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노래]
우리 모두는 무쇠같은 존재
무르지 않고 굽지 않는
강철은 따로 없다
온몸으로 부딪치고 담금질당하면
무쇠가 빛나는 강철이 된다
강철의 모습을 보았는가
그는 적개심으로 핏발선 투사의 얼굴이 아니다
투쟁의 용광로에서 다듬어지고 무르익은
부드럽고 넉넉하게 열려진 가슴,
적과 철저하게 투쟁할수록
안으로 텅 비어 맑고 웅혼한 종울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인한 포옹이다
강철은 따로 없다
작은 싸움도 온몸의 열의로 부딪쳐가며
큰 싸움, 빛나는 길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무쇠같은 존재,
강철은 따로 없다
엠비씨 100분 토론을 들으면서 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지금까지 나쁜 짓 많이 했던 자본에 대한 비난, 비판은 없습니다. 화가 나서 죽겄습니다. 하지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한숨 돌리고 차분하게 생각해봅니다. "잘못된 건 너야!" 라고 말하며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우리의 힘을 모아야겠다고...
사진은 76일간의 힘찬 파업투쟁을 전개한 울산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세요. 노래가 나옵니다. 곡명은 <강철은 따로 없다!>
|
▶▷
[질경이의 세상보기]
오병률 회원은 요즘 나만 보면 얼굴 좀 펴시라고 부쩍 성화를 부린다.
생활의 리듬이 깨진 지 오래고, 항상 머리가 띵하게 아프다.
술을 마셔도 숙취가 오래가고...
그래도 자꾸만 마신다.
웃음보다 생각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내 자신이 싫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라는 소월의 시구절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오늘은 일요일이다.
언제부턴가 일요일만 되면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버릇이 돼버렸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도 학생인 두 아이들도 잘됐다 싶어 잠 좀 자자, 인데...
6시에 깨었다.
냉장고를 열고 생수 두 컵을 마신다.
단식 10일을 하고 생긴 위장병 때문에 마시기 시작한 것이 버릇이 되었다.
90년도부터 그렇게 하루의 첫 일과를 생수 마시기로 시작하고 보니 이제는 위장병도
변비도 모두 해결되었다.
뒷베란다로 나가서 담배 한 개피를 빼물었다.
사는 곳은 아파트의 좁은 공간이지만 전망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옆 산의 작은 둔덕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오리나무 한 그루도 그렇고,
멀리 보이는 군자봉의 자태는 언제 봐도 싫지 않다.
담배를 필 때마다 늘어놓는 아내나 딸내미의 잔소리만 없으면 말이다.
30년 넘게 피어온 이 담배를 어찌할 것인가?!
언젠가 금연을 선언할 날이 올 수 있을 런지...
9단지에 살 때는 샛터공원으로 아침 산책을 했는데 10단지로 이사 와서는 정지공원으로 다닌다.
두 개의 조금만 야산을 구름다리로 연결해서 잘 가꾸어 놓았다.
성당 뒤쪽에는 중학교를 신축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7시인데도 벌써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건설노동자들이 새벽을 열어 재꼈다, 일요일인데도 말이다.
1공원 2공원을 돌아서 몸을 풀고 땀을 빼고 샤워를 하고 나니 10시다.
오늘도 회사를 출근하는 아내는 중번이라 11시까지는 자야 한다.
어제 저녁 야근하고 오늘 아침 6시 30분에 퇴근해서 12시 또 출근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렇게 출근표가 짜여 진다.
조용조용 아침을 준비했다.
감자 3개, 양파 하나, 호박 반쪽에, 멸치, 된장을 풀고, 매운 고추를 썰어 넣으니 맛이 일품이다.
다른 날 같으면 깨우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잠만 잘 고1, 고3 학생인 아이들까지 식탁에 앉는다.
어젯밤 큰 아이와 한바탕 싸움을 했다.
설거지도 청소도 집안 정리도 엉망인데도 컴퓨터와 오락에만 열중이다.
울컥 화를 내서 큰소리가 밖으로 까지 새 나갔다.
울며불며 억울해한다. 저도 이제 다 컸다는 것이다.
서로의 감정이 가라앉고 다짐을 했다, 앞으로는 서로를 이해하자고...
그래서 오늘 아침 밥 먹자는 아빠의 한마디에 온가족이 식탁에 앉은 것이다.
맛있게 먹는 아침 겸 점심식사가 행복하다.
무엇을 볼 것인가?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보는 프로는 전국노래자랑이다.
태진아의 사모곡이 있고 송대관의 네박자가 있고 장윤정의 어머나도 있다.
사회자 송해씨의 너스레와 만담도 얼마나 재미있는가.
웬만해선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남자 나이 오십이면 선조들의 표현으로는 '지천명'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알고 그렇게 순응하며 산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나는 왜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할까...?
미래에 대한 전망도 확신도 없고 늘 불안하다.
어디론가 떠나가고만 싶다.
어제 사온 책을 본다. 박도님의 '길 위에서 길을 묻다'
평범하지만 치열하게 사신 분들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오늘 하루,
보고 듣고 말하고 무언가를 먹고 행동하는 것들이 삶이 아닐까?
그 삶이 쌓이고 또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될 것이다.
2005년 6월 안산노동인권센터 대표 송 일 환
|
▶▷
[소식]
'6월'
안산노동인권센터 이주인권위소식
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 창립총회가 있었습니다. 자만동지가 지부장선출되었습니다.
조합원들 뿐만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잡혀가는 상황이지만 조직을 좀더 굳게 만들기 위해서 지부조직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6월 22일이 최저임금 한마당 문화제가 끝으로 지역최저임금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6월 29일 노동자위원들의 총사퇴와 격렬한 반발속에 최저임금이 밀실에서 사용자측의 안인 9.2%로 일방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시급기준으로 2,840원에서 3,100원으로 된 것이고, 주44시간 월급 기준으로는 641,840원에서 700,600원으로 58,760원 인상된 것이지만 주40시간이 적용되는 300인이상 사업장은 647,900원이 되어 6,04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는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최저임금연대가 요구한 815,000원에도 한참 못미치는 것이고 주40시간제에 따라 연월차와 생리휴가 수당이 삭감되는 여성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이 삭감되는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이번 결정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외면한 최저임금위원회의 폭거이며 저임금 구조를 양산하는 기구로 전락한 최저임금위원회를 해체시켜야 하겠습니다.
안산이주노동자문화제
전차의 고민들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안산시민과 이주노동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래서 노래만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서 연영석 동지의 노래 '코리안 드림'에 카드섹션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아주 중요합니다!
지역월례토론회
6월 20일,나눔과연대에서 장소를 섭외하고,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사무국장 김종일씨를 초대해서 통일운동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후원의 밤
6월 24일, 100명의 지역인사들과 후원회원들을 모시고, 특히 문정현신부님의 평택미군기지확대저지투쟁의 강연을 듣는 자리로 모셔서 진행하였습니다. '후원의 밤'이라는 것을 첨했는데.. 담에 하면 더 잘 할 것 같습니다.
안산노동인권센터 이사갑니다!
7월 5일 오전부터, 이사 가는 곳은 바로 옆 건물! 다들 오셔서 이사하고 자장면 드세요...
'노동법률 학습팀' 구성합니다!
노동법률학습팀 구성합니다. 박현희, 무릎도 시리고, 손님, 도도네숲, OK맨 고문상.. 이렇게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현재 5명입니다. 좀더 세밀하게 공부해서 법과 먼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
안산지구협 대의원대회
7월 8일, 곽민형의장이 사퇴하면서 새로운 대표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후 일정
*7월 10일 평택미군기지철거투쟁하러 갑니다. 평택지킴이가 되세요.. 우리 힘차게 싸웁시다.
*7월 22일(금), 센터 회원워크샾합니다. 대안사회라는 주제로 몇차례 걸쳐 진행할 것인데, 이번 첨에는 회원들의 생각하는 소박한 대안사회가 어떤 것인지 각자 소개하고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7월 9일 2시에 안산시 장애인종합복지관 3층에서 DPI(장애인연맹) 경기지부 창립총회있습니다. 시혜와 동정으로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을 쟁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모습으로서 장애인연맹 경기지부가 창립합니다. 우리 회원들 많이 참여합시다.
|
▶▷
[낯선 영화? 살 같은 영화!] 로저와 나(Roger and Me)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 1989 / 87분)
내용
작품의 감독이자 화자인 무어는 자동차 대기업 General Moters가 공장을 두고 있었던 미시간주 Flints라는 미국의 도시에서 GM이 공장 문을 닫고 근로자들을 해고함으로써 발생한 변화들을 직접 사람과 장소를 찾아 다니며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는 황폐화된 도시와 GM의 사장 로저 스미스를 인과적으로 연결하려 애씁니다. 즉 GM의 사장 스미스가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었으며 도시를 몰락시켰다는 것이죠.?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어가 로저 스미스 만나려고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무어는 스미스를 만나려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하지만 때로는 경비들에게 저지 당하고 때로는 회의장에 앉아 있다가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스미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무어가 찾아 가는 곳에는 골프장이나, 사냥클럽, 요트클럽 같은 곳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무어는 미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줍니다. 무어가 그토록 스미스를 찾아 헤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즉 왜 공장 문을 닫아 플린트를 유령의 도시로 만들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큐멘터리 표현방식의 한 부분인 인터뷰 요청이었죠.
GM은 1983년까지 190억불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GM은 1989년까지 자기들의 출발지였던 플린트의 공장을 11개나 닫고 50퍼센트의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그 인원은 4,5만 명에 이릅니다(정확하게는 3만3천 명 정도로 추산됨). 이 기록은 미국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무어의 주장에 의하면 GM은 자신들의 수익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회사와 무기 제조사를 사들이는데 사용했고, 아시아와 멕시코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GM의 조치는 플린트를 예전과 다른,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유령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도시는 갑작스럽게 25퍼센트나 실업률이 증가했고, 자살, 배우자 학대, 알코올 중독, 디트로이트와 마이애미를 능가하는 폭력 범죄율 등의 사회문제를 겪게 됩니다. 2만8천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버리고 남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그 바람에 도시는 버려진 빈집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맙니다. 거의 GM의 조치가 한 도시를 급작스럽게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무어는 도시의 근로자들과 인터뷰하고, 공장을 떠나 비참하게 생활하는 근로자들의 채무와 주택압류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스미스의 자본가 비윤리적 속성을 파헤치려 합니다. 결국 GM의 스미스가 크리스마스 축하인사를 하는 행사장에서 무어는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위해 찾아다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기습적인 방법을 쓴 것이었죠. 사실 이 인터뷰의 의미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인터뷰를 위해 스미스를 찾아다니는 동안 작품의 주요내용은 전개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분노의 포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다소 코믹하지만 냉소적인 작품으로 평가했습니다. ‘복수 코미디’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벤쿠버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시카고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이 영화는 1989년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소개 되어 많은 상을 무어에게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무어는 그리 기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무어는 바로 플린트 GM 노동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영화는 자기 가족 혹은 자기 이웃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되새긴다는 것은 여전히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감독 무어가 해낸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자본의 속성을 어려운 경제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메시지는 ‘자본은 이윤을 쫓아 움직이지 절대 윤리를 쫓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료출처 : "오마이" 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이 영화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대여 가능합니다.)
|
▶▷
[함께 사는 세상] "봉사 "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센터에 간적이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형우씨가 활동 보조를 해주었다. 그런데 형우씨가 볼일이 있어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르게 센터를 나섰다. 나는 센터 앞 인도 위에서 있고 형우씨는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서로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거리에서 낯익은 얼굴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센터 셔터가 내려져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 걸어갔다. 바빠 보이는 걸음걸이도 아니었다. 나를 보았을 텐데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얼굴빛도 나를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자기도 굳이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데 내가 왜! 하기 싫으면 마라!
형우씨가 차를 끌고 왔고 차를 막 타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불연 듯 나타나서 생긋 웃으면서 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어디가는데? 나도 타도 돼?” 한마디 묻지도 않고 뒷좌석에 탔다. 나는 형우씨에게 학교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학교에 도착해 내려야 되는 순간, 그 여자가 형우씨 보다 조금 먼저 내려 도와주려는 척은 하려는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고 묻지는 않았다. 내가 답답해서 “먼저 이쪽 팔 좀 잡아 달라”고 해서 형우씨가 돌아 와서 도와주었다. 아까는 아는 척도 하기 싫어하더니 ‘챙겨주는 척하기는...’ 형우씨가 없었으면 차에서 잽싸게 내리지도 않고 아마 무덤덤하게 내가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과목 중에 수학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복지관에 “학습지도 자원봉사를 해줄 수 있냐”고 문의했다. 거의 2달 만에 “해줄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번. 그렇게 연락이 되고 봉사자를 대면하고 나서도 자원봉사자의 이런 저러한 이유로 한 달 동안 학습지도를 받지 못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좋게 생각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없어 한 달만이라도 해준다는 사람이 있는 것만 해도 어딘데...’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를 보면 자기가 가르쳐 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없다. 시간을 변경하기 일쑤고 약속을 취소할 때도 많다. 꼭 학점을 따기 위해서 자원봉사 신청을 한 것 같다. 질문을 해도 답을 잘 안 해준다. 잘 모르는 문제도 일단 풀게 한다. 설명도 안 해주고 내가 이게 뭐냐고 물으면 그제야 답을 해준다. (문제만 많이 풀어야 실력이 느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학습 도중에 꼭 남자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는다. 그래도 그것은 이해한다. 내가 정말 기분이 상하는 것은 그 아가씨의 말투이다. 그 아가씨와 나의 나이 차이는 11살 차이가 난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어른 대접, 떠받들어 달라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어리고 많고를 떠나 말투에는 항상 존칭어를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가씨는 “아니구...요”, “할려면...요”, “아니...요”, “잖아...요”, “어떻게 한다구...요?”, “알지...요?”, ”으...흐“, ”응...어“, ”니까...요“ 등등 꼭 한 박자씩 쉬고 ‘요’자를 붙인다. 초등학생 대하듯이. 차라리 반말을 하던가. 반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억지로 ‘요’ 자를 붙이는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성질난다.
나는 자원봉사를 하면 학점이 올라가는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취지는 한번 자원봉사를 해보면 계속하게 된다는데 (내가 알고 있는 취지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다. 진짜 진심으로 자원봉사 하는 학생들은 얼마 안 된다. 특히 대학생이나 대학생 정도 나이의 젊은이들은 특히 더욱 그렇다.
애인이나 같이 자원봉사 온 뭇 남성 (비장애인보다 좀 착한 남자를 만나려고) 남자(미남) 장애인에게 잘 보이려고 오는 것 같다. 옷도 때에 맞춰 입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봉사를 하러오면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가슴이 보일 듯한 옷에, 어깨가 다 찢어진 듯한 옷에, 화장실에 가서도 장애인은 볼일보고 자기는 머리 손질하기 바쁘고 (물론 혼자 볼일을 다 해결하는 장애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있다), 여성 장애인과 둘이 있을 때는 아무 말없이 있다가도 남성들만 옆에 오면 여성 장애인 머리를 매만지며 이쁘게 해주는 척 챙겨주는 척 한다. 남학생들은 잘 보이려는 그런 것도 없이 참 열심히 하는데, 여성(학생)들은 애인이나 남자친구와 통화할 때도 코맹맹이 소리로 “너무 힘들었어엉~” “어깨도 아프고옹~” 하면서 연약한 척 어리광을 부리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하고 싶을까? 그리고 애인이나 남자친구가 없는 아가씨들은 장애인을 남성에게 잘 보일 수 있게 하는 도구, 남성 잘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봉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비장애인 남성에게 자신 없고, 인기 없다고 자원봉사 하러 와서 자원봉사 온 남성들에게 장애인 남성들에게 잘 보이려 자원봉사 오는 것이라면 차라리 안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천사 같고 예뻐 보이고 싶다면 차라리 성형수술을 하던지. 아님 마음 수양을 더 쌓던지... 착하고 순수한 미혼 남성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순간적으로 장애인에 친절 베푸는 여성이나 자원봉사 하러 간다고 해서 무조건 다 천사처럼 착한 아가씨는 아니라는 걸...
*복자씨는 인권센터 회원입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매달 풀어 놓습니다. 요즘엔 8월 3일에 있을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답니다.
|
▶▷
[이 땅에 살기 위하여]
" 산재 이야기"
유난히도 추웠던 아니 마음이 더 추웠던 늦겨울,
봄을 시샘하듯 귓볼을 스치는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을 움츠리게 하는 어느 늦겨울!!
서울 신길동 소재 교회 신축 공사장으로 새벽 5시에 출발한다.
십 수년동안 건설현장에서 경험을 하였지만 너무나 열악하여 변변한 탈의실 조차 없는 현장이다!
칼날처럼 살갗에 스쳐오는 차가운 작업복을 갈아입고 작업도구와 안전장구(타 현장에서 받은 거지만)를 챙기면서 속으로 내내 다짐을 한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자!'
오늘 작업 일정은 콘크리트 타설 작업.
육중한 펌프카가 자리를 잡으려고 엔진음이 요란하다. 시끌벅적한 과정에서도 작업 지시는 떨어진다. 어제 미쳐 끝내지 못한 부분을 먼저 마무리하란다.
조급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연장을 챙기고 미진한 부분을 꼼꼼히 마무리한다. 본격적인 콘크리트 타설작업 준비 끝.
나에게 떨어진 두 번째 임무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할때 구조물에 하자가 있나 없나 감시하는(일명 공구리 방) 일이다.
2인1조로 손전등을 들고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들어간다. 잠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우박소리와 자갈과 모래가 섞인 콘크리트가 나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이제 시작이구나! 얼마나 지났을까? 귀가 멍멍한 가운데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벽기둥이 압력을 못 이겨서 밀린다. 우~~직~~끈
순간 아찔하다.
손쓸 겨를도 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놀랍다.
순식간에 바닥이 온통 쏟아진 콘크리트로 가득하다. 고함을 치고서 수습에 들어간다.
빨리 하자보수를 하지 않으면 오늘 일정이 늘어진단다.
삽이 오고, 장화가 오고, 사람들이 달려오고...
삽질을 해댄다, 허리가 뻐근하다. 겨우 바닥을 정리하고 재시공에 들어가야 한다.
원칙으로 따지면 안 터질 일인데 현관 통로라서 벽면이 이쁘게 나와야 된다고 무리하게 많은 양을 쏟아 부은게 화근이 된거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반장이 외벽 쪽에서 작업을 하란다.
작업 동료가 작업 도구를 받아달라고 해서 손을 내밀어 기계를 받는 순간 발판이 무너지면서 몸이 공중에 뜨는 기분이다!
아이쿠! 허리가 찡하며 숨이 막혀온다.
이제 죽었구나!!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가족들 얼굴...
또한, 그동안 나를 알고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들...
여기, 저기서 귓전으로 들리는 동료들이 달려오는 소리들........
한참을 누웠다, 몸을 움직여 보니 몸이 움직였다.
아!! 살았구나. 가슴으로 통증이 밀려온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내내 스쳐 가는 생각!!
'열악한 건설현장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부상당하는 동료 건설노동자들, 나도 그 중에 한사람이구나.'
현장관리자와 현장 근처 개인병원에 도착했다.
급해서 왔다 하지만 병원시설이 너무 미흡하다.
통증이 심한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현장 관리자가 얘기를 한다, "안전관리를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구, "발판작업대를 튼튼하게 했어야 되는데 공정이 바쁘고 예산이 부족해서..."
난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이 현장만 그럴까?'
현재 건설자본가 놈들이 우리 건설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건설동자들의 등골에 빨때를 꽂고 착취하는 이 현실...
울화통이 치민다!!
진찰 결과가 나왔다. 1개월 정도 치료하면 낫는단다.
통증이 심하게 몰려온다.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하겠다구 하고서 추후 연락하겠다고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걱정스런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실지로 토끼띠지만).
부랴 부랴 찜질팩을 해다 등에다 밀어준다, 통증이 좀 덜하다(뜨거워서).
아!!! 행복하다.
죽음의 문턱에 오갔던 생각으로 온통 머릿 속이 복잡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음 날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 결과 거기서도 염좌로 3주 정도 물리치료 하면 된다고 하였다.
하루일당으로 살아가는 건설노동자의 현실이 하루라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얼른 치료를 받고 나아서 현장에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0여 일간 치료를 받았고 공상처리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허리 통증이 영~ 차도가 없다. 이제부턴 걱정이 앞선다. '공상처리를 해야 되는데 저놈들이 순순히 해줄까? 안 해주면 우격다짐으로라도 해보리라.'
이내 속으로 다짐하고 전화를 한다.
"좀 어떠냐?" 물어본다.
아직 별 차도가 없다 대답하면서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장관리자가 걱정이 되나부다(나에 대한 걱정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치료를 더해 보란다.
답답한 마음과 일이 있어서 인권센터를 방문한다. 우연치 않게 경기남부산업안전보건실장을 만났다.
혹시나 싶으니 다른 병원에 가서 시티를 찍어보란다. 진찰을 받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엑스레이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시티 촬영을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명을 알려준다.
“흉추12번 압박골절과, 요추부 염좌”아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의사 왈“입원해야 하며 수 개월간 치료를 요한다."
바쁘게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치 받고 환자복을 입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통증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일 입원 치료를 받는 과정에 하청회사에 입원 사실을 알렸다.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는다. 영 못마땅해 한다. 수일 내에 병원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하청건설회사 부장과 반장이 병원을 방문하였다.
안 좋은 느낌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산재 처리는 좀 곤란하단다.
회사 규모도 작고 원청 회사에서 산재 처리를 꺼려한단다. 공상처리를 하잔다,
순간 머리끝에서 울화가 치민다.
애써 태연히 현재 나의 몸 상태와 진단상의 설명을 하고 산재처리를 요구하자,
이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직접 병원 측에 알아보고서 얘기를 하자"며 돌아선다.
한참 후에 산재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서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가버렸다.
그 후, 수 차례에 걸쳐 산재 처리를 요청하였고, 마지못해 산재처리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는 지 20일이 지났다.
예전 경험으로 산재처리과정을 알기에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끄는 것이 화도 나고,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기에 노동조합으로 지원을 요청하였고, 서류를 작성하여 진행하는
과정에서 진실로 건설자본가 놈들의 치부가 드러난다.
수년에 걸쳐 건설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현장조직사업을 진행하였던 대단위 사업장은 그나마 근로조건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 힘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규모 건설현장은 어떤가? 안전관리는커녕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열악한 조건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지옥 같은 이 현실, 안전장구지급, 근로계약서 작성, 퇴직공제, 고용보험...
이 모든 것은 그림의 떡이다.
며칠 후 근로복지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산재요양신청서는 접수가 됐는데 다른 서류가 구비가 안되서 늦어진다고,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곧바로 건설회사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다.
얼마 후 하청관리자가 산재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코앞으로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1개월이 지난 지금 근로계약서를 쓰란다,
원칙으로 따지면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일사 분란 하게 이루어져야할 것인데...
이것이 건설 현장의 현 주소다.
한 달여가 지나간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초조하다.
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으니 하는 소리가 기가 막힌다.
공단자체내의 자문위원(의사모임)의 판독상 MRI 필름상 환자의 병명에 대해서 미심쩍단다.
재 촬영을 하란다. 압박골절이 아닌 염좌정도로 마무리 할 려는 속셈이다.
분에 못이기고 화가 치밀어서 조합으로 알린다.
조합에서 공단이사장 면담 요청을 위한 공문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놀랄 일이 생긴다.
현 사회에서 “사”자 달린 놈들의 권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공문을 받은 다음 날 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의 골절부위가 잘 보인다고 산재승인을 한다구...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안보인다던 부위가 갑자기 보인다니?
조합에서 돋보기라도 보냈나? 아님 의사놈 뒷통수를 갈겨서 정신이 번쩍난걸까?
이런 처리 과정에서 진짜 답답함은 근로복지공단의 행태다.
산재승인을 하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 지. 담당자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권위적인 모습. 아!! 과연 저들이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인지 의구심이 갈 정도다.
하기야 건설노동자들을 인간취급도 않는 건설자본가 놈들과 현 정부의 하수인으로 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하루 하루를 살어름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이 현실!!
일련의 산재 처리 과정을 보면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건설현장!!
오늘도 안전관리도 되어있지 않은 건설현장에서 동료 건설노동자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이 현실...
건설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살맛 나는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아니 꼭 해야겠다는 결의가 나의 마음 한구석을 강하게 짓누른다.
병원에 갇혀서 봄날을 보내고 계절이 바뀌어 무더운 여름이 왔고, 지금은 4개월째 입원 치료중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입원 치료를 해야될 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답답하고 힘이 든다.
소금땀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할 때는 힘들고 지쳐서 일을 안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병원에 갇혀 있으니 소금 땀 흘리며 건강하게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일을 하다 다치면 노동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꼭 산재 처리를 해야하는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이번 달 <이 땅에 살기 위하여>는 건설노동자 박정수 회원님의 글을 함께 합니다. 하루 빨리 쾌차하셔서 다시 소금땀 흘리며 일하는 기쁨을 누리실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진은 토끼같은 마누라와 산에 올라 오붓하게~
|
▶▷
[회원의 일기장] "사는 모습"
빡세(울 아들 별칭)기상! 아들아 일어나라. 학교 늦겠다.
이쁜 딸도, 뽀뽀!! 일어나야지~?
아침 7시면 아이들을 깨우는 라이브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분주한 일과가 시작된다.
중학생인 아들 녀석은 8시 이전에, 딸아이는 8시 20분쯤이면 등교 길에 나선다. 등교하는 길을 함께 하던 아빠는 산재로 입원중이라 일찍 서둘러 나가야한다.
아이들이 등교 길에 나서고 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작은 물병과 오이 한 개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광덕산으로 바쁘게 발길을 옮겨 놓는다. 산꼭대기에 올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셔진 상태로 맞는 정상의 바람은 더없이 상쾌하다. 거기다 오이를 깨물어 먹는 그 맛은 정말 꿀맛이다.
오전11시쯤 집에 와서 다시 몸단장을 하고 11시 30분쯤 컴터 교실로 발걸음을 돌리면 오후 2시에 컴터 교실이 끝난다. 2시 이후는 센터사무실에 나가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이틀에 한번은 허리 물리치료를 하기도 하고 볼일을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가 분주하게 진행 된다.
센터 상임활동가를 3월까지 하고 그만 두면서 처음 일주일 정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남편은 산재로 입원해 있고, 갑자기 할 일도 없고, 뭔가 텅 비어 버린 듯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까지 어디랄 데 없이 아파오고 꼼짝하기가 싫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울증이 나를 엄습해 올 것만 같았다. 뭔가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우선 돈을 들이지 않고 운동을 하면서 몸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몸을 추스르면 정신은 자연스레 나아지겠지...
그래서 4월 10일경부터 매일 아침 광덕산으로 출근을 한다. 땀으로 온몸을 적시고 산행을 하고 나면 온몸에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듯 너무나 개운하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매일 운동 코스로 적합하다. 산에 오르내리면서 인생을 배우고 느끼면서 더 깊은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재충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는 컴터 교실에서 ‘셀과 문서’를 배우고 있다. 몰랐던 것은 새로 배우고 조금 알았던 것은 확실하게 배우게 되니 재미가 있다. 중간에 ‘안산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모임(가칭)준비모임’에 참여 하기도하고, 센터 회계를 맡기로 하여 사무실에 나가기도 하고, 이젠 넘 바빠서 병원에 있는 남편한테 가볼 시간도 없다. 하루가 바쁘고 분주하지만, 복부살도 쬐끔 빠지고, 운동을 하니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나의 ‘권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재충전하면서 더운 여름을 보내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나이 제한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지만... 마흔이 넘었다고 하면 ‘눈’은 잘 보이냐? 노한은 없냐? 라고 한다는데... 어쨌든 쉽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그냥 주어진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살아보련다.
*이번 달 <회원의 일기장>은 설예심 회원의 글입니다. 늘 바지런히, 열심히 움직이시며 무언가를 하십니다. 부디, 행복하시길~* 사진은 이미 이라크에서 희생된 김선일씨 무사귀환과 파병반대를 위한 선전전 진행 중에
|
▶▷
[생각 주세요, 선물 드려요]
당신은 방글라데시 중산층에 태어나 영국식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자국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싶지만... 없다, 그 몫을 해낼 수단이. 당신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땅도 공장도 없다. 또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그저 농사나 지으며 홍수에 그것을 날려 버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가난을 이고 사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잘 사는 나라,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브로커를 찾아간다. 3년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이 달콤한 유혹을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그냥 방글라데시에 머무르겠는가?
담당자 laborchoi@hanmail.net으로 메일 보내주세요. 연락처와 이름도 함께 생각을 주시면, 선물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
▶▷
[후원의밤]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경창수/고문상/고재언/곽민형/권영남/김광원/김도화/김명철/김병연/김병융/김병태/김성태/김형욱/김호중/김환희/노동자의힘/문정현신부님/민경열/민노당상록구위원회/민병우/민은영/박래군/박미진/박정수/박종남/박종삼/최우섭/박평훈/박현아/배원일/백승룡/부좌현/서명석/서한석/손정천/송경근/송기헌/송성완/신명철/신병철/염춘길/오병률/왕환식/용환석/우창전기(여성동지)/우창전기(여성부장)/이남규외 2명/이명호/이문하/이미영/이승택/이영철/이용현/이윤보다인간을/이정훈/이주노조/이준모/이태진/이하연/이형근/이희성/장기철/장시병/전장식/정태수추모회/정형범/조병하/주명호/지연호/지현묵/천주교인권위/최경희/최미란/최민순/최승은/통일포럼/평화바람/평화통일원우회일동/하니포장산업/하용주/한덕전/홍준석 이상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