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
루해의 큰 목소리에 나머지 무리의 아이들이 일제히 사해일행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분명 문이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후문도 닫혔나 확인해 볼게."
루해가 달려나갈 자세를 취하자 류지가 그녀를 제지했다.
"아아... 아까 확인했던 걸로 봐선 거긴 닫혀 있을거야. 덕분에 오늘 정문으로 첫 등교를 했다고."
루해가 초조한 얼굴로 발만 동동 구르자 사해가 앞으로 나섰다.
학교를 둘러싼 담은 대체로 높은 편이다. 그 중 그나마 오늘 수 있을 법한 것이 교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담넘기 시도를 해본 학생들 중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점을 뻔히 아는 사해가 폴짝 뛰어 정문 철제문에 매달렸다.
마땅히 짚을 것이 없어 곧 미끄러졌고 결국 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루해라고 했지? 괜찮을거야."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고민하던 류지가 처음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그녀를 달랬다.
그러나 루해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초조함을 지울 수 없었다.
무슨 일인가 사해 쪽을 지켜보던 운동장의 아이들이 닫힌 교문을 발견한 듯 했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여학생의 세 인형이 보였다.
여학생들이 걸어오며 소리쳤다.
"저기! 우리가 119에 구조요청 했으니까 아마 곧 올거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학생 무리 중 한명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하... 오늘 무지 덥다. 엇, 너 지사해 아니니?"
사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누구더라...?"
"으이구, 같은 반 안수희잖아! 이름은 외워고 다녀라..!"
"맞다 수희! 미안... 내가 워낙 기억력이 안좋아서."
사해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프게 웃자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루해가 못말린다며 한숨 쉬었다.
"근데 의외로 많이들 모였네? 바보는 나뿐이 아니었구나, 푸하하."
사해가 웃음을 터뜨리자 우준이 덩다라 웃었다.
"운동장 보니까 열댓명은 되보인다, 야. 운동장만 이 정도면 건물 안에도 더 있겠는데?"
"하지만 학교 휴일에 학교 문을 열리가 없잖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려와 모르고 있었다곤 하지만, 개교기념일에 교문을 열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교문이 스스로 닫힐 리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일행 모두 학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걸로 봐서는 틀림없이 누군가 문을 열고, 혹은 눈치채지 못하게 닫았단 말이 된다.
'스스로 닫혔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루해가 생각하고 있을 즈음 대화가 한창이였다.
"아까 얼핏 봤는데 열려 있었어. 음... 생각해 보니 이상한데?"
수희가 건물을 다시한번 흘깃 살펴보며 말했고, 이어서 류지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구조대를 기다리기로 하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덥지 않아?"
점점 푹푹 찌는 듯한 날씨에 류지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해 역시 공감한단 듯이 이마를 훑었다.
사실은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지만 너무나 맑은 하늘과 더불어 운동장 한 가운데로 내리쬐는 태양에 질려버린 것이다.
"그래, 들어가자. 저기 나무 그늘 아래서 누워 있는 애좀 봐. 아후... 우리 왜 무식하게 이렇게 서 있었지?"
운동장에는 먼저 들어갔는지 사라진 남학생 무리를 제외하고 남자 아이가 한명 더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와중 운동장 윗편에 위치한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누워 있었는데, 그 자태가 여간 아니꼽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 모두 땡볕의 체육시간을 떠올리며 학교 본관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시원한 내부에 아이들이 살 것 같단 표정을 지었다.
1층 내부는 방금 전등을 켰는지 입구 쪽만 환했다.(복도와 현관 불이 따로 있다)
입구 구석 편에는 여학생 한명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보통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중앙 계단과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환하고 말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는 것을 보아 아까 그 남학생 무리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가방을 따위를 바닥에 깔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건물 안은 이렇게 시원하구나~"
수희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대부분 초조함 반, 별거 아닐 거라는 얼굴 반을 한채 각자 대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류지가 생각났다는 듯 바지춤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류지야, 뭐해?"
사해가 묻자 류지가 바로 되받아쳤다.
"학생부 선생님께 전화 중이야, ...안 받으신다."
류지가 혹시 싶어 다른 교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리고 곧 미간을 찌푸리더니 핸드폰을 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다들 바쁘신가...?"
"그럼 지금으로써는 구조대밖에 희망이 없네. 얘들아, 기다리는 동안 괴담이라도 하지 않을래?"
사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아이들의 반응이 교차됐다.
소수의 아이들, 특히 여학생은 이 와중에 한가롭게 무슨 무서운 이야기냐, 무서운건 질색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고 남학생들은 더운데 잘됐다며 몹시 흥미로워했다. 물론 혼자 담요를 덥고 쭈그려 앉아 있는 여학생은 예외였다. 수희가 친절히 다가가 보았지만 관심없다는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둥 요지부동이었다.
수희 역시 괴담은 뭔가 꺼려진다고 빠지자 딱 운동장에서 처음 만났던 기존 멤버만 남게 되었다.
"게임 괴담같은 거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사해가 명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해가 다소 지루해 보이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장소가 학교니까, 학교 괴담으로 하자. 돌아가면서 하는거야."
이로서 조용한 1층 건물 입구에서 괴담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첫 주자는 우준이였다.
"다들 미술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거 알아?"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자... 이건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야.
우리 학교 3학년 선배가 겪었던 일인데, 그 선배가 미술대를 지망하고 있거든. 미술 실습이 끝나고 깜빡하고 필통을 두고 왔다는거야.
고작 필통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 선배가 아끼던 필기모두가 몽땅 들어 있었더라고.
근데 미술 실습이라는 것이 방과후 남아서 하는 것이었고 하필이면 7시도 안되서 밖이 깜깜해졌데.
그 선배가 미술 실습이 끝난 것이 8시, 하교하던 중 두고 간 필통이 생각난 것은 8시 반이니까 충분히 어두웠을 시각이지.
수위 아저씨가 순찰을 끝내기 전에 가지고 나오려고 달려 갔는데 다행히 아직 계셨더라.
열쇠를 받아 들고 미술실 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어..
한숨 돌리고 나가려는데...,
글쎄 그게 있지, 보통 미술실에 그림 한점 쯤은 있잖아...
우리 학교에는 딱 두 점 걸려 있고 말이야...
거기서 소녀 자화상 눈이..!
"깜빡 빛났다는 거겠지."
"지사해, 얘기 좀 망치지 마라~"
수희와 같이 있던 여학생 한명이 의외로 이런 곳에 관심이 있었는지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준이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아니 그게 빛난건 아니고..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다는 거야.
그 자화상이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잖아, 아니라고? 으휴 관찰력 좀 키워라. 그 소녀의 눈이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며 부릅뜨고 있었데.
놀란 선배가 필통을 쥐고 허겁지겁 미술실을 달려 나왔는데...
문제가......
수위 아저씨가 없었어! 방금 전까진 분명 있었고 말이지.
다음 날 수위 아저씨를 만나서 어젯밤 어디 가셨는지 물어 보았고..
수위 아저씨가 말하길, "학생, 나 어제 8시에 퇴근 했는데?"
선배가 미술 실습을 끝나고 같이 나갔다나 봐.
그럼 미술실 열쇠를 준...
그 사람은 누굴까?
"으힉!"
루해가 소름이 끼쳐 몸을 떨었다.
우준이 말을 끝내자 내부는 다시 조용해졌다.
"너 그거 지어낸거지?"
"아 아니야!"
사해의 말에 우준이 당황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사해가 다 안다는 듯 안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우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여자애들 놀래키는덴 성공한 것 같네"
류지와 같이 다니던 순수한 인상의 남자 아이가 말했다.
관심을 보이던 여자애 한명도 애써 침착해 하며 곧 수희 일행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겁이 조금 많은 것 같았다.?
"아참,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뭐야? 김석현...?"
사해가 교복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인사를 나눴다.
"자~ 이번엔 난가? 이번엔 실제로 입증된 이야기를 들려 주지."
사해가 당당히 얘기하며 주위의 흥미를 끌었다.
우리 반 남자애들과 수위 아저씨한테 실제로 들은 이야기니만큼 짧을 테니까 잘 들으라고! 신일고 수위아저씨 말에 따르면 저녁에 순찰하고나서 퇴근하면 학교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더라.
마치 아저씨가 나가길 기다리듯이 꼭 학교에서 멀어질 즈음에 희미하게 들려온데.
그 아저씨가 어느날 잠시 졸았다나봐. 일어나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을 훨씬 지나 있었데.
"그 때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조심스래 다가가 봤더니... 감자기 검은 형체가 왁-!!"
사해가 벌떡 일어나 괴물형상을 취했자 우준과 류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그거 뭐냐? 설마 우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음악실에 귀신이 있을까봐?"
"이래봬도 실화란 말이야! 정 궁금하면 나중에 밤 늦어서 몰래 와 보던지."
쳇, 난 반응이 왜 이런거야... 라고 중얼거린 사해가 석현을 돌아봤다.
"석현아, 이제 네 차례야."
상당히 흥미로운 낯빛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석현이 깜짝 놀라며 어설프게 웃었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나.. 사실은 내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어쩌다 보니 우리학교의 과거에 대한 괴담을 알게 됐어."
"우리 학교의 과거라니? 학교의 과거라고 해봤자... 10년정도밖에 안되지 않나?"
류지가 의심쩍게 말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알아 내는데 오래 걸렸는데... 어쩌면 루머일 가능성이 높아"
옹기종이 둘러 있던 아이들이 모두 석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석현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곳에 우리 학교가 지어지기 전에, 문제가 생겨 폐교된 학교가 있었데."
될대로 되라지
첫댓글 언제 쓰나요?
오웃 붐바스님
댓글 너무 늦게 읽었죠ㅠ
봐주시는분이 계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