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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조영대 커피명상연구소
 
 
 
카페 게시글
해양비즈니스 사이버 강의실 스크랩 시벨리우스와 나
관광호텔마린비즈계열 추천 0 조회 36 05.07.29 00: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스톡홀름에서 핀란드의 투르쿠[TURKU]로 향한 것은
18년 전 구월의 어느날 밤이다.

오전에 출발하는 작은 비행기도 있으나
일부러 여객선, 그 유명한 "실자라인"을 택했다.
하룻밤을 천천히 발트해협을 건너는 호화 여객선의
멋을 향유키 위해서였다. 낭만적이 않은가 말이다.

배는 컸다.하얀 몸체의 넉넉한 폭과 깊이를 지닌
우아한 배로서 아마 타이타닉호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RORO FERRY[차도 실고 사람도 수송하는 여객선--카 페리]로서
스웨덴과 핀란드간의 교역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해상라인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선실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싸롱은 정말 호화 스러웠다.
커다란 샹들리에. 푹신한 소파. 농익은 듯한 열기.
담소를 즐기는 신사 숙녀들, 현악 오중주팀의 멋진 연주...

데크[갑판]쪽으로 나갔다.
별은 빛나고 밤바다는 차가웠다.
곤색 후드가 달린 옷을 입은 선원 한명이
파이프를 피우고 있다. 멋있다.

한잔 해야지.다시 싸롱으로 들어갔다.
한 켠의 바엘 들렀다.
검은 드레스의 바텐에게 "드람부이" 한잔을 시켰다.
달콤하고 독한[아마 벌꿀이 들어갔을 것이다] 진한 술...

연거푸 두 잔을 더 마셨다. 속이 짜릿짜릿하다.
얼음이 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어리어리 해지는 눈자위 부위에 대니
기분이 좋아졌다.

옆자리의 혀가 약간 꼬부라진 녀석이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수우?"
"한국, 남쪽"
"아 코리아!"
"멀리서 왔지?"
"하하하"

바텐이 끼어든다.

"올림픽 하는나라?"
"그래 맞어"
그 녀에게도 한잔 을 샀다.
"멋진 올림픽을 위하여! 건배!"

하얀 제복의 여승무원이 웃으며 지나간다. 친절한 웃음이다.
에어콘 바람 때문에 싸롱내의 큰 야자잎이 흔들거렸다.

앞이 많이 파인 옷을 입은 한여자가 옆자리엘 앉았다.
맥주를 시킨다.

특유의 거뭇거뭇한 점들이 가슴쪽에 가득하다.
오히려 섹시하게도 보인다.

"알루야!"
인사를 건네자
금새 담배 한 대를 권한다.[반가운 일이다]
내가 먼저 물었다.
"어디 가슈?"
"투르쿠."
"나도 거기 가유"
"먼 일?"
"회사일, 나 ABB유"
"오우~ 그래요? 큰 회사지요"
"오빤 여기 첨이에요?"
"그래요, 핀란든 첨이유"
"잘지내길 바래요"
핸드백을 열더니 명함을 한 장 건넨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시벨리우스 박물관이 괜찮을거에요."
"내 함 들르지."


 

이튿 날 아침
햇살이 비치자 바다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투르쿠 항이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멋있다.
스톡홀름 보단 못하지만 특유의 단촐한 정취가 있어보인다.

투르쿠는 오래된 도시이다.
핀란드에선 헬싱키 다음으로 큰 항구도시이고[우리나라의 부산같은]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진 도시이며 또 스웨덴의 지배를 가장 오래 받았다.
주민들 대부분이 스웨덴 말을 쓸줄 안다.

전설적인 장거리주자인 "누루미[Paavo Nurmi]의 고향이고
핀란드의 국민작곡가인 시벨리우스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배를 내렸다.
큰 키의 콧수염을 기른,검은 머리 녀석이 손을 흔든다.

호텔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낮은 집들, 베이지색의 건물과 짙은 비둘기색의 지붕들.

간혹 보이는 고성들, 강으로 따라 가는 돌이깔린 자동차길.
한가이 떠있는 작은 요트, 통통배들도 있다.
어디를 가나 물위에는 백조나 거위가 있고
북구 특유의 짐승들이 보인다.

술을 먹고 깊이 잠들고난 다음날 새벽,
커튼을 열고 밖을 보았다.

안개가 자욱하다.
호텔을 끼고 커다란 광장이있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새벽시장, 야채를 팔러나온 사람들과
사러온 아낙네들.억세게 보이는 남정네들.
특이하게도 생선을 걸어놓은 큰 생선걸이들이 많다.
발트헤링[청어]이 유명한 곳이라더니.
조용조용히 사고 팔고 안개속에서...

너무 가라앉았다.
안개는 낮에도 계속됐고
또 밤에도 계속 되었다.

그러기를 이틀 후
역시 새벽에 일어나보니
아 깨끗한 아침햇살!
신선한 나무냄새나는 공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쉐타를 걸치고 바지를 꿰어찼다.

밖은 걷기 좋았다.
거리엔 워낙 사람들이 없다.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나 뚱뚱한 아줌마들이 지나갈 따름이다.

지도를 들고 묻기도 해가며
시벨리우스 박물관을 찾아갔다.

단층의 검은 벽돌집
고뇌하는 근엄한 그의 인상과 닮았다.
[법률을 공부했다더니 정말 그렇다]
문은 닫혀 있었다.

앞마당에서 잔디를 밟으며 다람쥐 구경을 했다.
큰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곧장 달아나는데
길건너 교회당 앞의 다른 나무로 냉큼 올라가 버린다.


다시 좀 있으니 이 쪽으로 달려와서 또 옆의 나무로 올라간다.
무얼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저 만의놀이인 모양이다.
개관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팝콘이라도 있으면 던져 줄텐데...


 

나이든 아줌마가 반달 형의 안경을 끼고와서
문을 연다.
곧장 걸어가 티켓을 샀다.
녹색의 빳빳한 종이위에 대머리 시벨리우스가 인상을 쓰고 있다.

역시 북구특유의 갇힌 공간,
정면에 보이는 그의 데드마스크
턱이 튼튼해 보인다.인중이 길고 또렸하다.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강한 인상이다.

대리석 바닥이 끝나자
나무로 만든 바닥이다.
검은색과 고동색의 고요한 공간.

우울하지만 아늑하다.
오래된 옛날악기들, 시벨리우스가 쓰던 피아노, 유품들,

음악 감상실이ㅡ상당히 넓다
콘서트 홀로도 쓰는 모양이다.
한쪽 자리에 잠시 앉으니
하나밖에 없는 입장객인 나를 위해서
간단한 박물관 소개를 한다.

그리고,

그의 교향시"핀란디아"가
홀 전체를 진동시키며 터져나왔다.

창밖으로 하얀 자작나무 숲이 일시에 움직이는 듯 했다.
낙엽이 음악을 따라 한 쪽으로 쏠려 뒹굴고 갔다.

사실 그 곡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중학 음악시간에 핀란드에 시벨리우스가 있었다고 했다.
그가 작곡한 유명한 곡으로 핀란디아가 있다.
애국적인 음악가라 했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러나 상상해보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땅 핀란드에서
늦은 구월의 토요일 맑은 아침에
나무 숲옆의 시벨리우스 박물관,
커다란 콘서트 홀에서
나무의자에 홀로 앉아
때론 강하게 터져나오고 때론 애절하게 흐르는그의 곡을
한없이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것은 영광이었다.


 

그에 대한 존경의 인사를 건네고
감격에 차서 복도를 지나 입구로 나왔다.

내가 투르쿠에서 가진 기억은
무슨 남녀공용의 사우나나
맛있었던 새우전채요리나
길거리에서 타지인을 꼬여 지갑을 털어가는 십대들이나
빨간 우체통같이 생긴 광고판이나
커다란 여자들이 가슴을 덜렁대는 나체쇼나
지독한 아침안개가 아니라

대머리에 눈가힘줄을 세우고
고뇌에 찬 인상을 한없이 찡그리고 있는
핀란드의 천재적인 작곡가
바로 시벨리우스 였다.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

쿨레르보 교향곡
엔 사가
카렐리아
4개의 전설
교향곡 1번 E단조
핀란디아
교향곡 2번 D장조
교향곡 3번 c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교향곡 4번 A단조
교향곡 5번 내림 E장조
교향곡 6번 D단조
교향곡 7번 C장조
많은 교향시들...

그가 세상을 떠나기 9개월전에
내가 태어났으니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때 그가 살아있어 함께 만날 수 있었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핀란디아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투르크를 갔었으나
그때의 감동은 다신 없었다.

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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