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해골을 그린 까닭은?
…스테인비크의 〈인생의 헛됨에 대한 비유〉

정물화의 소재는 아주 다양합니다. 꽃이나 과일, 채소, 생선, 접시,
술잔, 항아리, 책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온갖 잡동사니가
모두 그림 소재가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서양 정물화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해괴한 물건이 간혹 등장하기도 합니다. 바
로 해골입니다.
스테인비크의 작품을 한번 볼까요? 탁자 위에 여러 가지 정물이
잔뜩 쌓여 있지만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해골입니다. 화면 왼쪽 위
에서 들어온 빛이 해골의 머리 부분을 비추고 있는데, 이는 해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소 섬뜩하고 공포
스러운 해골을 왜 그림 속에 그려 넣은 것일까요? 화가가 엽기적인
것을 좋아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여기에 어떠한 깊은 철학이 숨
어 있는 것일까요?
정물화는 어떤 물건을 놓고 그려도 상관없어요. 무엇이든 생명이
없는 고정된 사물을 그리는 게 정물화의 기본 원칙이니까요. 하지만
정물화 중엔 특정한 사물만 따로 모아 놓고 그리는 그림도 있답니다.
그 사물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통해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나 일깨
움을 주는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바니타스 정물화입니다. 바니타스(Vanitas)란 말은 라
틴어로 ‘덧없음’, ‘헛됨’, ‘허무’ 등을 뜻하지요. 그러니까 사물이 지닌 상징
성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표현한 그림을 일컬어 바니타스 정물화라 합니다.
스테인비크의 작품 〈인생의 헛됨에 대한 비유〉는 바니타스 정물화의 좋은
본보기인 셈이죠. 따라서 이 그림의 주제는 삶의 덧
없음입니다. 인간이 대단히 위대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보잘것없는 존재지
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큰 권력
을 가진 왕이나 귀족, 또는 걸출한 영웅도 마찬가지예요. 살아생전에 누리
던 권력도 명예도 부유함도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해골은 바로 그러한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허무함을 나타내
는 것이랍니다.
해골 주위에 있는 사물들 또한 이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물이에요. 탁자 앞
쪽의 소라 껍데기는 부유함을 상징하고 있어요. 17세기에는 이런 소라 껍
데기가 장식용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모두들 탐내는 희귀한 물건이었답니다. 해골 뒤쪽의 커다란 술 항아리와 피리, 나팔, 그리고 바가지처럼 엎어 놓은 류트 같은 악기들은 모두 인간이 생전에 즐기는 쾌락을 상징하고 있어요. 아무렇게나 늘
어놓은 책은 인간의 배움과 지식을 나타내지요. 하지만 이런 상징물이 의미하는 세속의 부와 권력, 쾌락, 지식은 결국 인간의 죽음이 앗아 갈 덧없는 것들입니다.
해골 앞쪽의 회중시계는 인간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나타내고, 해골 머리 뒤로 보이는 등잔 램프도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램프는 기름이 다 타고 나면 꺼지게 마련인데, 인간의 생명도 이와 같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지요. 그림 속 램프는 방금 불이 꺼진 듯 한 가닥 연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탁자에 가로놓인 멋진 칼 한 자루는 이런 무기로도 막지 못할 죽음의 무서운 힘을 보여 줍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성서의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지요.
구약성서 전도서에 보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인간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하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과 수고가 헛된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에요. 따라서 이 그림에는 종교적 가르침과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어요. 이 그림을 보면서 헛된 욕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늘 경건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라는 의미인 것이죠.
하르먼 스테인비크(1612~1656년 이후) | 스테인비크는 네덜란드 태생의 정물화가예
요. 네덜란드 남서부에 있는 도시 델프트에서 태어나 숙부에게서 그림 수업을 받으
며 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언
제 죽었는지도 정확지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그는 대부분
의 생애를 고향인 델프트에서 보냈으나 얼마간 동인도제도를 여행했던 것으로 알
려져 있습니다. 1656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에 관한 마지막 기록입니다.
〈인생의 헛됨에 대한 비유〉가 대표작으로 유명합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졸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