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울(鏡)나라의 리 프리들랜더
사르트르는 「존 도스 파소스론(論) (A Propose de John Dos Passos et de 1919)」에서 소설은 하나의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거울 속으로 뛰어드는 일, 거울 저쪽 편에서 본 기억이 있는 어떤 인물과 물건 사이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습뿐이고 실제로는 우리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뿐이다. 그 대신 현실세계의 사물이 외부로부터 다가와서 영상이 된다. 책을 덮으면 거울의 세계를 빠져나와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시치미를 뗀 얼굴을 한 인물과 사물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우리들은 그곳에서 거울의 세계의 반영을 본다. 소설은 그러한 것이다.
사진집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에는 리 프리들랜더의 사진 11점이 선정, 수록되었다. 이들 사진도 마찬가지로 거울, 쇼윈도, 유리창에 비친 영상을 집요하게 반영하고 있다. 즉 거울과 쇼윈도에 비치는 이미지를 사진 영상 속에 유사(analogy)로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사진을 보는 것은 하나의 거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속으로 뛰어들면 거기에서는 본 기억이 있는 어떤 모습의 인물과 사물에 둘러싸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실은 그것은 사진가가 만들어낸 세계이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 뿐이다.
위노그랜드는 “현실과 사진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하고 있고, “사진을 보는 것은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가 해석한 현실을 보는 것, 다시 말해 하나의 체험이다”고 프리들랜더 또한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의 주제와 감성은 대조적이지만 프리들랜더와 위노그랜드는 같은 사진의 사상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위노그랜드가 현실에 직접적으로 향하고 있는데 비해, 프리들랜더는 미술이나 사진의 유산을 참조해서 현실에 대응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같기도 하고 로버트 라우젠버그(Robert Rauschenberg) 형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들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그는 심미적으로 세계를 향해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프리들랜더는 1934년 워싱턴 주의 에버딘에서 태어났다. 로스엔젤레스의 아트센터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1963년에 조지 이스트만 하우스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 후 1966년 나탄 라이언스의 ‘현대 사진가들’에 선출되었을 때 이미 일부에서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진집으로는 179년에 팝 아티스트 짐 다인(Jim Dine)의 에칭과 프리들랜더의 사진을 조합시킨 공동작 『공동 작업실에서의 작업(Work from The Same House)』을 비롯하여 본격적인 최초의 사진집 『자화상(Self Portrait)』과 1976년에 미국 각지의 기념상, 기념건조물 등의 기념물을 촬영한 『미국의 기념물(The American Monument)』, 1978년 137점의 작품을 수록한 『사진(Photographs), 1982년 오하이오 주와 펜실베니아 주 공장지대의 거리와 공장 노동자 등을 찍은 『공단(Factory Valleys)』등이 있다. 그리고 사진집은 아니지만 1973년에 현대미술관에서 거행된 슬라이드쇼였던, ‘게더링(Gathering)'이라고 제목이 붙은 파티의 스냅은 큰 작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소설의 경우 대부분 처녀작에 작가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과 동시에 그것이 대표작인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프리들랜더의 경우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자화상』은 그의 사진집을 대표하는 동시에 후에 간행된 사진집 개념이 집약되어 있다.
리 프리들랜더, 자화상(좌, 중)
위노그랜드의 경우는 본질적으로 같은 개념으로 일관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동물들』에서부터 『여성은 아름답다』까지에는 상당한 형식의 변화가 보인다. 그러나 프리들랜더는 『공단』까지 거의 일관되어 있어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자화상』은 문자 그대로 자화상 41점으로 편집되어 있다. 자화상이 다른 사진과 다른 점은 직접 자신을 촬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의 세 가지 방법 중에 어느 것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자동 셔터를 사용한다.
둘째, 거울, 유리, 금속, 그 밖의 물건에 비친 자화상의 반영을 촬영한다. 그림자를 촬영하는 방법도 이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리 사진가(ghost photographer)에 의뢰해서 촬영한다. 결국 타인에게 의뢰해서 셔터를 누르게 한다.
프리들랜더의 ‘자화상’의 대부분은 두 번재 방법에 의해서 촬영되었다. 창에 비친 혹은 물체에 내던져진 나의 그림자, 거기서 나의 반영과 주위의 물체가 복잡하게 뒤섞이고 얽힌 영상의 마주침 등 미학적인 자화상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진집에서는 물체도 나도 질량을 상실한 채 같은 차원에서 떠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리들랜더는 모든 시각적 차원에서 포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로브그리에(Alain Robb-Grillet, 누보 로망 작가)의 소설에서 화자(話者)가 섬세하고도 치밀한 기하학적인 형식으로 사물을 이야기할 때, 무명인(無名人)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작자가 나타나듯 완성도가 높고 치밀한 프리들랜더의 사진에서도 ‘보는 나’가 ‘보여지는 나’이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화가 렘브란트는 1629년부터 69년까지 6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초상을 마치 일기를 쓰듯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자기분석을 하고 있다. 날짜까지 기록한 집요한 제작태도를 알았을때 필자는 위대한 한 화가의 집념에 경탄을 금치 못함과 동시에 그 배후에 있는 서구의 자아 자각사(自我自覺史)의 부피에 압도되었다.
그런데 프리들랜더의 ‘자화상’은 60년대 후반에 촬영되었다. 이 시기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혼미화되면서 미국적인 가치체계가 붕괴되고 있었으며, 자아의 붕괴가 자각된 격동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주체가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꼈을 때 급진적인 사진가 프리들랜더가 일련의 자화상 사진을 촬영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주도권을 잃어버린 자신을 부상케 하기 위한 시도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자화상』에는 깊은 상실감이 짙게 감돌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위노그랜드나 프리들랜더는 다큐멘트로서의 사진이 아닌 자기 자신의 보는 방법을 고집한 개인적인 시점의 사진을 표방하고 있다. 그들은 성조기, 정치적인 기념물과 포스터, 윈도, 자동차, 동물 등 흔히 볼 수 있는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현실을 마음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비전으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물론 로버트 프랭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프리들랜더의 경우는 다시금 워커 에반스,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등을 미학적 인용으로 그의 작품속에서 소화하고 있다.
위노그랜드, ladies(좌), 동물원(우)
위노그랜드의 사진이 직접적으로 인생을 향해 간 ‘미국의 체험, 미국의 표현’인데 비해서 프리드랜더의 사진은 미학적이다. 일상에 흔히 있는 사물이 세련되게 찍혀 있다. 일본의 젊은 사진가들이 위노그랜드보다 프리들랜더를 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인 시선에 기인한 것이다. 더욱 프리들랜더는 그의 도상(圖像, icon)을 미술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에게서 빌리고 있다. 또 그는 창에 비친 이미지를 즐겨 포착하는데, 그것은 신문사진, 엽서, 나염된 옷감을 결합한 라우젠버그의 일련의 작품에서 비롯한 것이다. 프리들랜더는 반영(reflection)의 이미지를 게임처럼 즐기고 있다. 거울 나라의 엘리스(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인 것이다. 프리들랜더에 관해서는 1974년에 본 사진전 「사회적 풍경(Public Landscape)」(뉴욕 현대미술관)의 감상을 가지고 매듭짓고 싶다.
우선 전시장에는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의 3점의 <창(Window)>시리즈 작품을 비롯하여 워커 에반스의 앨러바마의 <가구점의 간판>외 2점, 베러니스 애보트(Berenice Abbott)의 <부롯슨 레스토랑>, 유진 스미스의 <밤의 핫도그 스탠드> 등이 전시되고 있다. 마지막 벽면에는 위노그랜드의 <동물들>의 2점과 프리들랜더의 호텔 창문에서 내려다 본 코카콜라 간판 사진 1점이 전시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사진가의 사진을 선배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말로 할 수 있는 정보량이 최소한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60년대 사진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현대사진의 이해 - 고쿠보 아키라 지음, 김남진 옮김,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