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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잔치에 올리는 가족들의 글
2005년 6월 21일
글쓴이 : 조팝나무
조회 : 28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21:39
엄마! 엄마가 나을 것 같아요. 어머니라고 하면 어쩐지 목이 메이는 느낌이라서요.
그리고 엄마라고 불러야 오래도록 제가 어리다는 생각이 들지요.
제 모습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습니다.
그 보다는 어머니 소리 들으시긴 엄마가 약간 젊으니까요.
원래 생각은 다듬고 고쳐서 엄마가 흡족해하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어요. 좀 게으른 거 잘 아시지요?
해서 그냥 제 생활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경혜가 일찍 끝나서 데이트를 했어요. 교수님 출장중이라고 농땡이를 친 예요.
시내에서 만났는데 제가 운동 삼아 걸어갔더니 늦었다고 방방 대던 데요.
그 전에 경혜도 많이 늦었으면 서요. 정경혜 개년 이지요.
이 더위에 걷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고 괴물 보 듯 해요.
엄마가 하시는 어떤 일들을 제가 이해 못해서 퉁퉁대 듯이요. 도관리에서 걸어 오신다던가, 점심때가 지났는데 그냥 참고 오시는 일 같은 거 말이에요.
그래서 속으로 웃었어요. 너도 나이 먹어 봐라 그러면서요.
경혜가 사주는 맛있는 점심 먹었어요. 고급 음식점인데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엔 한 사람분이 공짜에요. 경혜 생일을 앞당겨서 오늘로 했어요. 일인분 값으로 두 사람이 먹은 거지요.
비싼 값을 하는 곳이라 나올 때 빵도 싸 줬어요. 내일 그거 먹을 생각에 행복 합니다.
다음 번 에는 제 생일로 한대요. 뭐 제 결혼기념일도 써 먹는다던가요. 인심 써서 그러라고 했어요.
그리고 영화 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안 봤어요. 여름이라고 순 공포 스런 것 뿐 이었어요.
참 생각들이 짧아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 말이에요. 좋은 영화에 계절이 어디 있겠어요.
백화점에 가서 눈요기 하며 토론을 했어요. 왜 이렇게 물건 값이 비싼지 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이유 이런 거를요. 우리가 내린 결론은, 경혜가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그 중 일부는 저를 준다고 하니 그 때 막 사 보기로 하는 거였어요.
엄마 오래 사세요.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백화점에서 돈 써 제 낄 때 엄마 드릴 것도 사 볼게요.
아, 참 오늘이 하지라고 하네요. 근데 동지가 되면 밤이 짧아져서 서운해 하셨다는, 엄마 어릴 적 생각이 났어요. 하지 에 동지를 생각하는 여자에요. 저는.
안녕히 주무세요. 경자 올림
꼬리말
블루 언니, 1등했네, 참 잘했어요! 나두 용기내어 써 볼라요. 근데 다들 꼭꼭
숨어사나봐요. 가족들! 어디있나요? 2005/06/22
허인자 아하, 이렇게 쓰는 거구나. 되게 좋아보인다. 편안하고. 나두 쓸 수 있겠다.
부담만 가지구 잔뜩 별르구 있었는디 2005/06/24
2005년 6월 22일
글쓴이 : 조팝나무(허경자)
조회 : 15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23 12:01
여덟 개의 애물을 갖고 계신 엄마!
자식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새벽에만 해도 그래요.
기한이 다가오기에 써지지 않는 글을 붙잡고 끙끙대고 있는데 석진이가 들어 왔어요.
새벽 다섯 시쯤 됐을 거예요.
몇 시에 깨울지를 물으니 그냥 대강 이라고만 하데요.
그리곤 자기 방에서 부스럭대더니 배낭여행 간다고 나가는 겁니다.
질겁을 하고 붙잡아 들여 보니 술이 약간 취했어요.
시험 끝내고 친구랑 술 먹다가 갑자기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요. 무조건 가고 싶대요.
제가 안 보내 줄까봐 나가면서 말한 거래요. 기차를 타고 가니 걱정 말라면 서요.
친구랑 통화 해보니 그 애는 술이 덜 취했기에 보내긴 했는데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럴 때 엄마는 어떻게 하셨는지에 생각이 미치는 겁니다.
늘 그렇듯이 어려울 때 저절로 엄마를 찾게 된 거지요.
엄마가 하시던 그대로 마음을 다해 빌었어요. 잘 다녀오게 해 달라고요.
그러고 나니 좀 안정이 되었어요. 항상 제 뒤에 서 계시는 엄마의 기운을 받은 거예요.
언제부터 인가 허락을 받기 보다는 통고 하 듯이 엄마께 하던 제 처신이, 오늘 새벽 자신에게 날아 온 겁니다. 그 때마다 엄마의 황당함이 얼마나 크셨을지 이제 조금 짐작이 갑니다.
낮에 잘 도착 하였다는 전화 받았어요. 오면 때려준다고 하니까 히히 웃어요.
경혜가 전화하니 태안반도(서해안)에서 조개 캔다고 하더래요.
한참 정신을 얼떨떨하게 해놓고 저는 태평인 모양 입니다.
다음 주 부터 계속 시험이니 심한 야단도 못 치겠고, 자식을 애물이라고 하는 거 정말 같아요.
엄마! 길게길게 사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될지 모를 때 힘을 주세요.
숨이 더 차시고 왼쪽 가슴이 이상 하시다니 고통이 더 하시겠어요.
조심해서 병원에 다녀오세요. 이렇게 입으로만 하는 효도 제 장기에요.
엄마 꿈 없이 주무세요. 경자 올림
2005년 6월 23일
글쓴이 : 조팝나무
조회 : 2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29 08:16
엄마! 자랑스러운 엄마!
저는 사표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글 쓴다고 껍적거리지 못하겠어요.
엄마 글을 받아 적으며 절감 했어요
간절한 엄마의 심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어요.
조심스럽게 걸으시던 아버지 모습도 그렇고요.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에요.
엄마! 많이많이 사시면서 계속 좋은 글 남기세요.
그리고 제가 풀리지 않는 글로 고심할 때 감성을 풍겨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경자 올림
무심함에 대하여
글쓴이 : 조팝나무
조회 : 14 스크랩 : 0 삭제 요청: 0 날짜 : 2005.07.01 23:18
엄마!
냉장고 한 구석엔 아직도 장어 조각이 든 그릇이 있습니다.
경혜랑 고심해서 사온 반찬을 다시 권할 수도없게 거절 하신 심정을 가끔 생각 합니다.
엄마의 헤아릴 수 없는 아픔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딴에는 엄마 마음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동생들에게 아는 척도 하고 그랬는데요. 맏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속마음을 전해 주셨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 엄마의 입장에서 고심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반성하게 합니다. 엄마의 세심하고 여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기도 했지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심을 제일 무서워하시는 분이라는 거 알면서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라는 기색을 감추려 하지 않았어요.
반찬을 꺼낼 때 마다 장어 그릇을 옮겨 놓으며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심한 고통으로 표식된 엄마 목 부분에 대해 깊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차이 없이 친숙하게만 여겼지 투병생활을 염두에 두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더듬어 보면 친정에 가셔서 병을 고치시던 거며 시부모님의 애씀을 이야기 하실 때 분명 들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행하여야 했던 힘듦과 공포를 말이에요. 저나 제 자식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 쉽게 듣고 잊었던 모양입니다.
무심한 처사는 그뿐이 아닐 거예요. 분명 엄마도 여자인데요. 얼굴형이 틀려진다는 고민을 그냥 흘려듣곤 했어요. 외출하실 적의 망설임이나 목걸이 착용의 거절도 저희가 괜찮으니 상관없다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관계인 모녀 사이에서 조차 이해 받지 못하신 외로움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엄마의 고통을 연상 시키는 그 반찬을 치우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걸 먹어 버리거나 해서 없애 버리면 또 잊을지 모릅니다. 이제 새삼 병고와 싸우시던, 엄마의 힘들었던 생활을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마는 어쩐지 그래야 할 것 아요.
엄마! 오래 오래 사셔서 이런 일들이 아주 오래된 얘기 거리가 되게 하세요. 경자 올림
글 선생님
글쓴이 : 조팝나무
조회 : 14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23:55
엄마
비가 내립니다.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비다운 비가 안 오더니 엊저녁부터 제대로 오는 모양 입니다.
날씨가 궂으면 생각도 내려앉는 것 같아요.
맑은 날엔 허황된 궁리도 하고 그러는 데 보이는 게 온통 물뿐이니 그저 물에 물탄 듯 멍하게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 가지 생각은 나네요.
이곳에 칠십 넘은 수필가 한 분이 계세요.
그 분이 얼마 전에 부친상을 당 하셨어요.
그런데 조의를 표하기보다 부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제가 칠십이 넘을 때까지 엄마가 계셔 주신다면 참 복 많이 받은 자식이 되겠지요.
요즈음 엄마 글을 받아 적으며 많이 부끄러워 졌어요.
애절한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 드리려 하는 어떠한 마음도 보여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막연히 힘드시고 외로우시리 라고만 생각 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는 그렇게 섬세한 감성의 글을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엄마의 표현력도 따라 갈 수가 없어요. 더구나 엄마는 단숨에 쓰시잖아요.
엄마가 가지고 계신 그 역량을 다 제게 주셨으면 좀 나은 작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요. 여덟 자식한데 고루 나누어 주셨는가봅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에 닿는 글을 잘 썼던데요.
더구나 엄마께 올리는 글이라 느낌이 더 했어요.
그래서 고맙고 행복 했어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게 키워주셨으니 저희 가 복이 많은 거지요.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다 특별하고 소중한 분 일 것입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허나 세상의 어머니가 다 엄마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엄마 가 우리에게 하시 듯이 모두 그렇게 하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 할 때 어렴풋이 알았어요.
그리고 제 아이를 낳고난 후에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렇듯 감동스런 글들이 쓰여지는 모양입니다.
다른 어머니와 다른 엄마라는 걸 알기에 말입니다
엄마 언제든지 저희 집에 오세요.
오시겠다는 의향만 전하시면 모시러 갈게요.
엄마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잖아요.
구순 백수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세요.
엄마께서 구십 넘으시고 제가 칠십이 더 됐을 때 도 함께 글 썼으면 좋겠어요.
오늘 같이 비가 오면 비에 대해서도 써보고요.
아마 제가 생각이 안나서 끙끙대고 있으면 엄마는 휭하니 다써놓고 계시겠지요.
글 잘 쓰시는 우리 엄마
항상 건강 하세요.
그리고 팔순 축하드립니다. 경자 올림
사진
외할머니
글쓴이 : 경혜
조회 : 7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18:53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어릴 때는 참 편지도 많이 쓰곤 했는데 이제는 이런 말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질 정도 입니다.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를 먼저 써야 할지 외할아버지를 먼저 써야 할지 나름 고민도 하곤 했었는데..
너무 부끄러운 큰 손녀 경혜입니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쁘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어 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할머니께 너무 소홀한 나쁜 손녀가 되어버렸구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늘 할머니가 자리 잡으셔서 저와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 주신다는 거 알아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환갑잔치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요...
제가 6살 되던 해의 어린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외갓댁만 놀러가면 그 때 찍은 비디오를 보곤 했었지요.
저의 유년 시절은 외갓댁에서 보낸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던 녹색 지붕,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싶어서 장마에 불어난 물이 줄기만을 기다리며 강가 근처를 서성이고,
영천이랑 울진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눈밭에서 뛰놀고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도랑가에서 엄마랑 이모랑 빨래하는 옆에 앉아서 말참견도 하고,
밤이면 모여 앉아 먹었던 찐 옥수수하며 할머니가 따주신 앵두, 밤들...
이 모든 기억들이 제 가슴을 늘 따뜻하게 합니다.
이런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려요..할머니.
제가 이만큼 클 때까지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영화나 찬빈이도 저와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아직은 과정에 있는 제가 정말로 바라는 자리에 오를 때에 옆에 계셔서 함께 기뻐해주세요.
할머니, 정말정말 팔순 축하드려요..
사랑합니다.
큰 손녀 경혜 올림
할머니..
글쓴이 : 석진
조회 : 17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04:02
저 석진입니다
건강하시죠?
뵌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네요
학교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거 죄송해요
전 잘 생활하고 있답니다 ^^
방학할 날만 기다리면서요
할머니... 100살 넘도록 사셔야 되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할머니 건강 직접 돌봐 드릴 수 있게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구요..
팔순 정말 축하드려요
꼬리말
이뿌~하! 나도 돌봐 줘, 나도 오래 살거거든~~ 2005/07/04
*피로기* 나 두 거든. 난 벌써 부터 아픈 데가 많거든. 느네 엄마두 거든. 그러니까 니가 어여 빨리 으사 돼야 하거든. 2005/07/04
석진아 돈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수 없고
정부의 의료보험 시스템으로부터도 소외된 사회적 약자에게도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빈다.
맘으로 올리는 글
글쓴이 : 도깨비1216
조회 : 0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5 04:17
오늘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내일에 임하면서
솔경지 굽이굽이 이름 모르는 낙엽이 바람결에 을씨년스럽던 개울을 발목까지 오는 차가움을 인사로
처형의 안내로 처음 찾아간 내촌 답풍리 ~
조그만 사랑채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담아 주시며 반기시던 장모님 !
조그만 체구에 담겨있던 태산 같은 마음을 보고 제 삶의 지표가 되었던 장모님!
구겨진 세월의 사연을 천년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으셨던 이정표 같으신 장모님!
장모님이 계셨기에 조그만 솔경지가 넓어 보였고 추운겨울도 봄날처럼 따스했던 솔경지~
세월의 뒤안길에서 사연을 담아 오고간 세월은 활시위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장인어른을 보내시고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모습을 자식으로써 아무 위로 하지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는 안타까운 시간이 너무 힘들었답니다
인천집을 방문했을 때 손잡고 거닐었던 문학산 기슭이 저에게는 이 세상 어느 순간보다도 생과 삶의 갈림길에서 성숙한 시간이었습니다
장모님의 손을 잡고 그 손길에서 전하여 오는 인생의 파장이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 시간들을 의연히 딛고 팔순을 맞이하시는 장모님 우리장모님!
하늘의 은사와 땅의 축복 속에서 부디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면서 솔경지 사람들에게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두손 모아 빌겠습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한 둘째딸입니다.
글쓴이 : *피로기*
조회 : 1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22:18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한 둘째딸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들 보다 몸이 마르고 약해서 엄마께 늘 걱정을 달고 사시게 한 죄스런 딸이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저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독 맛있는 음식도 더 먼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고 힘든 집안일도 제외 시켜 주셨지요.
꽤 클 때 까지도 그런 특혜를 당연히 여기며 엄마는 웬만해서는 저를 혼내지 않으실 거라는 오만함 까지도 제게는 있었던 것 같아요.나는 아픈 애니까 하면서요.
그 대신에 특히 언니와 인자는 저로 인해서 무조건에 가까운 양보를 해야 했는데 가끔씩은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미안하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늘 저의 일상생활 속에 함께 계신 것 같습니다.
살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서 부터 큰 일이 있을 때 마다 가장 먼저 엄마를 떠 올려 보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엄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면서 큰 힘을 얻게 되니까요.
엄마는 저에게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세요. 강서방도 그런지 가끔씩 저보고 장모님한테(원래는 '께' 라고 해야 됨) 가서 다시 배워 오라고 하면서 저희 애들 보고 장모님은 훌륭하신데 저는 할머니 안 닮았다고 제 흉을 봅니다. 그때마다 엄마가 자랑스럽고 은근히 속으로 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하고 으쓱 해 진다니까요.
그러면서 항상 얘기해요. 자기는 엄마를 존경한다구요.
제가 서른 살 즈음에 면목동에 살 때 입니다. 엄마가 잠시 저희 집에 오셔 계실 때였어요. 현이를 낳기 전 이었고, 어느 날 인가 병원에 다녀오실 때였는데 온 몸에 힘이 다 빠지신 엄마가 감자를 꽤 많이 힘겹게 사 들고 오셨어요. 진지도 도통 못 드신 엄마가 그걸 들고 오시는데 그만 야속해서 제가 그때 '왜 엄만 이러시느냐구' 화를 냈어요.
제가 화내고 무안해 하고 있을 때 ' 입맛이 하도 없어 그거라도 혹시 입에 당길까' 하시며 맥이 다 풀리신 작은 엄마 소리에 너무 죄송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돈 덜 쓰게 하려고 밀가루도 설탕도 사 주셨어요.
사실 그때 엄마가 그 정도로 버티신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인데 말입니다. 제 생각엔 그렇게 못 드시다가 금방 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았어요. 그동안 엄마 마음 못 헤아리고 서운하시게 한 일이 한 두 가지인가요. 그동안 부모님의 지극하시고도 애끓는 보살피심을, 비로소 제 자식을 키우며 제 나이 오십에 되짚어 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 중에 어떻게든 제가 튼튼해지기를 노심초사 하시던 엄마는 좋다는 음식은 모두 구해다가 먹여 주셨지요.
비위가 약하신 엄마는 뱀 삶은 물과 염소 뼈 고운 물을 제가 뭔지 모르게 먹이 시면서 마음 아파 울어 주셨잖아요. 뭔지 알게 먹이면 비위가 상해서 안 먹을 것 같고 몰래 먹이자니 죄스러워 우신 걸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절 위해서 해 주신 약인데 그보다 더 한 것도 모르면 다 먹었겠지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에 가슴이 아려 지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지금처럼 스트레칭도 꼭꼭 하시고 동네도 걸으시고 건강하셔서 구순잔치 때도 지금 만큼만 고운 모습을 간직 해 주세요. 어머니 팔순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2005년 7월 3일 -z구새 명자올림
꼬리말
이뿌~하! 2개다 2개 2005/07/03
*피로기* 겨우쓴거 어제 처럼 다 날아 갈까봐 그랬어요. 확인하고서 지웠거든. 너 지금 줄부리나게 글 올리지? 2005/07/03
이뿌~하! 다 맞거든.ㅋㅋ 휴~~ 이게 뭐야 벼락치기 정성도 없는거 같아 나는 2005/07/03
블루 그랬구나, 새삼 몰랐던 것 아니까 재밌다, 뱀삶은 물과 염소 뼈 고운 물 먹었으니 건강해야 해, 언냐, 2005/07/03
이뿌~하! 그런걸 너무 멕여서 맨날 잠만 자는건 아닐런지,..,ㅋㅋ 2005/07/04
도깨비1216 흠~ 제법이구먼 01:31
사랑하는 할머니께.
글쓴이 : ♡지혜♡
조회 : 30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21:51
지혜 사랑한다.
말태워달라고 할머니 팔을 끌고 늘어지던,
지혜가 예쁜숙녀가 되었으니 할머니도 늙었겠지.
귀여운 지혜.
요즘에서 부모님 말씀 잘듣고 공부 열심히 하겠지 나는 믿어,
열심히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장래도 잘돼야지.
옛날에도 놋주발에 점심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 보다
바가지에 잡곡밥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출세 했대요.
내가 봐도 부유한 애들보다 어려운 집 애들이 출세하드라.
남보다 좋은 옷 좋은 신발 안 신은 사람이
돈귀한줄도 알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할머니가 심심해서 펜을 들었으니 답장은 하지마, 정말이다.
너는 지금 한눈 팔때가 아니다. 답장하면 다시는 편지 안할꺼다.
삼사월긴긴해 보내기 힘들어서 이?게 써본거다.
지혜야. 건강하고 예뿐 마음씨로 잘자라 주기를 바란다
5月 22日 할머니
(할머니가 써주신 -제가 중학교때 받은- 편지 맞춤법까지 그대로
옮깁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저 지혜에요.
예~전에 할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저희 엄마 말로는 할머니께서
기력이 안 좋으셔서 치료 받으시려고
인천 저희 집에 오셔서 한동안 계셨다고 해요. 그때가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지현이도 어렸고요. 지금도 그때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데
그 기억을 따라 가보면
집 앞에 흔들흔들 아기들 타는 말 장수가 저희 아파트 앞에 왔는데
철도 없는 제가 힘없는 할머니의 손을
끌면서 같이 가 달라고 그렇게 졸라댔었나봐요.
저희 엄마는 그게 당시에 맘이 아팠었다고 요즘 들어 말씀을 해요.
제가 말타기에는 너무 커 버린 나이였는데 주책이었었죠.
그렇게 말을 타려고 할머니 손만 잡아 끌었나봐요.
나이가 많이 든 지금도 가끔
꿈처럼 아련하게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어요.
할머니께서 저희 집에 오시거나 제가 외갓댁에 가게 되어 할머니랑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제가 밥을 안 먹어서 뒤란에 무서운 나비가 잡아 간다고
그러셨던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그게 그렇게 마음 아프셨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재밌기만 하고 그 당시 상황이 실감이 나요.
저는 기억도 안 나는 이야기를 자꾸만자꾸만 하시면서
마음 아파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슬펐었어요.
저에게는 즐거운 기억이고 재밌는 이야기가 할머니께는 가슴이 아프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될 수 도 있구나 싶어서요.
예전에 엄마랑 외갓댁에 들렀을 때 엄마가 집으로 뒤돌아 오면서
항상 울었는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 어릴 때는 정말정말
곱씹어 생각을 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철이 조금 들고,
스무해 중간쯤 서보니 엄마가 외할머니를
보시면서 그렇게 서럽게 우셨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겠어요.
이렇게 넓고넓은 세상 내 편하나 되어줄 사람 없는 세상에
그냥 바라만 봐도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이 엄마인 것 같아요.
(부모님 두 분 다인 것 같아요)
우리 외할머니는 자식들은 팔남매나 되니까 우리 외할머니는
할머니께서 생각 하시는 것 보다 훨씬 더 마음의 부자 같아요.
무슨일이 있어도 할머니 편인 사람이 여덞 명에다가 그 일가족까지
아주아주 많잖아요.^-^
할머니께서 저희 집에 다녀가실 적마다 베갯잇 적시면서 울던 제게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은 좋은 분이고
좋은 추억이고 좋은 고향입니다.
할머니가 정말 오래오래 그것도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시는 동안 행복하세요.
그게 힘이 될 거예요. 할머니 사랑해요.
덧붙여서 할머니 팔순잔치 너무 너무 축하드립니다.
7月 3日 일요일
지혜올림.
꼬리말
블루 지혜, 글 눈물난다, 울고. 있다, 이모.가.,. 다 컸구나, 2005/07/03
이뿌~하! 그 편지를 올렸구나. 좋은 생각이었다. 2005/07/03
♡지혜♡^,^외할머니가 써쥬신 편지가 우리집에 차~암 많아.^^
할머니께 올리는 글
글쓴이 : 혀니다♡
조회 : 2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13:07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저에게 있어서 할머니의 기억은 조금은 무섭고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저에게 절대적이었던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세상은 환했고, 엄마가 없으면 세상은 캄캄한 지옥이었으니까요.
그런 엄마를 낳아주신 분이라는데 저에게는 그 어떤 존재보다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죠.
아직 철없던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와 긴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도 어릴 때부터 영악했던 저는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이 어쩌면 더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마음으로 할머니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죠.
아빠가 외갓댁에 간다고 하면 언니와 둘이 달력에 표시를 해가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왠지 거리가 느껴지는 '외할머니'라는 단어에서 마음대로 '외'자도 빼버리기도 했고요.(지금도 '외할머니'라는 단어는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엄마가 장난으로 할머니께 장난치면 엄마한테 화내기도 했죠.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언니는 항상 저보다 조금 앞서 마음으로 할머니께 달려갔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집에 놀러오셨을 때, 언니가 할머니께 먼저 달려가 안겼던 일이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던 일인데, 그 순간은 왜 그리 서운하고 섭섭한지. 아무에게도(엄마한테도) 말 못하고 속으로만 삼켰던 일이 있었죠.
그때부터 다 큰 지금까지 할머니만 보면 누가 보던 뛰어가 손도 잡고 안기고 하는 버릇이 생겼고요.
지금은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시던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착실히 돈도 모으는 나이가 되었네요.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게 제일 큰 효도라고 하셨죠
저 역시 어릴 때부터 할머니께 편지만 쓰면 마무리는 꼭 "제가 얼른 커서 할머니 용돈 많이 드릴 게요" 였고요.
순수한 제 월급으로만 할머니께 용돈을 드리던 날 저는 아주 오래 된 약속을 지킨 것 같아 할머니 앞에서 갓난아기처럼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도 저한테 약속 하셨던 것 지켜주세요.
건강하고 오래오래 이모랑 삼촌 곁에 계셔주세요.
저랑 지혜언니 시집가서 아기 낳는 것까지 봐주신다던 약속 지켜주세요.
더 이상은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꼬리말
블루 문창과 답구나, 이쁜 것들, 외할머니 좋아하시겠다. 2005/07/03
♡지혜♡ 그러게. 잘~ ?㎡?.
새납네 엄마
글쓴이 : 허인자
조회 : 0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7 04:41
여름입니다. 장마철입니다.
교실 창문 밖에서는 빗소리가 좔좔 납니다.
"아아, 아아... 답풍리와 문현리에 사는 어린이들은 지금 즉시 현관 앞에 모이기 바랍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답풍리와 문현리에 사는 어린이들을 빨리 현관 앞으로 내 보내주세요!"
스피커에서 커다란 방송 목소리가 들립니다.
교실이 갑자기 소란해집니다. 새납은 서둘러 책 보따리를 쌉니다. 책받침을 맨 밑바닥에 오게 쌉니다. 도관리나 떼수, 서곡리 사는 아이들은 현관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합니다. 큰골 가는 길에 사는 복순이가 또 새납을 부러워하며 쳐다봅니다.
현관에는 나멸이도 문현리와 답풍리 아이들 속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빗줄기를 보며 걱정스럽단 듯이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새납은 늘 그랬듯이 마음이 설레입니다. 이렇게 공부하다말고 갑자기 집으로 가라니 그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요.
남자 선생님 두 분이 서둘러 우리들을 이끌고 빗속으로 나섭니다. 한 분은 문현리 아이들을 데리고 문현리 물가로 데려가고 한 분은 솔경지 물가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줍니다. 새납은 책보를 뒤집어서 책받침이 위로 가게 한 다음 머리 위에 쓰고 솔경지를 향해 냅다 달립니다. 한참 후에는 책보를 다시 뱃속에 집어넣습니다. 책이 다 젖어버리면 책이 딱 달라붙어서 뗄 때 힘들거든요.
논골과 삼선데이 아이들과 함께 빗 속을 뛰어 집으로 갈 때는 ?j이 절로 나지요.
양지 떼수를 지나 집 앞 물가까지 와서 강물을 바라보면 슬그머니 겁이 납니다. 벌써 강물이 흙탕물로 벌겋게 불어나 있습니다. 얼마만큼 깊어졌을까? 학교에서는 늘 강물이 불어서 아이들이 못 건너게 될까봐 서둘러서 보내주신 것이니 설마 내 키에 꼴깍 넘도록 늘어나지는 않았겠지 생각도 해봅니다.
지난 가을부터 초여름까지 강을 가로질러 놓여있던 튼튼한 나무다리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나무다리가 장마에 쓸려내려 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이 다릿발을 다 걷어냈답니다. 그래야 가을에 다시 그 다릿발로 다리를 세우니까요.
늦가을에 다리 놓는 날을 받습니다. 강 양쪽 마을 사람들이 한 집에서 'ㅅ'자처럼 생긴 튼튼한 다릿발을 두 개씩 가지고 강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그 날이 되면 새납의 엄마는 다리를 놓을 사람을 사야하고 다릿발을 날라야 하고 늘 그런 말을 하시며 준비를 하십니다. 아침부터 몇 십 개의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날 소나무(청솨리)를 찍어다가 척척 얹어놓고 다시 흙을 푸짐하게 날라다 펴고 밟아서 다집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다리가 다 완성된 걸 보고 달려가서 그 푹신한 흙을 밟으며 다리를 건넙니다. 양말을 벗고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대신 다리 위로 달려가며 강을 건넙니다. 어른들이 '야, 다리 다 됐다. 건너봐라.' 하며 소리치는 가운데 다리 위를 달려갑니다. 마치 벼슬이라도 한 듯하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마음이 붕 뜹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든든한 다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 건널 준비를 합니다. 누구도 징징대거나 엄살을 부리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감추고 아랫도리 옷을 벗어서 책보에 싸고 신발을 벗어 두 손에 꼭 그러쥐고 책보를 머리 위에 입니다.
나이 먹은 아이들은 동생들의 손을 잡아 줍니다. 그럴 때 나이 먹은 아이가 강물 흐르는 위쪽에 서서 갑니다. 언니의 몸이 센 물살을 막으면서 건너면 동생은 언니 몸의 바로 아래에서 생기는 잔물결 속에서 건너지요. 그러면 동생 몸이 강물 아래로 덜 떠내려갑니다. 센 물살 속에서 손을 꼭 쥐고 건널 때는 마음도 그렇게 꼭 뭉쳐지고 서로 힘이 되지요.
그러나 오늘은 강물을 다 건너도록 물은 허리 밖에 차지 않습니다. 요까짓 물에 선생님들이 벌써 집으로 보내 줬다는 걸 생각하면 혀를 쏙 내밀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강을 다 건너 강둑에 올라서면 선생님이 물 건너에서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듭니다.
새납은 집으로 들어와 건넌 마롱에서 비에 홈빡 젖은 옷을 벗습니다. 척척한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을 벗을 때는 참 감상적이 됩니다. 뭔가 슬픈 거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합니다. 마른 옷을 입고 작은 사랑방에 가서 축축하고 눅눅한 이불 냄새를 맡으면서 잠시 누워있습니다. 드러누워 창문 밖 호박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졸음이 솔솔 옵니다. 이제 세상 밖의 모든 일들은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듯하고 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저 소리는 무엇이지? 엄마가 밖에서 무척 바쁘게 서둘러대며 뛰어다니십니다. 그리고 ?z구새에게 큰소리로 재촉하십니다.
사진자리
"물 늘기 전에 빨리 책보 싸라. 벌써 강물이 꽤 늘었을 텐데.'
중학교 다니는 ?z구새 언니도 집에 일찍 왔나보네요.
문을 열고 나와 보면 마롱 끝에 석유곤로도 있고 냄비도 있고 쌀도 있고 이불더미도 놓여 있습니다. 엄마는 정말 빠르십니다. 겅중겅중 빗속을 뛰어다니며 호박도 따고 가지도 따고 막장도 푸고 숟가락과 밥그릇과 옷가지들을 챙겨서 후다닥후다닥 짐을 싸고 계십니다.
"성세환네 집에 가서 며칠만 학교 다녀라."
새납은 금방 건너 온 강물을 또 다시 건너 남의 집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게 참 낯설고 싫은 일이지만 엄마한테 싫단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보내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납과 ?z구새는 엄마처럼 막 서두릅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여간 서둘러댑니다.
엄마는 마루 끝에 쌓아놓은 짐을 이고 들고 지고 동생들을 놔두고 새납과 ?z구새 언니의 손을 붙잡고 강물을 건넙니다. 급하게 건넙니다. 그새 물이 불어 강물이 새납의 가슴 위까지 차올라옵니다. 강물이 더 불어나기 전에 빨리 건너야 하니 짜릿한 모험심도 느낍니다.
엄마는 성세환네 집에 도착해서 몇 번이고 아이들을 부탁하고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강물을 다시 건너서 짐을 더 날라옵니다. 그리고 돗자리를 깐 성세환네 사랑방에 짐을 부려놓고 휭하니 돌아가십니다. 엄마가 가고 나니 무척 서운합니다. 그날 저녁 벌써 강물은 점점 불어나서 시뻘건 흙탕물이 강가 논두랑둑까지 차 올라 넘실넘실 무서운 기세로 흐릅니다. 그런 물에 작년에는 죽은 송아지도 살아있는 돼지도 기역자 초가지붕도 막 떠내려 왔었는데 오늘 엄마가 물에 빠지지 않고 잘 건너 가셨는지 그런 생각은 못 합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어제 강물을 건너 간 아이들은 아무도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을 건너지 않는 마을에 사는 용포, 양지떼수, 도관리, 서곡리, 큰골 작은 골 애들만 학교에 왔습니다.
연옥이네도 영진네도 선희네도 고야나무 많은 양영선네도 만행이네도 영옥이네도 방앗간쟁이네 집 중에서 아무 엄마도 아이들보고 다시 물을 건너 남에 집에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솔경지 말고 논골 사는 애들도 가래올 사는 애들도 삼선데이 사는 애들도 누구도 강물 건너에 데려다 놓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 학교에서 반대 방향으로 떠난 문현리 애들도 사갑 애들도 장마철에 학교에 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걔네 엄마들은 참 이상합니다. 장마가 계속되면 강물이 늘어 학교에 며칠을 가지 못 할텐데 왜 아이들을 집에 가만 놔두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애들이니까 결석하지 말고 공부하는 게 맞다고 새납도 생각합니다.
새납은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상에서 엄마는 못 하는 일이 없어 보이고 너무나 든든합니다. 그리고 뭔지 몰라도 엄마가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냄비에 설은 밥을 해 먹고 학교에 가면 왜 선생님들이 칭찬을 안 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이상합니다. 선생님들은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아이가 공부하려고 학교에 온 게 뭐가 이상한가요.
학교에 갔다가 성세환네 집에 오면 내내 쓸쓸합니다, 응달 떼수 솔경지 집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엄마가 밤에도 비를 맞고 다니시며 논밭을 둘러보시고 새벽이면 논두렁이 떨어져나갔다거나 바람에 옥수수 대궁이 다 쓰러져버렸다고 걱정하시는 소리를 안 듣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합니다.
그래두 집에 있으면 비오는 날 장떡도 부쳐먹을 거구 호박 썰어넣고 장 국수도 끓여먹을 테구 감자도 쪄 먹을 텐데 옥수수도 먹을 거구. 새납은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바라봅니다. 비안개 속에 아늑해 보이는 그 집에서는 엄마가 아욱 막장국을 끓여서 우리만 떼어놓고 안마롱 두리반에 둘러앉아 나멸이랑 동생들하고만 맛있게 퍼먹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성세환네 마당에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그런 일은 ?z구새 언니가 다 합니다. 새납은 옆에서 떠들기만 합니다.
언니가 밀가루를 대충 버무려서 밥물이 부글부글 끓을 때 그 위에 밀가루를 확 붓습니다.
나보다 두 살밖에 더 안 먹었는데 언니는 그런 것도 할 줄 압니다. 집에서는 언니는 아무 것도 안 합니다. ?z구새 언니는 늘 새납에게 말합니다.
"야, 안마롱에 닭똥 좀 치울리?"
"야, 내 운동화랑 교복 좀 빨아줄리?"
그러면 새납은 언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하복 블라우스를 하얗게 빨지 않았다고 언니가 싫어할까봐 하이타이를 많이 넣고 오래두었다가 빨아줍니다. 봇도랑에서 곤색 운동화를 하두 빨아서 영진 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너는 운동화를 다 빨아서 닳겠구나.' 하기도 했지요.
하얀 운동화 끈도 다 빨아서 손톱으로 물기를 쫙 밀어서 반듯하게 해서 말렸지요. 그래야 언니가 좋아했어요.
하여간 집에서 언니가 밥하는 것도 밀가루 반죽을 밥물에 넣은 것도 못 보았는데 엄마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언니는 새납과 둘이 있으니까 밥도 하고 새납도 보살펴 주고 웃긴 얘기도 하고 방도 정리합니다. 새납은 ?z구새 언니가 참 믿음직스럽고 올려다 보입니다.
새납과 ?z구새는 밥물이 잦아지기를 기다려서 냄비 뚜껑을 열고 손으로 그 밀가루 반대기를 먼저 꺼내어 먹습니다. 킥킥대고 웃으며 먹습니다. 마당 땅바닥에 안 떨기고 먹으려고 뜨거운 것을 이리저리 쥐면서 먹습니다. 쫄깃쫄깃한 게 어쩌면 그렇게 맛이 좋은지 집 생각도 안 납니다. 엄마가 그 와중에 짐에다 밀가루까지 넣어서 보내줬다는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밀가루 반죽을 언니가 낼도 해줬으면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성세환네 엄마는 바가지에 고야도 따주고 무슨 반찬도 주고 무척 친절하게 해 줍니다. 그래도 날이 저물면 더 쓸쓸해집니다.
춘천에서 공부하는 큰언니 생각도 몹시 납니다. 하는 말이 다 멋있고 가지고 있는 소지품도 다 멋있어 보이는 큰언니가 집에 올 때마다 엄마에게 했던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학교 이야기들을 새납은 잊지 않고 다 기억합니다.
큰언니가 고등학교 입학시험 보러 갈 때 샀었던 원형의 길다란 예쁜 연필들이며 춘천으로 시험 보러 가기 전날 엄마가 주의할 점을 몇 번이고 말하고 언니가 그걸 듣던 일도 법주사 수학여행 갔다 와서 들려 줬던 우물이며 정이품 소나무 이야기들을 다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때 언니가 존경했던 선생님 이야기, 그 선생님이 잘못한 학생들을 나무랄 때 옥상 같은 데에 혼자만 불러서 나무라며 그 학생의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언니가 그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만큼 똑같이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고 성수고등학교 농구가 몇 초 남겨놓고 역전승했을 때의 감동을 이야기했을 때 새납도 몸을 부르르 떨게 짜릿했었지요. 큰언니 이야기는 새납이 알지 못 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제 곧 방학을 하면 큰언니가 오겠지요.
심심한 새납은 학교에서 빌려온 동화책을 봅니다. 주위가 어둑해져서 글씨가 안 보일 때까지 성세환네 마당에서 책을 봅니다. 집에서 같으면 벌써 엄마한테 혼날 짓입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뒤란에 숨어서 책을 보다가 장독대에 장 푸러 가던 엄마가 눈 나빠진다고 걱정하시며 소리치면 얼른 책을 감추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엄마가 새납의 눈이 나쁘다고 징그러운 생간과 지라를 구해다가 석쇠불에 구워서 참 많이도 먹였지요. 그런데도 새납은 엄마가 강건너 집에서 모르고 있으니까 맘 놓고 캄캄할 때까지 책을 봅니다.
성세환네 집에서는 스산하지만 학교에 가면 도관리 아이들만 있는 속에서 공부하는 게 특별하게 생각되어 좋기도 합니다.
며칠이 지나 장마비가 그치면 하루가 다르게 강물이 줄어듭니다. 흙탕물이 점점 맑아지다가 부옇고 연한 녹색물 정도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건너편 집 앞 강둑에서 소리쳐 새납을 부릅니다. 강을 건너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오라고 하네요.
엄마는 밭에서 일하다 말고 내가 학교에서 올 시간에 맞춰 강에 나와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새납은 강가로 뛰어갑니다.
엄마가 강 건너에서 새납에게 대고 소리칩니다.
"아니, 거기 말고 더 위로 올라가. 아니, 더 더 올라가, 그래 거기."
엄마는 장마가 끝나면 보통 때 건너다니던 강 입구보다 항상 강 상류로 더 올라가서 강물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쭉 이렇게 건너서 저 아래로 내려 와."
엄마 손가락과 팔은 강을 대각선으로 그으면서 마지막에 내가 건너서 닿을 지점을 가리킵니다. 그곳은 삼선데이로 가는 길 입구쯤으로 우리 집 앞보다 훨씬 강 아래쪽입니다.
새납은 보통 때처럼 우리 집 바로 앞으로 직선으로 건넜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건너다니지 않던 물길 바닥을 디디는 것은 정말 섬뜩하고 무섭지요.
보통 때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해서 건너면 물살이 빨라 둥둥 떠내려가서 저 아래 깊은 소 있는 데로 떠내려 갈까봐 더 위로 올라가서 건너라는 깊은 뜻을 새납은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새납은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입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강 위쪽으로 더 올라가서 내가 건너가 닿아야 할 건너편 지점을 확인합니다. 아래옷을 벗어 책보에 싸고 신발을 꼭 쥐고 강물에 한 발을 내디디면 몸이 으스스 합니다.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내딛다가 미끄러운 돌멩이를 밟아 기우뚱하면 더욱 섬뜩하지요.
그러다가 강 한 가운데 쯤 오면 물이 가슴 위로 올라와 목까지 차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두 손을 머리 위로 뻗히게 됩니다. 마치 물 속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 같지요.
새납은 신발과 책보를 물에 적시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물을 건너다 신발 한 짝을 놓쳐버렸을 때 그것처럼 허무하고 기가 막힌 일은 없을 거예요. 신발 한 짝은 빠른 물살에 둥둥 떠내려가고 놀라서 허겁지겁 잡으려고 물을 따라 아래로 쫓아가며 손을 뻗어보지만 아마도 그렇게 해서 신발을 붙잡은 사람을 거의 없을 거예요. 신발은 곧 물살에 묻혀 버리고 물 아래로 가라앉으며 떠내려 가버리니까요. 새납도 다른 때 다 당해봐서 안 다구요.
그것뿐인가요. 작년인가 물을 혼자 건너다가 끔찍한 일이 있었지요. 무심코 내디딘 발이 강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순간 새납의 머리통까지 그대로 물 아래로 꼴까닥 잠겨버렸습니다. 어어, 몸이 물 속에 잠긴 채 아래로 떠내려갔습니다. 새납은 태어나서 그렇게 깜깜한 공포감을 처음으로 느꼈었지요. 장마물에 강바닥이 깊이 패인 곳을 만나면 그렇게 되지요. 한참 떠내려가다가 겨우 발바닥이 강바닥 모래에 닿았을 때 살았구나 안도했지요. 그 때 어떻게 나머지 물을 건너서 강 밖으로 나왔는지 모른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어느 아이나 겪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새납은 누구에게도 새삼스럽게 그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새납은 꿈 속에서 물 속에 자주 빠졌고그 때마다 무서움에 떨고 가위에 눌리곤 했답니다.
새납은 또 다시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요.
새납은 떨리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강물을 건너요.
물가에 들어서서 처음에는 힘을 다해 물을 가로 지르려고 애쓰며 건너야 해요.
그러나 강 가운데로 갈수록 물살한테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떠내려가듯 건너야 해요. 가운데 물살은 점점 세어지니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몸이 둥실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지며 발바닥이 강바닥을 치고 또 다시 몸이 솟아오릅니다.
새납은 그렇게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도 강 건너로 가려고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만 떠내려가서 저 아래 봇솔에 걸릴 것만 같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몸이 오싹해집니다.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으니까 절대 잘못되지 않을 거야.' 새납은 용기가 납니다.
새납이 물을 건널 동안 엄마는 점점 강 아래 둑으로 내려가며 소리칩니다.
"그래, 그리로 해서 여기까지 와라. 그래. 그래. 그리로 건너야지."
엄마가 있는 데까지만 가면 된다. 엄마가 기다리니까 새납은 잘 건널 수 있습니다. 엄마 있는 데까지만 가면 된다.
강을 거의 건너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새납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물 밑의 발을 성큼 내디딥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던 물밑 길이라 물풀이 엉기고 미끄러운 돌멩이들이 밟히지만 금방 견뎌집니다. 엄마가 저기 앞에 있거든요.
새납은 물을 다 건너고 장해서 혼자 다짐을 합니다.
'다음에 혼자 건널 때도 엄마가 시켰던 대로 해야지.
그러면 겁날 것도 없어.'
엄마가 뛰어다니며 일을 하시는데 언제 시간 맞춰 강에 나와 아이들이 올 때마다 강을 건너다보고 소리치시는지 일년에도 몇 번씩 장마가 지는데 장마물이 줄을 때까지 며칠씩 그렇게 하시는지 새납을 알지 못 합니다.
그저 장마 물을 건넌 것이 좋기만 합니다.
엄마가 강을 건넌 새납을 앞세우고 부지런히 집으로 들어가서 밥을 차려 주십니다.
"악식이라도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라."
새납은 엄마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정말로 제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녁 한 끼 안 먹고 먼저 잠드는 아이가 있으면 꼭 깨워서 먹이고 그래도 안 일어나 먹으면 저녁 내내
"에이구. 쟤가 저녁을 안 먹구 잤으니 얼마나 배고플까."
하고 노래를 하시지요. 몸이 약한 ?z구새가 아침에 학교에 밥을 안 먹고 갈까봐 국그릇에 밥을 콱 말아서 숟가락을 꽂아서 들고 쫓아다니며 먹으라고 하셨지요. 언니는 짜증을 내며 국그릇을 아버지 양복 장롱 위에 몰래 올려놓고 학교로 내뺍니다. 제일 그렇게 많이 한 것은 ?z구새 언니입니다. 새납은 먹성이 좋아서 엄마가 먹이려고 하지 않아도 잘 퍼먹습니다.
새납은 오늘도 엄마 말씀대로 밥을 푹푹 퍼 먹습니다.
그리곤 곧이어 밥을 먹다말고 혼나고 맙니다.
"넌 숟가락 쥐는 게 그게 뭐냐? 똑바로 쥐지 못 하고."
밥 먹을 때마다 숱하게 들은 잔소리를 잊지 않고 또 하십니다.
새납은 대충 숟가락을 고쳐 잡고서 강 건너에서 살았던 며칠간의 얘기를 엄마한테 신나서 정신없이 떠듭니다. 그러나 곧이어 엄마한테 또 야단을 맞습니다.
"넌 왜 말할 때마다 중간중간 입을 딱딱 벌리냐? 뵈기 싫다고 했지?"
말을 과장하느라고 입을 딱딱 벌리던 새납은 잠시 머쓱해졌다가 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벌입니다.
새납은 원래 수다장이니까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또 혼나고 맙니다.
"왜 중간중간 반말을 하냐? 싸래기만 먹었나. 그러면 버릇된다. 남들한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게 그 버릇 고쳐라."
잠시 동안 새납은 세 번 엄마한테 혼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몇 년 동안 똑같이 혼나는 내용이고 고치지도 못 한 버릇입니다.
그래도 새납은 자기 버릇이 참 나쁜 버릇이라고 꼭 고치겠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밥을 푹푹 퍼먹습니다.
밥을 퍼먹다 보니 엄마가 어느 새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는 또 밭으로 김매러 가셨거니 했겠지요.
새납은 엄마가 ?z구새 언니 강 건너는 걸 봐 주려고 강에 또 나가셨는지 성세환네 집에 가져갔던 그 많은 세간들을 몇 번이나 강을 오가며 다시 집으로 가져오셨는지 그러느라고 그날 저녁밥은 또 깜깜한 밤중에 지어서 ?h?h 혀를 차며 잠든 애들을 깨워 먹이셨는지 그런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버지랑 엄마가 물을 건너주면 학교에 가서 엄청 잘난 척하며 까불고 놀고 공부하다가 집에 올 때 엄마가 물 을 건너주면 집에 와서 몰래 책을 보다가 저녁이면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물 건너는 것 같은 건 걱정도 하지 않고 푹푹 잠을 잤습니다.
새납에게는 산처럼 든든한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겨울에 찬 강물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든든하고 정겹고 푸근한 그 우리 집 앞의 나무다리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엄마만 있으면 벼슬을 한 것 같이 마냥 좋았으니까요.
할머니~~
글쓴이 : 지은
조회 : 18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16:46
할머니 저 이쁜 ^^ 지은이예요~~
호호호호
80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지은이가 축하해요~ 할머니.
앞으로 더 많이많이
건강해 지시고 행복해 지시고 아름다워지세요~호호 ^^
할머니랑 남예 이모네 집에서 같이 잠도 자고 그랬는데..
엉덩이도 토닥토닥 해주시고..
할머니도 기억나시죠? 히히
밤에 집에 혼자 간다고 걱정해 주시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해주셨잖아요.
할머니도 밥 맛있게 많이많이 잡수세요.
아셨죠?
저도 잘 챙겨먹을게요.
우리 다음주 주말에 원주에서 만나요 할머니.
이제 6일 남았어요.
그때 까지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기로 해요. 호호호 ^^
원주에서 재미있게 놀아요~할머니.
꼬리말
이뿌~하! 난 그말이 맘에 든다. 이쁜~지은이.,밥 잘 챙겨 먹겠다는..ㅋㅋ 2005/07/04
블루 지은아, 구여운 지은아, 유영 생일축하고마워, 그리고 넌 항상 매력적이야, 몸매,
얼굴, 머리, 성격 짱이거든, 2005/07/04
이뿌~하! 다 뻥이거든~ 2005/07/04
블루 그건 언니맘이고 내맘은 뻥 아니거든 2005/07/04
*피로기* 내 생각도 반은 뻥 같거든.
외할머니 지민이예요~
글쓴이 : 허인자
조회 : 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22:47
외할머니~
속초미남 지민이예요~
항상 어릴때는 외갓집 간다고 하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것 보다는 마냥 놀 수 있는 강가와 또래의 친척 만나는 게 더 신났었던 거 같아요
그런 저희들 배는 고프지 않을까 강가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항상 보살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외할머니께서 벌써 팔순이 되셨네요
어릴 때 엄마에게서 많은 외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외할머니께서는 이모들을 깊은 사랑으로 키우셨다고 들었어요
이모들에게 주신 사랑도 부족해 저희 손자손녀들에게까지 외할머니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한없이 사랑을 퍼주신 외할머니 팔순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이제는 좀더 먼저 할머니에게 안부를 묻고 베풀어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손자되겠습니다
몸 건강히 잘지내시구요 사랑합니다 외할머니^^
외할머니 팔순 생일잔치
글쓴이 : 허인자
조회 : 2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22 09:44
지은아, 지민아,
어제 시험이 다 끝나고 얼마나 후련하겠니.
이번에는 장학금 좀 타려나.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집에는 언제 내려오려는지.
외할머니 80세가 되시는 생신을 주문진 콘도에 모두 모여서 하기로 했단다.
날짜는7월 9일과 10일 (토,일)
그러니 그날에 다른 약속을 잡지 말고 꼭 참여하도록 해라.
전국에서 시간을 내서 모이는 날이니 모쪼록 친척들도 만나고 말이야.
어제부터 날이 무지 뜨거운데 어떻게 지낼까 걱정이다.
지은이제 방은 무지 더울 거고 지민이네 기숙사는 에어컨도 없다던데.
여기는 오늘 고성군학생육상대회라서 모두 다 벗겨질 것 같다고 걱정이야.
아~~뜨거워.
아빠는 벌써 속초 종합운동장에 가 계시고
우리 학교도 저학년만 빼고 다 나가고 없고
엄마는 애들 밥 먹이면 나가려구 한다.
잘 지내.
사 랑 해 요
글쓴이 : 라벤더
조회 : 18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1 13:28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
우리엄마도 나처럼...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대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하는 우리 엄마 곁에서 사랑스런 엄마 되어주셔야해요~~♥
외할머니~~저 주영이예요
이모들이랑 삼촌보면~~
다들 참 똑똑하고 센스 있고 멋있단 생각들어요~^^
이렇게 멋진 자식들 두셔서 너무 행복하시죠?ㅎㅎ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지금처럼 유쾌한 가족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하셨음해요^^*
사랑해요 할머니
꼬리말
허인자 어휴 기특한 주영이~~ 다른 큰 손녀들 손주들 글 올려라. 빨리 2005/07/01
이뿌~하! 지~~~자들은 애들부터~~흥! 2005/07/02
말숙이 주영이 기특한것 얼굴도 보여줘라```````` 2005/07/02
오래오래사세요^^
글쓴이 : 김미영
조회 : 2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1 13:38
다들 까페에 가입했는데 너무 늦게 가입했어요^^
할머니 ~~ 못 뵌 지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앙..오래오래 건강하시구요^^ 아프시지 마세요^^
사랑해용
꼬리말
이뿌~하! 니네 밥은 잘 해먹고 댕기니? 궁금~~ 말뿐인 이모라서..쏘리~~! 2005/07/02
말숙이 미영아 엄마대신 네가 두번써라 잘 있니? 2005/07/02
난 엄마가 이랬으면 좋겠어.
글쓴이 : 이뿌~하!
조회 : 30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00:14
엄마♡
나는 있잖아.
엄마가 우리집에 또 오셔 계셨으면 좋겠어.
엄마가 최서방이 있어도 막 큰소리로 얘기하고,
화장실도 살금살금 가시지 말고, 당당하게 성큼성큼 가시면 좋겠어.
그리고 있잖아.
모기 소리 만하게 얘기해서 못 알아들으신 말 있을 때
계속계속 나에게 물어 봤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막 신경질 내면서 다시 말해 줄게...
(그럼 안 될까? 호호호~)
또 있거든.
엄마랑 같이 시장 봐서 맛난 음식 만들어“아~잘 먹었다”하고
배 두드리면서 연속극 보는 거 그거 하고 싶어...
엄마랑 손잡고 가까운 데라도 쇼핑가서
내가 사고 싶은 옷도 엄마가 봐 주고, 골라 주면서
엄마도 하나만 사달라고 막 조르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싫다고 하면서 사드리고 말이야...
난 그런 거 되게 부럽던데.
요즘 우리 집 근처 뒷산 있지?
아주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거든.
물론 비가 그치면......
엄마랑 나랑 둘이 손잡고 공원길 걸으면서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내촌 사람들 얘기 재미있게
해주면 좋겠어.
(내가 가끔 다른 짓을 해서 탈이지만...)
그리고,
나는 엄마가 집에 계실 때
환하게 불을 켜 놓고 계셨으면 좋겠어.
우리 집이 좀 어둡잖아.
그래서 우린 낮에도 불 켜 놓거든.
아?
또 있다.
엄마는 늘 남의 생각이나 입장부터 생각해 주시잖아.
그러다 보니 엄마의 생각은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그래서 말인데
그냥 엄마가 생각 드시는 대로 엄마의 생각을 말해 주심 안 될까?
어떤 때는 그게 더 편할 때가 있거든.
너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다 보면,
그게 더 피곤하고 어려울 때가 있어서 말야.
그냥 엄마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주셨으면 해.
내가 그렇잖아.
엄마한테(비단,엄마한테만이 아니고 거의 그렇지만)
그냥 편하게 내가 하고픈 말을 하니까
엄마가 어떤 말씀을 하셔도 난 서운하거나 노엽지 않거든.
엄마도 그랬으면 하는 내 생각일 뿐이야.
그런데,
엄마는 정말 대단하셔.
저번에 주문진 갔을 때 나 너무 살 많이 쪘다고
엄마가 엄청 걱정 하셨잖아.
와서 바로 운동 시작하고 그 결심 오래 가려고
요즘도 맘 독하게 먹고 하루 만보씩 걷고 있거든.
살이 쪘다고, 심각하다고는 생각 했는데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거든.
막연히 빼야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내다가
엄마의 그 한마디에 “아! 결심했어.정말 운동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콱 박혀서 왔으니까 말야.
엄마의 건강에 대한 상식이나 운동은 꼭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너무 좋고, 자랑스러울 따름이야.
난 맨날 잔소리만 하고 또 하는 엄마인데,
엄마는 어떻게 좋은 얘기만 해 주실까?
난 그게 안 되던데.
그래서 나도 가끔 잔소리 하고 싶을 때
한번쯤 듣는 애 생각해서 뒤로 미룰 때도 있어.
그런데 그게 두 배로 더해져서 엄청 더 화내고 그래.
그건 잘 못하는 거지?
엄마는 또 매일 일기를 쓰시잖아.
그거 정말 대단한 거잖아.
생각해봐.
아휴~난 이틀도 못가서 팽개칠 거야.
그런 엄마의 의지와 꾸준함이 너무 존경스러워.
왜 난 그런 거 못 배웠을까?
난 끈질긴 면이 없어.
뭘 제대로 잘 끝내는 법이 없거든.
참.
그런데 이건 정말 내가 바라는 소원인데,
엄마!
난 엄마 맘속이 하~~~~얀 종이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파~~~~란 강물이거나.
아무런 근심, 걱정, 고민 없이 살아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제대로 못해서 때때로 엄마
맘속이 온갖 색색 종이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우리도 좀 더 노력하려고 해.
아니 나부터~
그러니까 엄마!
어떤 일이든 가볍게 생각하고
무거운 짐은 다 날려 버려~
이런 말 있잖아.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하는 말!
난 내게 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말들을 곧잘
생각해 내곤 해.
그러면 또 마음이 다소 가벼워져서 해결이 잘 되더라고.
엄마의 긍정적인 사고를 다행히도
내가 잘 받아서 잘 써먹는 덕분에
난 스트레스도 거의 받는 체질이 아니야.
그거 되게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또 미안한 게 막~떠오른다.
엄마 아버지 돌아가신 후
세상이 꺼지는 슬픔 속에 계신데도
내가 그맘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엄마한테 아버지 늪에서 벗어나시라고 화내고
짜증내고 이해하지 못한 거.
그거 두고두고 후회하고 미안해 엄마.
얼마 전 엄마의 글 보고 내가 너무 철딱서니 없는
딸이란 생각에 또 한번 부끄러웠어.
이 나쁜 딸년 때문에 그 아픈 맘
가슴 한구석에 꽁꽁 묶어 두고
내색도 못하고 숨죽여 지내시는데
어이없게도 어깨에 금이 갔을 때
얼마나 몸과 마음이 힘드셨을까?
왜 뒤늦게서야 그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
입맛 짧은 최서방과 잘난 애 챙긴다고,
엄마는 매운 거 못 잡수신다고,
그 핑계 삼아 정말 설렁설렁,대충대충 해 드렸는데
이제는 진짜 엄마한테 잘하고 싶어.
나한테 그런 기회를 엄마가 다시 한번 주셨으면 좋겠어.
8월에 찬빈네가 아이 낳잖아.
그때 미리 우리집 오셔서
같이 병원에 가서 아이 낳은 것도 봐주고
멱국도 잘 먹는가 우리 같이 가서 챙겨 주자. 엄마!
엄마 혼자서도 슬슬 걸어가실 수 있는 거리거든.
버스로 두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거리니까 가능해.
(양지떼소 가는 거리 정도야.)
우와~
기대 된다.
그때까지 엄마 건강 잘 챙기셔서
같이 가는 거야~~
엄마.
내가 중학교 때 가래올 사는 희옥이네 집에
(아버지가 왜 예비군 중대장하다 돌아가시고 부천으로 이사간 집)
놀러 간 적이 있었어.
그때 걔네 엄마가 새빨간 고야를 한바가지를 따서
먹으라고 주시는 데 희옥이가 지네 엄마한테
막 반말로 친구처럼 말하는 걸 보고
나 두 가지 충격 받았잖아.
하나는, 버르장머리 진짜 없구나.
또 하나는, 진짜 부럽다. 어쩜 엄마한테 저렇게 반말로 얘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그 때 한 적이 있었어.
오늘 내가 그 생각나서
엄마한테 온통 반말로 하고픈 얘기
생각 나는 대로 두서없이 막 썼는데
엄마가 다 이해 할 거지?
그러리라 나는 또 믿고 싶어.
엄마랑
이렇게 두고두고 얘기 하면서
살고 싶다.
엄마!
혜리가 시험 공부한다고 독서실에 갔는데
곧 올 때가 돼서 데리러 가야 하거든.
참,
팔순 잔치 때 아버지 생각하고 또 울지 마셔...
아니다. 많이 우셔도 되겠다.
그냥 엄마 맘대로 하셔요.
*******엄마.
팔순 정말로 축하 드려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생각의 정리가 잘 안돼서 성의 없게도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가 되었네요.
이런 기회를 준 찬빈 아빠한테 고마운 마음 전하며,
다음에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그 땐 좀 더 정성스런 마음의
글을 엄마께 올리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꼬리말
블루 진짜, 감동적이다, 장롱은 그냥 타먹은게 아니었어. 2005/07/03
훗-☆ 너무 창피하다. 컨셉을 못 정해서 내내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냥~너무
성의 없게 쓴 것 같아 죄스럽구만..히히히 2005/07/03
이뿌~하! ↑이거 나야. 혜리가 로그인 한 줄도 모르고 내가 써 버렸네. 2005/07/03
말숙이 웬 싸래기?ㅋㅋㅋ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2005/07/04
*피로기* 다아 공감이 가는 내용인데 엄마 마음이 따뜻해 지시게 정리 해서 이쁘게
잘 썼구나. 반말을 해도 혼내지 못하게~ 2005/07/04
이뿌~하! ㅋㅋ그게~~~ 내가 여우라서 말야.ㅋㅋ2005/07/04
블루 조켓다, 여우라서, 그거 내가 아무리 할려고 해도 안되는 것인디, 나한테 그 여우 팔아? 2005/07/04
이뿌~하! 내가 보기엔 아무리 해도 안되는게 아니고 대충 해보다 말아서가 아닌가 하는데,,,, 틀렸나?참 나민아. 토요일날 회비 보냈다,개망신 안당하려고,ㅋㅋㅋ 2005/07/04
할머니 저 혜리에요♡
글쓴이 : 훗-☆
조회 : 33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23:38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혜리에요♡
할머니께서 저희 집에 오셨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팔순이시라니,, 동안이신 우리 할머니♡헤헤
저번에 오셨을 때, 할머니께서 저한테 굉장히 잘해주셨는데,
저는 잘 못해 드린 것 같아서 아직도 후회가 되네요..
할머니 이제부터는요, 제가 짜증내거나 화내면 제 머리에
꿀밤 콩! 박아주시면서 저 혼내주세요♡
할머니 오래오래오래오래오래오래오래~사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아잉♡ 철든 혜리 올림♡
꼬리말
블루 철든 혜리? 머리에 철사가? 2005/07/04
이뿌~하! 으~~미서운 소리도,,, 떽!! 2005/07/04
이뿌~하! 믿어 봐야지..... 진짜 철이 든 걸까? 혼내주면 화낼거면서.. 2005/07/04
블루 기래 미서운 소리다, 취소다, 툇툇툇,,,,,(에-엑 퇴툇-가래침) 2005/07/04
이뿌~하! 갈수록 태산이지?>훙 2005/07/04
e ♡지혜♡^^ 혜이야~ 이런거 싫지? ㅋㅋㅋㅋ 2005/07/04
이뿌~하! 아니 딱 타입이거든~~~~
잘나지도 못한 아들하나 챙기시는 게 일곱 자매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글쓴이 : 찬빈이아빠
조회 : 4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10:34
어머니께,
지난주 수요일이었습니다. 밤새 숙직을 하고 집에 들러 한잠을 자고 학원에서 돌아온 찬빈이를 데리고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했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닮아서인지 날이 가면 갈수록 자기의사가 분명해지고 부모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굳이" 집에서 놀겠다고 가기 싫다"는 찬빈이를 어르고 달래서야 겨우 길을 떠났습니다, 저녁때 엄마가 오면 대명시장에 가 두발자전거를 꼭 사주겠다고 하면서. 중구청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였습니다. 아이랑 장난을 치는데 찬빈이가 그랬습니다. "아빠 우리는 언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냐고?". 또 그럽니다. 혼잣말로 '인라인스케이트타고 싶다'고. 이제 두발자전거를 사줘야 할 때인가 봅니다. 자기친구들은 이미 보조바퀴가 달린 그걸 타고 있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그런 데까지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찬빈이 엄마랑 없었나봅니다. 아이를 한명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려운 살림에 8남매를 키우셨던 부모님은 어떠셨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끔 지나간 제 삶의 궤적을 뒤돌아보곤합니다. 늘 아쉬움과 부끄러움만 남는 게 제 허물인가 봅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내촌을 떠나 저 혼자만 춘천을 오게 된 것은 내촌에서 중학교시절을 보냈으면 더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제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도 하지 않으니 내리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덕분에 혼자만 자유로운 사고를 갖게 되었고 집에 드리워져있던 빚더미의 어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기영이네와 막내고모집에 맡기셔야했을 때 그 심정은 오죽하셨겠습니까? 저야 그때 나이가 어려 그런 것을 잘 몰랐지만. 그리고 첫째누나는 결혼을 하고 신혼인데도 내려가지 못하고 퇴직금을 더 타 가족들에게 보태주려고 춘천자취집에 머물렀던 아픈 기억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찬빈이를 키우다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내리사랑밖에 모르나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고3년 때였지요. 어머니께서 치료를 받으시고 내려오신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공부를 하겠다고 FM라디오를 사달라고 해 기어코 그것을 샀던 저의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계가 어렵고 어머니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니 내년에 대학을 가면 어떻겠느냐?" 제안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야간대학이라도 제 힘으로 가겠다는 저의 고집으로 꽤나 서운하셨겠지요. 말숙이는 대학도 갈 엄두도 못 내고 내촌에 가 소를 키워야하는데..... 저의 이기심이 극에 달한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데모를 했다고, 요즘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자기네 집에 피해가 갈까봐 인정머리도 없는 집안사람들의 시달림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또 그런 생각도 납니다. 1985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자동펌프가 얼어 터져 그 전날부터 왕겨로 땅을 녹이고 아무런 얼굴표정에 미동도 없이 그것을 다 고치고, 하루 종일 눈이 많이 내려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데도 연식이랑 정초부터 여행을 떠나겠다고 제가 했을 때,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것을 받아들이시며 "제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말을 나중엔가 하셨지요.
3학년 복학을 해서는 지금까지도 냄새를 못 맡으시는 어머니도 계신데, "축농증치료를 하지 않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어머니에게 졸라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수술을 하시지 못하셨습니다.
대학 4학년 때는 제가 구속되는 바람에 집안이 거의 초비상이었지요. 졸업을 하기 전에는 집행유예를 핑계로 쌀판 돈을 꾸어다가 출판학원에 다녔지요. 그때 신혼의 단칸방인데도 못난 처남을 재워준 매형의 고마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라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이고, 염치도 없는 짓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나서 비정규직으로, 거의 실업자로 지내는 동생,처남이 불쌍하다고 이문동자췻집에서 저를 받아준 누나와 매형의 따듯함이 있었지요.
누나 집에 있을 때에는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가스통을 밟고 도둑고양이처럼 담을 넘다 주인집에 발각돼 누나와 매형을 난처롭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쉬쉬해서 어머니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1992년 봄에 교통사고가 나 가족들이 모두다 걱정이었지요.
아래는 제가 겪었던 실업기간들입니다.
실업기간 Ⅰ ’90년 9월 23일~’90년 11월 2일(상품성이 떨어짐과 지방대출신이라는 족쇄 때문에)
실업기간 Ⅱ ’91년 1월 20일~’91년 3월 1일(태어나서 처음으로 빈곤을 뼈져리게 느낀 때)
실업기간 Ⅲ ’92년 8월 22일~’93년 11월 1일(면접시 솔직하지 못해서, 아니 너무 솔직 했었나, 숱한 면접을 보았으나 매번 떨어져서 더 이상
출판계에 정열을 쏟아 붓고 싶지 않았음)
실업기간 Ⅳ ’94년 1월 31일~’94년 9월 6일(직업을 바꾸기 위해 마음에도 없던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됨)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부모님 걱정하실 까봐 명절 때 내촌에 들를 때에는 직장에 계속 다니는 척하라는 누나들의 요구로 선물도 사가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93년 사면복권이 되고나서 남예누나는 공무원시험공부를 하라고 했었지만 출판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곳을 전전하다가 어느 출판사에 몸담았던 마지막 3개월의 직장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그때 누나가 제안과 협박을 했습니다. "공무원시험을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 자기에게 꾼 돈을 다 갚고 집을 나가라고."
사실 1994년 2월의 밖은 너무 추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이 서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노량진 공무원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상황이 아니었나합니다. 이 나이에 9급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게 자존심 상하고, 어쩌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견딘 6개월이었지요.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발령을 받기 전까지 미친 짓을 하며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닌 또 6개월의 시간이 있었지요.
제가 졸업을 하고 처음으로 월급을 타서 용돈을 보내드리게 된 것은 그래도 공무원이 되게 옆에서 괴롭혔던(?) 누나와 매형의 덕이지요.
또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1997년 4월에는 사람이 살면서 겪어도 되지 않을 일을 경험하여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고마움 점은 내심은 그렇지 않으셨겠지만 당신들께서 제 나이가 서른 넷 다섯이 되었는데도 헛소리만 해대는 저보고 장가를 가라고보채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신 점은 제가 찬빈이 엄마를 만나게 해주신 점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 하시지 못하시는 부모님의 힘없음이기도 했습니다. 결혼하고 7년이 지났는데도 신혼부부처럼 지지고 볶고 살지만 제 아내 이경자를 만나게 해주신 유영이 할머니께 감사한 맘을 갖고 있습니다.
2003년 아버지께서 이승을 등지시기 전 원주와 홍천의 병원에서 투병하고 계실 때 제대로 보살펴드리지 못하고 급히 서울로 오는 저의 이기심과 치졸함을 그대로 드러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서 제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신 기억이 납니다.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한없이 마음씨 좋은 유약함으로 당신 스스로는 물론, 가족들 모두에게 버겁게 하신 쓰라림과 밭에 꽃씨를 뿌리시고, 꼴지게에 꽃을 꽂아올 수 있는 낭만적인 기질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대가족의 가장으로서는 거의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당신께서 이승을 등지시기 전 화해를 하지 못하고 보내드린 게 이내 마음에 걸립니다. 가족들 모두 눈에서 눈물이 났는데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저를 보고 연식이가 뭐라 그랬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와 저는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였습니다.
이제 팔순을 맞이하신 어머니!
어렸을 때부터 동네의 못된 짓은 다 골라하고 일곱 명의 여식애 들과 달리 문제만 일으키는, 그 잘난(?) 아들을 2005년 7월 4일 현재 두 아이의 아비와 이경자의 남편, 팔남매의 동생, 오빠로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든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편하게 사세요. 이제 찬빈이 동생이 태어나면 생신잔치를 맞으실 어머니께 또 하나의 기쁨이겠지요.
2005. 7. 4. 그 잘난(?) 아들 올림
꼬리말
이뿌~하! 읽었음...진솔하고,니마음이 담겨 있어서 더...... 2005/06/29
허인자 필두야.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자꾸 미안하다. 그 때는 모두 힘들게 살 때였지만 잘들 견뎌왔다구 생각해. 너무 자책하지 마. 2005/06/30
조팝나무 엄마 울리기로 작정 했지? 근데 너 제목 참 잘 뽑는다. 난 그 게 안 되는데.... 2005/06/29
말숙이 나도 나오네 무슨 소설같다 ====2부는 언제? 2005/06/29
허인자 무슨 소설이긴. 솔경지 사람들 1탄이지. 컨티뉴가 기다려진다 2005/06/30
이뿌~하! 연기 됐다네~~ 휴~~3일 또 벌었다네.ㅋㅋㅋ 2005/06/30
블루 연기되면 더 안쓰는데,,연기시켜주면 안되는데,,나처럼 사흘밤낮을 써야지.
밥도 안해주면서, 2005/06/30
이뿌~하! 또 그랩니다=> 또 그럽니다 / 부그러움만 남는게 =>부끄러움만 남는 게 /
수술를 하시지 =>수술을 하시지 / 자취집=> 자췻집.........잘난 척의 극치! 2005/07/01
이뿌~하! 그런데, 언제 마무리 해? 우리한테만 채근하고,너 나뻤어. 2005/07/04
찬빈이아빠 이제 더 이상의 글 삭제나 수정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밑줄친 부분은 어느 가족분의 요구로 수정한 것입니다. 2005/07/04
이뿌~하! 월요일 아침부터 울리네..내가 설마 너한테 집나가라고 했을까?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지) 그런데, 시간되는대로 교정 좀 잘 봐라.니글이
제일 심해. 밥에 꽃씨를 => 밭이야. 누가 보면 이상한 분인 줄 알겠다야....아?
그리고 너 울었는데, 상여가 산소로 갈 때 영정 든 너눈에 눈물 맺힌 거
내가 봤는데, 2005/07/04
블루 가심이 찡하네, 왜 또 글은 그렇게 잘쓰는 거야? 2005/07/04
찬빈엄마예요
글쓴이 : 이경자
조회 : 14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14:36
어머니께,
제가 결혼한 지 벌써 7년이 다되었습니다.
그동안 한 가족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으나 아직까지는
미흡하고 부족한 점이 아주 많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조금씩 노력하고자합니다.
어머니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늘 건강하게 지내시기 빕니다.
저는 항상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 태어날 아이가 남아여서 저 역시 한시름을 놓고,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려 다행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소박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이번주 토요일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 보냈으면 합니다.
찬빈이와 찬빈이 아빠, 태어날 아이, 어머니, 가족들 제게는 다 소중한 분들입니다.
2005. 7. 3.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찬빈이 아빠사무실에서
늦게 며느리가 올립니다.
꼬리말
블루 언니, 뱃속의 아기 잘 돌보고, 펜션 저렴한 가격에, 장소가 좋아서 기쁘네요,
고마워요, 글도 감동적이고,, 2005/07/04
이뿌~하! 더욱 더불어 사는 우리 가족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며 살아 볼까나?ㅋㅋ
2005.6. 미래산부인과에서 찬빈이동생의 사진
팥쥐말숙이가 올리는 글
글쓴이 : 말숙이
조회 : 11 스크랩 : 0 삭제 요청: 0 날짜 : 2005.07.04 01:38
우리엄마!!!!!!!!!!!
내촌에 있을 때 언니들이 냉동실에다 쇠고기를 사다두면 덩어리째
삶아서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듬성듬성 썰어서 굻은 소금 꾹꾹찍어
먹으며 눈을 마주치고 웃던 일, 퇴근하면서 건너다보면 마당의자에
앉아 계시는 아부지.
내가 봇도랑쯤 오면 "말숙이 온다~~~"
크게 소리치시면 엄만 국을 다시 데우고 내가 대문에 들어서면
"밥 먹어라 아부지가 너 오는 거 다리 건너부터 보시고
온다 온다 소리치신다 밥 차려주라고"
제가 들어오면 아부지가 지팡이로 대문을 콱 닫으시고 들어오셨어요
그때 많이 많이 행복했어요
제가 결혼 전 홍서방 만나고 늦게 막차타고 들어올 때 다리까지 나오셔서
왜 이렇게 늦었냐고 화내실 때도 몰랐어요
그렇게 서운하신 줄을.
지금은 엄마마음 알아요.
엄마 엄마의 말씀처럼 젊었을 때 더 가꾸고 이쁜 옷도 많이 입고
화장도 하고 이쁘고 건강하게 살게요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더더더더더더더더 오래오래 사세요
사 랑 합 니 다!!!!!!!!!!!!!!!!
이쁜 팥쥐딸 말숙이가 엄마에게 올리는 글
추신 :: 돈 내놔~~~~돈 내놔~~~`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
꼬리말
이뿌~하! 그 시절에도 학교 폭력이 있었나 봐....누구야? 돈 갖고 오란놈이.ㅋㅋ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윤정이에요♡
글쓴이 : 일편단심 민들레™
조회 : 15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4 00:43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윤정이예요.
할머니 댁에 많이많이 가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많이 못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너무 죄송해요~~~~~~~>ㅁ<
할머니 오래오래 사시구요. 제가 커서 맛있는 음식이랑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거 많이 사드릴게요~~~^ㅇ^
할머니 80생신 정말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영원히 만수무강 하세요 ♥♥♥
- 할머니의 영원한 손녀 윤정 올림 -
꼬리말
이뿌~하! 윤정아! 시험이라 공부하기 힘들고 귀찮지? 시험 잘보고 원주에서 신나게 놀자!!! 2005/07/04
♡지혜♡^-^ 윤정아 우리 웃는모습으로 만나쟝~ 알찌? ^^
예은이예요
글쓴이 : 말숙이
조회 : 8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2 21:05
안녕하세요? 저 예은이예요
팔십생신 축하드려요. 원주에서 즐겁게 놀아요.
예전에 내촌 강에서 놀았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요즘은 언니랑도 잘 지내고 있어요.
원주에서 놀고 다시 내촌 집에 갈 때 저는 더 놀고 싶을 거예요.
그래서 그 시간이 빨리 가지 말라고 바랍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예은올림
꼬리말
이뿌~하! 너무 잘 썼다 ㅇㅖ은이~~ 그래 우리 모두 모여 정말 재미있게 놀자!!
건강하고 지내... 2005/07/02
블루 보고싶다, 예은아, 남인이모는 예은이가 넘넘넘 구엽고 기특해,,,,,,,,,
본받을 점도 많은 아이고,,,,,,, 2005/07/04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글쓴이 : 원주라요(서성덕)
조회 : 5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16 09:00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덕 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옛 모습이 아니였던가 하여 옮겨 적습니다.
꼬리말
허경자 그래요. 세상의 어머니들 다 그렇게 자식들 가슴에 아픔으로 남을 거에요. 2005/06/16
블루 우리 남편 참 멋져요. 이런 뭉클한 글도 옮기고,,,,,,,,,,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니까요. 2005/06/16
하이5 진짜? 담에 주문진가서 꼭한번 만져봐야징.. 2005/06/16
하이5 울엄니를 위해서 쓴 걸거야... 세상에 울엄니같은 분이 엄청시리 많다면
또 몰라두... 어디서 꼭 맞는 것도 퍼오셨수.... (진짜 한가지 기특한것은 ~~맞넹.
ㅋㅋㅋ오잉?) 2005/06/16
조팝나무 근데 막내 동생 혹시 팔불출? 2005/06/18
*피로기* 나두 한표! 2005/06/21
엄마 1-엄마는 저의 희망이예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1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11:40
사랑하는 엄마께.
평소에는 엄마께 드리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이렇게 새삼 쓰려니 그 말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네요. 말이란 것은 마음의 모든 부분을 다 표현할 순 없나봐요. 우선 이렇게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심에 감사 드려요.
연세 드신 나이에도 저를 예쁘게 키워주셨어요. 엄마는 제가 다칠까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얼마나 소중하게 키워주셨는지, 늘 약한 탓에 걱정만 끼쳐 드리고, 엄마가 저를 '금쪽같은 내 새끼'로 키워주셨기 때문에 저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남들도 엄마처럼 모두 저를 예뻐해 줄 것이란 생각 속에 살았어요.
오늘은 비가 무척 많이 내리네요.
비하니 생각나네요. 장마지면 성세환네 집에서 어설프게 밥해 먹던 거, 시퍼란 물결 건너편 논둑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그렇게 악다구니 써가며 울던 거, 그때는 왜 그리 슬펐는지,,,,,동트기도 전 새벽에 문현동 고갯길을 넘어서 절 데려다 주시던 거, 그때 그 시퍼런 물살 옆으로 가면서 그 물이 날 덮칠 것 같아 얼마나 무서웠는지,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는 벼랑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을까봐 또 얼마나 겁났는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시절! (그러다 죽었으면 어쩔 뻔 했지!)지금은 비 많이 오면 '천재지변'이라 하여 결석처리 안 하는데,,,,,, 엄마의 그 교육열은 참 대단했어요. 때론 생각해요. 그 때 그 힘들게 걷던 산 길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힘든 일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었다구요.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 문현동 길을 엎어졌다 자빠졌다 하며 장맛비에 걷게 하고 싶은 심정도 있어요. 호호
어느 날 문현동 다리를 지나 산길을 미친 듯이 오는데 어두워지는 밤에 소복 입은 귀신이 휙 지나가는 거예요. 정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식은 땀이 확 나는 게, 당장 그 자리에서 죽을 것만 같더라구요. 가뜩이나 무섬타는 제가 어떻겠어요? 죽었으면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뛰고 또 뛰고, 달리고 또 달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데, 어느 순간 앞에 엄마가 계신 거예요. 아! 이제 살았구나. 지옥에서 천국에 온 것 같았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죽음에서 날 살려주신 엄마였어요. 엄마는 그런 존재예요.
잘 때 기가 약해서 항상 무서운 꿈을 꾸고 으악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지요. 식은땀을 흘리며 으스스한 꿈속을 헤매다 죽음의 공포와도 같은 무서움에서 악소리 지르며 깨면, 그때 역시 옆에 엄마가 계셨어요.(지금은 서서방이 있지만) 그때부터는 다시 편안히 잠들었지요.
엄마! 엄마는 그때의 엄마처럼 항상 내 삶의 구원자이며 희망이예요. (2부로)
엄마 2 -사랑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2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11:41
어린 시절!,
엄마는 항상 들에 나가 일하셨지요, 아주 어렴풋한 추억들입니다. 우리 집 마루에는 닭똥이 즐비했고 마당에는 병아리들이 찍찍거렸고 (거기에도 닭똥이 진동했지, 이런 얘기 주제에 맞나요? ) 갓 태어난 돼지새끼들이 사랑방에서 깽깽 소리질렀고 (노릿내도 났었는데) 간혹 큰 돼지는 뛰쳐나가 뒤란을 왔다 갔다 하며 ?Z?Z거려서 사방 찾으러 다녔고(아참, 소도 뛰어난 적이 있지), ,,,,,사랑방에는 아주 징그러운 누에들도 즐비했지요. 뽕따는 재미도 있었는데,,,,,누에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옥수수도 즐비했어요. 옥수수 알갱이에 파묻히고 기계로 따고,,,,깔깔대고
어느 날 마당에는 뱀이 돌아녔어요. 약탕기에서 빠져나와 죽을락 살락 하면서,,,,,,그 당시 왜 뱀이 우리집 마당에 자주 출현하나 했는데 그게 장수비결인줄이야,,,참, 닭을 잡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국물도 드셨는데,,,,,,울아버지는!(호호)
누가 보면 우리 되게 가난한 줄 알겠다. 동네 유지였는데,,,,,,그치요? 뭐든 먼저 들여놨지요, 냉장고, 텔레비전, 전축, 라디오, 등등, 그리고 우리가 먼저 춘천 가서 공부시켰는데 그치요? 그 당시 누가 춘천 성수여상을 가겠어요? 춘여고를 가겠어요? 홍여고를 가겠어요? 사대부고에서 장원을 하겠어요? 그치요?
어린시절 말숙 언니랑 오빠랑 소 몰고, 나는 그 뒤를 따라오며 아카시아 향기를 맏던 그 개울가 좁은 길도 생각나요. 개울에서 개 헤엄치면서 강 건너편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는데,
여름이면 뒷산 나무 그늘에 올라가 언니들이랑 낮잠을 자기도 했는데,,,,,아! 방학이면 강가에 조기회 나가 리을 가이상을 하고 오면(아마 그때 남예언닌가 뒷통수 돌 맞아 피흘리고 왔던가!) 사랑마루에 밥상이 잘 차려져 있었지요. 오이 볶음, 호박볶음, 김치,,이런 것들인데 내 생각엔 반찬이 푸짐했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 때 광암리 친구 집에 갔다와서는 오두막집만 즐비한 것을 보고(방 한칸, 마루도 부엌도 없었음, 댓돌에다 신발 벗고,,,,,움막 같았음) 우리집이 대궐 같고 갑부라 생각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중학교 내내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비오면 일하시다 말고 항상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셨지요, 학교 앞에서 만나기도 하고, 신작로에서 만나기도 하고, 다리에서 만나면 엄마는 항상 좀더 빨리 떠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지요. 난 늘 비 맞고 가는 친구들에게 데리러 오는 엄마의 모습이 참 자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지금 유영이도 비오는 날이면 아침엔 걸어가라고 하고도 올 땐 제가 바쁘더라도 가끔 데리러 교문에 가요. 기뻐하는 유영이의 모습과 엄마를 생각하면서,,,,,,,,
엄마는 산에 일하러 가면 찔롱이나 시금치를 꺽어 오셨지요. 어떤 때는 산딸기와 깨금도 따오시고, 그 바구니 뒤지는 재미도 좋았고 모든 게 꿀맛이었는데,,,,,,,,,(아버지 산소 가며 먹던 시금치와 찔롱에선 왜 그 맛이 덜 날까요. )
엄마는 내 소품들을 참 소중히 여기셨어요. 특히 인형을 마치 내 애기처럼 다루셨지요. 엄마 옷을 잘라 이불과 베개를 만드시고 옷을 만들어 주시던 자상함! 지금까지 엄마는 인형하고 대화하시고 때리면 아프다며 어루만져 주실 정도로 소녀의 마음으로 인형을 예뻐하시지요. 그래서 저도 유영이 인형은 참 소중하게 다루는 버릇이 생겼어요.
어릴 적 생각하면 아득한 흑백이야기 같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많았는데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리네요.
엄마 3 -어린시절 저의 철없는 모습에 마음 아프셨지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11 스크랩 : 0 삭제 요청: 0 날짜 : 2005.06.30 11:41
엄마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힘들게 하실 때마다 부엌에 와서 저보고 '내가 집을 나가는 척 할 테니 날 잡는 척해라' 라고 하셨어요. 그때 전 그 말을 하시는 엄마가 참으로 미웠어요. 차라리 내 생각하지 말고 제발 좀 나가시지,,,,,,난 잘살 것 같은데 차라리 나가서 엄마가 행복을 찾았으면 했어요. 슬퍼하지 말고 제발 나가시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요. 근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안 나가시길 너무 잘하신 것 같아요. 그 때 나갔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 엄마 아빠 없는 고아가 되었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중 2때 아프셔서 서울서 내려오셨는데 약속했던 겨울 잠바를 안 사왔다고 사랑방에서 스케치북에다 엄마 욕을 옴팡지게 써놓은 것 아세요?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어서 물을 겨우 건너오시는 분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은 잠시, 옷 안 사온 것이 원망스러워 안방에 있지도 않고 사랑방에 나와서 씩씩댔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지요.
그리고 엄마가 서울 병원 계실 때 중학교 수학여행 시절 장마당에서 6000원짜리 주황색 남방을 샀어요. 당연 모르실 줄 알고 찔리면서도 빨랫줄에 널었는데 엄마는 '저게 어짼 옷이냐'하시더군요. 전 아무렇지도 않게 '있던 거예요.' 하고 얼버무렸고 엄만 더 이상 묻지 않으셨지만 분명 알고 계신 눈치같더라구요. 히히.(지금도 그 사진 있는데!)
초등학교때 오빠 전학시킬 때 우리 친구들도 춘천 전학 가는 친구들이 많아서 나도 보내달라고 며칠을 떼를 쓰는데, 하루는 마루에서 또 떼를 쓰니까 '그렇게 엄마랑 사는 게 싫거든 당장 나가거라'하고 호되게 나무라시더라구요. 그 담부턴 찍소리도 못했지요. 그 후 전학가면 공부 잘 할 텐데 하고 엄마를 원망했지만 만약 그때 전학 갔으면 엄마랑 살 수 있는 시간이 또 엄청 줄어들었을 테니까 그때도 역시 참 잘하셨네요. 짝짝짝
고등학교 땐 집에 있다 썰렁한 자취방에 오면 왜 그리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그 좁은 방이 왜 그리 서러웠는지, 된장국 냄새에 가슴이 저렸는지, 장미꽃 뒤엉킨 붉은 담장 안의 환한 불빛이 왜 그리 부러웠는지.(그래서 지금도 5월의 넝쿨 장미를 보면 마음이 아파 와요.) 너무 외로웠어요. 난 외로움이 지긋할 정도로 싫었어요. 내촌에서 언니들이 모두 도회지로 가서 혼자 있을 때의 그 외로움! 방학 때 왔다 가면 또 그 외로움! 언니들이 결혼해서 왔다 가면 또 그 외로움! 그 외로움을 삭이느라 한 일주일씩 마음 앓이를 했을 거예요. 자취방에서의 외로움! (오빠와 언니가 있는 시기에는 그나마 행복했지요.) 그 마음을 누가 알까요. 건넌방에 사는 문희라는 중학생 자취생에는 집 떠나온 일요일이면 왜 그리 세상 떠나가라고 기를 박박 쓰며 우는지, 나도 따라 엉엉대면 온 집안이 울음으로 가득찼지요.
엄마가 어느 날 춘천에 오셨지요. 작은 아버지 제사라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터미널에서 걸어오셨어요. 제가 마중을 나가니 머리에는 큰 짐 보따리를 이고 땀을 흘리며 걸어오시더군요. 그건 찐 옥수수였어요. 전 엄마를 보고 너무 반가웠지요. 작은 엄마 댁에는 고모들이랑 친척들이 많이 모였어요. 엄마가 그 옥수수를 꺼내놓자 여기저기서 집어 들었지요. 근데 대부분 옥수수를 먹다가 다시 놓는 거예요. 딱딱해서 맛이 없다고,,.친척들이 너무 미웠어요. 어느 구석에 가서 마구 흐느껴 울었지요. 근데 용희 언니가 다가와서 왜 우냐고 위로해주었어요. ,'그냥' 이라고 대답했지만 언니는 그 이유를 아는 듯, 한마디 위로를 하고 갔어요.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 그 옥수수를 가지고 왔는지 알기에,,,,,,일하다 서둘러 쪄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친척들 주려고 걸어오셨는데,,,,,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그 때 친척보다 더 잘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친척하니 또 떠오르는 게 있네요. 어린 시절! 우리만 시골 살고 작은 댁 큰 댁 고모네들 다 도시에 살았지요. 다들 괜찮게 잘 살았지요. 뚱뚱이 큰 엄마 집에 제사 보러 오면 큰 엄마는 남정이네만 예뻐했어요. 다들 베개 싸움을 하는데 나는 거기에 잘 못 꼈어요. 안 끼워준 건 아닌데 내가 소심하고 자존심 상해서 안 낀 것 같아요. 방학이면 우리 집에 친척들이 가끔 왔어요. 남정네 애들이랑 막내 고모네 애들이 ,,,그러면 깔깔대고 박수치고 뛰어다니며 또 그렇게 잘 노는 데 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밖에서만 서성거렸지요. 엄마는 당장 알아차리시고 나를 아무도 없는 밭으로 데리고 나와서 '당장 같이 안 놀거냐? 안 놀면 개들 간 다음에 혼날 줄 알아라'하고 엄포를 놓으시지요. 그러면 가서 또 억지로 노는 척했지요.,,,,,,,그때 엄마는 같이 놀지 않는 나 때문에 속이 상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특히 둘째 고모나 막내고모는 작은 댁 아이들을 예뻐했어요, 작은 아버지가 안 계신 측은함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어요. 그때 또 이를 물었지요. 내가 더 잘 될거야,,,,,,,,(나 무섭지요?) (그래서 이게 더 잘 된 건가? 잘 된 거지. 뭐! 아마 오빠도 그래서 더 잘되었을 거야. )
다 웃긴 지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엄마 4 -막내가 두 아이의 엄마, 한남자의 아내가 되었어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9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11:41
대학 때 범어사에 갔는데 스님이 잘해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듯 했어요. 그리고 그 때 제 가슴속엔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구요. '왜 우리 엄마는 그렇게 죽도록 고생해야 했으며,,,,,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것이 제 마음을 늘 불편하게 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어 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고생한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늘 괴로워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스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 당시의 모든 분들이 아마 엄마처럼 그렇게 고생하셨을 거야, 엄마만 더 고생하신 것은 아니고 더한 분도 계실 거고 ' 물론 스님은 엄마의 고생을 모르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한마디에 돌덩이 같던 마음이 풀렸어요. 그 말을 핑계삼아 다음부터는 덜 괴로워했지만 엄만 다른 사람보다 참 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생을 하시며 사셨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밝은 유머를 잃지 않으시고 강한 신념과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냈으니 그 역량을 감히 누가 따르겠어요?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어느새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네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참 힘들었어요. 내촌에 가면 전 엄마께 흥흥대고 젖 만진다고 조르고, 안아달라고 하고, 그러면 뭐라 핀잔 주시면서도 그걸 다 받아주셨지요. 생선뼈 발려주고 아기처럼 대해주셨지요. 그 순간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뭇 7형제의 부러움과 시샘을 사기도 했지만,,,,,,,,,에궁! 누가 막내 되지 말래?,)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린데,'하는 생각에 한 집안의 며느리,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노릇하기가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누군가 날 보살펴줘야 하는데 내가 보살펴줄 사람뿐이 없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엄마가 제 결혼생활 걱정 많이 하셨지요. 제가 많이 징징대서,,,,,,
그래도 항상 '한가지 기특한 것은,,,,,,'하고 남편 자랑을 해서 엄마가 웃으셨지요.
살아보니 한 가지가 아니라 기특한 것이 참으로 많네요.(팔불출이지요!)
엄마가 아프셨을 때 많은 자식과 어린 나 때문에 밥알을 세면서 드셨다는 말씀 듣고 이제 아기엄마 되고 보니 그 심정 잘 알겠어요. 제가 아프면 제 걱정보다는 '자식들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드니, 그게 엄마의 인생인가 봐요. 요새는 자기부터 생각하는 엄마들이 참 많은데 우리는 엄마한테 배운 게 있어서 자식이 제일인 줄 알고 사는 바본가 봐요.(바보 아닌데!) 유영이가 공부한다면 텔레비전 끄고, 물어보면 설거지하다가도 달려가고 준비물이 있으면 늦은 밤이라도 챙겨주고, 아이를 혼낼 때는 강하게 혼낸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감싸주며 마음 풀어주고, 이게 다 엄마한테 배운 거지요. (엄마 보단 잘 못하지만,,,,,,)
그리고 남편에 대한 마음가짐! 그것을 누가 따르겠어요. 엄마께서는 아버지가 잘 못하신 점보다는 잘하신 점을 항상 기억하시며,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고,,,,,,그러면서 한평생 아버지 위해서 희생, 봉사 하셨지요. 제 시간에 식사 드리고 약 챙겨드리고 운동시키고 항상 아버지 것 먼저 떠드리고 ,,,,아버지께 공손하게 행동이나 말하지 않으면 혼났지요. 아버지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몇 년을 간호해드리고 그러다 마지막까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시며 좋은 곳으로 고이 보내드리신 엄마의 사랑! 그 사랑을 보며 남편에 대한 사랑을 어찌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엄마가 아버지를 생각하시는 마음! 이해 못했어요. 그렇게 고생시킨 분을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그러나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사랑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집에 계시면서 제가 투정도 부리고 우울해 해서 엄마 걱정 많으셨지요.
남편도 말이 없고 나도 자연히 그렇게 되고 그리고 워낙 생활이 바쁘고 피곤하다보니 서로 말할 시간이 없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자고 텔레비전 보는 게 더 좋았겠지요. 그래서 남남같이 살았던 게 사실인데 엄마가 겨울방학 (2번)계시면서 많이 따뜻하게 해 주셨어요. 엄마가 계심으로 해서 아이들도 따뜻함을 느끼고, 아이들과 나에게, 아빠에게 인사하라고 타일러 주시고, 남편에게도 대답 다정하게 하라고 하시고,,,,,,,,처음엔 뭐 그럴 필요가 있나 했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엄마가 가신 뒤로도 우리는 한 가족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서로 어색하거나 서먹하지 않고 그래도 곧잘 얘기해요.
(인사 잘하던 애들이 또 안 하네요. 남편도 말수가 적어지네.
아무래도 엄마가 또 오셔야 하겠어요.)
말은 많이 없지만 생각이 깊고 속으로 자상한 남편! (진짠가?)
말이 너무 많아서 내가 힘겹지만 나의 든든한 딸 유영!
그리고 생알생알 거리지만 나 닮아서 착한 영화!
그리고 팔방미인에 예쁘고 현명한 남인이!
걱정마세요. 서서방도 노력하고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모두 사랑을 나누며 건강 보살피며 그렇게 잘 살게요
엄마 5- 분홍빛 아름다움을 지닌 팔순의 고운 엄마 사랑해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20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11:42
엄마가 저희 집에 오실 땐 짐을 챙기지요. 그 속엔 엄마의 고운 옷들이 들어있지요. 원주 집에 계시면서 하얗고 분홍빛의 예쁜 옷을 입으시길래 어디 가시는 줄 알았지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건 집에서 입는 옷이고 나들이옷은 또 있단다' 하시는 엄마 말씀! 더 예쁜 옷을 꺼내시며 자랑하시는 엄마의 센스!
언제 엄마가 그런 멋쟁이가 되셨는지,,,,,,,엄마가 집에선 단아하게 입으시고, 나가실 때 곱게 입으신 모습 보면, 엄마에게서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향이 풍겨요. 팔순이신 데 저렇게 아름다우신 데 젊은 시절은 어떠셨을까? 참 궁금해져요. 엄마, 전 엄마의 50대 중반 이후 정도부터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것도 잘 기억이 안나요. 때론 엄마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아기였을 때, 어린이였을 때, 처녀였을 때가 보고 싶어요. 참 깜찍하고 발랄하고 예뻤을 것 같아요. 깔깔거리며 웃는 소녀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네요. 한평생이 한순간이라 하셨지만 엄마가 옛날 일 얘기하시면 먼 흑백사진 같이 아주 먼 옛날 얘기 같아요.
한평생 고생으로 팔 남매를 키워내셨으면서 이제 팔십이 다 되신 분이 모든 것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요구하셔야 하는데 엄마자신이 괜히 자식들의 누가 될까봐 속마음 숨기고 안절부절 하시는 것 보면 울음이 복받칠 만큼 속상해요, 그리곤 그게 화로 변해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토라지게 되지요. 그리곤 곧 후회하고,,,,,,,,,
살아보니 부모님이 온갖 정성으로 자식을 보살펴야 하고, 부모가 늙으면 다시 아기가 되니 자식들이 온갖 정성으로 부모를 보살펴야 순리인데, 자식들은 다 떨어져 사니 요즘 자식들은 정말 불효만 저지르는 것 같아요. 우리 영화, 유영만 보더라도 노후에 잘해줄지 벌써 걱정이라니까요. 사랑은 받을 줄만 알지 베풀 줄을 몰라요. 나이 들면 부모에게 잘 해줄거라 물으니 유영이는 '몰라! 봐-서!' 그러고 영화는 '잘해 줄 거야' 그러던데요. 그래서 '왜?' 물으니 영화는 '아빠한테 혼날까봐' 그러데요. 웃기지요?
엄마가 다른 사람 눈치 보거나, 자식들 생각하느라 속내를 안보이거나, 엄마의 젊은 시절 삶이나 생각을, 혹은 지금의 생각을 얘기하시면 '엄만, 그게 아니에요' 하는 식으로 엄마 마음을 이해 못해드렸고, 또 가슴 아픈 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에 대한 철없는 제 생각만 얘기해서 엄마를 서운하게 해드린 점 많아요. 이 기회를 통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마의 깊은 뜻은 헤아리기가 힘들었어요. 좁은 소견으로는.........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엄마, 그 모습을 사랑해요. 팔십에도 아주 곱고 아름다우세요. 엄마는 주름살도 적고 분홍빛 옷도 참 잘 어울리세요, 그렇게 고울 수가 없네요. 그래서 엄마 손을 잡고 거리로 활보하고 다니면서 우리엄마 예쁘지요? 하고 자랑하고 싶어요.
엄마
엄마 팔순을 넓은 홀에서 멋지게 해드리고 싶었는데,,,,,,,,정말인데 그렇게 안되었네요.
아흔잔치에는 그렇게 멋지게 해드릴게요, 오래만 사시면 좋은 일이 많을 거예요, 자식들 부자 될 테고 손자 손녀 결혼해서 아가들 낳고 찬빈이 동생 재롱떠는 것보다가 학교 손 붙들고 가고 그래야 하잖아요.
우리 팔남매의 기둥인 엄마는 하늘보다도 땅보다 더,더 소중해요. 로또복권 100000000000억원을 타면 뭘 하겠어요. 그거 안타도 엄마계신 인생이 100000000000000배 더 행복한걸요.
그리고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너무 슬퍼 마세요. 아버지는 엄마의 가슴속에 늘 있잖아요. 그리고 엄마의 기도 덕분으로 극락세계에서 아주 편히 사실 거예요. 그러면서 엄마가 건강하시게 살고 자식들이 편하게 살고 그러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편하게 돌아가시게 늘 도와주실 거예요. 그러면 그때 천천히 아버지 곁으로 가시면 되잖아요. 지금은 저희와 행복하게 살아요. 그리고 언제든지 혼자살기 싫으시면 '내 집 사달라'시면서 원주 나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세요. 항상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있어 행복해요.
제발 우리들 곁에 오래오래 남아있어 주세요.
아셨지요?
엄마의 사랑하는 막내딸 남인 올림
2005년 6월 30일 비가 그친 오전에 드립니다.
꼬리말
조팝나무 국어 선생님 월급 공짜로 받는 게 아니네. 다 감동이다. 필두 남인이 모두 .
다른 딸 들도 올려봐. 또 감동하고 감동하게. 감동의 연속이다. 2005/06/30
이뿌~하! 난 또 감동하고 울까봐 안쓰고 있다..푸하하~~~
영화. 3-영화가 썼어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7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22:43
외할머니께
할머니!
어제 할머니 집에 갔다왔어요,
외할머니는 토요일날 뭐했어요?
오늘 엄마가 사줬어요, 다이너 선더, 화이트, 블루요,
외할머니는 아무것도 안샀어요?
그럼 자기만 했어요?
심심하니깐 자기만 했겠네요?
밥은 많이 드세요? 그럼 쪼금 드세요?
내가 말한게 재밌지요?
끝인데,,,,,
이게 바로 끝이예요
외할머니
생일축하드려요,
영화가 썼어요
꼬리말
*피로기* 궁금쟁이야! 아휴 구여워요.이모는 영화가 기특해요. 2005/07/03
이뿌~하! 구여워 정말.방구똥개는. 2005/07/03
♡지혜♡ 졍말 귀염당~호호호.ㅋ 2005/07/04
이뿌~하! 니가 더 귀여워~ 이런 끼약쟁이 같은...ㅋㅋ 2005/07/04
유영 3-토요일 일기
글쓴이 : 블루
조회 : 8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3 22:50
외할머니
저 진짜로 집에서 생일파티 했어요,
나도 할머니처럼 지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를 잘 봐주고 아플때 잘 봐주며
죽지말라고 하면서 그러는게 난 고마워요,
지식이 있으면 너무 좋.겠어요,
난 아이를 조금밖에 못나니깐
지식이 안될 것 같아요,
난 그게 싫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지식이 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지식이 있으니 좋지요?
할머니
할머니는 책을 좋아하시죠?
책을 읽으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
책을 만든 사람이 잘됐나 잘 안됐나
확인하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만약에 그런 사람들처럼 훌륭하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도 많이 벌고 건물을 살수 있고 땅을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 세계 왕도 좀 좋지만
그냥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될거예요, 그냥,,,,,,
퀴리부인, 에디슨도 책에 나왔으니
할머니도 책에 나올거에요.
할머니가 만약에 책을
만드신다면 나도 책만드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요,
외할머니
생일 축하드립니다.
끝,. 유영올림
꼬리말
이뿌~하! 유영이의 글 소재는 진짜 무궁무진해..... 걸어 다니는 물음표? 말되나 이거.ㅋㅋ 2005/07/04
♡지혜♡ ㅋㅋㅋ 졍말~
외할머니께
글쓴이 : 서영화
조회 : 22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21:25
외할머니
왜 집에 가셨어요?
외할머니 사랑해요.
지금 뭐하세요?
궁금해 죽겠는데요.
외할머니는 되게 되게 사랑해요,
텔레비 뭐. 뭐 봐요?
할머니 건강해요,
밥은 누가 차려먹어요?
왜 물어보냐구요?
궁금해서요,
외할머니 생신축하드려요,
오래오래사세요,
우리집에 언제든지 와도 돼요,
계속 건강해야 돼요,
잘 사세요,
끝, 끝이래요, 그만,
꼬리말
이뿌~하! 구여워~~~~ 그입이.ㅋㅋ 2005/07/01
*피로기* 치~ 큰 이모만 아파트 사 줄라 그러면서.....삐짐. 2005/07/01
이뿌~하! 그거 기냥 사주는 게 아냐~ 엄청 얻어 맞고, 발로 차이고 온갖 폭력을 다 견딘 결과야.. 그 누나로 부터는 바보 소리도 들으며~~ 2005/07/01
*피로기* 영화야! 나두죽어라 얻어 맞을게.제발 날 때려줘. 그담에 알겠지요? 2005/07/01
조팝나무 영화가 즈이 할아버지보고 큰 이모 아파트 사주라고 조르기를
수차례나 했는데 왜 안 사 주실까? 할아버지 하고도 권투하고 놀아 드리면? 2005/07/01
*피로기* 그러면 영화네 할머니가 얼른 사 주실 걸. 설마~ 2005/07/01
글쓴이 : 서유영
조회 : 11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6.30 21:51
엄청 많이 불러줘서 바쁜데 다 옮겼더니만
영화가 버튼을 잘못 눌러서 다 날아간 심정 이해하우?
난 또 그저께 다 올린 엄청 많은 글들이 다 날라가더니만,,,,,
다들 조심하우?
그러면 쓸 기력이 없어지니깐,
우리 유영이 제법 잘썼는데
다시 불러달라니까
맥 풀렸는지 싫다네요.
내일이나 쓰려나.
모두들 안녕,
유영 1 -할머니와 생일이 비슷한 유영이!
글쓴이 : 블루
조회 : 5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1 20:18
외할머니께
생신축하드려요.
저도 7월 2일 내 생일이예요 똑같아요,
왜냐하면 할머니 성, 내 성, 똑같잖아요,
그래서 똑같은 거예요,
그런말도 있잖아요,
여덟살은 여덟살이랑 공부똑같이 급식똑같이 똑같은 것처럼
할머니랑 나랑 생일도 똑같은 거예요.
전 다른 친척보다 길게 쓸거예요,
그게 자랑이예요. 전,
받아쓰기 난 맨날 100점이예요.
왜냐하면 밤이 늦어도 아침에 엄마가 바빠도 난 컴퓨터 있는 자리에서
영어학원 테스트 하는 것, 받아쓰기 공부를 해요,
난 그게 자랑스러워요,
딴 친구는 맨날 늦었다그러면 공부를 안하나봐요,
우리반에 현준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갠 맨날 20점 10점 0점 60점 이예요,
근데 두번 100점 맞는 날도 있어요.
현준이는 공부를 잘 안하나 봐요,
오늘은 7월 1일 인데 나 오늘, ELP(영어학원)에서 테스트를 하는데ㅣ
나 태희라는 친구 같이 테스트 100점이예요,
난 영어를 잘 못하지만요, 전 인제 맨날 테스트할때에 공부를 할거예요, 졸려도요,
왜냐하면 그게 좋.아요,
영어, 한문, 서예, 그런게 좋.잖아요,
있잖아요,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참 멋진 고등학교잖아요?
전 거기에 갈거예요
영어, 한문, 을 잘할거예요,
거기는 영어말, 한문말로 말을 잘 한대요,
아빠 회사가 둔내예요, 맨날 7시에 가고, 9시 20분에 와요
어쩔땐 11시에 와요, 그래서 아빠가 불쌍해요, 왜 아빠는 그 쪽으로 갔을까요?
전 그게 속상해요 조합장이 왜 둔내로 보냈을까요?
맨처음 조합장은 좋.았는데,,,,,,,,할아버지랑 아는 분이 였어요,
그래서 운전을 많이 시키면서 운동을 시킨 것 같아요,
맨 처음 조합장은 우리아빠를 아끼는 것 같아서 좋.아요,
좀 있다가 또 쓸게요
꼬리말
이뿌~하! 어머어머~~~유영이가 다 큰 애 같다. 엄마가 바빠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지엄마 닮았나? 아빠 피곤하실거야.그러니까 아빠한테 잘해 이녀석아~~~
영화.-외할머니께 2
글쓴이 : 블루
조회 : 6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1 20:02
외할머.니
생일축하드려요,
건강해야 되어요.
왜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되었을까요?
외할머니는 많이 사랑해요,
외할머니
보고싶어요,
어제 써서 어땠어요?
전 궁금한데,,,,,
외할머니는 왜 언제나
자꾸 텔레비봐요?
테레비 계속보지 않아요?
나 궁금한데,,,,,,
너무 너무 궁금해요,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전 할머니를 좋아해요,
할머니 천배만배 더 사셔야 되어요,
진짜 꼭 건강해야 돼요,
끝,
꼬리말
이뿌~하! ㅋㅋㅋㅋㅋㅋ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구... 궁금한 것도 진짜 많다..
유영 2 -외할머니께. 속담, 등대지기 읽어드릴게요.
글쓴이 : 블루
조회 : 7 스크랩 : 0 삭제 요청 : 0 날짜 : 2005.07.01 20:30
외할머니
속담이야기 해드릴게요,
1번 병주고 약준다, 뜻은 남을 해치고 나서 약을 주며 그를 구원하는 체한다는 뜻으로 교활하.고
음흉한 .자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2번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뜻은 주견이나 주책이 없이 말이나 행동이 분명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할머니
저가요, 속담은 이쯤으로 하고 슬픈 등대지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의 말을 들려줄게요,
재우, '어 어머니, ' '도대체 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형수 '도련님,
손과장 '30분후면 출발해야 합니다'
형수 '도련님, 많이 놀라셨죠?'
재우 '끄덕끄덕'
형수 '죄송해요 도련님'
재우어머니'까아아아!' '꺄아 저 나쁜 녀석들이 날 때리려고 해'
형수 '어머니도 게를 상당히 무서워하시네요'
할머니, 재우는 재우어머니를 한달동안 봐줘야 한대요
그것도 재우뿐이예요 할머니는 먹본가봐요,
등대에서 음식을 먹을때 와구와구 먹어요,
자기거먹지 말라고 그러고 선욱이 밥도 뺏어먹었어요,
선욱이는 슬픈가봐요 히잉 내밥이라 그랬어요,
이길성은 어머니가 언제까지 어디계신다구? 하였어요
아픈 할머니가 계신데도 화가나나. 봐요.
갠 좀 성질이 고약해요, 그 할머.니는 노래를 어린이 노래를 불렀어요.
무슨 노래야 하면은 알록달록 우리아가, 꼬까신 아장아장,,,,,,어디로 가느댜
산을 넘을 테냐, 강을 건널테냐, 알록달록 우리아가 꼬까신,
재우는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가 싫으신가봐요.
또 할머니는 밥을 또 달래요, 먹보.예요,
외할머니!
재.우 할머니처럼 그렇게 자라지 말고 애기처럼 하지 마시고
할머니처럼 사세요,
전 먹보 할머니 장난치는 할머니 거짓말하는 할머니가 싫어요.
그러니 할머니가 하지 마세요.
전 인제 그만이예요.
아까까지 합해서 유영올림
꼬리말
이뿌~하! (... ㅋㅋㅋㅋㅋ 유영이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