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만동 부산공장으로 오는 길목에 중국 음식점이 하나 있다. 쌍희반점(雙喜飯店). 가본지 오래돼 지금도 그자리에 있는지 모르겠다. 유니온스틸 반세기역사를 함께 나눈 곳이다. 1966년 부산공장 처음 지을때 주로 건설현장 함바집을 이용 했지만, 외식 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다. 귀중한 손님이 와도 이집이다. 산동성 출신 장입당씨. 1954년 중국본토 전쟁을 피해 감만동 이곳까지 와서 정착했다. 식당을 차린지 일주일만에 첫아들(장본화)를 얻게 되자 이 두가지 기쁨을 기념하여 식당이름을 쌍희반점이라고 지었다.연철사보 1992년 여름호를 들여다 보자.
창업자 장입당씨는 아들이 결혼하자 쌍희반점을 아들에게 맏긴다. 한국인 며느리는 대만에서 공부한 중국파 한국여성으로 미모 역시 대단하다. 식당일은 남편을 제쳐놓고 혼자 도맡아 한다.(사진) 하지만 며느리는 유니온스틸 초창기의 애환은 알리없다. 그의 시어머니로 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어본다.
초창기 군부대를 통과하는 도로가 없었고 만조시에는 바닷물이 차오는 배수로여서, 음식배달은 후문쪽으로만 가능하였다고 하는데 모래펄을 통과해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특히 기계고장 등으로 인하여 야간에 비상작업을 하든지, 태풍이 몰려와 비상근무를 할때면 야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부산공장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생사를 건 모험이었다며 회고하는 부인 정경애씨.
초창기 연철의 숙박장소로도 이용되었던 쌍희반점은 판자로 엮은 가건물과도 흡사한 모습이었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전화, 수도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유니온스틸 최초의 공장사무실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고 한다.
어려웠던 일이라면 3교대로 근무하는 현장사원들의 외상값을 수금할 때 일일이 현장을 찾아다닐 수 없어 몹시 애로가 많았고 또 86년도에는 출입금지령이 선포되어 배달은 물론 수금조차 할 수 없어 애를 태웠었다고 한다.
“인상에 남는 연철사람이라면 누구누구.....”하며 한사람씩 짚어나갈 때, 그 이름들 가운데는 이미 회사를 떠난 사람도 있고,혹은 벌써 세상을 달리한 사람, 그리고 회사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친만큼 “쌍희”에서도 똑같이 기억되는 이들도 있다.
4대가 함께 한집에서 산다고 얼마 전 K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왔을 만큼 가족간의 유대가 강한 쌍희는 현재 장입당씨 부부, 큰아들 장본화씨 부부와 두딸, 둘째아들 장본교씨 부부와 1남1녀-모두 10명의 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연철인들이 즐겨 찾는 요리로는 양장피, 오향장육, 고추잡채, 부추잡채 등 비교적 무난한(?)것들이며 쌍희에서 자랑하는 일등요리로는 찬 냉채부터 시작하여 달고 따뜻한 음식으로 끝나는 풀코스의 ‘상요리’라고 하는데 물론 연철인들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여 이같은 풀코스 요리는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2대로 넘어오면서 초창기 ‘쌍희’의 특유의 맛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 과거에는 장을 전량 직접 만들었는데 지금은 외부에서 구입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
요즈음은 전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이므로 중국집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며, 더구나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서 가까운 곳은 지나쳐 버려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는다.그러나 “연철이 융성한 이상 쌍희 역시 그럴 것”이라며 “쌍희는 연철의 부속품이어서 언제나 연철이 가는 곳에 따라갈 것”이라는 말에서 연철의 발전을 바라는 동반자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