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근세//독일의 산간마을//
줄거리
1막 1-7장
조용한 자연에 묻혀서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베르테르라는 청년
시인이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든다. 베르테르는 마을
무도회에서 멋진 춤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롯데를 소개받게 되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게 된다. 춤을
계기로 롯데와 친해진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면서도 베르테르는 롯테를 만나고 싶은
일념 하나로 윤리적인 판단과 이성은 잠시 접어둔 채 그녀를 계속해서
방문하게 되고 그들은 어느새 감성이 통하는 다정한 사이로 발전한다.
한편 일 때문에 도시로 나가 있던 알베르트가 돌아오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만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롯데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관계를 맺는다.
어느날 그 둘은 자살에 대한 찬반양론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롯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안타까움만을 베르테르에게 안겨준다. 이쯤에 생일을 맞이한
베르테르에게 롯데가 선물로 책과 자신의 리본을 선물하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것을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고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트와 롯데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고는 롯데와 알베르트에게 작별을 고한다.
2막 1-7장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롯데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리고 다시 만난 롯데는 왠지 그에게 차갑기만
하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 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 점차 감정의
자제력을 잃어가는 베르테르에게 한때 롯데를 사랑하다 미쳐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베르테르는 그를 마음깊이 동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처지에 새삼 한탄한다.
한편 베르테르에게 사랑의 고통을 호소하던 한 사나이가 사랑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를 위해 변론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변론은 무의미하게 끝나버리고 결국 그
사나이는 사형선고를 받고만다. 낙심하여 더이상 살아갈 희망을
찾지못하는 그에게 남편의 충고를 들은 롯데가 만남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게 되어 그를 절망에 빠트린다. 마지막으로 롯데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감정을
억제하는 롯데는 작별인사만을 건넨다.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는 여행을
빙자하여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리게 되고 그는 그 권총을
가지고 목숨을 끊고만다. 이승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세상에서 이루길 희망한다는 유언을 롯데에게 남긴 채.
작품설명 조민(기획)
<<작가와 작품해설>>
괴테의 폭풍노도시대(暴風怒濤時代)의 대표작(代表作)일 뿐 아니라,
괴테의 명성을 일약 전세계에 떨치게 한 본작품은 그의 나이 25세 때인
1774년에 불과 일주일만에 완성한 것이었다.
괴테가 법학(法學) 공부를 마치고 1772년 봄 베슬러라는 도시의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법무실습(法務實習)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의 법관(法官) 부프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집 샬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 불과 16세밖에 안되었고, 이미 외교관
케스트너의 약혼자(約婚者)였다. 괴테는 그 날씬하고 명랑(明朗)한 소녀
샬롯테에 비상한 애정을 느끼며 또 감정이 상통하여 그녀에 대한
정열(情熱)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의 체험(體驗)은 제1권에서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루는 약혼자 케스트너의 부재중(不在中)
실지로 그 소녀에게 달려들어 강제 키스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괴테를 타이르고 자기로부터는 우정(友情)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브레멘 공사관(公使館)의
서기관(書記官)이었던 케스트너도 점잖은 신사(紳士)였기 때문에
갈등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젊은 괴테의 내심(內心)의 타격은 컸으며
작품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상심한 편지(便紙)를 두 사람에게 남기고,
도망치다시피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것이 말하자면 괴테의 제3의
도주(逃走)였다. 그런데 그후 반년쯤 지나서 역시 베슬러에서
브라운시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있던 예루살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戀情)을 품고 자살(自殺)하였다는 소식(消息)을 들었다. 이것은
괴테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라이프찌히 대학(大學)
시절부터 괴테와는 잘 아는 사이였고, 상관과의 원만치 못한
성격(性格), 유부인(有夫人)에 대한 괴로운 관계등이 특히 괴테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더우기 자살한 권총이 케스트너로부터 예루살렘한테
빌려준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괴테 자신의 체험(體驗)과 연결되어 여기 이 작품으로 결정(結晶)을
이룬 것이다.
이와같이 본 작품은 괴테가 매우 젊은 나이에 넘쳐흐르는
정열(情熱)과 생생한 체험, 그리고 어딘가 마신(魔神)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서 너무나 조급히 집필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비등했던 종교(宗敎) 내지 도덕적인 비난은 도외시한다 하더라도,
문학작품(文學作品)으로서의 미숙하고 표현상의 생경이나 조잡또한
병적(病的)인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 그런 측면이 아니고서는 과연 그와 같은
생명감(生命感)과 순수한 정열(情熱)이 또는 지나친 그 자존심과 고귀한
인간성(人間性)등이 이렇게까지 단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을까 -
너무나 그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自然)의 묘사는 주인공의 심적(心的)
상태와 교묘하게 융합되어서 한 인간의 생명력(生命力)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직결되고 있음을 실감있게 보여준다. 이 점은 괴테의 일생의
문학(文學)을 통해서 특징을 이루고 있는 요소(要素)의 하나라고도
하겠지만 여기서는 특히 그 힘이 소박하게 분출되어
인감사회(人間社會)의 부질없는 법칙(法則)이나 제약과 충돌을
일으키고, 마침내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悲劇)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에게는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오히려 기쁨이요, 무한한 생명과의 합류(合流)를
의미했다. 인간의 고매한 정신(精神)을 억제하는 모든 것(사회적
체면이든지 남의 약혼자라는 제약)은 그에게 감옥이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육신이 방해물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자살(自殺)로써만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論理)였던 것이다. - 이것은 그 당시의 괴테의
솔직한 심정이었겠지만, 괴테 자신은 이 작품으로써 자기의 그와 같은
정신적 압박을 정산(精算)하고(동시에 하나의 이정표(里程標)로서
남기고) 다시 새로운 단계(段階)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참여의말 (기획의 말)//
(작가의 말)//
(연출의 말)//권오일(대표,, 서울시립대교수)
<<무대(舞臺) 위에 조명(照明)된 괴테의 문학성(文學性)>>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극화하여 무대위에
재조명(再照明)해 보려는 시도(示圖)는 무척이나 억지스러운
접근방법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위험부담을 의식하면서 이 작품(作品)을
무대화하는 데는 몇가지 나름대로의 연극의식(演劇意識)이 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괴테의 정신적 문학감각의 소산(所産)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의 매우 감각적인 작품세계(作品世界)를 대표하는
작품(作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作品)은 괴테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숙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샤롯테와 자신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에다 실연의 번뇌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날을 청산해 버린 다정했던 친구의
충격적인 사건을 더해서 불과 4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에 써낸
작품이고 보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소제(素題), 작가(作家),
자신(自身)이 처해 있는 심리적(心理的)갈등,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으로 미루어보아 필연적으로 감상적(感傷的)이요 감각적(感覺的)으로
이 작품이 창작(創作)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널리 알려진 명작(名作)을 각색(脚色)해서 무대에 올렸을 때 그
연극을 지켜봐 주는 관객들의 선입관을 어떻게 충족시켜 주느냐가
문제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바로 이점이
연출작업(演出作業)에서 부딪친 첫번째 난관이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무대(舞臺)메카니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역점(力點)을 두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줄거리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형편이고 보면, 주인공 베르테르와 롯데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영상이
정립(定立)되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두 주인공(主人公)을 생동감(生動感)있게 재형상화(再形象化)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기 위하여, 무대미술(송관우),
조명(김의중), 음악(한철), 그리고 의상(김재원)등이 심혈을 기울여
작품 구성(構成)에 매달렸다. 결과는 완성된 무대를 봐야 알겠지만
제작과정에서 이 분들이 쏟은 열정(熱情)은 기필코 볼품있는
연극(演劇)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극단 성좌(星座)는 `82년 새해 첫무대로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藝術劇場)에서 피터 쉐퍼의 <블랙 코메디>를 공연(公演)하여
작품에서나 흥행면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한다. 명동(明洞)의
열기(熱氣)를 곧장 동숭동(東崇洞)의 문예회관
대극장(文藝會館大劇場)으로 옮겨 보기로 한다.
베르테르의 문창길(文昌吉), 롯데에 이경희(李京姬)의 신선(新鮮)한
두 얼굴에다, 허현호, 이일섭 등의 중견 연기자가 앙상불을 이루고,
여기에 우리 극단에 새로이 참여한 반짝이는 별들이 뿜어데는 열기가
기필코 이 연극을 성공적인 무대로 승화시켜 주리라 믿는다.
기타의글
(평론)//김학천(연출가,, 한국교육개발원 편성심의실장)
<<괴테와 청춘문학(靑春文學)>>
1749년 마인강변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83년을 살아가는 동안
괴테가 이룩한 문학적(文學的) 업적은 이미 상식이 되었읍니다.
독일문학이 격렬하게 눈뜨기 시작한 질풍노도(疾風怒濤)(Sturm und
Drang)의 문학을 꽃피운 Schiller가 유명한 <군도(群盜)>를 쓰기 7년
전에 끓는 가슴을 차분하게 노래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가 쓰여졌읍니다. 괴테의 문호(文豪)로써의
토대가 다져지고 또한 증명이 된 이 사지체(使紙體) 소설은 당시대는
물론이거니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심성(人間心性)의
순수성(純粹性)을 노래한 절창(絶唱)으로 읽혀집니다.
그가 베르테르를 쓴 것은 - 정확하게 말해서 이것을 쓰고자
심적(心的) 충동을 받은 것은 스물 한살 때였읍니다.
베쯔라라는 곳에서 친구인 케스트너의 약혼녀 샬롯데 보프에게 사랑을
느끼고 번민하던 무렵의 자기 심정을 고백한 자전적(自傳的)
기록입니다.
그러나 괴테의 위대성은 그 나이에 누구나 느끼는 사랑의 심경을
그토록 깊이 있고 차분하게 써놓았다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며, 한
시대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노란 조끼와, 권총과 번민의 선풍을 일으키게
했다는 데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의 순수한 심성(心性)은
80평생을 줄곧 변함없이 베르테르를 쓴 그 상태(狀態)로 살았고, 그
때문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베르테르적 번뇌를 명작(名作)으로
엮어내었다는 데 있읍니다.
1775년 이후 슈타인 부인과의 교제에서 <항해(航海)>, <나그네의
밤노래> <인간의 한계(限界)> 등 깊이있는 시를 낳았고 1786년 이후는
크리스티아네 비르피우스란 소녀에 대한 정열로 비롯되는 훌륭한
담시(談詩)들을 낳게 됩니다. 1797년 이후 평생을 바치는 <파우스트>의
세계도 결국 모든 것을 다 극복한 인간의 <사랑의 방황>으로 시작이
됩니다.
1816년 아내와 사별(死別)한 괴테는 마리안네 폰 뷔레마에게 쏟은
정열로 <동서시편>을 꾸미게 됩니다.
물론 이런 예시(例示)는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헤아리기 힘든
만큼의 많은 작품이 나이와는 관계없는 두심성(斗心性)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1821년 드디어 72세라는 고령이 된 괴테에게 그의 생애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게 되는데 21상에 느꼈던 베르테르의 번민이
고스란히 남은 채 우르리케 폰 레어붸촌이란 열일곱살 된 소녀에게
바치는 정열이 그것입니다.
푸른눈과 갈색의 머리를 가진 온천장에서 빛난 이 소녀로 인해 노(老)
괴테는 여러 해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미 육신(肉身)과는 관계가 없는
사랑을 헌납하면서 50년 전의 노래를 합니다.
"낮에도 내마음은 괴롭고,
등불 밝힌 밤에도 위안은 없네.
내게 남은 단 하나의 즐거움은,
네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새롭게 회상하는 것이다."
이룰 수 없었지만 그는 우르리케에게 구혼을 했고,--- 우르리케는
결국 평생 결혼을 않은 채 수녀원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괴테의 문학의
공적은 결국 인간을 깊이있게 하는 것과, 젊게 해주는 양면(兩面)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