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공군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다. 벌거벗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비행기를 몬다? 그것도 맨발바닥에 흙을 묻힌 채로?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다가 긴 창으로 맹수를 사냥하는 모습은 상상이 가는데 첨단장비를 갖춘 공군기를 모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프리카’ 하면 ‘미개하다’는 선입견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프리카와 공군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우리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로 유명한 권투선수 홍수환. 그가 4전5기의 챔피언 신화를 쓰기 전 그러니까 정확히 3년 전에 우리 국민들에게 또 다른 낭보를 전한 일이 있었다. 1974년 7월 적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으로 꺾고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한국 프로권투사상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의 옛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남아공은 이 정도가 아닐까?
반면 세계사 속에서 남아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15세기 중엽 이곳은 신대륙 발견의 꿈을 가슴에 품고 장도에 오른 탐험가들에게 희망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툴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확인하고 포르투갈로 귀항하는 길에 뾰족한 땅을 발견하였다. 당시 폭풍봉으로 명명되었던 이곳은 후일 유럽과 인도를 잇는 항로 개척의 가능성을 보여준 곳이라는 의미에서 희망봉이란 새 이름이 붙여졌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깊은 갈등의 골을 청산하고 흑백 공존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성공한 남아공은 희망봉에 새로운 역사성을 부여하였다. 그런 남아공이 우리나라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홍수환 선수의 낭보가 전해지기 20여 년 전인 1950년의 일이었다. 당시 미수교 국가였던 남아공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개월이 되는 1950년 11월 ‘하늘을 나는 치타’로 불리던 공군 제2전투 비행대대를 한국에 파병하였다.
유엔군에 남아공 공군의 합류가 절실했던 것은 이 부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베를린 봉쇄를 뚫는 데에 크게 기여한 바 있고, 서아프리카․이탈리아․중동 등에 참전하여 혁혁한 성과를 거둔 베테랑급 공군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부대는 청천강 이북지역,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등을 거점으로 하여 지상군에 대한 항공지원작전, 적후방지역 차단작전, 적군 시설 파괴 등 적재적소에서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하였다.
높이 18m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기념비는 국방부가 6․25전쟁에 참전한 남아공 공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975년 9월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산1-7번지 세운 것이다. 참전비 앞에는 아프리카 남부에서 사는 소과의 동물로 남아공을 상징하는 스프링복 동상이 서있다. 저 넓은 아프리카 대지 위를 성큼성큼 뛰어다니는 스프링복과 세계대전에서 민첩성을 발휘한 남아공 공군은 비슷한 데가 있다.
이 참전기념비가 있는 720평의 대지는 다른 곳에 비해 좁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스프링복에겐 그렇지 않은가 보다. 스프링복은 금방이라도 고향 남아공으로 훌쩍 뛰어갈 듯이 서해를 향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