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분명 내 자신의 지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남들과 똑같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서 지난 날 있었던 표현하기조차 힘들었던 아픔, 마치 길고 어둔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해 달려 나왔던 기억을 아득한 먼 옛날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어떻게 상상 할 수 있었겠습니까. 새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호흡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그 분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내게 주어진 아픔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남을 돕기 위해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1992년은 제게 참으로 힘든 한 해로 죽을 때까지 기억될 것입니다. 사업의 부진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찾아 왔고, 그로 인하여 회사에 막대한 손해와 제게도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지나고 보니, 눈앞에 그 일 보다도 더 큰 일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음을 모른 채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장 벌어진 그 일에 매달려 전전긍긍하게 되나 봅니다.
제게 벌어진 모든 상황을 담담히 넘기지 못하고 고민하면서 12월 15일 경 전에 없던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기 증세로 오는 기침이 아닌 헛기침이 자꾸 나오더니 검은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하루에 담배 한 갑 정도, 술은 사업상 거의 매일 마시는 편이였습니다.
세상에 누구인들 갑자기 닥쳐온 엄청난 시련, 그것도 듣기에도 두려운 '암' 이라는 판정에 담담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흔둘의 젊은 나이에..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x-Ray 촬영 결과 왼쪽 폐에 8cm정도의 암세포가 발견되었고, 급기야 서울대학 병원으로 옮겨 폐암 판정을 받게 되였습니다. 세상에 누구인들 갑자기 닥쳐온 엄청난 시련, 그것도 듣기에도 두려운 '암' 이라는 판정에 담담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흔둘의 젊은 나이에..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제 앞에 주어졌는지 알 수 없는 괴로움에 분노를 느낀 적도 있었으며,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많은 친구들조차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 였지만 나름대로 잠 못 이루는 갈등의 시간들을 보낸 후 그래도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여전히 마음은 참담 그 자체 였습니다. 신실한 믿음은 아니었지만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어머니와 같이 기도하며 의사 선생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였지만 그때 제 심정을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혼란 속에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8cm 종양, 믿기 힘든 현실 속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 의사선생님을 통하여 이 고통 속에서 건져 주시기만을 매달리며 기도 할 뿐이었습니다. 1993년 1월 19일 첫 번째 수술 날 교수님은 왼쪽 폐를 어쩌면 모두 제거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였지만 그 때나, 7년이 지난 지금이나 현대의학을 믿으며 의사선생님을 신뢰하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았습니다. 또한 나를 지켜주는 주님이 계시기에 나는 더욱 병에 대한 투병의 의지가 강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좌측 폐 절제가 아닌 좌상엽 만을 절제하였습니다. 회복도 빨라 10일 정도 후 퇴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달 후 남은 폐에서 재발되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순간 몹시 낙망하였고 실의에 빠졌으나, 자신에 차고 생전 처음 보는 저를 너무 염려하는 교수님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다시 모든 수술에 필요한 검사들을 해 나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신뢰 할 수 있는 마음은 치료의 첫 단추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저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되어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의 모든 장기는 정상이고 건강하다고 말씀하시며 왼쪽 폐 전부를 제거해도 견딜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순종하며 수술에 응했습니다.
두 번째 수술은 93년 4월 13일, 오전 7시 30분 경 수술실에 실려 들어가 밤 10시 경 회복실로 옮겨졌다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수술하고 나오시는 집도의 선생님의 모습에 어머님도, 가족들도 너무 숙연할 수밖에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답니다. 땀에 젖고 지친 모습으로 나오셔서 수술이 잘되었다고 염려하는 가족을 위로하셨다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혹 잘못되어 생명을 잃더라도 잊지 않고 감사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의 생명이 소생 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선생님을 신뢰하였고 어느 한가지도 지시하시는 것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또한 이 글을 읽는 환자분과 보호자분들에게 간곡히 바라는 것은, 자기가 판단하지 말고 의사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퇴원 후 그 해 여름 동안 목욕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지내 온 기나긴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이 피곤하고 가끔은 식도가 부어 밥 먹는데 지장도 있었지만 착실하게 방사선 치료에 응했습니다. 수술하고 치료하는 가운데 저는 점점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더욱 더 신앙이 깊어 갔습니다. 치료가 견디기가 어려울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는 9월 초 눈에 보이지 않는 암덩어리가 오른쪽 폐에서 또 다시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더 이상 수술은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죽을 수 밖에 없다라고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몇 개월 간의 그 어려운 치료 과정을 돌아보며 버틸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생명을 포기하며, 여러가지 생각들로 번민하고 있을 때 교수님의 말 한마디는 꺼져 가는 저의 생명과 의지에 강력한 삶에 대한 애착과 도전 정신을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비록 많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성훈 씨의 모든 장기는 건강해 다시 수술합시다" 라고 하셨던 거 같습니다. 저를 위해 온 종일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여 수술하신 분 앞에서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 몸을 두 번씩이나 열어 보신 선생님께 끝까지 몸을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자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 성격을 워낙 맺고 끊음이 확실한 성격 탓이었을까?
9월 14일 급하게 또 다시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른쪽 폐의 부분절제수술이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의사선생님의 환자에 대한 열정과 최선을 다하신 그 성과였습니다. 또한 선생님에 대한 절대적이었던 저의 신뢰, 이것이 어우러져 저는 그 후로 더 이상 재발하지 않았고 저와 같은 수술한 사람 중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대 의학을 믿고 항암 치료를 받아 들였습니다. 일 주일 만에 머리카락은 물론, 온 몸의 털이 모두 빠질 만큼 괴로운 치료였지만 좌절하거나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고 더욱 더 삶에 대한 애착으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 후 6개월에 걸친 항암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견디기 어렵다는 '공포의 항암 치료' 를 저는 이렇게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견디어 내겠다는 자신의 의지입니다. 처음 항암 치료 결정을 말씀하시면서 혹시 치료 중 죽을 수도 있다고 말씀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대 의학을 믿고 항암 치료를 받아 들였습니다. 일 주일 만에 머리카락은 물론 온 몸의 털이 모두 빠질 만큼 괴로운 치료였지만 좌절하거나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고 더욱 더 삶에 대한 애착으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치료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먹지 못하는 관계로 몸무게가 줄고 몸에 에너지는 모두 빠져나갔지만 이 주사약이 내 몸에 들어가 구석구석 남아 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환상을 그리며 (mind control) 정말 힘들었지만 신앙의 능력과 의지와 투지로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항암 치료 중 너무 힘든 나머지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가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암에게 결국 패배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항암 치료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 독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육류는 일절 입에 안 대고 재래식 된장과 채소만을 섭취하였습니다. 그 후로 5년 간 육류는 안 먹고 생선과 채소 그리고 된장 반찬으로 조절하다가 99년 1월부터 육류를 먹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건강한 상태로 정기진단을 받고 있습니다.
93년 초부터는 거처를 시골로 옮겨 맑은 공기 속에서 투병하였고 지금은 가까운 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 번에 걸친 폐 절제 수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마친 지 벌써 7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글 읽는 환자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가 투병하는 동안에는 슬픈 일이나 속이 상할 일, 괴로운 일들은 가능하면 전하지 않는 것이 투병기간에 도움이 될 것이며 기쁨이 되는 일과 긍정적인 일들만을 이야기하여 항상 기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것이 보호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지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입니다. 투병하는 동안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려면, 기쁜 마음만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 기쁜 마음을 항상 갖으시려면 신앙을 가지시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시며 봉사하므로 기쁨을 스스로 창조하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하는 일은 교회 봉사활동입니다. 요즘은 앞 못 보시는 맹인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그들의 눈이 되어 주는 봉사를 하면서 한없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이 충만한 자에게는 절대로 암이 침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치료가 어렵다고 의사선생님을 원망하며 끝내 포기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 믿는 의지 , 그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