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하다
이승하
시체를 통해 죽음의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잘 죽어야 하는데 그대 못 죽었다
요즘 드라마에도 뉴스에도 나오는 ‘국과수 부검’이란 말
고무장갑을 끼고 메스를 든다
막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
더 부패하기 전에
이 세상에는 미해결의 주검이 있다
한 번 죽는 것도 억울한데 두 번을?
아니! 영혼이라도 원한 없도록
타살이냐 자살이냐
타살이면 어떻게? 누가?
자살이면 어떻게? 왜?
장기 하나하나를 들어내어
사인을 찾아낸 뒤 사인한다
하나하나 적출했다가 하나로 봉합한다
이제 그대 안치될 수 있다면…… 안락하게
이제 그대 평화로울 수 있다면…… 영원히
잠들어라 죽음의 이유를 내가 밝혔다
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
사람이 시체를 먹고 산다
……오늘은 복날이니 삼계탕을 먹어야겠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3월호 발표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 1984 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사랑의 탐구』(1987),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 『'욥의 슬 픔을 아시나요』(1991),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박수를 찾아서』(1994), 『생명에서 물건으로』(1995)가 있고, 시론집으로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1997),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1999), 『한국 현대시 비판』(2000), 『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 복하기 위하여』(2001)와 그밖에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1997)과 시선집 『젊은 별에 게』(1998) 등과 평전으로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청춘의 별 윤동주』가 있음. 지훈상, 시와 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
[출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하다 - 이승하■ 웹진 시인광장 2024년 3월호 신작시ㅣNewly Written Poem 2024, March l 통호 179호 Vol 179|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