을 쓰거나 대중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사실관계를 따져 신중하게 글을 쓰거나 강의해야 하겠다. 2500년 전 공자(孔子)께서도 지식인들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 경고를 내렸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빼어놓고, 의심스럽지 않은 그 나머지만 이야기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들을 때 자신이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전하려고 하는 이상한 심리가 있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다문궐의 신언기여즉과우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爲政)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을 빼 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지며,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빼 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벼슬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깨우치는 대화법을 살펴보면 기술적인 처방을 제시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자장이라는 제자가 벼슬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에 공자는 관리 등용 시험 준비를 잘하라거나 권력자와의 인간관계를 잘하라고 하지 않고, 견문을 넓히고 언행에 잘못이 적도록 하라는 매우 원론적인 처방을 내려 준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벼슬은 저절로 굴러 온다는 것이다.
대개 학문과 인격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초조해서 더욱 지위를 탐하게 되고, 인격 수양과 학문 탐구에 정진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는 아직도 벼슬을 하기에 여러모로 모자란다고 겸양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양을 할수록 자기의 부덕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깜냥이 부족한 사람이 분수를 모르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고, 학덕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자기는 아직 멀었다면서 자리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의심할 게 없는 것은 그만큼 분명하는 뜻이므로 바람직하다. 반면 의심이 없다는 것은 지성이 박약해서 사태를 사방팔방으로 뚫어보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까닭 모를 불신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을 위한 의심은 섣부른 판단의 가속을 늦추는 브레이크와도 같다.
판단이 실수로 이어지는 것은 칼을 너무 일찍 쉬두르거나 도끼를 너무 늦게 내리찍는 데서 새긴다. 복수의 생각 중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게 검토하기란 사람으로서 쉽지도 않고 긴장감을 버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더 버텨서 검토해야 하는데 시간의 무게와 외부 압력에 밀려 중심을 놓지면 섣부른 판단이 나오게 된다. 반면 복수의 생각을 두고 결정의 무게와 결과의 엄정함을 스스로 굳건하게 견디지 못하고 전을 굽듯이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느라 기회를 놓칠 수도 잇다. 둘 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단히 지혜로운 처세술이지만 반전은 이미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실천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은 하루를 만들어 보자.
여담이지만, 흔히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을 한다. 혀를 잘못 놀리면 큰일난다는 점을 아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사실 말의 위험성에 대해서 히브리인들의 성서(구약성서)는 훨씬 더 과격하게 표현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장 21절) 훨씬 섬짓하고 과격하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며 유대 랍비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페르시아의 왕이 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암사자의 젖을 먹어야 낫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한 사람이 열 마리의 염소를 미끼로 암사자에게 다가가 젖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신체의 각 부분이 서로 서로 자신이 암사자의 젖을 얻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다투는 꿈을 꿉니다. 발과 손, 그리고 심장이 서로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혀는 자신이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았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모든 신체 기관들이 화가 나서 혀를 나무랍니다. 혀는 중요한 순간에 숨어 있었고, 어떤 일도,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요. 그러자 혀는 모두가 자신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왕 앞으로 다가갔을 때, 갑자기 혀는 “왕이시여, 이것은 개의 젖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왕은 화가 나서 그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합니다. 순간 다른 모든 신체기관들은 혀가 최고라고 인정을 하고 다시 혀는 왕에게 제대로 말해 병을 고쳐준다는 이야기이다.’ 확실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
다문궐의(多聞闕疑)
많이 들어보고 미심쩍으면 제쳐둬라
아무리 잘난 사람도 서둘러 지나가지 못하고 꼭 멈췄다가 가는 경우가 있다. 판단을 내려아 할 때다. 점심때 짬뽕과 자장면을 두고서도 머뭇거려서 "빨리 골라!" 라는 다그치는 소리를 듣는데, 인생과 사업이 걸린 문제라면 주저하기 마련이다.
판단을 앞두고 사람은 세 가지 양상을 보인다. 첫째, 길게 생각할 게 없다는 듯이 시간적 여유가 남았는데도 서둘러 결론을 내는 '속단형'이다. 둘째, 모든 문제를 검토할 마지노선을 쳐놓고 그 안에서 꼼꼼하게 따져서 논의를 끝내는 '시한형'이 있다. 셋째, 시한이 다가와야 겨우 움직이지만 결국 시한을 넘겨서 질질 끌다가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결정하는 '유예형'이 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낳았던 김우중은 1993년에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2000년까지 해외법인과 시업장 등 1000 여개 국제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한국이 가공수출 단계를 벗어나야 했던 시점에서 세계경영은 적절한 경영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속도와 자본 그리고 방법이었다. 필요한 자본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그는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분식회계를 했고 해외 차입금을 도입하면서 불법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은 해체되었고 수많은 노동자는 실직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 자신도 2006년에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샐러리맨의 영웅에서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추락했다. 이는 그가 내렸던 수많은 판단 '들' 의 귀결인 셈이다. 참으로 판단은 어렵고 무겁다.
제자 자장이 관직생활의 자세를 물었다. 공 선생이 일러주었다. "여러 소리를 들어보고서 미심쩍은 것은 옆에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아주 소심스레 말하라. 그러면 잘못을 덜 하리라. 여러가지를 찾아보고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옆에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매우 조심스레 실행하라. 그러면 뉘우치는 일을 덜 하리라. 말에서 잘못을 덜 하고 실행에서 뉘우치기를 덜 하면 안정된 직장생활이 그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궐(闕)은 보통 대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빼놓다', '유보하다'는 뜻이다. 과(寡)는 '적다'는 형용사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적게하다', '줄이다'는 뜻이다.
위의 대화는 제자 자장이 관직의 자세를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꼭 관직(직장) 생활에만 적용되지 않고 다른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만하다.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특히 궐(闕), 신(愼), 과(寡) 등 소극적인 어휘가 눈에 들어온다.
공직이란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로서 책임이 무겁다.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뒤집기도 어렵거니와 잘잘못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니 쉽게 말하고 빨리 처리하고 여기저기 부딪치기보다는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심정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의심할 게 없는 것은 그만큼 분명하다는 뜻이므로 바람직하다. 반면 의심이 없다는 것은 지성이 빈약해서 사태를 사방팔방으로 뚫어보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까닭 모를 불신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을 위한 의심은 섣부른 판단의 가속을 늦추는 브레이크와도 같다.
오늘날 이 말이 한국사회에서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 언론과 검찰이다. 상업성을 위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서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또 사법적 진실을 첨예하게 가리는 와중에도 검찰이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 재판을 유도하고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도 여과되지 않은 사실의 누설과 관련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사 사옥입구 벽면에 확대된 신문 창간호에 김윤식이 쓴 '多聞闕疑, 愼言其餘' 글씨가 있다. 이는 단순히 써놓고 끝낼 것이 아니라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굳건하게 지켜야 할 계율이다.
판단(判斷) 한자를 잘 들여다보자. 둘 다 끊는 도구가 있다. 판에는 칼 도(刀)가 있고, 단에는 도끼 근(斤)이 있다. 그만큼 판단이 어렵기도 하지만 일단 내려 버리면 앞과 뒤가 판연(判然)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판단이 실수로 이어지는 것은 칼을 너무 일찍 휘두르거나 도끼를 너무 늦게 내리찍는데서 생긴다. 복수의 생각 중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게 검토하기란 사람으로서 쉽지도 않고 긴장감을 버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더 버텨서 검토해야 하는데 시간의 무게와 외부 압력에 밀려 중심을 놓치면 섣부른 판단이 나오게 된다.
반면 복수의 생각을 두고 결정의 무게와 결과의 엄정함을 스스로 굳건하게 견디지 못하고 전을 굽듯이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느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둘 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도 벼슬에 대한 공자의 언급이 있다. 공자는 "농사를 지으면 굶주림이 그 안에 있고 배우면 벼슬이 그 안에 있다(耕也餒在其中 學也祿在其中/경야뇌재기중 학야록재기중)"고 했다. 벼슬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배우면 자연스럽게 벼슬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둘째는 벼슬을 위해 학문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송대(宋代)의 성리학자들은 후자의 의미로 봐 벼슬을 위한 공부, 즉 과거 공부를 권장하지 않았다.
▶️ 闕(대궐 궐)은 형성문자로 阙(궐)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자라다, 비다의 뜻(缺; 결)을 나타내는 欮(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闕(궐)은 (1)임금이 거처(居處)하는 곳의 통틀어 일컬음 (2)여러 차례 참여하거나 또는 하여야 할 일에서의 몇 차례가 빠짐 (3)많은 자리 중에서의 일부 자리가 빔. 결원(缺員) 등의 뜻으로 ①대궐(大闕) ②대궐문(大闕門) ③조정 ④흠 ⑤궐하다(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리다) ⑥이지러지다(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없어지다) ⑦이지러뜨리다(이지러지게 하다) ⑧파다 ⑨뚫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궁(宮), 대궐 신(宸)이다. 용례로는 대궐의 안을 궐내(闕內), 대궐의 밖을 궐외(闕外), 대궐을 출입하는 문을 궐문(闕門), 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궁궐(宮闕), 대궐 안으로 들어감을 입궐(入闕), 실수나 부주의 등으로 인한 잘못을 궐실(闕失), 끼니를 거름을 궐식(闕食),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지내지 못하여 빠뜨림을 궐사(闕祀), 글자의 획을 빠뜨리는 일을 궐획(闕劃), 참여해야 할 데에 빠짐을 궐도(闕到), 군사의 정원을 채우지 아니하여 부족이 생기게 함을 궐립(闕立), 차례가 되었는데도 번을 서지 않고 빠짐을 궐번(闕番), 종자가 부족함을 궐종(闕種),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거두어들이는 종이를 궐지(闕紙), 죄인에 대하여 추문하는 일을 하지 않음을 궐추(闕推),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모자람을 궐핍(闕乏), 일을 할 장정이 없는 집을 궐호(闕戶), 문장 중에서 빠진 글자나 또는 빠진 글귀를 궐문(闕文), 문장 가운데 빠진 글자를 궐자(闕字), 벼슬아치가 결근함을 궐사(闕仕), 지위가 빔 또는 그 지위를 궐위(闕位), 참여한 일에나 장소에 빠짐을 궐참(闕參), 가난하여 끼니를 거름을 궐취(闕炊), 한참 동안 빠지거나 궐함을 구궐(久闕), 빈 자리를 만듦을 작궐(作闕), 자기의 부족한 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는 일을 공궐(攻闕), 벼슬아치가 자리를 오랫 동안 비움을 광궐(曠闕), 일정한 수량이나 정도에 차지 못하고 모자람을 흠궐(欠闕), 반드시 하여야 할 일을 지체하여 빠뜨림을 계궐(稽闕), 벗어나거나 빠짐을 탈궐(脫闕), 문이 겹겹이 달린 깊은 대궐을 일컫는 말을 구중궁궐(九重宮闕), 의심이 나는 일은 억지로 자세히 캘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의자궐지(疑者闕之), 상소할 때에 도끼를 가지고 대궐문 밖에 나아가 엎드리던 일을 일컫는 말을 지부복궐(持斧伏闕) 등에 쓰인다.
▶️ 疑(의심할 의, 안정할 응)는 ❶회의문자로 어린아이가 비수(匕)와 화살(矢)을 들고 있어 위험하여 걱정하니 의심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疑자는 '의심하다'나 '헷갈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疑자는 匕(비수 비)자와 矢(화살 시)자, 疋(발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疑자는 이러한 글자의 조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疑자를 보면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돌린 사람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으로는 彳(조금 걸을 척)자가 있으니 이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疑자는 이렇게 길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헷갈리다'나 '주저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의심하다'나 '믿지 아니하다'와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疑(의, 응)는 경서 가운데서 의심이 날 만한 것의 글 뜻을 설명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의 뜻으로 ①의심하다 ②헛갈리다 ③믿지 아니하다 ④미혹되다, 미혹시키다 ⑤두려워하다 ⑥머뭇거리다, 주저하다 ⑦괴이하게 여기다 ⑧비기다(=擬) ⑨같다, 비슷하다 ⑩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⑪시샘하다 ⑫헤아리다, 짐작하다 ⑬의문(疑問) ⑭아마도 그리고 안정할 응의 경우는 ⓐ안정하다(응) ⓑ한데 뭉치다(응) ⓒ집결하다(응) ⓓ멈추다(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의심할 아(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믿을 신(信)이다. 용례로는 의심하여 분별에 당혹함을 의혹(疑惑), 의심하여 물음을 의문(疑問), 마음에 미심하게 여기는 생각을 의심(疑心), 의심스러워 괴이쩍음을 의아(疑訝), 의심하여 두려워함을 의구(疑懼), 서로 의심하여 속 마음을 터 놓지 아니함을 의격(疑隔), 의심스러워 마음이 어지러움을 의란(疑亂), 의심하고 업신여김을 의모(疑侮), 반신반의 함을 의신(疑信), 의심하여 망설임을 의애(疑捱), 의심하여 어김을 의위(疑違), 의심하여 두려워함을 의파(疑怕), 의심하여 놀람을 의해(疑駭), 의심쩍고 명백하지 못함을 의회(疑晦), 의심하며 놀람을 의경(疑驚), 의심스러운 생각을 의념(疑念), 의심스러운 일의 실마리를 의단(疑端), 꺼리고 싫어함을 혐의(嫌疑), 의심나는 점을 물어서 밝힘을 질의(質疑), 마음속에 품은 의심을 회의(懷疑), 의심스러움이나 의심할 만함을 가의(可疑), 크게 의심함을 대의(大疑), 의혹을 풂을 결의(決疑), 어려워서 의문스러움을 난의(難疑), 의심이 많음을 다의(多疑), 괴상하고 의심스러움을 괴의(怪疑), 의심을 받음이나 혐의를 받음을 피의(被疑), 의심스러운 바를 환히 깨달음을 오의(悟疑), 시기하고 의심함을 제의(懠疑), 의심쩍은 생각을 가짐을 지의(持疑), 의심이 생기면 귀신이 생긴다는 뜻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대수롭지 않은 일까지 두려워서 불안해 함을 이르는 말을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을 품는 일을 행하여 성공하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의사무공(疑事無功), 의심이 나는 일은 억지로 자세히 캘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의자궐지(疑者闕之),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 또는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 많은 사람이 다 의심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군의만복(群疑滿腹), 믿음직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차신차의(且信且疑),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을 호의불결(狐疑不決),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여름의 벌레는 얼음을 안 믿는다는 뜻으로 견식이 좁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충의빙(夏蟲疑氷),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을 호의미결(狐疑未決), 죄상이 분명하지 않아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가볍게 처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죄의유경(罪疑惟輕) 등에 쓰인다.
▶️ 愼(삼갈 신, 땅 이름 진)은 ❶형성문자로 慎(신)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세밀하다는 뜻을 가진 眞(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세밀히 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愼자는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愼자는 心(마음 심)자와 眞(참 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眞자는 신에게 바칠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참됨을 뜻하는 眞자에 心자가 결합한 愼자는 조심스럽게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愼(신, 진)은 ①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②근신(謹愼)하다 ③두려워하다 ④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⑤따르다 ⑥삼감(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함) ⑦성(姓)의 하나 ⑧진실로, 참으로 ⑨부디, 제발, 그리고 ⓐ땅의 이름(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삼갈 각(恪), 원할 원(愿), 삼갈 비(毖), 삼갈 근(謹), 삼갈 욱(頊)이다. 용례로는 매우 조심스러움을 신중(愼重),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신독(愼獨), 신중하게 사려함을 신려(愼慮), 신중히 생각함을 신사(愼思), 상사를 당하여 예절을 중시함을 신종(愼終), 삼가고 조심함을 신계(愼戒), 신중하게 가려 뽑음을 신간(愼簡), 말을 삼감을 신구(愼口), 신중하고 면밀함을 신밀(愼密), 여색을 삼감을 신색(愼色), 신중히 다룸을 신석(愼惜), 조심하여 고름 또는 선택을 신중히 함을 신선(愼選), 조심하여 지킴을 신수(愼守), 말을 삼감을 신언(愼言),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음을 신기(愼機), 삼가서 침묵을 지킴을 묵신(愼默),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란 뜻으로 설날을 일컫는 말을 신일(愼日), 언행을 삼가고 조심함으로 과오나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들어앉아 행동을 삼감을 근신(謹愼), 힘써 삼감을 근신(勤愼), 삼가지 아니함이나 신중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불신(不愼), 겸손하게 삼감을 겸신(謙愼), 경계하여 삼감을 계신(戒愼), 공경하고 삼감을 경신(敬愼), 혼자서 스스로 근신하는 일을 독신(獨愼), 온화하고 신중함을 온신(溫愼), 두려워하고 삼감을 공신(恐愼), 성품이 질박하고 신중함을 질신(質愼), 어렵게 여기고 조심함을 난신(難愼), 몹시 두려워하고 언행을 삼감을 외신(畏愼), 양친의 상사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공경을 다한다는 말을 신종추원(愼終追遠), 일이 마지막에도 처음과 같이 신중을 기한다는 말을 신종여시(愼終如始), 처음 뿐만 아니라 끝맺음도 좋아야 한다는 말을 신종의령(愼終宜令),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이르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등에 쓰인다.
▶️ 言(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은 ❶회의문자로 辛(신)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辛(신)은 쥘손이 있는 날붙이의 상형이고, 口(구)는 맹세의 문서의 뜻이다. 불신이 있을 때에는 죄를 받을 것을 전제로 한 맹세로, 삼가 말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言자는 '말씀'이나 '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言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입 구)자 위로 나팔과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생황(笙簧)이라고 하는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言자는 이렇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말하다'와 관계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갑골문에서의 言자는 '소리'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여기에 획을 하나 그은 音(소리 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言(언, 은)은 ①말씀, 말 ②견해(見解), 의견(意見) ③글 ④언론(言論) ⑤맹세(盟誓)의 말 ⑥호령(號令) ⑦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⑧건의(建議), 계책(計策) ⑨허물, 잘못 ⑩혐극(嫌隙: 서로 꺼리고 싫어하여 생긴 틈) ⑪이에 ⑫요컨대, 다시 말하면 ⑬여쭈다, 묻다 ⑭기재하다, 적어넣다 ⑮소송하다 ⑯이간하다(離間;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⑰알리다 ⑱예측하다 ⑲말하다 ⑳조문하다, 위문하다 그리고 ⓐ화기애애 하다(은) ⓑ화기애애 하면서 삼가는 모양(은) ⓒ위엄(威嚴)이 있는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사(辭), 말씀 변(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호반 무(武),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말로나 글로써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일을 언론(言論), 어떤 일과 관련하여 말함을 언급(言及),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나 글자로 나타내는 수단을 언어(言語), 말과 행동을 언행(言行),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언중(言衆),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언사(言辭), 말로 한 약속을 언약(言約),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변(言辯),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상대자가 한 말을 뒤에 자기가 할 말의 증거로 삼음을 언질(言質), 말과 글을 언문(言文),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으로 예사로운 표현 속에 만만치 않은 뜻이 들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언중유골(言中有骨),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 또는 서로 변론하느라 말이 옥신각신 함을 이르는 말을 언거언래(言去言來), 서로 변론 하느라고 말이 옥신각신 함을 이르는 말을 언삼어사(言三語四),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뜻으로 놀라거나 근심이 있어도 평소의 태도를 잃지 않고 침착함을 이르는 말을 언소자약(言笑自若), 말인즉 옳다는 뜻으로 말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말과 행동이 같음 또는 말한 대로 행동함을 언행일치(言行一致),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다는 뜻으로 말만 꺼내 놓고 실행이 부족함을 이르는 말을 언과기실(言過其實), 말이 천리를 난다는 뜻으로 말이 몹시 빠르고도 멀리 전하여 퍼짐을 일컫는 말을 언비천리(言飛千里), 말 속에 울림이 있다는 뜻으로 말에 나타난 내용 이상의 깊은 뜻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언중유향(言中有響), 들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는 뜻으로 들은 말을 귓속에 담아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언유재이(言猶在耳), 말 가운데 말이란 뜻으로 순한 듯 한 말속에 어떤 풍자나 암시가 들어 있다는 말을 언중유언(言中有言), 두 가지 값을 부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에누리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언무이가(言無二價), 남의 인격이나 계책을 깊이 믿어서 그를 따라 하자는 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언청계용(言聽計用), 하는 말과 하는 짓이 서로 반대됨을 일컫는 말을 언행상반(言行相反), 말은 종종 화를 불러들이는 일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언유소화(言有召禍), 태도만 침착할 뿐 아니라 말도 안정케 하며 쓸데없는 말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언사안정(言辭安定)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