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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작품 시와 동시 한시 |
觀風
趙昶來
蕭蕭風淨峽林楓
溪谷淸淵映帶紅
廣闊松聲明照月
危崖泉石冷微風
千峯丹葉洞天接
萬壑煙霞山岫通
群雀多言聊拊耳
曲肱枕臥意無窮
살랑이는 바람에 골짜기 숲 물들고
계곡 맑은 물에 映帶가 붉네
드넓은 솔 소리에 밝게 달빛 쏟아지고
낭떠러지 사이로 흐르는 물에 산들바람 차갑네
뭇 봉우리의 붉은 잎은 洞天과 이어졌고
모든 골자끼의 자욱한 안개 山岫와 통하네
참새떼 재잘거림이 애오라지 귀를 간지럽히는데
팔 베고 누웠으니 이 생각 저 생각 끝이 없네
<주> 映帶 - 띠를 두른 것 같은 주위의 풍경이 물에 비춘 모양
洞天 - 신선이 산단는 곳
山岫 - 山에 있는 巖穴
頌城德母校
-紀念開校六十週年
趙昶來
多數棟樑樹
克寒凌雪山
萌東搖海內
城德栽恩還
수많은 棟樑의 나무들이
추위도 이기고 雪山도 얕보네
동쪽에서 싹터서 온 나라 뒤흔듦은
성덕이 가꾼 은혜가 돌아온 것이네
- 城德초등학교 개교 60주년에 부쳐 -
눈덮힌 대관령
갈정웅
알몸의 대관령은
흰 홋이불 한 장으로
앙탈한다
모든 허물을 덥고
창세의 모습을 맹세하며
매서운 북서풍엔 견디지만
문명의 날카로운 삽날과
짜가운 흰 앙금을 퍼부으면
대관령도 어쩔수 없는가
속살 깊이 박힌
시커먼 문신을 들어내고
다시 몸을 더럽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끝없이 되풀이 되는
대관령의 결심을
아무도 나무랄 수 없다.
목련
갈정웅
시리고 지리한
긴 턴넬의 끝
거기 샹데리아를 켜 놓았구나
입새도 피우기 전에
저렇게 서둘러 불 밝히는 것은
오는 계절을 향한
목마름 때문일거야
온종일 밝혀두지만
아무도 끄지않는 것은
이 시대의 짙은 어두움 때문일까?
곧게 뻗은 가지마다
꿈들을 매달고
짧은 날의 바람으로 흔들리다가
흩어지는 봄의 축제.
<약력>
*갈정웅
*서울상대
*미국 일리노이 대학원
*대림정보통신(주) 대표(현)
*78년 <시문학>“대관령을 넘어서”등단
*<저서>‘기업도 상품이다’(1991)등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33-16
달맞이 꽃
김 수 완
새벽이
변심한 연인처럼
차거운 이슬을 정수리에 뿌리며
치닫는 시간
이제는 마음을 접고
돌아 섭니다
구름을 걷어내는 강바람에
뚝 길 미류나무 잎이
님의 발 소리를 낸다 하여도
다시 마음은 설레이지 않을
것입니다,
폭풍과 우뢰
윤회의 굴레 속
타는 원망이 씨앗을 익혀
사무친 갈망의 앙금들이야
태어나 다시
노오란히 밤을 새워
발 빝에 말자욱 드리우련만
겹겹이 접히운
그리운 사연들은
아직 읽혀지지 않은 편지인양
그냥 그렇게
남아 있을 테지요.
아트리에서
김수완
화가의 붉은 붓이
어수선하게 휘졌고 간
하늘 밑
엷은 구름이 움찔거리면
녹음에 쌓인 싱싱한 모습
그대로
자그맣게 뚫린 하늘에
뚜렸한 윤곽을 드러낸다
먼 옛날부터
굳어간 등줄기를 마주대고
또
푸른 빛 이마를 쪼아리며
말 없이 웃는 그 순진한 얼굴
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이루어준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인가
거기엔 고향을 모르는
꽃들이 울먹여 섰고
목에인 아우성과
이름 없는 미물들의
온갖 삶이
잔잔한 메아리를 이루고 있다
지상과천국을 연잇는 신비한
선상
황홀한 음악과 그림의 나라
나의 깊숙한 안에 자리잡은
산
오색령을 오르며
김성영
가파른 절벽을 감아 돌아서
오색령 구빗길을 기어 오른다.
오르는 구비마다 다가서는 절경
원시의 모습이 여기 숨쉰다.
왔다가 지나가는 여정 속에서
내님은 어디쯤 다가서고 있든가
봄 기운 서리면 새 생명 움트고
여름 숲우거지면 운해에 잠긴다.
가을바람 스치면 단풍져 수놓고
겨울눈 내리면 고요에 잠긴다.
철따라 지나가는 여정 속에서
내님은 어디쯤 미소짓고 있는가
낙산사의 아침
김성영
한적한 바닷가 송림사이로
낙산사 풍경소리 새볔을열고
동해의햇살이 퍼져오르면
자비로운 부처님 눈을 뜨신다.
고요한 바닷가 절벽위에서는
의상대 우뚝솟아 동해 푸르고
파랑새 포르르 노송에 앉으면
의상대사 생각나 옷깃 여민다.
파도가 출렁이는 벼랑사이로
홍련암 의지해 속세를 벗어나
동해바다 갈매기 넘나들고
관세음 보살님 미소짓는다
木神의 4月
김인숙
1
木神으로 다툰
처용에
발랄게 있다면
난
발끝까지 밀어 오린
눈 높이에서
사랑의 입김을
確認하는 것입니다.
그러난 번번히
없는 모습이 슬퍼
스쳐간 입김만으로
당신을
느낄뿐입니다.
2
바람소리
묻어오는
햇울음 소리
귀를 헐어
단 하번의 確認도 없이
빗장을 열어준
난
이미
생의 折半을 잘라
그냥
당신에게
더져 보는 것입니다.
3
하늘에 치솟는
날 것을 보면
헤프게 풀어내린
수정
더욱
멈출수 없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게서
約束 하나쯤은
받아 낸 셈이니
證據하는
歷史를 위하여
또 먼길을 떠나야 합니다.
4
풀잎보다 더 시린
가슴속에
숨겨온 징ㅇ
풀어 애어
깊은 강물로 還生하리니
잠깐의
머믓거림은
寬容하면서
깊이 잠긴
밤을 다시 열어
사랑의 ㅇ백
채워야 합니다.
갈망하는 모두에게
김 인 숙
날마다
빈하늘을 열고
虛虛로이 서서
바람
한줄
마음 아픈
당신은 누구 입니까?
갈림의 彼岸에 서서
훌훌이 벗어버린
사랑과 미움
所有와 無所有
容恕와 憤怒
그리고
모든
些少한 日常에도 沈黙하는 당신은
항상 같은 存在 이면서
순간마다 새로운 存在입니다.
充滿한 밤을 열고
어둠이
오면
모든 빈 자리에
채워지는
生의 유세를
無爲라고
말하는 당신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한데
이제 또 무엇이 모자라
삭정이 같은 손을
휘젓는 것인지요.
한줄 生命으로
끝가지에 올라 보려 하시는 거지요!
약력
* 김 인 숙
강릉사범 13회
성신여자대하교 대학원졸업
관동대학교 일어일문하과 강사 (현)
주소: 210-210 강릉시 노석동 한라아파트 106-405
tel. (0391) 41-2828
그리움은 잠들지 않는다
김종윤
잘 가거라 저리던 시간들
씨앗이 또 다른 씨앗으로 추수되기 위해
흐르는 것들은 멈추지 않는다.
살얼음 밑으로 시냇물은 부지런히 흘러가고
우울한 세상으로 계절을 살아오는 바람은 불고
밤새 빈 들녘에 무서리가 내려 앉듯이
그리움은 잠들지 않는다.
그것은 고향집 뒤란
정한수 퍼 올리던 두레우물처럼
끝없이 차오르며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늘 사립문 밖 서성이는 어머니의
여리고 섬세한 손길로
가위눌린 꿈을 깨운다.
잠시 풍경속에 머물다
숨어 있는 소리들을 흔들고 사라진
바람처럼 세월처럼
그것은
기억속에 가라앉은 언어를 일깨워
낮은 음계로 노래하게 하고
논두렁 밭두렁으로
신명나게 번져가던 쥐불 연기 너머로
가오리연을 펄럭이게 한다.
펄럭여
떠났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님을
개여울 위 부서지는 햇살로 반짝이게 한다.
낮게 내려앉은 도시의 잿빛 하늘
허전한 어둠과 시린 추위 털고 일어나
기약없이 견디어야 했던 가난함도
돌팔매 치며 저문 강에 풀어 보낸 슬픔도
갈아엎은 땅
봄마다 새순으로 돋아나는
씀바귀같은 그리움이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수상한 세월
낯선 사람들 모여 사는 타락한 거리에서
우리가 지켜가야 할 아름다운 것들
나누며 서로 가득했던 이야기들과
갈참나무 잎새 자지러지는 골바람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건너온 세월의 강가에 무수히 내려앉은 철새들
떠나온 땅을 향한 타는 그리움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기 위해
허한 정신 추스리며 차비해야 한다.
짐지어져 있는 시대의 아픔과 진실
나누며 더불어 기뻐하는 세상이기 위해
도시의 그늘에 가리어져 있는 아픈 삶들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세상 밖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서는 새벽
잘 가거라 저리던 시간들
그리움은 잠들지 않는다.(1955.1.1.)
유년의 흔적을 찾아서
김종윤
긴 망설임 끝의 추석 귀향길
가을 빛 흐드러진 들길을 달려
설레는 그리움으로 도달한
대관령 마루턱에서
문득
아스라한 바다를 배경으로 물결처럼 반짝이며
내 유년의 기억 속으로 재빠르게 비상하는
꼬마 물새떼들을 보았다.
부질없는 돌팔매질과
무수한 존재의 비상이 갖는 관계에 대하여
살아 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그것은 잠시 우울한 영혼을 적시며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어설픈 나이로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꿈꾸어도 노래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과 아픔에 대하여
짐짓 콧노래를 부르며
축축한 세월의 안개를 이끌고
낯익은 풍경속으로 하산했다.
늘 떠나고 싶어했던 이 길로
나는 왜 또 돌아오는 것일까
추억의 강가엔
할미새 한 마리가 꽁지를 까불며
파묻힌 유년의 꿈을 쪼아대고 있었다.
고향엔 모두들 안녕했다.
서리 다니던 유천리 감나무들도
경포호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던 달빛도
신새벽 불면의 끝을 뒤척이던 파도 소리도
내 유년의 눈물이 숨어 있는 옛집들도
두루 안녕했다.
현란한 도시의 빛과 소리가 다소 낯설고
빛 바랜 사진첩 속으로 사라진
흐린 기억 속의 시간들이 그리울 뿐
개울가 키 큰 미루나무들을 흔들며
산백을 넘어온 바람은
여전히 바다로 가고 있었다.
고향의 산과 바다와 더불어
세상살이를 견디어 온 친구들
벌거벗고 물장구치던 순수는
세월의 깊이 속에 가라 앉고
익숙한 타협의 언어들이 술잔에 부딪히며
해체된 표정 속으로 사라졌다.
섬세하고 여린 순정이 늘 그리워 하던 곳
때묻지 않은 약속들을 바람 속에 풀어 놓으며
청산과 같은 삶을 다짐하던 이곳에서
큼직한 세월의 강을 건너 온 우리들의 꿈은
왜 이리 작아졌을까
왜 이리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때가 되면
꽃도 열매도 마지막 잎새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유천리 감나무들
나는 무엇이 두려워
이 부끄러움을버리지 못하는가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눈물겨운 우리들의 싸움을 위해
짐짓 유쾌하게 건배할 때
가벼운 취기 속에 반짝이는
유년의 흔적을 보았다.
순결한 영혼으로 퍼덕이며 비상하는
눈부신 꼬마 물새떼들을 보았다.
약력
김종윤
강릉고 4회 졸업
육군사관학교 졸업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육군사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저서:남대천 은어떼
집:139-242서울 노원구 공릉2동 육사 아파트 723호 (972-0213)
직장:139-799 서울 노원구 사서함 77호 교수부국문학과 (970-2371)
동해의 아침해
김 지 도
바다를 밀치고
솟아오른
커다란 힘의 덩어리
아침마다
해마중하는
내 고향 사람들
내 고향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신작로처럼
내닫는 것도,
내 고향 어른들이
바다에서
그물코만큼 많은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것도,
모두
아침 햇살로
스며든 힘이
가슴,
가슴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무지개
김지도
산은
숲을 만들어
산새를 불러드린다.
산은 나비들의
춤을배운다.
산은
숲을 만들어
산새를 불러드린다.
산은 산새들의
노래를 모은다.
춤과 노래가
가득한 산,
산은
소나기가 씼어 놓은
파란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산이 그린 그림은
춤처럼 아름답다.
노래처럼 아름답다.
<약력>
*김지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강릉사범, 고려대학교 대학원졸업
*동시집 <박꽃>, 동화집 <동해를 떠난 멸치> 등의 책을 냄
*교육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및 해외 동포용 <한국어>교과서 집필위원
*현재 교육부 국립교육평가원 장학사로 근무함
*주소<서울 강북구 미아5동 403-52 전화02-980-2437
*직장<서울강남구 청담2동15-1
국립교육평가원 학력평가부 전화02-519-2754
창 ( 窓 )
김 학 근
산허리 감싸안고
굽이쳐 흐르는강
아득히 바라뵈는
산자락은 희미한데
조용히
서성이누나
창안가득 서린구름
산머리 도는 안개
창틈으로 꿈틀이고
난엽진 산등성이
앙상한 가지속에
유리알
맑은 가락에
멀어지는 그림자
파 도
김 학 근
검푸른 파도소리
모래밭도 울멍이고
갈매기 날개짓에
흩어지는 물결의 율
바위는
피멍이든채
깊은잠에 빠졌다.
그리움 되새기는
바닷가 부두에는
앗아간 바람갈피
하늘빛도 내려앚고
행여나
기다려보는
눈물에젖은 여인들
<약력>
*김학근
*1942. 10 20. 강릉
*강릉사범대학61회
*한국아동문학연구회회원
*해동문학:창으로 등단
*수필집<우리선생님 내친구들>
*현재:속초시 청호초등학교교감
대관령(2)
엄성기
연초록이
영마루에 마지막 피어 날 때면
산 자락엔
단달래 철쭉꽃이 곱기만 하다.
초록이 산 가득 짙어지면
산목련 하얀 꽃이
푸르름 속에서 더욱 아름답다.
산 꼭대기로부터 내려온
빛 고운 단풍이
아흔 아홉 구비를 돌아
산자락에 내려올 때면
영마루엔 낙겹이 지고
어느새 서리꽃이
하야게
피어난다.
엄성기 약력
* 강원도 강릉에서 남 (40)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 당선(70)으로등단
*한국아동 문학 작가상(87)강원도문화산(91)수상
*낸책: 동시집“산골아이”“그림위에 누워서”
“꽃이 웃는 고리”외 위인전 다수 펴냄
*주소: 강릉시 포남동 1005-11 초원apt 나-302
(039)646-2550
풍 경
엄창섭
홍장의 꽃물진 살결
실안개에 촉촉히 젖고
수초 물살에 흔들니다.
윤사월 군자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펄쩍 튀는 동해는
물보라에 젖은 강릉아낙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말아올린다.
청어 낚아올린 맑은 호수는
아침 식탁에서
원시의 바람으로 살아나고,
손금처럼 명백한
경포호의 수면은
하얗게 돋아나는 부새우로
일순간 눈부신 황홀이다.
초당리 솔숲위
고향 뒷산의 목화송이처럼
곱게 피어오르는 구름
바람에 새가 된다.
하늘이 깨끗한 날
엄창섭
한송사 그 신비의 범종 소리에
오대산 허리감은
천년의 물안개는 잘게 흩어지고
한겨울 풀어내린 달빛에 움추리던
산과 나무가 현현하다
불 고운 진달래 꽃에
영롱한 이슬 돋아나는
신선한 경포의 아침은
충만한 생명감을 안겨준다.
봄눈 녹아내린 경포 호반은
투명한 선율에 깨어나고
역겨움 모르는 초당의 하늘가엔
산구름 하얗게 바람에 새가 된다.
화살보다 멀리 더 높게
자유공간을 향해 나는
새떼들의 반짝이는 나래,
가슴을 여는 동해의 모래별에도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기쁨이 있어
하늘은 더 없이 깨끗하다.
새는 눈꽃으로 질 수 있다
오 세 희
아시나요 어머니
나 태어나던 날
환한 동백꽃 속 새 한 마리
붉은 가슴 할딱이며 노랠 불렀다는 걸
사랑 빛으로 풀어진 햇살
눈빛 푸른 서슬 지는 아침
세상은
남루한 바람만 부는게 아니 었다네요
가질만큼 있고
있을만큼 주는그래서 새는 즐거웠나 보다
오만도
고집도
흘흘 냇고
꽃진 자리에 꽃심는
스러질 수 없는 노래
그래서 새는 눈꽃으로 질수 없었을 거야
회 귀 선
오세희
U-TURN 신호를 기다린다
돌아가시오
날카로운 눈매 앞에서
언제부터인가 순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단세포 운동도 운동이냐
사도도 없이 반추만 한는 삶이 삶이냐
한 번도 궤도를 이탈해 보지 못한 달이
우주를 얼마나 안다더냐
앙칼지게 날 세우던 촉수도 있었다
넘치면 부어야하고
차면 내려야 한다고
늘쓰던 말들의 무게가
가슴으로 느껴질 때부터
차츰 무디어진 촉수
지금 차선을 바꾸기엔 이미 늦었어
질주하는 차량들의 투명한 그림자가
지뢰처럼 매복한 거리에서는
안전하게 안전하게
신호만 기다리면 되는거다.
약 력
오 세 희
* 강릉사범병중 17 기졸
* 부산 수영초등학교 교사
* 주소 : 013-102 부산 수영구 광안 2동 156-20 (9/3)
* 전화 : 051-753-2961
* 한국문인협회회원
왕 산 리
- 가을이 깊거던 -
이 충 희
가을이 깊거던 멀리 가실 엄두가 나시지 않거던 왕산리 초막으로
오시기바랍니다. 마타리꽃도 지고 소소리바람이 서둘러 떠날 채비
를 마련한 마른풀 목덜미를 스치며 가는 조금 쓸쓸한 왕산리는
소명대로 머물다가는 깨끗한 초목의 어진 향기로 가득합니다. 무성
하던 초목이 이제 막 떠나려합니다. 초목이 떠난 깨끗한 자리를 보
면 인간인게 여간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그 초목에
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끊임없이 배푸신 은혜 무언으로 주신
가르침 참으로 넉넉히 자연 그대로 위대하셨습니다. 가을이 깊거던
멀리 가실 생각 마시고 왕산리로 오시기 바랍니다. 스승이 게십니다
옛집에 관한 진술 1
이충희
1952년 부터 54년 까지 만 이태를 살던 집엘 갔었네
대문도 없고 부엌도 없던 단 칸 방
곤두박질친 난리통에 세들어 살던집
토담밑에 꽃밭을 일궈 봉선화랑 과꽃 채송화를 심던
비바람이치면 꽃밭보다 먼저 아궁이 그득 빗물이 고이던
얼마나 말이 없었던지
주인집 할머니가 날 벙어린줄 알았다던
인텔리 출신의 부모를 빨갱이로 둔
동갑내기 사내아이가 늘 고개를 떨구고 다니던
그 아이 뒷모습이 나무지개 사이로 보이던
그쯤엔 문아무개의 문폐가 달렸고
진초록 철대문이 버티고 서서
그 안을 조금치도 들여다 볼 수 없었고
밀주를 팔던 과부댁 그 집 마당에도
빨간 벽돌집이 들어섰고
온 오랍드리가 매화 향기로 자자했던 .
그 향기가 더러는 허기를 달래주던
솔솔 풍기던 술내가 매화 향기다
거기거기 같은 착각이 잠시. . .
주인집 할머니의 외손자였던 그 아이가
나무지개에 진달래 몇 가지를 환히 꽂고 들어설 것 같은
착각이 눈부시게 잠시 . . . .
약 력
이 충 희
* 강릉 출생 (1938년)
* 강릉사범학교 졸업
* 30 여년간 초등교사로 향리에서 봉직
* 현대문학 추천등단 ( 79 -82)
* 가을 회신 (79년), 마음 재우며 보는 먼 불빛(95년)상재
* 갈뫼, 산가치, 해안동인, 관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회원
* 관동문학상 수상
* 강릉문인협회 부지부장(현)
* 주소 : 강릉시 명주동 48- 1
* 전화 : (0391) 646 - 6381
고양이의 죽음
전희천
서울의 새벽
출근길이 바쁜 큰길 한가운데
잿빛 얼룩고양이 한 마리
죽어있다.
오고가는 자동차들의
엄격한 주황색 중아선에
납작하게
걸려있는 고양이는
서울의 열린 새벽
밝은 아침해가 등싯 떠올랐어도
믓사람들의 팽팽한 시선 끝에
구견지 헌종이 조각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채
도문지 살아본 적이 없는
한 점 주검으로
두눈만 퀭하니
서울의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冥 福
전희천
부음을 듣고 우울해집니다.
여러죽음을 접하는 이즈음이건만 이토록 무거운 감회는 왜일까요.
오늘 중앙병원 빈소의 영정 속에서 다시보는 선배의 모습은 생시의 그애로였습니다.
그모습을 보며 순간 생각나는 일은 80년 유럽순회 특파길에 런던에 들렀을 때지요.
선배는 ‘양식먹느라 고생했을꺼야’라며
하이드파크 공원벤츠에서 준비해오신 코펠로 손수 라며능ㄹ 끓여 주셨지요.
우리는 그날 몇해전 머저 세상을 뜬 양원방이와 함께
김치조각도 몇잎 넣은 라면을 어린애들처럼 맛있게 먹었지요.
그 당시는 80년 민주화 의 봄을 군부가 무참히 짓밟고 광주학살을 자행한 직후였지요.
선배는 국내의 정치상황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며
나와 나의 동료들이 일으킨 자유언론운도을 격려해 주셨지요.
그날 본사로부터 받은 첼렉스로 내가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사실도 잔하며 걱정해 주셨습니다.
선배는 늘 해외에서 근무하셨기에 우리들과의 직접적인 교유는 별로없는 편이었지요.
그러나 3공과 5공의 암올한 시애에 다른 해외 특파원들이 흔히 읽을 거리기사로 소일하던 때
선배는 스페인이나 남미의 독재정치와 그곳 국민들의 민주열망을 다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젊은 후배들에게 언제나 존경의 대사이었고 훌륭한 사표 이셨습니다.
선배가 간혹 귀국하시변 끈 소줏잔을 기울이며 국가의 미래와 언론의 용기에 관해
우리들과 흔쾌히 토론하셨고 후배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지요.
그런 직후에 늘 우울해 하시던 선배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곧은 언론을 실천하시던 동한 선배의 폐가 죽어가고 있었다니요.
미국에서의 치료도 무위로 사형선고를 받고 귀국하신 뒤에도
분수대를 통해 그 맑은 필봉을 드셨지요.
죽음을 목전에 주고도 그렇게도 더하고 싶은 애기가 있었던가요.
오늘 빈소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몹시 아파오믕ㄹ 견딜 수 없습니다.
분신자살, 무엇이 선배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했습니까.
오후 한낮에 산책을 나가신다며 어느 한적한 숲길에서 신나를 몸에 뿌리고 가신 선배,
무엇이 선배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했나요.
온몸이 불타고 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유신을 남김 없이 이세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까.
선배가 홀연히 떠난 이세상에서 후배을은 고독합니다.
허망하고 허탈합니다.
오탁된 이 시대에 바른 언론 맑은 언론인으로 살아오신 선배,
들리십니까, 우리들의 간절한 호곡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그렁저렁 살아가겠지요.
오늘도 선배의 빈소에 모여앉아 소줏잔을 기울이며
선배가 남긴 추억같은 일들을 서로 나누어가지면서도 우리들은 종내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쓸쓸한 얼굴이 되게 할까요.
세상은 바뀌고 선배가 그렇게도 갈망하며 애태우며 만즐고저 했던 미주화의 사회가 오고 있는데
이렇듯 모두가 긴운이 없고 즐겁지만은 앟은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선배가 가버리셨기 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미처 표출하지 못했던 어떤기분이, 아마도
선배가덜컥자리를 비운 이순간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못다한 일, 노력했지만 미력했던일, 최선을 다하지 못한일들, 그런희한들이
바뀌어지는 이 세상을 살며 새삼 선배의 죽음을 기화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은 아니지
선배가 가버리고 없는 우리들의 자리는 너무나 큰 공동입니다.
민주화, 우리가 그리고 고대하던 이날이 왔건만 아직도 시작인 이 싯점에 선배는 시작의 앞에서
온몸에 시나를 뿌리고 타오르는 불길로 온몸을 태우며 멀리 가셨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무엇이 그리도 선배를 가시도록 했습니까.
좀더 살다 우리들의 민주화가 꽃을 피울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생명을 끊으셨습니까.
고적한 숲길을 걸으며 가시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지나온 세월을 돌아 보셨습니까.
오랜 특파원 생활동안 외국에서 안타깝께 살아오신 세월을 되돌아 보셨습니까.
그래서 이제 돌아오셔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이때 이젠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불꽃과 함께 그 숲속에서 세상을 하직하셨습니까.
언제나 맔은 얼굴로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눈으로 후배들과 소줏잔을 나누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애기 하시곤 하던 선배
선배가 가시고 난 후 이제 우리들은 누구와 그런 애기들을 나눌수 있겠습니까.
먼 나라의 공원 벤치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도 티없이 맑은 정신으로
나라를 걱정하시고. 언론을 걱정하시던 선배,
우리들은 지금 살아남안 있음이 괴롭고 부그럽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켜보시시오.
진 달 래
전희천
얼푸른 하늘아래
어느 산허리 언 흙 속에서
시린 발끝 어루며
남모르게 깨어났다
바람 맵차운, 아직 깊게잠든 숲성을 흔들며
앙상한 가지마디위로
함성처럼 솟아난 이여
길고 어둔 피안의 세월을 굽이굽이 에우돌아
이 모진 땅에 다시금
붉은 심장 홍건히 풀어냈어라
메마른 시대의
그 어느 넋을 위한 진혼제런가
이슬처럼 맑은 영혼으로
아프게 타오르는 이여
어느덧 언땅이 풀리고
빛나는 햇살사이
산새들의 날갯짓에
침묵의 숲이 푸드득 각성할 때
그대여, 날으리가
아름다운 하늘 위로
약력
전희천(全熙天)
*45년 함경남도 불청에서 태어남
*병설중, 경기고, 서울대를 나와
*중앙일보 사회 경제기자를 하다
*광고회사 제일기회이사를 거쳐
*현재 금강기회전무로 재직중임
(편집자에게:졸지에선생님으로부터 문집발간계회긍ㄹ
통지받고 망설이다가 그동안처럼 적어 놓은 몇가지를
감히 보냅니다. 들께서
만드실 문집에 비집고 들자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부끄러움을
무릅씁니다. )
자택:서울 은평구 응암동 22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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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서울 조로구 원남동 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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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당신의 편지를 받는 날부터
정지자
당신이 오시겠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뒤뜰로 달려 갔습니다.
차곡 차곡 쌓아둔 장작 더미에서
참나무 한 아름 골라 두었습니다.
당신이 떠나신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광으로 달려 갔습니다.
여름내 심어 거둔 고구마랑 감자 한 삼태기 담아
벽난로 옆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당신이 출발했다는 련지를 받고
나는 종일 설레였습니다.
繡 놓아 만든 좌경 앞에 앉아
당신께 건넬 인사를 생각합니다.
당신이 휴게소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벽난로에 불을 피웠습니다.
활 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당신의 미소진 얼굴, 늠늠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빨갛에 빨갛게 숯불되어
당신을 기다립니다.
커피향이 은은히 풍기는 거실에
손 끝 뜨거원 호호 불어가며 벗긴 고구마랑
감자를 먹으며
당신과 나는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이렇게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운 당신의 편지를 받는 날부터.
繡 놓던 밤
정지자
밤새워 실 궤었더니
수틀 가득 학, 나비 춤추고
바위, 해 솟더라.
지아비 성큼 다가 설 발소리 들으며
날 밤 새는 아들 녀석
친구도 할 렴
손끝 정성, 인내 신어
正一品 쌍학 학 수 놓던밤
어머님 주신 繡 액자 바라보며
인견사 고운 빛 깔
옛여인의 마음 이었듯
한 올, 두 올,
꼬고 또 꼬고
물든손 몇 번이던가.
장생불사 부귀영화 죄뇌이며
그리운 님 바지춤 같은
댕기 머리 감아 내린 금실 은실 같은
설레임
긴 밤.
자손대대 물려 주고파
무명 치마 쪽 빛 그리움 새겨 새겨
한 땀씩
또 한 땀씩
수
놓는다.
해돋이 순간
조 무근
바다
하늘
숨 죽인
수평선
위로
봉선화
꽃물 손톱
토독
움트는
빨간 점 하나.
길
조무근
길을 간다.
실핏줄처럼
얼킨 길을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 지름길로 날고
등짐 진
달팽이는
긴 여행길.
자벨레는
제 몸뚱일
재면서 가는데
살아있는 건
모두 다
제 갈길 있는 걸까
오늘도 나는
실핏줄 미로를
헤맨다
질러서도 가봤다가
돌아서도 가봤다가.
<약력>
*조무근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월간문학 신인상 동시 당선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수상
*한국문협, 펜클럽 회원
*포항아동문예 연구회회장
*저서 동시집 ‘허물벗는 아이들’ 외 다수
*현재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근무
*주소<자택: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 포철주택단지 주택130호
(전화:(0562)83-2908)
<직장: “ 지곡동 포항제철동초등학교
(전화:(0562)279-4745)
월포리에 들르면
최명길
월포리에 들르면
그분을 만날 수 있으리.
그리운
사람
그분은 풀과
노닐지.
사람 만나기 어련운 세상에
월포리에 들르면
마나리.
정신이 높아 오히려 슬픈 분
낮에는 자갈논에 물을 가두고
밤에는 풀지.
물을 풀지.
별을 풀지.
處容喪歌
최명길
동해가 울어
달 뜨는 밤에
처용아, 춤을 추어라.
묽은 칼로 서서 춤을 추어라.
뉘 몸뚱어리엔들 역신의 피가 안들까.
가슴은 불꽃처럼 뜨거워져 춤을 추어라.
가랭이 네힌 水宮門 엿보다가
문밖으로 떠밀린 사내.
말라붙은 애간장 달빛도 검으스레
비늘 같은 길 선린 수풀로
이 산천 지신 밟듯 덩덩둥둥
처용아, 춤을 추어라.
아내를 앗긴 설움이사
저렇게 춤으로 달래
달 그늘 피빛 울음이사
한 마당 춤으로 달래
강 건너 먼 산 머리 풀려 어둠은 눕고
칼춤소리 흐느껴 울리는 신음
용녀야, 부르다가 지쳐 쓰러지면
허허벌판 깊은 해협 동해도 잠드는데,
바다왕이 울어
달 뜨는 밤에
처용아, 서러움일랑 안으로 잠가 놓고
춤을 추어라.
그대 곁
최 숙 경
안녕 안녕
그대 내 눈에 침욱의
뿌리 내리고
바다로 간다
슬픔 앞에서 슬픔이 부서진다
내 이제껏 뛰어다닌 마음들이
홀로 서 있는 미사위에
끝내는 흐느낌이 되어
하늘 떠도는 혼령이 되어
더 큰 침묵이 되더라도
그대에게로 가는 무성한 언어
그대 이름으로만 남아
온 땅의 별이 되게 만드는
그대 옆에 눕기 위하여
바다로 간다.
유 성
최숙경
어둠을 열면서
그렇게 세상사 눈을 뜬다
어둠을 넘어
별빛들 몹시 흔들리더니
내일의 꿈속에 날아가 꽃히는 화살
밤바람에 실려
처음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너를 찾아
올라가도 올라가도
아늑한 숲은 없어
꽃잎 지고 바람부는
십자가탑에서 부르는
요정의 메마른 노래위에
영원의 궁전에서 부르는
사철 가느다란 전설속에
젖어있는 노래위에
아직은 어둠이 채가시지 않을 동안
한송이 꽃을 피우고자
무엇으로도 바꾸지 않을
너만 바라보며 날아간 화살
구석은 구석끼리 따뜻하다
최익자
<타임 스퀘어>의 구석에 어두운 시간들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벽을 붙들고 더듬거리면서 들어갑니다. 불빝이 무대 한 가운데를 비치고 있습니다. 빛이 내게 오렵면 여러개의 의자와 탁자를, 몇 개의 화분 그 사이의 넓은 이파리 들과 담배 연기를 거너야 합니다. 빛이 오다가 모두 꼬꾸라집니다. 때로는 내 발 및까지와 기진해 버립니다. 손을 내밉니다. 내가 그 빛에 결려들어 나동그라집니다. 구석의 어두운 벽들이 나를 일으킵니다. 벽에 기댑니다. 구석은 구석끼리 어둠을 환하게 채웁니다. 어둑한 벽과 의자들. 시간들이 밝아 집니다. 어둠의 빛이 따뜻합니다.
가을과 겨울사이
최익자
입동 막 지난 나무 위에
아직 가을이 걸쳐있다.
태양이 내속에 저벅거린다
껑충한 키, 바람이 후리쳐도
남아 있는 열매 나는 단단하다
빈틈없이 단단하게 채비를 하고
겨울을 건너다본다.
빈곳이 없으니까
생각의 길은 지문투성이다
거뭇거뭇 시간의 지문이 찍힌
온몸으로 빛을 내며 절망하는 순간
열매는 그날을 위해
오래 머뭇거린다.
대관령의 사계
홍송부
春.
아슴 아슴
피어오른
연록색의 맥박
잎새의 여울따라
동양자수 용틀임 안고,
아래뜸에서
위뜸으로
위계질서
순리 일깨운다.
夏.
산마루 끝자락
동해를 굽어보면
환상의 雲海
산허리 끌어안은
盛夏의 대관령
신선의 욕실 이련가.
창공을 찌르는 풍만한 신록
성실의 訓
일깨운다.
秋.
밤과 양지에서
채색한
수채화 물보라
만추의 향연되어
정상에서
계곡으로
잇는
자연의 섭리
어버이 참사랑
일깨운다.
冬.
수은주에 민감한 산
대관령
사계의 최후맞으면
산야는
긴
겨울 축제에 빠진다.
황홀한 혹한
앙상한 고독
은근과 끈기로
승화시키는
빼어난 기상
인내의 지혜
일깨운다.
春夏秋冬
민족을 생각한는 山
대관령.
歲 月
홍송부
어쩌나
세월이 노랑 파랑 백발이
풀잎새 스쳐간 이슬처럼
파랑살 서른하나땐
변화
개혁
체증
폭행
잡동사니 소음은
아랑곳없이
바쁜 하루도
툇마루
소슬바람 휘여 잡고
세상 이야기
끝이 없었것만
거 참 세월아ㅣ
빡빡
탱탱
톡톡
한치의 여유도 매말라
아쁠사
풋고추
보리향
꼴각 넘기던
그 시절
그 향수
세월아
너나 탓 말고
아짜피
당신이 만드는 세상
인심한번
짚어 가면 어쩔꼬.
회원 작품 칼럼과 비평 |
김일수(훈민정음 파일)
박양자(훈민정음 파일)
서정주의 시
최명길
1. 永遠의 詩人
한국 시단에서 徐廷株만큼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시인은 달리 없을 것이다. 그의 시는 10대의 청소년층으로부터 원로 교수들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해서 폭넓게 읽히고 있다.
또한 徐廷株만큼 긴 시대를 통해 시 세계의 확장과 변모를 거듭하면서 한국시 발전에 기여해 온 시인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시는 193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과 지지 속에서 한국 시의 큰 산맥으로 군림해 왔으며, 그가 배출한 후진들과 열렬한 추종자들로 오늘날 한국 시의 주류를 형성해 온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시는 언제 읽어 보아도 사상의 깊이와 예지의 높이와 정서의 폭을 새삼 느끼게 되며, 그의 시 세계에 젖어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하는 魔力과도 같은 힘이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時流를 타고 독자들을 매혹하는 類의 시나, 단순한 실험시에서 느끼는 인기와는 본질을 달리한다. 그리하여 그가 발표하는, 한 편 한 편의 시는 한국 시단의 주목을 끄는 놀라움이었으며, 그때마다 우리에게 開眼을 주기에 족했고, 그의 변모는 그대로 한국 시에 커다란 애폭을 긋는 사건이었다.
徐廷株는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 대로 ‘永遠의 시인’이니 ‘絶對의 시인’이니 ‘神話的 존재’니 하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한국 시단 최대의 산맥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서정주는 어떤 면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두고 두터운 독자층으로부터 갈채와 존경을 받아 왔으며, 한국시사를 이끌어 온 그 마력과도 같은 힘이 무엇이었는지, 그의 40년 가까운 창작 활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徐廷株 選集을 읽어 가면서 학생들이 徐廷株의 시 세계에 접근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소견을 써 보고자 한다.
2. 言語의 마술사
徐廷株 시에 우리가 첫째로 이끌려드는 것은 그의 대담한 언어구사이다. 이것은 그의 초기시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그의 장점이었다.
흔히, 시에 사용하는 詩語는 별도로 있어서 아름답고 세련되고 고상한 언어라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시어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저속하고 생경(生硬)한 언어들도 徐廷株에게 걸려들면 훌륭한 시어로 빛이 난다. 시어 선택에 있어 옹졸하게 발발 떠는 소심성을 떨쳐 버리고 아무말이나 대담하게 그의 詩心에 담그면 야릇한 怪力을 발휘한다. 그래서 서정주를 ‘言語의 마술사’라고 평한 사람도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꽂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자화상」 일절)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자꾸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뜨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늬바람이랑 별이 모두 우습네요.
풋풋한 山노루 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굽이 강물은 西天으로 흘러내려. . . . . .
땅에 긴 긴 입맞춤으로 오오 몸서리친
쑥잎을 지근지근 이빨이 희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을 달더라 달더라
웃음같이 달더라.
( 「입맞춤」 전문 )
仙旺山 그늘 水帶洞 十四 번지
長水江 뻘밭에 소금 구워 먹던
증조 할아버지적 흙으로 지은 집
오매는 남보단 조개를 잘 줍고
아버지는 동점 서른 말 졌느니
( 「水帶洞 시」 일절 )
「花蛇集」에 실려 있는 그의 초기시에서부터 그는 언어구사의 대담성과 그 소화력을 보이고 있다. 인용시에 보이는 대담한 사투리와 속어들, 徐廷株가 아니면 감히 엄두 내지 못할 언어 표현이다. 언어구사의 대담성은 이제 와서는 圓熟境에 들어가 그 措辭(조사) 기교가 天衣無縫(천의무봉)에 가깝도록 되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주 그만 놓아 버리게 할 만큼. . . . . .
소 고삐 놓아 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같이 뽀르로르 기어 오르게 할 만큼. . . . . .
기어 올라가서
진달래꽃 꺾어다가
노래 불러 노래 불러
갖다 바치게 할 만큼. . . . . .
亭子에서 점심 먹고 있는 것
엿보고
바닷속에서 龍이란 놈이 나와
가로채 업고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 만큼. . . . . .
온 고을 사내가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오게 할 만큼
온 고을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 다 나와서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프게 치게 할 만큼. . . . . .
(「수로부인의 얼굴」 전문 )
산문적인 설화 이야기를 그의 시적 정서 속에 한 번 담갔다가 건져 내면 이렇게 자연스럽고 감미가 배어드는 훌륭한 시가 된다. 어렵게 써내는 기교적인 설익은 시와는 달리, 편한 마음으로 술술 풀어내는 자연스런 언어 리듬과 정서를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맛 볼 수 있는 시다.
시가 되지 않을 듯한 제재들을, 시어가 될 수 없을 듯한 언어들로 옷을 입혀 지극히 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서의 과즙이 흐르는 시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그가 천부의 시인이며 언어의 마술사임을 말해 주고 있다.
3. 不斷한 變貌와 높은 詩精神
徐廷株 시의 또 하나 위대한 점은 詩世界의 부단한 변모와 높은 시 정신에 있다고 하겠다.
벌레는 몇 번의 탈바꿈을 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한 마리의 나비로 날아 오른다고 한다.
徐廷株는 하나의 세계를 열고 들어가 시의 광맥 깊은 곳까지 송두리째 일구어 내고 나면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또 새로운 광맥을 찾아 몸부림쳤고, 그렇게 해서 새 세계를 찾아내면, 그 세계를 철처히 노래부르다가 또 새 세계를 열어가는 참담하리만큼 처절한 시 정신의 투쟁과 부단한 탐구의 편력을 거듭했다. 그는 보다 넓고 심오하고 큰 세계로 한 단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시인이었다.
알다시피 徐廷株의 20대는 「花蛇集」이란 시 세계가 보여 주는 原罪의식과 官能과 벌거벗은 생명의 肉聲으로 몸부림쳤다.
일제의 수탈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말, 굶주림에 얼굴이 누렇게 뜨는 고향 사람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는 고향을 뛰쳐 나왔다고 한다. 이 때부터 서정주는 프랑스 악마파 시인 보들레르에 심취되어 버린다. 보들레르가 파리와 구더기와 거지들을 노래하듯 그는 원죄를 짊어진 무거운 죄의식 속에서 징그러운 ‘뱀(花蛇)’을 노래하고, 천형의 죄인 ‘문둥이’를 노래하고 뜨거운 관능으 ㄹ거침없이 노래하고, 방랑에 몸을 맡긴 채 통곡을 쏟아 놓는다. 이것이 세칭 ‘생명파’로 불리는 徐廷株의 시세계다.
23때 씌어진 ‘自畵象’은 「花蛇集」 시대의 서정주를 이해하는데 여러 모로 좋은 작품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구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 . .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은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어 가고 어떤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 시는 서정주의 젊은 시절의 삶과 혼이 감동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이 시는 마치 서정주가 특수 혈통을 실토한 고백처럼 오해받기에 족한 작품이나, 그렇지 않다. 보다 높은 차원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과 1930년대의 젊은 고뇌의 실토로 해석해야 한다. 1행이 보여주는 숙명적 종 의식과 (작자의 해설에 따르면 반만년 민족사의 종의식) 처절한 가난, 7행이 보여주는 방랑의식, 9행의 죄의식, 10행의 천치의식, 둘째 연에서 보여주는 피가 끈적이는 슬픔과 아픔의 승화, 이것이 생명의 통곡을 토해내던 시절의 서정주의 모습이며 그 시대 젊은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문둥이 전편)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우리 둘이는 왼 몸이 달아. . . . . .
(「대낮」의 일절)
땀에 누워서 배암같은 계집은
땀 흘려 땀 흘려
어즈러운 날 엎드렸다.
(「麥夏」의 일절 )
위의 시들에서 모이는 것처럼 原罪의 業報를 짊어진 고통 (「문둥이」), 동물 세계에 가까운 관능 (「대낮」 「맥하」)은 뜨거운 생명력의 발산임에 틀림없었고, 이런 대담하고 절실한 시들로 해서 서정주는 특이한 체질의 시인으로 오해와 비방가지 받기에 이르렀다.
1930년대 말에 서정주는 생명의 통곡을 열병같이 앓더니 여기에 끝내 안주하지 않고, 1940년대에 들어오면서 돌연 엄청난 변모를 시작한다. 언제 혼돈과 고뇌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가시피 깨끗이 씻어버리고 유현한 불교적 인생관을 바탕에 깔고, 고요히 일렁이는 호수같은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노래부르기 시작한다.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윰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 오르는 이 가슴 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일절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푸르른 날」 전문)
초기시의 狂氣에 가까운 관능과 통곡을 찾아볼 수 없고, 조수처럼 밀려드는 사랑과 그리움의 환희로 가득 부풀어 있다.
‘귀촉도’에서 그의 사랑과 그리움은 드디어 겨레의 전통적 정서인 이별의 한으로 발전하고, 여기에서 그의 사랑과 정서는 불교의 바다를 건너 저승까지도 따라가는 깊고 그윽한 영혼의 흐느낌을 듣게 된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
울울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들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歸蜀途」 전문)
고려 속요 ‘가시리’나 黃眞伊, 그리고 ‘진달래꽃’에서 보여준 金素月의 정서가 이승 세계의 극한적 정서라면 徐廷株의 ‘귀촉도’ 시대의 모든 시편에 보이는 사랑의 정서는 이승에서 저승까지 넓혀진, 깊고 아득한 공간적 폭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
徐廷株는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민족 전통 정서와 불교의 내세적 정서에까지 밑도 끝도 없이 넓혀 가더니,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새 세계인 동양의 예지와 선인들의 광명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된다.
가난이야 한낱 襤褸(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山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을 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靑?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無等」을 보며)
詩로써 세상을 달관한 밝고 높은 東洋的 叡智와 정신의 깊이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는 그는 鄭芝鎔의 감각적 언어나 김영랑의 정서적 언어를 이미 훨씬 뛰어넘어 시성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옛 동양의 지혜들을 연상케 한다.
이 시는 6‧25 직후 서정주가 전남 광주에서 조선대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의, 경제적 궁핍에 허덕일 때의 작품이다. 물질적 가난을 ‘남루한 옷’에 비유하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자식들을 ‘청산이 지란을 기르듯’ 깨끗하고 품위있게 기르기를 터득한 지혜, 어떤 어렵고 가난한 처지에서도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정신의 경지는 凡人(범인)의 정서와 생각이 도달하기에는 지극히 높은 시의 경지다. 좀체로 자신을 낮출 줄 모르던 梁株東 박사도 이 시에 감탄한 나머지 ‘몇 번 태어나서라도 이와 같은 시 한 편만 쓸 수 있다면 더 소원이 없겠다’고 실토한 일화가 있다.
光化門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온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온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을 광화문 -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라.
(「광화문」의 일절)
어둠이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上里果園」의 일절)
1950년대의 시편들에서 아무렇게나 골라본 싯구에서 우리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동양사상의 깊이와 높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거 동양의 큰 철인들과 지혜들은 이 경지에 도달하면 어떤 도에 통달했다고 해서 새 세계를 더 헤쳐나갈 기력도 의욕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서정주는 그 아스라한 높이의 동양적 예지에 만족할 줄 모르고 또 다른 새 세계를 갈망하는 몸부림의 진통을 겪다가 드디어 신라 세계를 발견한다. 신라는 우리 민족 사상과 정서와 광명의 원천이다.
그가 새 세계에 도전하며 몸부림치는 진통은 ‘꽃밭의 獨白’에 잘 나타나 있다.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開壁(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 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海溢(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꽃밭의 독백」 전문)
인간의 정서세계와 행동세계와 재미세계를 속속들이 맛본 후 한계성을 느낀 작자는. 항상 새롭게 열리는 새 세계로 비유되는 ‘꽃’ 앞에 서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하고 혼신의 힘으로 새 세계를 갈망하며 몸부림치더니, 그 거대한 문이 ‘삐걱’ 열리면서 신라의 햇살이 확 밝아오고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 것이다.
門을 밀고서 房으로 들어가듯
門을 밀고서 新房으로 들어가듯
門을 열고 나와서 여기 좀 보아.
門을 열고 나와서 여기 좀 보아.
매가 이끄는 마지막 이 곳에 와서
나는 이렇게 알읍니다.
「여기는 잊었던 내 살이라」고
(「?? 의 편지1」 일절)
이렇게 해서 신라의 정서세계에 도달한 서정주는 ( )부인의 신선수행이나 선덕여왕과 志鬼, 水路부인 등 신라인의 사랑이야기와 신라의 신선사상과 불교사상에 흠뻑 젖어서, 역사 속에잠자던 신라인들의 삶을 자유자재로 현대화하면서 독자들을 현혹시킨다.
여기가 서정주가 도달한 마지막 세계이거니 했는데 그는 또다시 변모해서, 신라와 불교와 샤머니즘과 동양사상 등이 보다 깊숙한 정신세계로 융화되어 이젠 그 깊이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젠 꽃밭에 서면 꽃의 정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연못가에 서면 물귀신을 불러 내어 더불어 중얼거리고, 산과 구름을 대하면 산과 구름과 더불어 대화한다. 요즈음 서정주는 수십명의 동자까지 거느리고 사는 도인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그의 시적 경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현생의 모란꽃이 제일 좋게 핀 날,
처녀와 모란꽃은 또 한 번 마주 보고 있다만,
허나 벌서 처녀는 모란꽃 속에 있고 전날의 모란꽃이 내가 되어 보고 있는 것이다.
(「因?說話?」의 일절)
이 경지에 이르면 그는 시로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숨쉬는 시선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다양한 스타일
부단한 시 세계의 변모, 높은 시 정신과 더불어 서정주에게서 또 하나 높이 살 것은, 그의 시는 어느 한 가지 방법론이나 기교에 매이지 않고 스타일 면에서도 다양하고 자유분방하며 그 율조도 퍽 자유롭다는 것이다.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
아! 미치게
짙푸른 하늘.
나 항상 나
배도 안 고파
발돋움하고
돌이 되는데.
(「小曲」 전문)
위와 같은 대담한 형식의 단시에서 부터 「上里果園」 「山下日誌抄 」와 최근의 「질마재 神話」 같은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그 형식도 다양하고 그 율조도 시 내용과 혼연일체가 되어 변화무쌍하다.
그의 시는 3음보의 전통적 율조를 비롯하여 파격적인 음성상징까지 서슴없이 활용한다.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라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일절)
시는 내용과 형식이 일체가 되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감동이 배가된다.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날은다.
(「鶴」의 일절)
이 시에서는 유유히 하늘을 나는 학의 몸짓을 느끼게 하고, 출렁거리는 작자의 마음의 물결을 느끼게 한다. 시의 내재율이 내용과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밀어내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드로부터
아주 내여 밀듯이, 향단아.
(「추천사」의 일절)
이것은 흔들리는 그네의 몸짓과 춘향의 일렁이는 그리움이 조화되어 표현된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시의 형식은 내용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시인들의 작품을 보면, 시의 내용과 형식 사이에 불협 화음을 이루어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많다. 서정주가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어느 시편을 펼쳐 보아도 형식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고 내용 이상의 멋과 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담한 형식과 다양한 스타일과 무궁한 율조와 언어구사로써 사랑의 정서에서부터 높은 사상에 이르기까지, 거지, 과부, 문둥이로부터 신화 ‧ 전설의 주인공과 신선에 이르기까지 어떤 제재건 서정주의 에스프리에 걸려들기만 하면 차원 높은 시로 승화되는 魔力, 이것이 서정주의 무서운 힘이다.
5. 한국의 자랑
서정주의 시는 이와 같은 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소리도 무던히 들어 왔다. <현실 도피자의 시>니, <구름 위에서 사는 시인>이니, <회고병 환자>니 하고, 이 각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누이의 어깨 너머 / 누이의 솜틀 속의 꽃밭을 보듯 / 세상은 보자」고 노래하고 있는 그의 시에 열화같은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나, 이것은 서정주의 방대한 시 세계와 그 높이와 깊이의 진면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면만을 들어 흠으로 지적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한국 시단에서 서정주는 가장 높은 봉우리고 가장 높은 정신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 시단에 쌓아 올린 그의 공적은 엄청나게 크고, 그가 드리우고 있는 시 세계의 드늘은 한국 시인 모두를 거느리고 쉬게 할 만큼 넓다.
학생들은 한 두 편의 시편으로 서정주의 거대한 시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속단하지 말기 바란다. 여러분의 정서와 사상의 성장과 함께 서정주의 진면목이 서서히 이해될 것이다.
한국 시단에 시인 서정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로 자랑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약력)
‧ ’58년 강릉 사범 학교 졸업
‧ ’62년 서라벌 예술초급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76년 관동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 강릉고, 강릉 여고 등에서 교사 생활 30여년
‧ 현 평창교육청 장학사
(주소)
자택: 강릉시 옥천동 13-4 1/7 (전화 : 0391 - 647 - 3536) \ 우편 번호 (210-090)
직장: 평창군 평창읍 평창교육청 (전화 : 0374 - 32 - 2614) \ 우편 번호 (232-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