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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무지는, 단순화시키고 명료하게 만드는, 또한 선택하기도 하고 빼버리기도 하는 그 무지는 역사가의 제1조건이다. (...) 근대사가는 무지의 여러 이점들을 그 어느 한가지라도 누리고 있지 않다. 그는 이 필수적인 무지를 스스로 계발해야만 한다.--자신의 시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그는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역사의 사실로 전환시켜야 하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사실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추려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27P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준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나서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그의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자신의 경우를 보면, 나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 쑤셔--반드시 처음부터가 아니더라도, 어느 부분이든 상관없이--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최소된다. 읽기는 쓰기에 의해서 인도되고 지시되며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역사가들은 아마도, 마치 어떤 사람이 장기판과 말이 없이도 머리 속에서 장기를 두듯이, 펜이나 종이나 타이프 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준비단계의 글씨기를 모두 머리 속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부러워하지만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다. --48p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2장 사회와 개인.
위대한 역사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이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시야를 밝혀주는 바로 그때 쓰여진다.
역사가 자신이 연구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둘째, 그 입장 자체는 어떤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교육자 자신이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뇌하는 사람의 머리 자체가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자신들이 완전히 의식하거나 기꺼이 인정하는 동기에 따라서 행동하지는 않으며, 또는 습관적으로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기를 통찰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부러 한쪽 눈을 감고서 일하겠다는 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77p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이다.-마르크스
이 문제에 관해서 나는 두 가지의 견해를 제시해야만 한다.
첫째, 역사란 상당한 정도까지 수의 문제이다. 만일 수천명의 개인들의 결혼까지 가로막아 혼인률의 실제적인 저하를 초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역사가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이유들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둘째, 인간의 개인적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는 흔히 그 행위가 의도하거나 요구한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역사에 남을 인류의 보편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는 무의식적인 도구가 된다.
20세기의 처음 50년 동안에 전쟁을 원했던 개인들이 더 많았고 평화를 원했던 개인들이 더 적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개인이 1930년대의 대공황을 일으키려고 했다거나 혹은 그것을 원했다고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비록 개인들 각각은 전혀 다른 어떤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더라도, 그들의 행동에 의해서 그 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이다. 82p
나는 역사에서의 반역자나 반항자의 역할에 관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겠다. 군주와 반역자는 똑같이 그들 시대와 나라의 특정한 조건의 산물이었다. 와트 타이러와 푸가초프를 사회에 저항하는 개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단순화이다. 만일 그들이 단지 그런 개인에 불과했다면, 역사가는 결코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추종한 대중 덕분이며,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현상들로서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가 않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서의 반역자의 역할은 위인의 역할과 상당히 유사하다. 위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때문에 현저히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헤겔-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위대한 작가는 '인간의 깨달음을 촉진시켜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리비스
위인은 항상 기존 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수준의 창조성은, 아마도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처럼 기존 세력의 등에 업혀 위대하게 된 그런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크롬웰이나 레닌처럼 자신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을 형성하는 데 힘을 쏟은 그런 위대한 인물에게서 발휘될 것이다.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맷돌은 우리에게 봉건영주의 사회를 가져다주며, 증기제분기는 우리에게 산업자본가의 사회를 가져다준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법칙이라고 주장했을지 모르겠으나, 근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법칙이 아니라 연구를 진전시키거나 새로운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유효한 가설인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사유의 필수불가결한 도구이다. 95p
중세가 언제 끝났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역사가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도 의견을 달리한다. 그 문제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역사의 지역별 구분은 하나의 가설이다.(...)역사가의 편향은 그가 채택하는 가설로 판단될 수 있다. 조르주 소렐은 어떤 상황에서는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특수한 요소들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96p
나는 역사란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일련의 인정된 판단들'이라는 베르클러프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물리학자는 과학적 진리를 '전문가들에 의해서 널리 인정되어온 견해라고 정의했다.
홉스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이 세계에는 이름 이외에는 보편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름 붙여진 것들은 모두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에 관해서는 확실히 진리이다.
역사가의 진정하나 관심은 특수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안에 있는 일반적인 것에 있다. 전쟁에 대한 논의는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일반화가 포함되어 있다. 역사가는 항상 자신의 증거를 검증하기 위해서 일반화를 이용한다. 100p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관계를 다룬다. 102p
역사가 거의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이유는 두번째로 공연할 때의 등장인물들은 첫번째 공연의 결말을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관한 지식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10p
역사와 도덕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헨리 8세는 나쁜 남편이면서도 훌륭한 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는 그의 남편으로서의 자격이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친 한에서만 남편으로서의 헨리 8세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교수형을 내리기 좋아하는 재판관이라는 생각일랑 버리고,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나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 더욱 어렵지만 유용한 문제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자. 그런 판단이 역사가의 중요한 판단이다.; 개인에 대해서 도덕적인 유죄를 매우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사회 전체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운동이다; 그리고 운동은 비교를 의미한다. 역사가들이 '선'이나 '악'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적대적인 용어보다는 '진보적'이라거나 '반동적'이라는 말과 같이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용어로 자신들의 도덕적인 판단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127p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관한,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첫번째 특징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신이 수집한 원인들의 목록을 앞에다 놓고서는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든가,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고정시키게 될 원인들의 일정한 위계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원인이나 어떤 범주의 원인들이 궁극적인 원, 즉 모든 원인들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직업적인 강박감을 느낄 것이다.
세계사는, 만일 그 안에 우연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면, 매우 신비스런 성격을 띄게 될 것이었다. 이 우연 자체는 당연히 일반적인 발전 경향의 일부를 이루며, 또한 다른 형태의 우연들에 의해서 상쇄된다. 그러나 발전의 가속과 지체는 그러한 '우연'에 좌우되며, 그 우연들에는 어떤 운동의 선두에 있는 개인들의 '우연한' 성격이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다.--마르크스
클레오파트라의 코: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론이다. 악티움 해전의 결과도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그런 종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얼이 빠진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바야지드가 관절의 염증 때문에 중앙 유럽으로 진격할 수 없었을 때, 기번은 '한 인간의 단 한 개의 근육을 엄습한 매서운 통증이 여러 민족의 불행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국왕 알렉산드로스가 1920년 가을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원숭이에게 물려서 사망했을 때, 이 우연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고 그 사건들은 윈스턴 처칠로 하여금, '그 원숭이가 물렸다는 사실 때문에 25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하게끔 만들었다.
트로츠키: 누구나 혁명이나 전쟁을 예견할 수 있지만, 가을철의 들오리사냥 여행의 결과를 예견하기란 불가능하다.
보기를 들어보자. 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을 분간할 수없는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그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서 길을 건너고 있던 중이다.
그것은 운전자가 반쯤 취한 상태였기 때문인가? --그럴 경우 형사소추가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브레이크 결함 때문인가? --그럴 경우 겨우 1주일 전에 그 차를 정밀검사한 수리점에 대해서 무엇인가 조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컴컴한 길모퉁이 때문이었는가?--그럴 경우 도로를 관리하는 당국이 그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소환될 것이다.
만일 그날밤 담배갑에 담배만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이 원인을 무시하는 모든 조사는 시간낭비가 될 것이며, 그런 조사에서 이끌어낸 어떠한 결론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톨콧 파슨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는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의 '선택체계'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의 '선택체계'이다.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추출해낸다.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바야지드의 관절통이나 알렉산드로스가 원숭이에게 물린 것이나 레닌의 죽음이나 로빈슨의 끽연 등이 이러저러한 결과들을 낳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군들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왕들에게 홀렸기 때문이라든가, 왕들이 애완원숭이들을 키우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한다든가, 살마들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길을 건너다가 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명제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로빈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운전자의 음주벽을 단속하거나 브레이크의 상태를 더욱 엄격하게 검사하거나 도로의 개설계획을 개선한다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의 감소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추정한 것은 이치에 닿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감소될 수 있다고 추정한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우연적인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교훈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어떠한 결론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를 다루는 데에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은 어떤 목적이 고려되고 있는가 하는 관념이다; 그리고 이 관념은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포함한다. 마이네케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는 가치와의 연관 없이는 불가능하며 인과관계의 연구의 이면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항상 가치의 추구가 놓여 있다.
과거의 기록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보존되기 시작한다. 훌륭한 역사가라면 미래를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한다.
5.진보로서의 역사
나는 진보와 진화에 관한 혼란스런 생각부터 제거하고 싶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명백히 모순되는 두 개의 견해들을 취했다. 역사의 법칙이란 것도 자연의 법칙과 동일시되었다. 헤겔은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고 자연은 진보하지 않는 것이라고 뚜렷이 구분하는 바람에 어려움에 봉착했다. 다윈의 혁명은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했다. 이것은 진화의 원천인 생물학적인 유전을 역사에서의 진보의 원천인 사회적인 획득과 혼동함으로써 훨씬 더 심각한 오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형질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바로 그 기초인 것이다.
우리는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역사가의 경우에 진보의 목적은 이미 전화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다; 나침반은 소중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필수적인 길라잡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로지도인 것은 아니다. 역사의 내용은 우리가 역사를 경험해야만 현실화될 수 있다.
분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역전과 일탈과 중단 없이 곧장 일직선으로 전진한 그런 종류의 진보를 결코 믿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격한 역전조차도 반드시 그 믿음에 치명타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집단에게는 쇠퇴의 시기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집단에게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진보의 본질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가령 시민적 권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시키기 위해서, 또는 형사소송절차를 개혁하기 위해서, 또는 인종이나 부의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일들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진보라는 가설을 실현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드르이 행위에 진보라는 가설을 적용하여 그 행위를 진보로 해석하는 사람은 바로 역사가이다. 역사에서의 진보는 자연에서의 진화와는 달리 획득된 자산의 전승에 의존한다는 것은 역사의 한 전제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일 수 있을 뿐이다.
로빈슨의 죽음으로 돌아가보자.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조사의 객관성은 우리가 정확한 사실들을 입수하는 것에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사실다운 사실들 혹은 중요한 사실들과 우리가 무시해도 괜찮았던 우연한 사실들을 구별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또한 그것은 당면한 목표, 즉 교통사고 사망자의 감소라는 목표와 연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필연적으로 발전의 도중에 있는 그런 목적이 되는데,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해석의 발전이 역사의 필수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혹은 이 역사가는 저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의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는, 달리 말하자면 그가 중요성에 관한 올바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임이분명하다.
경제적, 사회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은 정치적, 입헌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인류의 발전에서 더 폭넓고 더 앞선 단계를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오로지 정치적인 해석보다 경제적, 사회적 해석이 역사에서 더 앞선 단계를 표현해준다고 할 수 있다. 예전의 해석은 거부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석에 포함되며 또한 대체된다.
사실과 가치에 관한 문제의 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진리라는 단어--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 양쪽에 걸쳐 있는--의 용법이다. 역사가는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