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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조반을 준비했다. 헬싱키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다행이 버스는 별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남항 부두의 공기는 의외로 차가웠다. 문이 열린 안내소엘 들어간 것은 찬바람을 피해서였다. 거기엔 입은 옷 그대로 구석에 누워 밤을 세운 바이커가 하나 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얼굴은 분명 귀공자 같은데…이렇게 호텔비를 버는 또하나의 자유 여행객이로구나!”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밖에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이불도 없이 추운데서 밤을 보내다니 쯧쯧쯧…우린 발소리를 죽여 밖으로 다시 나왔다. 고급시설에서 자고나와 그 청년의 안면을 방해한다는 게 미안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근방에서 중학생 딸애기 둘을 데리고 있는 귀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탈린에서 2박하려고 해요. 그래서 오후 페리를 타기로 했어요, 오전 페리는 사람이 몰려 더 비싸요. 그리고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타투(Tartu)도 탈린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요. 가는 길에 다 보면 좋아요.” -친절한 조언은 고맙지만 난 계산이 따로 있다. 에스토니아에 관한 한 수도인 탈린으로 만족한다. 그 대신 스웨덴에 머무는 시간을 늘인다. – 독일 신사 아침 8시가 되기전, 에스토니아로 가는 페리의 승선을 서두르고 있는 수백명의 인파속을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하이” 하고 얼굴에 활짝 미소의 꽃을 피우며 반기는 사람이 있었다. 건장한 50초반의 남자였다. 나도 하이 하고 답례를 보냈다. 옆에는 역시 미소가 전부인 듯한 동양계 여인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난 알아요. 당신 코리아에서 왔지요? 그치요?” 맹랑한 친구다.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방에서 내 국적이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반응을 보였다. “당신은 독일에서 왔지요? 그치요?” 이 친구 호걸풍의 호탕한 폭소를 터뜨리며 악수를 청했다. 이름이 쿨트(Kurt)라고 했다. “예, 독일에서 왔어요. 하하 “ 한동안을 다른 사람의 이목을 전연 주의하지 않고 그는 나와 떠들어댔다. 폭소의 연속이었다. 옛날 핀란드에서는 홍인종과 백인종 간에 내전을 한 적이 있다. 흑백만이 싸우는 게 아니다. 이 독일인은 홍인종이었고 인상부터가 내가 만났던 독일인과 아주 같았다. 그래 당장 알 수가 있었다. 켤레들 쿨트는 자기의 장인, 장모가 중국에서 살고 있으나 언제나 한국말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릴 코리안인 줄 쉽게 분간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20대 중반의 여인은 한국인의 피를 가진 중국국적의 여자였다. 색씨는 얼굴에 온통 미소의 프레시를 연거퍼 터뜨리고 있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남자리면 아마 누구나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할 거야." 하고. 배에 오르자 한자리에 합석을 해 대화를 계속했다. 그런데 난 그가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묻고 싶은게 많았으나 차마 물을 수가 없는 질문을 자제했다. 젊은 여인은, 서투른 한국말에다 영어도 곧잘 하고, 독일어 중국어를 해 4개국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둘은 결혼한 사이이며 지금 몇개 나라를 돌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남편에 비해 너무 어리다. 아니 신부에 비해 남편이 너무 늙었다. 그래 물었다. “나이차가 결혼생활에 장애가 안되나 부지요?” “아직은 요… 남편에겐 또 아들 둘이 있어요.” 얼마나 갈까? 20년의 연령차가 있다고 했으나 어쩜 20년도 더 돼 보였다. “어떻게 만났을까?” “전처와 와이프는 친구예요. 서로 잘 지내고 있어요.” 쿨트도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런 사생활의 비밀을 서양사람들은 거침 없이 털어놓는 다는 것이다. “이 사람 지금 상해에서 독일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상해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됐어요. 저도 직장에 나가요. 맞벌일 해요.” 쿨트는 폭리를 봤고 넌 바가지를 썼다. 속으로 이렇게 계산했다. 쾌속정은 1시간 반, 그리고 느린 페리는 3시간, 4시간 짜리가 있다. 우린 4시간짜리를 탔다.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항해의 즐거운 시간이 그 만큼 많다. 지루하다라는 말도 통한다. 왠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이 몰려 에스토니아를 갈까? 이번 여행에서 난 이런 켤레들을 많이 만났다. 프랑스말의 avec가 맞는 말일까? 요즘 사람들은 짝퉁이라고도 하지? 하하 노년층의 켤레들도 봤는데 여행중에 만나 동반하게 되었다고 했고 프랑스에서 온 켤레는 같이 출발해 동반여행을 하고 있으나 남자가 먼저 귀국하는 바람에 여잔 다시 외톨이가 된 걸 보았다. 하하 켤레가 걸레보다야 듣기에 나은 게 아닐까? 하하! 무장하지 않은 진리 에스토니아엔 역사 같은 건 알 바 없고, 주머니가 불룩한 졸부들에겐 놀기 좋은 곳이다. Stag Party가 밤을 달구어 관광객을 흥분시킨다. Stag Party(부인 없이 가는 파티)엔 맥주와 춤, 스트립쇼와 레스비안 쇼도 있으나 대개 지출유도의 상술이며 주로 서양풍의 음주문화다. 비교적으로 물가가 싸다는 게 에스토니아의 매력이다. 종교인의 교조주의, 교수의 상아탑 이야기, 그리고 성인들의 형이상학! 이런 게 다 우습게 생각되는 사람들에겐 코웃음거리가 될 게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은 어무리 빼어난 미모라도 행실이 이뻐야 예쁘다. 돈을 노려 몸을 파는 노류장화에게 놀아나는 지식인, 전문가. 지도자는 없는가? 벌레는 불에, 물고기는 낚시에 걸려 죽는다. 그런데 인간은 불행의 그물을 잘 알면서도 관능의 향락이라는 미끼를 사양하지 않고 삼킨다. 그러나 진리는 무장하지 않고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러시아엔 37만명, 에스토니아엔 6,000 명의 HIV와 AIDS 환자가 있다. 서유럽에 28만, 중유럽에 27만, 동유럽에 50만이상 도합 유럽전역에 1백5만의 환자가 있다. 최근에는 영국이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보도했다. 여행을 해보면 역사를 알지 못하고 역사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공원에 세워진 그 나라 명사의 동상, 그의 공덕을 알지 못하고 카메라를 갖다 댈 때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아마 동상의 조형미나 머리위에 예쁘게 앉아 있는 갈매기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장군의 동상앞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건 누구나 즐기고 있는 우화중의 우화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의 ‘컨추리 서머리’(country summary)라도 알아야 찾아가는 재미가 더 클 수 있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고 간다. 그래도 볼거리는 많다. 사람의 생김새도 전부 다르고 건축의 모양도 다르다. 다르다는 게 흥미를 돋군다. 그러나 교육받지 않은 동물의 세계를 상상해보자 동물에겐 세상의 지식이 없다. 가진 건 없어도 불만이 없다. 탈린!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누구나 정보욕구라는 게 있고 모르면 갑갑하다. 동물이 아니라면,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단 열 배 낫다. 백배 천배나 더 낫다. 난 그래서 여행을 할 때 동상 앞에서, 박물관에서 그리고 강가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배우는 사람이 모른다는 건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질문을 하지않는 것은 수치이며 불민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약자는 먹힌다. 국제사회에서 강자의 오만은 언제나 힘으로 정당화되었다. 정의는 언제나 자기편에 있다. 힘이 곧 정의로 통해왔다. 불쌍한 에스토니아! 가엾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땅은 제주도를 뺀 남한의 절반정도가 된다. 1백 5십만에서 최근 1백 3십만으로 인구가 감소되었고 인프레는 지난 10년간에 최고를 이루었다. 수도인 탈린에는 아직도 러시아계가 32%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잘사는 나라로 뺏기기 때문이다. 당나라, 청나라 시대의 중국과 일본에게 강점당하고 나라 잃은 백성이 된 코리아처럼, 아니 그 보다 천배 만 배 더 찢기고, 할퀴고, 유린 당한 에스토니아야! 인간은 다른 종족을 미워해왔다. 왜냐하면 힘 있는 종족은 언제나 약한 종족을 침략했고 자기종족의 우상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역사가 언제나 살인을 미화했다. 야수 없는 밀림은 밀림도 아니다. 사자중에 사가가 나오지 않는 한, 헌팅얘기라면 언제나 사냥꾼은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사내들이란 언제나 외식을 꿈꾼다. 그래서 모두가 다처주의자라고 모음이 말했다 내가 이와 같은 개요의 에스토니아 역사를 얘기하자. 독일 공군출신의 쿨트는 “선생님은 역사 교수였어요? 어떻게 그리도 잘 알고 계세요? 하고 감탄해 보였다. 그리고 “다 맞는 얘깁니다. 그러나 독일은 과거와 아직도 사랑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경제와 재혼했습니다. 나도 재혼했잖아요? 하하..” 하고 말했다. ‘독일은 교육이 무룝니다. 누구나 가능한 한 자기자신을 개발시킬 자유가 있어요. 인종, 성별, 계급, 신체장애로 차별받지 않아요. 그런데 난 독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외국이 더 좋아졌어요.” anti Semitism 나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셈족은 유대인, 아라비아인, 앗시리아인들이다. 히틀러의 악령이 최초로 인종청소를 시작한 지역이 바로 발틱 3국이었다. 그러니까 에스토니아의 시민인 유대인들이 맨 먼저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코리안이 말이에요?” 어젯 밤 아내가 잠자리에 들자 나는 아랫층 홀에 나가 컴퓨터에 한 시간을 매달렸다. 우리가 찾아가는 에스토니아는 어떤 나라인가? 그래 어젯밤에 공부한 걸 독일친구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교육자는 언제나 가르치면서 공부한다. 하하 웃으며 말한다는 게 대화의 비결이다. 쿨트가 의견을 말할 땐 나도 열심히 경청해주었다. 경청하지 않으면 농아와 뭣이 다르냐? 나는 독일을 얘기할 때 쿨트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데 흥미를 느꼈다. “천주교도 문제의 중심에 있을 때가 있었어요” “네? 천주교가요?” “원래 천주교가 반 셈족 정서를 부채질 한 것은 성직자들이 당대의 지도적인 학자들이었기 때문이죠.”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면서 발틱 3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3국정부가 직접 청소해주도록 명분과 구실을 재공해준 것이 바로 이 anti Semitism이다. 1918년 러시아 혁명이 돌발한 뒤에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자 에스토니아도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러시아가 1940년 에스토니아를 강제로 점령하고 나라마저 합병해버렸다. 인종청소 그 후 1941년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한편으로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다. 독일은 이 때 군경이 합세하고 또 현지의 예속세력과 손을 잡아 41년 말까지 현지 유대인을 대량학살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독일은 에스토니아에다 강제노동수용소를 만들어 유럽의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들을 여기에 강제수용했다. 죄 없는 죄수, 유대인들은 독일군을 위해 방벽과 요세를 만들고 그러면서 살해되었다. “네 아마 그랬을 거에요. 내 그걸 대강 알고 있어요.” 그러다가 러시아가 다시 독일군을 격파하고 에스토니아를 점령, 나치군이 철수했으나 유대인은 발틱해안에서 또 수천명이 죽음의 비극을 당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공포는 있어도 저항은 없었다. 할 수가 없었으니까 “무기가 있어요? 무슨 조직이나 군대가 있어요? 약자의 비극만 있었으니까요.” 1940년에 러시아가 침공한 뒤에도 외려 유대인에게 교육의 혜택마저 박탈하고 왕따를 시켜버렸다. “스캇이 혹시 독일을 맹열히 저주하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내가 왜 독일 신사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까? 난 역사를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독일은 어제의 독일이 아니니까요.” 하와이에서 독일인 친구가 말했다. 어제는 미국인들과 마주보며 총을 쐈는데 지금은 이민을 와 난 미국인이 되었다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었다. 그걸 말해주었다. 쿨트는 하하 웃었다. 피정복국 비운의 발틱은 다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미국은 한번도 이 강제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에스토니아가 원래 러시아의 땅이 아니라 강점되었다가 국권을 간신히 회복한 피정복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17세기엔 스웨덴의 속국이었고, 러시아와 스웨덴은 에스토니아라는 맛있는 먹이감을 앞에 놓고 여러차례 전쟁을 했다. 전쟁이 없을 땐 또 기아의 강타를 당했던 고난과 비극의 땅! 그런 비극의 역사를 이어나가다가, 2001년 전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던 Ruutel이 에스토니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2005 년에야 러시아와 국경확정조약을 체결했다 2002년에는 에스토니아 의회가 러시아 점령을 기념하는 박물관의 철거를 가결하자 에스토니아 탈린 시민들이 붉은 군대의 전쟁기념관도 모조리 철거했다. 그로인해 러시아계의 시민들이 저항,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1인이 죽고 40명이부상을 당했다. 네시간의 항해는 나의 발표와 쿨트의 호쾌한 반응으로 지루하지 않게 끝날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는 그런데 컴퓨터로 투표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2006년 $15,000, 2008년에는 $22,000을 기록하고 있다. 관광수입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독일 신사 쿨트는 색씨가 이뻐 연신 눈길을 보내고 그러면서 대화에도 가끔 폭소와 함께 열심히 매달렸다. 도대체 색씨가 이뻐 사랑스러운 걸까? 아님, 사랑하니까 이뻐 보이는 걸까? 사실, 이쁘다는 게 사랑할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쁘게 보이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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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밋게 읽고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