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밤!!!
아! 잊어랴 ! 어찌 그리 그 날을!
6살짜리 꼬마가 신나게 놀면서 “내 평생 이렇게 재미있었을 적은 없었다.”라고 표현할 때는
정말 요놈이 하고 요절 복통했었다.
그러나 내 나이 45세(57년 개띠-부르스의 표현)가 되도록 내 평생 술한 잔 안 먹고
요로코롬 재미있게 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베트남에서 미스 베트남을 안고 자도 이번만큼은 재미가 없었다.
신혼여행에서 첫날밤도 비교가 안되었다.
완존 환상의 밤은 나를 눈멀게 하였다.
난 장염( 전야제에서 진수와 술 마시다 썩은 낙지 뽁음으로)이 걸려 약을 먹고 출발을 하게되었다.
업무도 팽개치고 1주일에 한번 가는 집에도 산장 세미나라고 전하고 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 출발 진수와 함께 출발했다.
색시와 같은 이춘희, 오부르스, 그리고 유일한 홍일점 김 황남(?)이와 함께 출발부터 심상찮았다.
왜냐구 모두 1분도 늦음이 없이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에 중부고속도로를 올랐다. 미리 고속도로 통제소에 예약을 하여 우리만 달리도록 연락을 해놓은 바람에 전혀 지체없이 증평을 통과하여 괴산 이화령 문경 그리고 오부르스, 장희창의 고향 의성을 통과하여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나의 목은 쉬어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우리는 6시간동안 쉬지 않고 지껄였기 때문이다.
과거 불우했던(?)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왔는 이야기며 그간 살았던 에피소드로(담에 들려줄껴) 모두 요절복통으로 눈물을 찔끔 찔끔 흘리면서 황남이와 우리들의 바지는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다행히 똥은 싸지 않았다.
문경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돌아갈 때 점심식사로 문경에서 이름도 유명한 송어회를 예약 해놓았다(문경산림조합 임학과 83학번 후배에게).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찔락이, 타락자, 병윤이와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목욕 재개하고 (대구,부산팀) 이미 따스한 저녁을 준비해 놓고 켐프파이어도 준비 완료되어 있었다.
환상의 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즈넉하고 숲속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산장은 과거의 침상 산장은 아니지만 우리들에게 학창시절로 돌아가기는 충분한 분위기였다.
아!!! 운명의 순간은 나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짱마담의 능수 능란한 어휘와 분위기 장악으로 난 홍콩으로 가는 밤 비행기에 올랐다.
진수의 통키타 소리, 타락자의 특유의 봉사 정신, 우과장의 온 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준비, 유영주의 눈웃음, 선자의 신선한 모습, 이경자의 여유로운 행동, 황남이의 웃음소리, 여도울의 온 몸을 투신한 위트(-경자에게 깔려 압사할 뻔했음), 이춘희 물구나무서기, 정동명의 현란한 손놀림과 특유의 목소리, 그리고 잘 돌아가는 허리의 싸나이 찔락이 아! 학창시절로 그때 그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장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주었다.
잊을수 없는 것은 그 눈빛들 늙지도 젊지도 않는 나이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밤은 깊어가고 모닥불은 우리의 모습을 영원히 한순간에 정지시켰다.
학창시절의 모습으로 깊은 밤은 반딧불(불도 안닌 불)의 정력을 가진 찔락이의 사회로 “묵고 또 묵고” “하고 또 하고-” “금상첨화 - 설상가상”팀으로 나누어 밤을 지새웠다.
타 들어가는 장작불이 사그러 질쯤(새벽 3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서로의 발을 맞대고 손작업을 하기 위해서 잘 사람은 자고 201호로 갈사람 202호로 짝짓어 들어갈 운명의 밤을 그렇게 보냈다.
“혹시 손 잡았어머 알라 생기는 아이가???” 만약 그렇다면 10달후 난 5명의 아들과 딸이 생기겠지 ! ㅎㅎㅎㅎㅎㅎ
아참 모른다!! 누구의 새끼인지??? 으 하하하!
이름모를 새소리는 잠을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공기며 산속의 고요함은 얼마만에 맛보는 느낌인가?
누구의 산장인가?
누구의 삶인가?
아! 이제부터 적어도 1년에 한번 정도는 이런 모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린 누구를 위하여 살아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졸업하고 17년간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라는 화두를 남기며 숲속길을 거닐었다.
아침은 10시에 돼지숯불구이와 상추쌈, 모자라는 밥으로 때우고 설거지는 피아노의 프로인 정 동명이 완벽하게 하고 우린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갈사람은 가라 재미는 지금부터다.!!!!!
먼 곳 서울을 향하여 가야 하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우린 떠나야 했다.
현실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출발하여 월매를 나오려는데 서지도 못하는 금상첨화(타락자)가 못내 아쉬워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 나누어 타고 가자고 제의하여 현서 화목까지 서로 바꾸어 분승(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태우고?)하여 갔다.
아쉬움에 눈물이 날 지경인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되었다.
이미 갈사람(여운일, 우병윤, 김선자)은 갔고 남은 사람들 “우리 점촌으로 돌아서 후배의 송어회를 맛만 보고 가면 안될까? 광덕아 후배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라고 물어보는 쮸쮸의 모습이 못내 아쉬워 서울팀을 따라 점촌까지 가고 싶은 모습이었다. 어쩔수 없이 신세지는 것 4명이면 어떻고 100명이면 어떻랴! go! 점촌 , 죽어도 go! 여기서 2명(정동명, 이경자)은 앞으로 남은 환상도 모른체 대구로 대전으로 떠나 가버렸다.
2시간을 달려 문경에 도착하니 후배가 기다렸고, 후배는 능란한 솜씨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경 산동 김룡사 앞 ‘아천교 송어회집’ 우리는 입에 살살녹는 황색빛을 띤 송어회와 튀김으로 배를 채워 밥이 들어가지 않아 결국 점심은 굶(?)었다.
문경은 예절의 고향이라 올 때는 그냥 왔어도 갈 때는 마음대로 못간다나 산천 단란 주점을 대낮부터 통째로 빌려 붙잡기에 못이기는 체하고 2차전으로 들어갔다. 전날 밤 다못 풀은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다..
오부르스의 몸부림 , 찔락이의 포옹 트위스트 문경군 산림조합의 김대현(83학번 후배), 정원봉 과장(권광덕, 장희창의 과거 지인)의 환상적인 레퍼토리들(디스코 메드리, 영영, 사랑의 이름표, 등등 끝없는 노래)
멘발의 댄스들인 짱마담, 쮸쮸, 황남이의 몸부림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졸개들은 ‘이정현의 와’를 부러며 한밤을 지새울 것 같았다.
우린 마지막 남은 에너지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발산했다.
문경의 양반들은 오늘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고 자고 내일(월요일) 새벽에 가라고 붙잡았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각자 기다리는 현실의 세계로 아쉬운 포옹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못내 아쉬운 발 걸음은 헤어짐으로 아니 다시 다음에 만남을 약속하면서 그렇게 헤어졌다. 아듀 See you again next day - - - 나의 친구들이여!! 흐흐흐 헉 훌쩍 훌쩍!
앞으로 하는 워크 샵(우리의 만남은 앞으로 세미나 혹은 워크샵)에는 많은 사람이 안 왔어면 좋겠다.
능력있는 자가 많이 나타나면 나는 뒤전에서 밥이나 해야 하니까?
그리구 경쟁이 더욱 심하니까? ㅎㅎㅎㅎㅎㅎ
20년이 지나 이 한밤을 자신있게 추억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나의 친구들아!
환상의 밤은 이제 떠나갔다 아들 밥이나 잘해줘라 알겠지
모두 몸 건강해라 그래야 15년 후 환갑에 만날 것 아닌가
2001년 6월 11일
홀로 사는 서울 나그네 올림 (^.^)
첫댓글 광덕아 문단에 데뷔 혀라~
이런 재주가 있을줄 ‥ 놀랍다 그때의 그일이 어제일처럼 생생 하게 재현 되다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