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이면서 서울 다음으로 큰 대도시라고만 알지 사실 부산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공원과 같은 휴식 공간을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여타 항구도시처럼 대단히 복잡한 도시라는 인상만 갖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부산은 웬지 정감이 간다. 그 옛날 신혼 여행때 들렀던 태종대와 자갈치시장 그리고 부산 용두산 공원은 꿈같이 나의 기억속에 어렴풋이 정겨운 추억으로 살아 있다.
지난번에 금정산에 올라 고담봉에서부터 남문에 이르기까지 좌우로 보이는 모습을 보았지만 남쪽에 위치한 백양산은 또 다른 부산의 모습을 볼수 있다기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 동안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서 가지산 주변은 거의 다 둘러보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이곳 생활이 다하기 전에 못 가본 산을 찾아 뵈어야지 하는 생각에 지난번에는 천성산을 갔고 뒤늦게 인사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다. 낮은 산이라고? 부산시민과 애환을 갖이 하며 그 누구나 포근히 품어주는 역시 훌륭한 어머니산인데...
오늘의 산행은 사상역에서 신라대학쪽으로 올라 백양산을 거쳐 동래 금강공원으로 하산, 온천욕을 즐길 계획으로 울산에서 노포동행 직행버스에 오른다(07:40).
노포동에서 전철로 사상역 도착하니 09:30분이다. 경부선 기차길 굴다리를 지나 삼거리에서 백양산 들머리로 접어든다. 15분 솔밭길을 오르니 좌측에 신라대학 건물이 보인다.
길이 여러 갈래 나있지만 무작정 위를 향하여 오르는데 소나무가 빽옥한 저 편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샘터가 있는 모양이다. 가까이 가보니 사랑받을 만한 좋은 샘터다. 시원한 물을 한껏 마시고 패트병에 그득 채우고 백양산 가는 길을 물어보니 친절히 안내해 준다.
임도와 소로를 따라가니 우측에 샘터와 체육시설이 있고 10여분이 휴식하고 있다. 이 지점이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다. 가파른 길에서 30여분간 찜찔방하고 나오니 초가을을 연상케하는 시원한 바람결을 타고 한 눈에 들어오는 부산시가지 모습에 나도 몰래 환호성을 지른다.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아이 둘과 올라오신 한 아주머니가 참 좋지요 하며 친절히 알려준다. 삼각봉(454m) 암능에서 이제껏 올라온 로정을 되돌아보고 바로 아래로 김해공항과 낙동강변의 넓은 평야, 저 멀리 을숙도, 삼성자동차공장이 있는 녹산공단,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총 6개의 다리.
바로 남으로는 구덕산이 높이 솟아 있고 동으로는 백양터널, 서면, 철도 정비창, 영도, 신선대 부두... 이곳저곳의 눈부신 발전상을 눈에 담는다. 디카는 건전지를 빼놓고 와서 무용지물. 날씨도 좋은데......
애진봉으로 향하는 사면은 소나무가 식재되어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 산불이 났단다. 경사지를 오르니 정성껏 쌓아올린 돌무더기가 백양산 정상(641m)이라고 반겨 준다. 동서남북에 긴 의자가 있고 주변이 모두 풀이라 조망하기에 좋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발아래 짙푸른 녹색바다, 오똑 솟은 놀이기구. 숲속에 조용히 피어있는 한 송이 백합같은 월드컵 경기장을 둘러보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홀로 북에서 왔수다하니 반기며 떡을 주고 소주도 한잔하라 하신다. 부산시민의 정겨운 목소리와 푸근한 인정도 함께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한없이 나부끼는 풀잎은 올해도 어느덧 입추가 지나 가을로 깊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우주의 순환은 정확하게 예전모습 그대로 가을 옷을 잎히려는 모양이다.
봄의 새싹을 보며 좋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푸르름도 잠시잠깐, 이제부터는 열매를 남기는데 주력하다가 우리의 시야에서 훌쩍 떠나갈 것이다. 있을 때 잘해, 모든 것이 잠시 잠깐씩 나와 인연을 맺다가 흩어지고,
나도 자연도 모두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야. 우리의 후손도 오늘 우리가 휴식하며 좋아하는 자연을 찾아 심신의 피로를 풀고 외로움을 달래며 우리의 뒤를 잇겠지.....
정상을 뒤로하고 북쪽 능선길로 20여분 가니 만덕터널과 최근에 조성된 듯한 아파트단지가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이제부터 제법 급경사길이다. 미끄럼에 주의하면서 한참을 내려가니 만남의 장소라는 팻말이 보인다. 어린이대공원과 남문, 만덕터널로 가는 갈림길이다.
소나무 사이로 넓은 마루까지 여기저기 있어 산꾼들간의 만남의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남문쪽으로 조금 더 가니 완만한 경사지에 역시 소나무가 빽옥한데 부드러운 흙내음과 솔향기 맡으며 솔잎 낙엽 배게 삼아 오침을 즐기시는 분들, 식사하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이 여기저기다.
그 누구와 점심을 같이 했으면 하는데 같이 할 만한 분이 아니 보인다. 끼어 들기도 그렇고 한쪽에 앉아 자리를 잡는다. 먹거리를 꺼내 홀로 얌얌하는데 마늘과 땡초를 된장에 찍어 먹어서인지 배가 약간 쓰려온다. 나도 드러누워 30여분 오침을.....
눈을 떠보니 10분전 3시다. 카프치노 커피향으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소나무간격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오래전에 식재된 것 같다. 이렇게 사랑 받는 휴식처가 되었으니 그분들이 고맙다.
그 옛날 청담동 한전본사 근무시(81년) 청평 양수발전소 인근 호명산에 잣나무를 심었는데 그 녀석들도 지금쯤은 이렇게 성장해 있겠지 한번 가보고 싶다.....
만덕터널위로 남문에 도착, 유명하다는 산성막걸리 한잔 할까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설겆이 하시는 아줌마가 이리로 오라고 한다. 한잔에 천원이라며. 사상역에서 백양산 정상을 거쳐오는데 어떤 분이 남문에 가면 산성 막걸리 한잔하라고 했어요.
아줌마 멀리서 오셨다며 반기고 즉시 하얀 주발에 시원한 막걸리를 그득히 가져왔다. 김치하고 단번에 들이키니 역시 맛이 일품이다. 속이 얼얼하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약간 내려가니 널따란 바위가 더 내려가시면 아니 보입니다.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해운대와 광안대교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가지 않으면 후회될 걸요 한다. 대번에 그쪽으로 건너가 평평한 바위에 주저앉아 광안대교와 금정산 능선을 다시 한번 눈 사진 찍고, 상쾌한 기분을 아내에게도 전한다.
금강공원으로 이어지는 급경사길을 내려 녹천탕을 찾아간다. 최근에 만들어져서 내부시설이 좋은편이고 이용료도 저렴한 편이라 이날도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샤워를 하고 온탕에 퐁당하니 다리 근육의 피로가 사르르 풀린다. 냉탕으로 갔다가 다시 온탕으로 서너번 하다가 이번에는 두 세분이 계시는 열탕으로 들어서려는데 발부터 몹시 뜨겁다. 애써 참으며 서서히 담가본다. 지독하신 분들이다.
이렇게 뜨거운데 저렇게 온몸을 담그고 계시다니...... 애라 참아보자 하는데 2분 이상을 견디기 힘든 것 같다 그만 뛰처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때보다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할아버지와 뚱뚱하신 분은 견딜만한지 목만 내놓고 푹 담근 체로 가만히 침묵하며 도를 닦고 계신다. 뜨거운 물은 계속 솟아지는데...
냉탕에는 어린아이들의 물놀이로 떠들썩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 사이에서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 안마를 즐긴다.
요즘은 심신의 긴장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목욕을 즐기는 편이지만 예전엔 명절을 앞두고 새 옷 입기 전에만 아빠와 형들의 손에 끌려 목욕탕을 찾았으니 일년에 한 두 번 정도이다.
여러 사람 앞에 발가벗는 것이 몹시도 창피해서 목욕탕에 가는 것이 매우 싫었다. 사실 고추 공개가 가장 싫었지. 지금은 전혀......
오늘은 8.15 특집 평양노래자랑 있는 날, 옷을 갈아입고 대형TV앞에 앉아 북녘시민들의 목소리와 노랫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본다. 청아한 목소리는 소박하고 순박해서 좋다.
북녘의 노래는 열심히 일해 나라에 충성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어려웠던 시절에는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오늘의 우리가 들어보면 이상한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개구리 올챙이시절 모르고 잘난척하는 것은 아닌지.
한복차림의 순박한 북녘 동포들의 모습을 보며 북과 남이 서로 반반씩 섞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친 통제사회도 바람직하지 않고 자유분방함이 지나쳐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향락만을 추구하는 것도 분명 문제일테니...
한정된 물자를 아끼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사회규범일 것이다. 능력껏 즐기며 사는 데 도와주는 것 없이 누가 나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느냐고 항변을 한다면......
국가와 가정과 민족의 도움 없이 홀로 오늘의 즐거움에 이르렀겠는가, 굉음을 즐기는 폭주족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기꾼들이 판치게 관망하는 사회도 문제다.
저녁으로는 이곳의 명물인 꼼장어 맛을 볼까 하려는데 나오자마자 장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주문 최소단위가 2만원이라는 말에 그만 포기하고 재래시장 골목에서 맛좋다는 부산 생 동동주 한 병 가방에 넣고 온천장역 가는 길가의 칼국수집을 찾아간다.
아직도 평양 노래자랑이 계속되고 있다. TV앞에 앉자마자 방금전에 산 시원한 생 동동주 한잔 들이킨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아야 한다. 비록 눈치를 살피며 접근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 같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앞장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으니....
이내 칼국수가 한 대접 그득히 나왔다. 아줌마가 먼저 막걸리 드시면 칼국수 맛이 없으실텐데요.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워낙 칼국수를 좋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