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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 (2006년 7월 18일) 가죽공장
로쟈 추천 0 조회 490 06.07.19 09:5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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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19 19:41

    첫댓글 본래 글에 이어지는 로쟈님의 'P.S.'에 미소짓게 되는 때가 자주 있는데, 이번 논평에도 P.S.가 등장했군요. 뭘 한다는 게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나봅니다. 아무리 '마음편하게' '자발적'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마감'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즐거운 부담이란 걸 생각해보게 됩니다.../사실 이 꼬리말을 쓰려고 이 글을 다시 클릭한 것은 아니었는데, 추신을 보다가 좀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오늘 오후에 문득 로쟈님의 이 논평이 떠올랐습니다. 카뮈와 함께요. 카뮈 때문인지, 로쟈님 글 때문인지, '웃으면서 죽는 법'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그 시작과 순서는 모르겠습니다.

  • 06.07.19 19:42

    <웃으면서 죽는 법>이란 제목에서 카뮈의 <행복한 죽음이>이, 중간 잠수교와 연관한 로쟈님의 기억에서 로쟈님의 시와는 별개로 <전락>이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아서 뭘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것 때문에라도 '읽지도 않은' 이 작품이 생각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 거울 앞에 앉아 그 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깊이 숨을 쉬고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백의 상처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백의 상처에서받은 느낌이 그처럼 뚜렷하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 06.07.19 19:49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내 볼을 적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백 위에 떨어진 내 눈물이 가죽을 적셔서 백의 상처를 점점 더 진하고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눈물' 때문입니다.'바라만 봐도 뭔가 안겨져오는 시선의 힘, 손만 대보아도 후벼파는 고통'을 볼, 결코 과장되지 않는 눈/마음이라는데서, 이 소설을 언제 접하게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덕분에 '어떤 인상'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오늘 오후 돌연 출현한 카뮈를 생각하다가, 몇 자 적게 됩니다...(쓰지 않아도 아실테지만, 글, 잘 읽었습니다...)

  • 06.07.20 00:37

    홍수 속의 잠수교...장마 때면 언제나 뉴스에 단골로 나오는 장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도 그런 다리가 있는건지... 그렇게 잠길 다리를 왜 만들었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논평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소설을 귀동냥하게 돼서 좋습니다. 비평고원을 드나드는 이유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소설이고 텍스트고를 떠나서 그냥 이야기요. '세상은 가죽공장'이라는 비유...예전에 가죽농장에서 동물들을 산채로 처리(!)하는 광경을 영상으로 본적이 있는데 그 영상과 겹쳐져 꽤나 부대끼는군요. 첫번째 화요논평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06.07.20 08:19

    사실 너무 폼나게 쓰면 다른 분들이 부담스러워하실까봐 적당히 썼죠, 라고 하면 '폼나겠지만', 실상은 그제 아침에 이거라도 써야겠다며 허둥대며 쓰느라고 오타도 많습니다. 잘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 06.07.20 21:01

    인간의 피부 (결국 '가죽)에 대한 메를르 퐁티의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군요. 우리의 가죽은 '나와 이 세계가 맞닿는 지점'이자 '세계를 향한 나 자신의 마직막 경계'이기도 하다는 거지요. 남에게 보여지는 우리의 '가죽'이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의 대변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가끔씩 그 가죽 속에 갇혀있는 우리들은 당황해하기도 하지요. 왜 주인공 아줌마는 '상처난 가죽으로 만든 숄더백' 을 두고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녀는, 결국 자신과 세계와의 경계에서 허덕이는 자신이, 저 상처난 가죽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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