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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선과 레위의 감사 (눅 3-36)
2025년 1월 8일 (수요일)
찬양 : 예수 나를 위하여
본문 : 눅 5:27-29절
금식 삼 일째다. 기운이 없다. 너무 당연하지만 쉽지는 않다.
어떤 말씀이 오늘 내게 들려질까?
본문에는 레위의 부르심 장면이다. 27-28절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선입관에 빠지기 쉽다. 당시 세리는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으로 로마 당국과의 연루 및 강탈 행위로 인해 사회에서 종종 멸시받았고, 심지어는 매국노로 낙인찍혀 살아야 했다.
그래서 마야 앤젤루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편견은 과거를 혼란스럽게 하고, 미래를 위협하며, 현재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짐입니다."
매우 무서운 말이다. 편견이 미래를 위협하고, 현재에 접근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그 자리에 눌러 버린다는 말이다.
보통의 경우 세관에 앉아 있다면 로마에 빌붙어 살면서 우리를 고통케 하는 사람이란 미운 감정으로 보았다. 그 시선으로 평생 그런 인생으로 눌러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을 향해 어떤 편견도 없이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이 시선을 묵상하게 되는 아침이다.
이런 주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레위는 큰 잔치를 연다. 29절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큰 잔치 - "δοχὴν μεγάλων" (dochēn megalēn)
이 단어는 헬라어 원문의 뜻으로 보면 크고 즐겁고 사치스러운 모임이란 뜻이다. 레위가 자신을 불러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 매우 호화롭고 즐거운 잔치를 열었음을 보여준다. 레위의 감사한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나를 따르라는 이 말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일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우선은 자신의 직업을 버려야 한다. 보통의 경우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기에 잔치를 할 생각도 못하고 따르는 것만도 대단한 경우가 된다. 그런데 레위는 큰 잔치를 열고 기쁨으로 나온 것이다. 그가 받은 특별한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레위는 늘 사람들의 시선에 눌려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오직 돈이라도 벌어서 잘 살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레위 안에는 늘 뭔가 모르는 죄책감과 자신도 가치 있게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레위의 이 마음을 알고 부르셨던 것이다. 자신을 아무런 편견 없이 부르신 주님이 그래서 너무도 감사해 레위는 큰 잔치를 열었다.
그에게 이날은 새로운 생일이며, 결혼식이며, 승진의 날이었다. 선입관 없이 그 마음을 보고 인정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 아침 묵상하게 된다.
돌아보면 나는 사람들을 외면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평생에 걸쳐서 해왔다. 그의 외모와 태도와 옷차림에 따라 그를 판단하는 죄악을 너무도 많이 해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눌러 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많이 했음에도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 나를 어루만지시며, 그 어떤 편견도 없이 레위처럼 나를 부르심을 느낀다.
작은교회 70개 교회를 심방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 주님을 위해 그분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았다. 그 누구도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분명하게 배웠다.
목양을 함에 이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처럼 그 내면에 담긴 가치를 볼 수 있어야 목양을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선포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날마다 외치며 누구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외쳤지만, 정작 나는 실제로 수없이 판단하며 살았음을 자백한다.
그리고 금년 금식을 통해 이런 주님의 시선을 배우길 소망한다. 나란 사람이 죽어야 진실로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음을 본다. 주님이 보셨던 그 시선을 가지고 앞으로의 남은 생애를 살아가고 싶다.
예수님의 삶은 바로 이런 시선을 가지고 세상과 인생을 보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도 작은 교회의 하늘 부흥을 외치며 이런 시선이 없이는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시인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이 주님의 시선이 내 안에 채워지기를 아니 나란 사람의 시선이 완전히 죽어지기를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레위를 부르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시선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저는 주님의 부르심에 한 번도 잔치를 열어드리지도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나 같은 못난 인생을 그 어떤 선입관도 없이 부르셨음에도 감사가 없이 이 길에 서 있음을 60이 넘은 나이에 깨닫습니다. 주여, 감사 또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예수님의 시선을 가진 목사로 출발하기 원합니다. 나 같은 자를 이토록 귀하게 여기며 인도하심처럼 저도 그렇게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포기하지 않고 섬길 수 있는 주님의 시선과 마음을 허락하소서. 금번 금식이 이런 변화의 시간이 되게 하소서. 주님 마음을 내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