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진의 문화 읽기·7
옥주현에 대한 ‘사감(私感)’
부지런해야 미녀다?!
글 | 사진·이화진 (mysleepwalk@naver.com))
“심지어 예뻐 보이기까지 합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일 때, 갓 입대한 이등병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 일이 있다. 그때는 TV 채널만 돌리면 4인조 걸 그룹(girl group) ‘핑클’이 방긋 웃어주던 시절인데, 넋을 잃고 화면을 보다가 이효리나 성유리가 웃어주면 뒤로 넘어갈 듯 좋아하는 이등병들이 옥주현이 윙크하면 “에이~” 하고 야유를 보내는 것을 보고 그는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단다.
“너희들 말이야. 우리 주현이가 나오면, 무조건 환호성과 함께 손바닥이 부스러지도록 박수를 친다. 알겠나?”
이등병들이 무슨 힘이 있나. 내키지 않더라도 병장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그때부터 이등병들은 (얼굴에는 울상 지었을망정) 환호와 박수에서만큼은 이효리나 성유리보다 몇 배는 더 큰 소리를 옥주현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 년 후, 친구는 그때의 이등병들 중 하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병장님. 이상합니다. 이제는 옥주현만 보면 자동으로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심지어 옥주현이 예뻐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심지어 옥주현이 예뻐 보이기까지 합니다!”라는 이등병의 고백에 박장대소하던 것이 벌써 6년 전이다. 그 사이 핑클은 공식 활동을 접었고, 멤버들은 각자의 장기를 발휘해서 연기나, 오락프로 진행, 음반 활동 등 제 몫을 다하며 방송가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상태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핑클 멤버들이 이렇게 오래 대중의 관심 속에서 건재하리라 짐작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그들은 당당히 독립에 성공했다. 핑클 멤버들 중에서 솔로 활동이 기대되었던 것은 단연 이효리와 성유리였다. 털털하면서도 관능적인 매력, 재치가 넘치는 이효리와 깜찍하면서도 순진해 보이는 성유리에 남성팬들의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요즘 솔로 활동으로 들어간 지 수 년 만에 각종 연예 뉴스를 점령한 이는 이효리나 성유리가 아니라, “예뻐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갸우뚱하던 바로 그녀, 옥주현이다.
어떤 포탈사이트의 여론조사에서는 옥주현은 전지현을 제치고 “가장 몸매를 닮고 싶은 연예인”으로 등극했다고 하고, 강원래는 옥주현 때문에 부인 김송과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옥주현의 말 한마디, 스타일 하나하나가 뉴스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효리마저도 2집 음반 출시를 앞두고 옥주현에게 몸매 관리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하니, 이는 마치 한 편의 통쾌한 역전극을 보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광적인 시청자?!
옥주현은 라디오 DJ, 오락프로그램의 MC, 화장품 광고 모델에, 애니메이션의 성우를 거쳐 대형 뮤지컬 <아이다>의 주역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던 그녀의 매력과 재주를 하나씩 펼쳐 보이면서 가히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핑클 시절, 그녀는 가창력과 언변은 빼어나지만 아무리 살을 빼고 성형수술을 해도 외모로는 주목 받지 못했다. <내 남자친구에게>의 “넌 내꺼야~” 구절에서 그녀가 윙크를 보내면 그녀는 갑자기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려서 갖은 인신공격성 발언의 표적이 되곤 했다. 매니저가 나서서 그녀의 윙크를 말릴 정도였다고 하니, 그때 시청자들도 참 너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윙크를 보내던 그녀도 참 대단하고.) 어쨌든 옥주현은 핑클의 실질적인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에 비해 충분히 주목을 끌지 못해 그 존재감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억울한’ 멤버였다.
제대 말년에 이등병들을 두고 장난을 친 내 친구나 순진한 이등병 덕분에 한참 웃었던 나는 핑클에서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옥주현이었다. 그때 우리는 핑클의 다른 멤버들보다도 옥주현의 솔로 데뷔를 가장 기대했다. 네 명 중 누구보다도 자기 색깔이 분명한 가수가 될 소질이 다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래 잘 하던 옥주현이 돌연,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자신감이 넘치는 새로운 ‘섹시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98년 데뷔 후 7년 만에,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대기만성인 팔방미인 엔터테이너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두고 “가수 옥주현”이라고 부르거나 그녀의 음악 세계를 운운하기는 좀 멋쩍다. “요가 전도사”가 된 그녀는 어느 순간 가수로서의 전문성을 포기했고, 노래보다 몸이 더 화제인 “미녀 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옥주현의 변신과 성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선망, 질투 같은 것들이 교차하는데, 그 시선은 어느 다른 여성 스타에 대해서보다도 이중적이다. 웬만한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떠돌던 그녀의 중학교 때 사진을 본 일이 있고, 75kg에 육박하는 거구와 둔탁한 얼굴선을 기억한다. 핑클 시절, 가수라면 당연히 들어야 하는 “노래 잘 한다”는 말에 괜한 설움이 북받쳤을 그녀를 기억하고 있으며, “가수 활동을 오래 하고 싶으면 살을 빼야 한다”는 말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녀를 동정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녀가 마치 <미운 오리 신데렐라 되기>와 같은 프로그램 출연자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에서 질투와 선망의 대상으로, 그녀는 확실히 위치를 이동했다. 이때의 질투와 선망은 그녀의 미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외모를 얻기 위한 온갖 노력들, 그리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 새로운 삶을 개척한 의지 등에 걸쳐있다. 그녀는 그저 부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존경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아, 옥주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는 최근의 연예계 뉴스를 보다 보면, 우리 모두가 옥주현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광적인 시청자들 같이 느껴진다. 한때는 우리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날개를 달고 저 위 어딘가로 한참 상승중인 그녀의 비행을 중계하는 미디어 덕분이다. 옥주현은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한 잔 마시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 공복감을 느낄 때는 물을 자주 마셔준다는 것, 가끔은 밤을 새워가며 요가를 수련할 만큼 요가에 열심이라는 것, 해외여행을 가면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여행 중에도 몸무게가 3kg 정도는 준다는 것,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식사를 한다는 것, 식습관을 조금씩 자주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 조여정, 박예진, 송혜교 등 그녀 주위에 예쁘장한 연예인 친구들도 그녀의 조언을 따라 요가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 그녀의 일과와 사생활에 대해서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은 그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녀의 노래 연습이나 방송 준비보다 그녀가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더 잘 알려지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아니. 사실 우리가 그녀의 이런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이유가 있기는 한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상이 속속들이 전해지는 이유 한편에는 신드롬을 조장해서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소속사의 마케팅 전략이 있다. 옥주현의 다리를 반복적으로 보고, 옥주현의 요가 성공담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요가를 하면 옥주현과 같은 균형 잡힌 몸을 갖게 될 거라고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그녀의 미모가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꾸고 만들어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이의 변신 성공기보다도 옥주현의 성공기는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옥주현도 했는데,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노력하면 나도 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미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등등. 그것은 흡사 옥주현이 나올 때마다 손바닥이 부서지도록 박수를 치다 보니, 옥주현이 예뻐 보이더라는 순진한 이등병의 경우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무심결에 옥주현의 요가 DVD에 손을 뻗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지런하면 미인이 될 수 있다?!
가끔은 뚱뚱하고 못 생겼다는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원한이 옥주현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옥주현이 변화시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옥주현이 신통한 주문을 걸어 뚱녀를 미녀로 변신시켜 줄 리도 없고, 일과 사랑에서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감스럽게도 옥주현은, “노력하면 미인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을 더 강화함으로써 “예쁘지 않은 여성은 게으른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더 부추기는 존재다. 그녀는 외모가 곧 경쟁력이 되고,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계속 갱신해서 자신을 언제나 새로운 상품으로 전시해야 하는 연예 산업의 본질을 잘 꿰뚫고 있는 머리 좋은 20대 여성 연예인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이 떠오른다. 진행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 아나운서 이금희가 10kg이 넘게 체중을 감량한 것이다. 지난 봄 <퀴즈가 좋다>의 진행에 나섰을 때, 시청자들은 그녀가 자기 관리가 부족한 아나운서라며 질타를 보냈다. 개편에 따라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자연스레 그녀도 마이크를 놓았는데, 그 몇 달 동안 그녀가 한 일은 다이어트였다. 꼼꼼하면서도 매끄러운 진행 솜씨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관리하지 않는 것은 곧 자기 관리 부족”이라며, 그녀를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많았던 것이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돌아온 그녀에게 궁금해 하는 것이 방송에 대해서가 아니라 살을 얼마나 뺐고, 또 어떻게 뺐는가 하는 점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다이어트 성공담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
이화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전공은 식민지 시기 대중문화로, <식민지 영화의 내셔널리티와 ‘향토색’>, <소리의 복제와 구연공간의 재편성> 등을 썼다. 현재,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다.
윗 글은 월간 사진예술의 협찬으로 제작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