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성당 전체에서 아홉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며 대전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 바로 공세리 성당입니다. 신유-병인박해 때 모두 32분의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성지이고,‘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어 연 3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피정를 통해 교육받고 있으며, “내포 지방 및 병인박해”의 역사적 가치로서의 박물관으로 충남도 지정 144호로 등록 되어 있습니다. 성당자체가 지닌 신앙의 요람과 순교성지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어 년간 20만며 이상의 내 외국인들이 순례를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성당으로서 명성을 갖고 있는 관계로 영화 또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명성이 자자 한 곳이도 합니다. |
대전교구에서 최초로 설립(1890年)된 공세리 성지·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역사적으로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포구였었다. 조선조 성종 9年(1478年)부터 영조38年(1762年)까지 공세 곶 창고지(貢稅穀倉庫地)였으나, 1922年 10月8日 성전을 건립하여 현재의 성당을 봉헌하였습니다. 공세리 성당의 오랜 역사 안에는 1785年대 부 터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살았던 교우 촌이 형성되었으며, 신유(1801)―병인박해(1866)를 맞아 신앙을 증거 하다 32분의 선조들이 수원, 서울, 공주에 끌려가 고문 ·옥사· 참수 형 등으로 순교하게 됩니다. 한편,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성당으로 모셔져 납골 식 순교자 현양 탑을 건립하여 32분의 유해를 모시고 있으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대를 마련하여, 방문하는 순례 객들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순교로 지켜온 120년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체험하고 갈 수 있는 신앙 믿음 터이기도 합니다. |
커다란 고목과 아름다운 철쭉과 꽃잔듸 그리고 성모님이 순례자를 맞아 주시는 언덕을 올라 성당으로 입당하여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부활을 기다리는 마음을 정화한 후 성지순례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성당앞에서 사진촬영을 갖은 후
성당 옆 한적한 오솔길로 다가 갔습니다. 공세리 성지 언덕 북사면을 따라 이어진 이 길에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14처가 마련돼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피땀을 흘리신 예수와 같이 우리 선조들도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시대가 가져온 험한 박해의 시기를 겪었던 것입니다.
3형제를 박물관에 모시기 전에는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박의서(사바스), 박원서(마르코) 그리고 박익서(본명 미상) 3형제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이들 형제들의 잠자리를 말없이 지켜보시던 성모님 이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 중에는 전국 곳곳에 이름도 채 남겨 놓지 못한 채 오직 천주를 모신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무명의 순교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들은 성거산 성지와 신리성지를 참례하면서 확인 한 적이 있습니다. 무명 순교자님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성모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부활하실 주님을 기억하고 설레임으로 기다리며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신 32분의 순교자를 위하여 그리고 진리에 반한 세상 일들을 바로 잡아 달라는 요청과 내적가난과 겸손으로 일관되게 평화의 길을 걷게 해달라는 기도로서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순교현양탑입니다. 공세리에는 모두 32명의 순교자가 계십니다. 현양탑에는 28분의 순교자가 모셔져 있으며 남어지 4분은 박의서 사바스, 박원서 마르코, 박익서( 본명 미상) 비롯하여 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박씨 삼형제에 대하여 구전되어 내려 오는 몇가지 행적은 있지만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자세처럼 죽음 앞에서도 천주께 기도 드리며 의연한 신앙심으로 순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조촐한 제물을 진설한 후 제주를 올린 후 모두 격식을 갖추고 절을 드렸습니다. 이 행위는 조금 더 순교자님들을 공경하고 그 분들에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내적가난과 겸손을 통하여 올바른 순명의 길로 나가겠다는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자세 확립입니다.
다함께 성가를 부르고
기도로서 순교자님들을 향한 마음을 바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을 찾아 그 시대의 교우촌을 살필 수 있었으며 공세리 성당의 건축당시 모습과 한불통상조약으로 인하여 천주교를 인정하는 교서와 성직자들을 위한 통행증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서 공세리 초대,2,3대의 주임신부님들게서 사용하시던 교구들
그리고 각종 역사물을 참관하였습니다.
박물관 참관 후 초대신부님의 성함을 따 만든 드즈니광장에서 순례인증 사진촬영을 갖았습니다.
성물방에 들러 성물들을 챙기시고
다시 광장에 모여 스스로 아름다운 공세리 성지에 성심의 인목(人木) 한그루씩 심어 보았습니다. 이 아름다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아름다움은 순교라는 결과가 만든 아름다움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 짜투리 시간이 생겨 성지 순교 꽃동산에 트레커들을 모시고 순례사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무척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순교 꽃동산에서 촬영을 마친 후 포르투칼 교구 관활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조선 천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가 맺은 여러가지 순교, 전교에 관련된 일과 예수회의 교육적 사업, 성프란치스코회의 영성적 진출, 천주실의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세베리노 형제로부터 청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위하여 피정의 집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공식적인 성지 참례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찬기운이 남아 있는 성지언덕에서 점심을 챙길 수 없어 고심했습니다. 일전에 통화를 했던 박물관 지기 젬마자매님께 부탁하여 피정의 집을 관장하는 수녀님과 통화, 피정의 집 식당 일부를 빌렸습니다. 부활 달걀 준비관계로 비좁다고 걱정하시면서 몇명은 서서 드셔야합니다.(웃으시며) 하는 말씀이 인상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시간을 맞춰 식당을 찾자 화사한 부활 달걀 바구니가 반겼습니다. 식당 가득한 부활 바구니~~ 앗사라는 소리가 저절로... 이렇게 많은 부활달걀 밭에 앉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일도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항상 저희 성지 순례단에게는 이런저런 일로 은총을 내려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저만에 생각일까요? 그리고 도시락 반찬을 서로 나누며 함께 어울려 먹는 일, 역시 다른 순례단에서는 찾기 어려운 광경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성지 성직자께서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적가난과 겸손이 깃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성지를 떠나 외암마을로 떠날 시간입니다. 4월에도 함께 해 주신 형제, 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알렐루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
첫댓글 우리들의 모습은 꽃보다 더 예쁘네요. 부활 축하합니다.
그럼요. 사람이 더 예쁘죠~~~
4월 트레킹의 모습을 상세히도 담아내셨네요.
생각없이 찍힌 사진들이... 와! 모두 멋진 작품입니다.
사진 설명도 훌륭하십니다. 수고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형제님과 자매님 동행에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부활의 기쁨 함께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