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다 달라지는 지도자 뜻보다 법이 중요 "모두가 같은 법 적용받아야" 주장했어요
한비자: 덕치에서 법치로
윤찬원 지음 l 출판사 살림 l 가격 9900원
한비자: 덕치에서 법치로
고대 철학자 한비는 각 나라가 전쟁을 벌이던 중국 전국 시대 말기에 활동했습니다. 한비는 가장 작고 힘도 약한 한(韓)나라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나라를 강하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여 한나라 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그 방법을 55편으로 정리한 책이 ‘한비자’입니다.
어떤 방법일까요? 한비는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강해지고, 법이 바르지 못하면 약해진다고 말합니다. 인재를 등용할 때도,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릴 때에도 법에 따라야 합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왕의 뜻이 법보다 위에 있으면 신하와 백성은 왕 눈치만 봅니다. 그런 나라는 강해질 수 없다는 게 한비의 생각입니다.
한비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나쁜 일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법입니다. 한비는 왕이 형(刑)과 덕(德)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형은 처벌하는 것이고 덕은 상을 주는 것입니다. 처벌받을까 두려워서 왕에게 복종하고, 상을 받기 위해 충성을 바칩니다. 처벌하고 상 주는 이유와 기준은 법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말은 남의 사정을 헤아려 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가(儒家)는 인정사정을 보려 하지만, 한비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의 사정을 다 봐주면 법이 무너져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는 이유에서죠. 또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에게나 같은 법을 적용해야 공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비는 시대가 다르면 법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비자에서 한 고사를 언급했어요.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에서 토끼가 달려가다 그루터기를 박고 죽는 것을 보았답니다. 농부는 계속 그루터기만 지켜보았지만,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요. 바로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예요.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한비는 옛날 성왕(어질고 뛰어난 임금)들이 정한 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유가가 꼭 송나라 농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토끼가 그루터기를 박은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법과 같다는 겁니다.
한나라와 대결하던 진나라의 왕이었던 정(政)은 한비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한비가 사신으로 진나라를 찾았습니다. 정은 “한비를 돌려보내면 진나라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돌려보내지 않았죠. 결국 한비는 진나라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가장 공정하고 엄격하게 법을 시행한 진나라는 한나라를 멸망시켰고, 이어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진나라 왕 정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진시황입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