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 임진록ㆍ박씨전 [작품 해설]
작품 배경
역사 소설이란 작가가 어떤 특정한 시대의 사건이나 인물을 선택해서 자기 나름의 상상
력을 더하여 새로운 작품 세계를 창조란 소설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선택하여 작가 나름의 의미 부여와 해석을 소설 화한다는 의미이지, 그것이 얼마
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느냐의 여부 문제와는 별개의 차원이다.
역사 소설은'역사 군담 소설’ ‘창작 군담 소설’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이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김유신전》《최고운전》《견훤전》《전우치전》《윤지 경전》《유연
전》《임진록》《박씨전》《한씨보응전》《최척전》《 임경업전》《천군전》《조웅
전》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임진록》과 《박씨전》《임경업전》은 같은 역사 소설의
범주에 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최대의 민족적 위기라 할 수 있는 전란을 배경으로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서 조선 시대 3대 전쟁 소설로 꼽히고 있다. 여기서는
《임진록》과《박씨전》만 을 대상으로 살펴본다.
임진록 (작자 미상)
《임진록》은 조선조 중기 선조 25년(1592)에서 선조 31년까지 7년여 2차에 걸쳐 일어
났던 임진왜란을 제재로 하였고, 대부분의 고전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임진록》은 이본들 사이에 내용의 차이가 매우 크다. ①최일영의 탄생, 성장, 출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본, ②이순신의 탄생, 성장 출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본, ③관운장이 선조에게 현몽하여 왜승(倭僧) 숙주를 죽이라고 제시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본, ④내용이 거의 역사적 사실을 위주로 되어 있으면서도 역사 기록물과는
구분되는 이본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④의 경우 일본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 민족의 내력, 조선과의 역사적 관계, 당대 조선의
실상 등의 내용으로 시작하여 임진왜란을 총체적으로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실존 인물이었던 한ㆍ중ㆍ일 3국의 수많은 영웅들이 한반도를 배경으로 힘겨루기를
하는데, 우리 나라의 인물로는 곽재우, 김홍립, 김응서, 이항복, 김덕령, 이순신, 논개,
신입, 유성룡, 서산대사, 사명당, 등이 등장하고, 중국과 일본의 인물로는 명나라의
이여송과 일본의 소서행장ㆍ가등청정 등이 등장함으로써 그 스케일상 다른 작품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듯 다양한 영웅들과 허구적 인물들을 상황에 따라 배치하는 옴리버스식 구성법을
시도하고 있다. 또 우리 나라 인물들이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마다 이인(異人)들이 나타
나 도와 주는 도술적 상황 설정이 특이하다. 관운장이 현몽하여 미래를 지시하거나, 직접
적을 격퇴시키는 신장(神將)으로 나타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특성을 중국 소설
《삼국지 연의》나《수호지》의 영향으로 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이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고대 중국의 명장마저도 도울 수밖에 없었다는 자긍심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 유성룡이 이여송 군(軍)을 청병해 올 때 압록강에서의 재주겨룸이라든가, 이여송이
조선 산천의 지맥을 끊으려다 태백 산신의 질책을 받고 본국으로 도주하는 대목은 당시
청원군의 횡포에 대한 조선인의 의식과, 배일사상뿐만이 아닌 배명 사상까지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종전 후 이여송이 조선 산천의 맥을 끊으려다 노인의 인도로 태백산에 들어가 청의동자
(菁衣童子)를 만나서 크게 질책을 당하는 구성은 한문본 계통의 작품에서는 더욱 강화되
어 있다. 이본들 가운데 나타난 임진록 속의 가장 대표적 설화로는 ①사명당이 일본국의
항복을 받는 설화, ②김응서ㆍ강홍립이 일본 정벌에 나서는 설화, ③이여송 군의 원병에
따르는 설화, ④관운장이 조선군을 음조(陰助)하는 설화, ⑤최일영의 꿈풀이의 충고 설화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민족적 분노와 반성의 역사적 의식을 표출해
내고 있다.
박씨전(작자 마상)
《박씨전》은 인조 때 발발한 병자호란(1636~1637)을 배경으로, 당시 실재 인물이었던
이시백(李時白)의 가정을 중심으로 박씨란 가공 인물을 여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역어 나가는 작품이다. 역시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조선 인조조에 한양에 이득춘(李得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조참판ㆍ홍문관 부제학
에 이르는 등 널리 명성을 떨친 이득춘은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시백은 성장함에
따라 위인이 총명하고 비범하였다.
어느 날 박 처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득춘과 더불어 신기(神技)를 겨루며 놀다가 시백을
청하여 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가 딸과의 혼인을 청한다. 이득춘은 박 처사의 신기가 범상
하지 않음을 알고 쾌히 응낙한다.
아득춘은 정해진 날짜에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 처사의 딸 박씨와 혼인시킨
다. 시백은 첫날밤에 박씨가 천하의 박색에 추물임을 알고 실망하여 그날 이후로는 박씨
를 돌보지 않는다. 가족들에게마저 비웃음과 모멸을 당하던 박씨는 어느 날 시아버지에
게 피화당(避禍堂)을 지어 달라고 청하여 그곳에 홀로 거처한다.
박씨는 이득춘이 급히 입어야 할 조복을 하룻밤 사이에 짓는 재주와, 비루 먹은 말을
싸게 사서 잘 길러 중국 사신에 비싼 값에 팔아 가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박씨
는 시백이 과거를 보러 갈 때 신기한 연적을 주어 그로 하여금 장원 급제하도록 한다.
시집온 지 삼 년이 된 어느 날 박씨는 시아버지의 허가를 얻어 금강산의 친정에 다녀오는
데, 불현듯 몸을 날려 구름을 타고서 순식간에 도달하여 묶고는 다시 이틀 만에 시가로
돌아온다. 이때 박씨 처사는 딸의 액운이 다하였기에 이 공의 집에 가서 도술로써 딸의
허물을 벗겨주니, 박씨는 일순간에 절세 미인으로 변한다. 이에 시백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시백은 장원 급제하고 평안 감사가 되어 부임하였다가, 병조 판서가 되어 다시 서울
로 돌아온다.
이때 중국 남경이 가달(可達)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워졌고, 역부족임을 느낀 중국이 우리
나라에 원병을 청해 온다. 이에 조정에서 시백을 임경업과 함께 남경으로 보낸다. 그 곳
에서 시백과 임경업은 가달의 난을 구하고, 귀국하여 시백은 우의정에 임경업은 도원수
에 봉해진다.
이때 호왕(胡王)이 조선을 침공하려 하나, 이시백과 임경업 같은 명장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하여 침략하지 못하다가 기홍대라는 여자를 첩자로 보내 시백과 임경업을 죽이려
한다. 박씨는 이것을 알고 기홍대의 정체를 밝히고 혼을 내어 쫓아버린다. 두 장군의
암살을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주청하
지만 간신 김자점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서
를 보낸다. 많은 사람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만 무사하였
다.
이를 안 적장 용골대가 피화당을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형
용골대도 크게 혼을 내준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
게 또 한번 대패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박씨를 절충 부인에
봉한다.
이 작품은 병자호란 때 우리 나라가 항복한 것을 기정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피화당이라
는 허구적 장소를 배경으로 당시의 무력한 정규군에서가 아니라 일개 나약한 여인의
지혜와 도술로써 충분히 전승할 수도 있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박씨전》은 봉건적 남존여비 시대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민족적 울분
을 설욕하려 하였으며, 여성의 위치를 제고시켰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박씨전》을 ‘여성 영웅 소설’ ‘여걸 소설’등 으로 부르기
도 하는데,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 즉 주인공인 박 씨와 시비 계화, 호왕후
와 기홍대 등은 앞일을 예견하고 전투를 지휘하는 등 모든 능력에서 남성들을 능가한다.
그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남성들이 피동적 인물로서 여성의 하수인인 듯한 인상을
풍긴다.
《임진록》과《박씨전》은 모두 전란을 제재로 한 역사 소설이면서《박씨전》이 가정
내의 갈등과 해결로부터 국가의 변란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면,《임진록》은 국가적
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이야기라는 차이를 갖는다.
그러면서도 두 작품은 주제상 배일(排日)ㆍ배청(排淸)이라는 국가의 자주성에 역점을
두고 있고, 소설적 전개를 위해 초자연적 신화적인 도술을 동원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비록 승리로 끝났다고 볼 수는 있으나, 7년이라는 긴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와 민중들이
피폐해짐으로써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임진왜란, 치욕적인 항복을 통해
아우의 나라로 전략해 버린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모든 백성들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굴욕감과 분노를 이 두 역사 소설은 도술 등의 허구적 장치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치욕적 사건으로, 정치적ㆍ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끼쳤으며, 야인
이라고 경멸했던 만주민족과 왜인들에게 패한 만큼 민중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
다.
이 두 작품은 현실적으로 패배한 전쟁에 대한 확인을 통해 그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 모두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설욕의 대리물이라 할 수 있다. 민족적 분노라는 보편
정서를 소설을 통해서나마 설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작품은 더욱 성행할 수 있었
고, 전란 후 이러한 유형의 소설들이 양산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박씨전》은 가정 소설과 역사 소설을 휼륭하게 접합시켰다는 점에서,《임진록》은
일정한 주인공이 없이 옴니버스식 형태를 취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면의 소설에 선구
가 되었다.
[내용 출처] http://www.esokd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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