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영화) '오아시스'에서 社會(사회) 不適應(부적응)자 종두와 사랑을 나누는 중증 腦性麻痺(뇌성마비) 障碍人(장애인) 공주를 연기한 문소리가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新人(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예쁘지도 혹은 섹시하지도 않은 그녀가 베니스의 히로인이 되어 돌아온 그날, 入國場(입국장)의 분위기는 떠나던 날과는 사뭇 달랐다.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2002 베니스영화제의 히로인은 斷然(단연) 문소리였다. 베니스는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기자로 사지가 뒤틀리고 양쪽으로 눈이 돌아간 '공주', 문소리를 택했다. 그러나 수상기념 記者會見場(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녀가 처음 건넨 말은 뜻밖에도 '우리 모두 문소리의 受賞(수상) 사실을 잊자'는 것이었다.
“수상하는 바람에 재충전 위한 유럽 여행 취소 아쉬워”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준 사람은 하루 전 수상 사실을 通報(통보)받은 이창동 감독. 수상소식을 접한 문소리의 반응은 '유럽 여행을 못 가게 되어서 아쉽다'는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 이번 유럽행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자 유레일 패스를 끊어 놓고 民泊(민박)집까지 다 잡아놓은 상태였던 것. 수상하는 바람에 모든 여행계획을 取消(취소)하고 한국으로 '잡혀온' 것이 가장 아쉽다는 그녀에게 상이 주는 의미는 '그만 접어두어야 할 환희' 그 이상의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녀를 기쁘게 한 것은 상보다는 오히려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이 우리의 영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눈빛만으로도 充分(충분)하다고 생각했단다.
영화제 내내 그녀가 '화제의 인물'이었다는 관계자의 말처럼 '못난 공주' 문소리에 대한 현지 反應(반응)은 가히 熱狂的(열광적)이었다. 영화 중반부의 '환상신'에서 공주가 일어나는 장면을 목격할 때까지 문소리가 실제 장애인인 줄 알았다는 기자들도 많았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 현지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반응도 뜨거웠다. '영화 속에서 아름답게 나오지 않는데 샤론스톤이나 줄리아 로버츠 같은 아름다운 배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녀의 대답은 '나 역시 그녀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여배우보다는 배우이고 싶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역할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는 것. 외신 기자들은 동양에서 온 이 당당한 배우에게 아낌없는 拍手(박수)를 보냈다.
“지금 저에게 돌아온 찬사는 저의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누가 했어도 많은 주목을 받았을 영화입니다. 힘들었을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고 격려하고, 또 인정했을 거예요. 다만 이번에 제가 그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謙遜(겸손)하게 말하지만 문소리는 '한공주'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배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먼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닮아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운동을 통해 柔軟性(유연성)을 集中的(집중적)으로 길러갔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몸을 硬直(경직)시켜 그 상태로 말하는 것을 연습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휠체어를 타고 직접 거리로 나서보기도 했다. 식당이나 쇼핑몰에도 갔는데, 化粧室(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여겼다. 점점 공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장래가 창창한 여배우가 영화 내내 몸을 뒤틀며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愉快(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정작 그녀를 괴롭힌 건 여배우로서 '망가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과연 제대로 演技(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강박관념이었다.
촬영에 들어가자 그녀는 더욱 철저하게 '한공주'로 살았다. 촬영장에서는 '문소리'가 아니라 '한공주'로 불러달라고 하고, 아예 사인도 '못난 공주 문소리'라고 할 정도로 억척스럽게 역할에 빠져들어 갔다. 몸에 신경을 쓰다보면 감정몰입이 안 되고 감정에 신경을 쓰다보면 잔뜩 힘을 줬던 몸의 경직이 풀리는 힘겨운 작업이 장장 6개월 동안 持續(지속)됐다. 덕분에 여러 번 실신하기도 하고, 급기야는 骨盤(골반)이 틀어지는 '훈장'도 달았다. 아직도 근육 통증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 '웃는데 우는 듯 재미있게 꺽꺽꺽 운다', '꿈꾸는 호흡' 등 난해한 대본으로 배우들을 괴롭히는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은 그야말로 '戰爭(전쟁)'이었다. 공주가 강간당하는 신을 촬영하던 날, 몸을 빳빳하게 굳힌 상태에서 열 번 이상 격렬한 촬영을 거듭하고 실신한 문소리에게 떨어진 명령은 '병원 가서 주사 맞고 한 번 더 찍자'는 것. 생각하면 전쟁 같은 촬영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밀려드는 祝賀(축하) 전화가 부담스러워 우선 휴대폰을 없애고 싶다”
배우로서 문소리는 다소 특이한 履歷(이력)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를 졸업해 2급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녀는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최민식이 주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보고서부터. 졸업 후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재입학하고, 아예 지방에 내려가 판소리를 배우며 呼吸(호흡)과 발성을 익혔던 억척스러움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했다.
몇 편의 연극과 단편영화에 출연하면서 '평범한'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이창동 감독과의 만남은 운명적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하사탕'의 오디션에서 2,000 :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순임' 역에 발탁된 문소리는 그때부터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박하사탕을 통해 注目(주목)받은 것은 문소리가 아니었다.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에게 그 영광이 고스란히 돌아갔을 때에도 그녀는 묵묵히 그 시간들을 견뎠다. 그리고 2002년, 그녀에게 '공주'가 찾아왔다.
사실 문소리의 '한공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애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공주는 밝고 독립적인 사람이다. 나는 그녀가 '불쌍한' 여자가 아니라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는 것을 행복해하는 '당당한' 여자로 보여지길 바랐다'는 그녀. 영화 초반 문소리를 도왔던 장애인 친구들은 그런 그녀의 연기를 '현실적'이라고 評價(평가)했다. 영화 속 공주처럼 '가끔씩 두 발로 걸어다니는 상상을 한다'는 장애인 친구들의 말은 아직도 문소리의 마음을 울린다.
오늘, 그녀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연기가 아니면 몰랐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축하 전화가 벌써부터 부담스러워 우선 휴대폰을 없애고 싶다는 문소리는 “맨 처음 가졌던 마음이 변해갈까, 겸손한 마음을 잃게 될까 두렵다. 이제는 수상사실을 뒤로하고 더욱 겸손하게 다음 작품에 邁進(매진)하고 싶다”고 말한다.
첫댓글 한국영화 파이팅입니다.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