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왼편에 서 있다는 것은
주인의 오른 편 앞에 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종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신성을 의미하며,
달려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신성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처녀의 자궁에 들어간 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면서 상처를 입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가 받은 상처는 치명적인 고통을 느끼게 될 육신을 의미합니다.
그가 두려워하면서 주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비켜 서 있었다는 것은 그의 옷차림이
주인의 오른 편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훌륭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또 일꾼인 주제에 오른 편에 설 수도 없었고 서서도 안 되었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여 떳떳하게 쉴 수 있을 때까지는
주인과 함께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왼편에 서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의도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취하신 아들을 용서하시지 않고
인간의 모든 고통을 겪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아드님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다시 말해서
가장 고귀한 아버지의 기쁨 안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차지하고 계십니다.”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의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Revelations of Divine Love)』중에서)
돈이 모든 악(惡)의 뿌리일까요?
십일조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요?
누구든 원하면 주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 ‘사도로서의 책무(stewardship)’로
‘희생제물을 바치는(Generous Giving)’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소명을 다하는지를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왜 자선을 베풀어야 할까요?
왜 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
대신에
왜 주지 않아야 하는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앤디 스탠리(Andy Stanley) 목사(1958- )는
한 어머니가 학교에 도시락을
갖고 오지 않은 친구와
점심을 나누어 먹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꾸짖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스탠리 목사는 아이들에게는
나누어먹으면서 살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이 되면 자신의
소유물을 나누지 않고
지키려고만 하는 어른들에
대하여 꼬집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드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고통 받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의 몸을 바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로마 12,1)
그리하여 우리들은 돈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2코린 8,8-9)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베풀고 살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마태 25,31-46)
우리가 하느님께 되돌려드릴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돈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주 예수님과
사도들이
우리에게 베풀고 살라고 명령하셨으므로
베풀어야 합니다.(루카 12,33. 2코린 8,7)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의 명령을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성경에 나오는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 희생제물을 바치면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루카 12,33)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자선을 베푸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상급을 받는 데
투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희생제물을 바치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우리는 자선을 생각할 때
자선의 규모와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무조건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의 규모를
재는 척도로
베푸는 사람의 때묻지 않은
진심(眞心)여부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주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눈에는
부질없는 일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1코린 13,3)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 자선을 베풀게 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용서 받아 죄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자선을 베풀게
되면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됩니다.
(1) 자선을 베푸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자선을 베풀 때 마지못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주게 됩니다.
(2)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희망을 갖고 베풀게 됩니다.
하늘나라가 올 것으로 굳게 믿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갖고 있느냐와 관계없이 베풀게 됩니다.
(3)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교훈이 되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을 받게 됩니다.(사도 20,35)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실제로 받기보다는 주기를 좋아하므로 덜 받고 더 많이 주려고 애씁니다.
(4)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아무것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돈을 쓰려고 합니다.
(5) 자선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선물로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중심적이 아니며 하느님만 사랑합니다.
그는 살면서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자선을 베풉니다.
바실
성인(St. Basil, 330-379)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먹지 않고 남긴 빵은 굶주린 이의 빵입니다.
당신이 입지 않고 옷장에 걸어둔 옷은 헐벗은 이의 옷입니다.
당신이 신지 않고 신장에 넣어둔 신발은 신발이 없는 이의 신발입니다.
당신이 쓰지 않고 금고에 넣어둔 돈은 가난한 사람의 돈입니다.
당신이 여태까지 자비심을 보이지 않는 행동을 많이 한 것은
불의(不義)를 저지른
것입니다.”
빚지고 있다는 말과 은혜를 받고 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빚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며 은혜를
모릅니다.
우리는 가장 큰 삼위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스승님들의 은혜,
형제자매들의 은혜, 친구들의 은혜, 이웃들의 은혜, 자식들의
은혜
이 모든 은혜를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감사하고 살면 감사할 일만 생기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