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데카당스론 - 안 재 오
1. 니체의 생애와 저서
니체는 레켄 출생이며 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의 기수(旗手)이며, S.A. 키에르케고르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인 아버지를 5세 때 사별하고 어머니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다. 14세 때 슐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년 20세 때 본 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다. 다음 해, 전임하는 스승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 있을 때 쇼펜하우어의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고, 또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1869년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28세 때 처녀작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die》(1872)을 간행하였다. 쇼펜하우어의 .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悲劇)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하고, 이어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周知主義) 에 의거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이미 그 몰락을 보았으며, 다시 그 재흥(再興)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기대 확인하는 이 저서는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에 쌓아 올린 것이다.
1873~1876년에 간행된 4개의 《반시대적 고찰 Unzeitgemsse Betra chtungen》에서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한 독일국민과 그 문화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天才)를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이 이상은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1878~1880)에서 더욱 명확해져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偶像)이라 하고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전환을 의도하였다. 이미 고독에 빠지기 시작한 니체는 이 저술로 하여 바그너와도 결별하였고, 1879년 이래 건강의 악화, 특히 시력의 감퇴로 35세에 바젤대학을 퇴직하고, 요양을 위해 주로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남부에 체재하면서 저작에 전념하였다.
《여명(黎明) Morgenrte》(1881) 《환희의 지혜 Die frhiliche Wissenschaft》(1882)의 뒤를 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1883~1885)로 그의 성숙기(成熟期)가 시작된다. 신의 죽음으로 지상(地上)의 의의를 설파하였고, 영겁회귀(永劫回歸)에 의해 삶의 긍정(肯定)의 최고 형식을 밝혔으며 초인(超人)의 이상을 가르쳤다. 《선악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se》(1886)에서는 위의 사상에 부연하여 근대를 형성해 온 그리스도교가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하여 생긍정(生肯定)의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도덕의 계보학(系譜學) 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는 약자(弱者)의 도덕에 대하여 삶의 통일을 부여하는 강자(强者)의 도덕 수립을 시도하였으며, 미완의 역작 《권력에의 의지(意志) Wille zur Macht》(1884~1888)에서는 삶의 원리, 즉 존재의 근본적 본질을 해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1888년 말경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다음해 1월 토리노의 광장에서 졸도하였다. 그 이후 정신착란인 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니체 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하였다.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이미 세계의 통일을 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소화(矮小化)되고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 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는 니힐리즘의 철저화에 의해 모든 것의 가치전환을 시도하려 하였다. '초인, 영겁회귀, 군주도덕' 등의 여러 사상은 그것을 위한 것이었으며,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2. 니체의 건강, 질병 그리고 세계관
철학사와 미학 및 예술 철학 역상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유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니체(F. Nietsche)의 데카당스 개념을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확고한 관점을 마련해야 한다; 위의 생애에 대한 서술이 말하는 것처럼 니체는 극히 건강이 나쁜 상태에서 병마와 싸우는데 일생을 바쳤다는 점이다. 그의 중요한 저서들 역시 질병과 질병 사이의 약간의 건강한 시기를 활용하여 씌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이라는 책을 쓸 때는 겨울이었는데 이 때 니체는 극심한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에 테두리를 쓰고 고통을 참으며 부르면 그의 친구 페터 카스트라는 학생이 이를 받아 적고 때로 정정도 하였다고 한다. 이는 니체의 사상 내지 철학이 그의 병약한 신체와 극히 민감한 감수성 그리고 지성적인 천재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느낌이요 판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니체 사상을 위해서 이런 개인적, 심리적 전제 조건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니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건강이었다; 데카당스 문제 역시 건강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부터 이해를 해야 한다. 『이 사람을 보라』 에서 니체는 자신의 질병과 건강회복에의 의지를 이렇게 진술한다 :
"절대적 고독 속에 들어 박혀,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저 정력,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신세나, 간호나, 치료를 안받으려는 자기극복 이런 것은 그 당시 가장 필요했던 것에 대한, 절대적인 본능적 확신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을 내 손에다가 일임하였다. 나는 다시 내 몸을 건강으로 회복시켰는데, 이렇게 성공하는 첫째 조건은 모든 생리학자도 시인하겠지만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니체가 도덕과 윤리를 부정하고 일체의 가치관을 거부할 때, 또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처럼 운명의 극복을 외칠 때 혹은 디오니소스 찬가처럼 과도한 남성미를 찬양할 때 혹은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비판할 때 그리고 권력을 찬양할 때 등등. 이 모든 경우 우리는 그의 사상을 문자 그대로 논증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다시 말해 병실에서 환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 그는 자신의 병실체험을 절대적 고독 속에 들어 박혀,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저 정력,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신세나, 간호나, 치료를 안 받으려는 자기극복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니체의 사상과 철학을 해석하기 위한 근본적인 하나의 사실이다. 따라서 니체의 데카당스 개념 역시 그런 각도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 데카당스 개념은 기본적으로 질병과 생의 타락을 말한다. 자기 힘으로 주어진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는 특징을 니체는 데카당스 라고 표현한다.
이 논문은 기본적인 자료로서 M. 칼리니스쿠가 지은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이라는 책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특별한 각주가 없이 인용된 부분은 이 책을 의미한다. 니체는 그의 마지막 저작 중의 하나인 『바그너의 경우』(1888) 에서 데카당스가 자신의 중심된 주제의 하나였다고 지적한다 :
"사람들은 몰락의 징조에 눈을 뜨게 되면 그들은 곧 도덕 역시 이해하게 된다. 즉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이름과 가치의 공식 아래 무엇이 숨어 있는지 영락한 삶, 종말에의 의지, 거대한 권태 등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도덕은 삶을 부정한다." ( 216쪽)
이 문장에서 우리는 니체가 말하는 도덕, 즉 선악(善惡)의 구분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도덕은 상식적인 도덕관이 아니다. 이는 하나의 위장된 권위 혹은 자기 기만의 술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쿠테타로 자신의 상관을 공격하고, 광주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은 國定指標 를 '정의사회 구현' 이라고 했다 이 경우 우리는 정의라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얼마나 심하게 훼손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도덕이란 바로 이런 것 즉 사람들이 말하는 도덕, 실은 부도덕한 것을 가리킨다. 아니면 도덕관 관련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도덕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내가 타인으로부터 비인간적인 폭행을 당해보면 알 수 있다, 즉 선악이 무엇인지를. 악(惡)은 내가 싫어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억울하게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을 두고 선악(善惡)이 없다는 말을 해보면 거기서 어떤 반응이 오는지를 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니체가 자주 하는 말인 선악의 피안(彼岸)이니 모든 가치의 전도 내지 가치의 원근법이니 하는 구절을 이처럼 평가절하 해야 한다. 아무도 선악의 피안에 설 수 없다. 도덕과 선악은 영원하다. 전도(顚倒)될 수 있는 가치란 단지 시대적인, 사회적인 혹은 문화적인 특수한 몇몇 가치를 말한다. 이를 흔히 우리는 이데올로기니 허위의식이니 혹은 풍습이라고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도덕은 삶을 부정한다"는 구절 역시 이런 문맥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은 진정한 도덕, 즉 인간의 사회생활의 기초로서의 도덕이 아니라 실은 위선과 허위의식을 말한다. 말하자면 몰락하는 귀족 가문이나 우리나라의 양반의 몰락을 상상하면 니체의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가 분명해진다. 이는 하나의 형식화된 규율과 가치관 예를 들면 양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같은 속담을 상기한다. 이런 허영과 쓸데없는 자존심 그리고 삶의 내용 없는 공허한 체면, 명예 등의 도덕적 가치를 니체는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니체의 유명한 구절인 인간은 병든 짐승이다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정한 도덕은 결코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촉진하고 생명을 구한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도덕 및 정의 기타 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모두 당시의 사회규범에 대한 역사적 비판으로 생각해야 한다.
3. 도덕의 부정과 反 基督敎
니체의 도덕에 대한 부정은 근본적으로 당시 서구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니체는 《선악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se》(1886)에서 그리스도교가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하여 생긍정(生肯定)의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니체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그는 주위의 기독교인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으나 니체는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도덕관 철학관을 형성해갔다. 이는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니체의 병약한 육체와 그것을 이기고자 하는 간한 의욕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니체의 말년에 기록한 『안티 크리스트』(1888)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철저히 표현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의 미덕인 동정(同情)과 이웃사랑 등의 덕목에 대해 니체는 극심한 반발을 보였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서술한다:
“선(善, gut)이란 무엇인가? - 그것은 힘(權力)의 감정을, 힘에의 의지를 힘 그 자체를 인간에게 고양시키는 모든 것을 말한다. 악(惡, schlecht)이란 무엇인가? 약함으로써 유래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 약자와 불구자는 몰락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애(人間愛) 의 제일명제(第一命題)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몰락을 도와줘야 할 것이다. 어떠한 악덕보다도 더욱 위험한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불구자와 약자에 대한 동정적 행위 바로 기독교인 것이다”.
우리는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약자와 불구자는 몰락되어야 한다 는 표현은 실제로 니체가 그렇게 원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즉 병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극복의지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니체가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도 자신의 처지와 운명에 대한 분노 및 극복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는 행운을 받았지만 곧 질병으로 인해 교수직 마저 사직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런 경우 보통 신에 의한 시련으로 보고 참고 인내하며 운명을 섭리로써 이해하고 이를 더 높은 발전과 성숙을 위한 훈련으로 삼고 긍정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의지로써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려고 할 수도 있다. 니체의 경우 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니체의 권력의지 혹은 군주도덕 등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나약해지지 말라고 격려하는 자기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4. 니체와 데카당스의 변증법
흔히 퇴폐주의라고 번역되는 데카당스 개념 역시 위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진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니체는 이론적으로 삶의 부패와 병적인 쾌락 혹은 마취적인 몽환의 미술을 추구하는 데카당스 운동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 데카당스 운동에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삶의 부정을 알아야 삶의 긍정도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니체는 데카당스를 자신의 병상체험에 연관을 시키고 있다 :
“데카당스의 문제에 있어서 내가 경험자라는 것을 꼭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세월들을 요모조모로 배열해 보았다 병자의 시각에서 건강한 개념들과 가치들을 향해보고, 역으로 다시 완전성 및 풍부한 삶에 대한 자기 확신의 시각에서 데카당스적 본능의 비밀스러운 작업을 들여다 보았다. (...) 나는 이제 시각을 어떻게 역전시키는지를 알며 시각을 역전시킬 수 있다. 이것이 가치들의 재평가가 나에게서만 가능한 첫번째 이유이다”.
니체는 자신이 데카당스의 경험자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데카당스란 병자의 시각에서 건강한 개념들과 가치들을 향하는 체험과, 또 역으로 완전성 및 풍부한 삶에 대한 확신에서 병든 삶을 바라보는 일을 데카당스적 본능의 비밀이라고 풀이한다. 니체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온 몸의 피로의 결과 위 조직이 지나치게 쇠약해지고 한 때는 거의 장님이 될 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활동력이 증가되면 이런 질병은 극복되고 시력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런 극심한 건강 상태의 기복 가운데서 그는 데카당스, 곧 퇴폐와 쇠약의 경험을 하곤 하였던 것이다. 니체는 이런 데카당스 경험을 거꾸로 건강한 생활의 인식을 위한 조건으로 본다. 그는 “나의 아버지로서의 나는 죽었지만, 나의 어머니로서의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라고 하면서 늙어 가는 그 자신을 한 사람의 데카당인 동시에 한 사람의 초년생으로 특징지운다. 이처럼 삶의 퇴폐와 몰락을 건전한 삶의 대립으로 보고 도리어 데카당스를 건강의 인식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데카당스의 변증법을 언급한다. 이처럼 생(生)과 사(死) 혹은 발전과 몰락이 모두 삶의 한 계기라는 데서 데카당스는 그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자신의 생의 체험에서 니체는 데카당스의 징조와 그 본질 그리고 그 미묘한 변화에 대해 전문가가 된 것이다. 변증법이란 간단히 말해 대립자의 통일을 말한다. 니체의 경우 데카당스의 경험과 데카당스의 극복의 의지가 미묘하게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데카당스 없이 힘의 의지(권력에의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5. 데카당스와 모더니티
니체의 데카당스 이론은 근대 문화와 예술의 분석과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니체는 데카당스 문예사조의 일반적인 조류와는 달리 데카당스 그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고전주의, 특히 괴테를 숭배하여 “고전적인 것은 건강하고 낭만적인 것은 병적이다” 라는 사상에 동조한다. 따라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모든 예술, 모든 철학은 삶을 성장시키거나 소멸시키는 데 일조하는 치료약과 보조물로 간주할 수 있다. 그것은 항상 고통과 고통받는 자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종류의 고통 받는 자가 있는데, 한쪽은 삶의 과잉충만으로 인해 고통받아 삶에 대해 비극적 통찰 및 견해뿐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갈망하는 그런 사람들이고, 다른 한 쪽은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 받는 바, 그들은 예술 및 철학에 대하여 고요, 정적, 잔잔한 바다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격앙, 발작 마비를 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삶 그 자체에 대한 복수는 그토록 빈곤한 이들에게 가장 도발적인 일종의 격동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면 니체는 예술이나 철학 자체의 실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그는 삶의 성장과 소멸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예술 내지 철학의 임무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의 임무는 고통 받는 자의 자기 성찰을 요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앞에서 니체가 일체의 가치의 전도를 주장했을 때 이미 예견된 바의 것이다. 즉 그가 “시각을 역전시키고 가치를 전도하며 완전성 및 풍부한 삶에 대한 자기 확신의 시각에서 데카당스적 본능의 비밀스러운 작업을 들여다 보았다”라고 했을 때 그가 꿈꾸었던 개념이다. 따라서 삶의 과잉충만으로 인해 고통받아 삶에 대해 비극적인 인식을 하는 자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성취하게 하고 반대로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에는 고요와 격정의 변화 및 조화를 추구한다. 이런 경우 삶이 몰락해 가는 징조로서의 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부정과 혁신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니체의 데카당스 개념의 모더니티는 종래의 고정된 도덕과 가치의 부정과 절대적 생성(生成)의 욕구를 통해 새로운 예술과 철학 그리고 도덕의 창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M. 칼리니스쿠 지음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이영욱 백한울 오무석 백지숙 옮김, 시각과 언어, 서울 1994. F. 니체 : 『이 사람을 보라』 박준택 번역, 박영사, 서울 1970. F. 니체 : 『안티 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중에서, 박준택 번역, 박영사, 서울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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