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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억제를 통한 도약본능 승화
시집 『에스프레소 한 잔은 말줄임표다』를 통해본 이방자의 시세계
김순진(시인․스토리문학 발행인)
이방자 시인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봄이다. 당시 필자는 은평구에서 시창작강좌를 개설하였는데, 그 현수막을 보고 이방자 시인이 등록을 하였던 것이다. 처음 시를 배우러 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녀의 수준은 초등학생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시인은 당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필자는 우울증을 앓는 환갑이 넘은 초로의 여인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고민했다. 나의 창작지도방향의 목표는 숙련된 시적 기교보다 희망과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있었다. “시는 희망으로만 통한다. 시는 밝아야 한다. 시는 맑아야 한다. 시는 햇솜 같아야 하고 밝은 호수 같아야 하며 어두운 생각, 우울한 생각은 모두 접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피력했다. 거의 쇠뇌와 같은 필자의 강의에 차츰 이방자 시인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얼굴에서 그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생이 강조를 한다고 할지라도 학생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가르칠 수 없는 법인데, 이방자 시인은 필자를 더 없는 스승으로 알고, 믿고 따라주었다. 아니 희망으로 통하는 통로에 스스로 들어섰다. 그렇게 해서 약 4년여를 배워 금년 봄에는 등단의 영예를 안았으며 급기야 첫 시집을 상재하게 되었다. 이 시집은, 가르친 필자나, 열심히 배우고 따라온 이방자 시인 모두에게 기쁨이자 선물이다.
이방자 시인은 연만하신 연세에 당시 숙명여대를 나온 재원이다. 출신학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빨리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간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계발하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이지 타고난 시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시인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함박눈 내리는 거리를 무작정 걷고 싶다거나, 비오는 오솔길을 홀로 걷고 싶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시인이라는 새로운 인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타래 풀리듯 살갑게 감아드는
밀라노 광장 바람결에 나서면
부화를 멈춰버린 에스프레소 향에
고풍스러운 의자가 묵묵히 걸어와
즐빗하게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추억 한 잔을 주문한다
저녁 해는 꾸역꾸역 그림자에 끌려가는 소리를 내고
그에 뭉텅뭉텅 빠져 나가는 애잔한 대사들
감촉만으로도 울컥 이는 정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저녁노을에 주파수를 맞춘다
언제나 나를 키워낸 역동적인 커피의 향
나는 이제 완만한 식사를 끝내고
즐거운 인생의 커피를 마실 준비를 한다
에스프레소는 다난한 일상을 잊는 말줄임표다
-「에스프레소 한 잔은 말줄임표다」전문
사람들은 인생을 일컬어 100여년에 걸친 머나먼 여정이라고 말한다. 이 긴 여행길을 나서면서 처음에는 가족과 만나고 유치원을 시작으로 사회와 만난다. 그러나 가족이나 학교, 군대는 모두 강요된 구성원이다. 강요된 구성원과의 만남은 비록 강요되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인성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정말로 머나먼 여행길을 떠날 수 있도록 기초한다. 강요된 환경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고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저녁해는 꾸역꾸역 그림자에 끌려가는 소리를 내고”라 말하면서 “그에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애잔한 대사들”이라며 인생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힘들고 고된 인생여행을 풀어주는 열쇠는 역시 여행뿐이다. 여행은 사람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도 한다. 그러기에 시인은 그간 살아온 인생역정에 대해 ‘완만한 식사를 끝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커피를 마실 시간이다. 그것도 밍밍한 커피가 아니라 독한 에스프레소 커피이다. 그녀에게 시는 완만한 식사를 끝내고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처럼 ‘다난한 일상을 잊는 말줄임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이만 오면
그림자 없이 따라다닌다
바람이 휘익 불자
높은음자리표가 아스팔트 위에 툭 나뒹군다
질척이는 골목길엔
두 음계가 붙어 반 박자 빠른 음표로
가쁜 호흡을 고르고 있다
언어의 유희에 발목 잡혀
밖으로 내몰린 센치멘탈리즘
왈츠를 추듯 일정거리로 반듯하게 서서
사브작사브작 오솔길로 접어들면
조용한 사색이 이슬처럼 맺히고
_「반듯한 동행」 전문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까? 결코 귀찮게 하거나 비비대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리. 이는 아마도 우리 인간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거리일 것이다. 우산은 늘 주인과의 일정한 거리에서 앞서서 비바람을 헤쳐 나간다. 자신이 뒤집힐 지라도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한다. 어쩌면 부모 같은 사랑이다. 우산이 사람에게 무얼 바라던가. 무조건적인 사랑에도 인간은 감사하기는커녕 비가 그치면 구석에 처박아두거나 내던지기 십상이다. 젊은이의 사랑을 감춰주는 역할을 자처하거나 오솔길을 걸으며 조용한 사색을 자처하는 우산, 작가는 우산과의 거리에서 사람들과의 거리를 생각한다. 이 시를 읽노라니, 이슬비 오는 거리를 조용히 사색하고 싶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시던 양미리조림
그때는 꽤 자주 먹었는데 잊고 산지가 오래다
남편이 먹고 싶다기에 바짝 마른 양미리를
한 입에 쏘옥 들어가게 토막내
양조간장에 태국 굴간장 물 넉넉히 붓고
무를 먹음직하게 어슷하게 썰고
갈은 마늘 고춧가루 한 스푼 올리브유 한 방울
청량고추 파 송송 자글자글 조려 식탁에 올린다.
얼큰 짭짜름한 양미리조림이 먹을 만하다고
맛있게 먹어주면 더 잘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도 흔한 게 양미리였는데
이제는 별미가 되었다
무엇이든 재료가 넘쳐나는 요즈음이지만 예전에 먹던 음식
잊지 못해 시골에서 먹던 옛 음식을 가끔 해달라는 그 마음은
고향이 어린 시절이 그 사람이 안고 살아온 세월이
거기에 있어서겠지
-「양미리조림을 하며」
시인의 언어 속에는 삶이 녹아있다. 시인이 채택한 시 제목을 면밀히 살펴보면 「양미리조림을 하며」, 「소래포구는 자물통이다」,「패키지여행의 반란」,「매향리 밤바다」,「총각김치를 담그며」,「치매병동에서」,「신호등과 아버지」,「경동시장」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리움이니, 사랑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추상적인 언어들을 배제하고, 직접 삶이 곧 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가의 생각이 생활과 시가 둘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들은 제목만 보아도 호기심이 유발된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독자 스스로 시를 쓰게 한다. 가게 이름을 잘 지은 가게 앞에 발길이 머무는 것처럼 이방자 시인은 제목만 보아도 독자들의 눈을 불러 세우는 마력을 가진다. 어릴 적에 먹던 ‘양미리조림’이 지금 입맛이 변하고 먹을 것이 많은 세상에 와서 그 맛을 느낄 수 없을 런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형이다. 과거는 기억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억으로만 살 수 없다. 양미리가 맛있었다고 날마다 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기에 시인은 양미리조림을 하면서 양미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해주시던 세월을 먹고, 남편과의 사랑을 먹고 있는 것이다.
윙윙 불만 가득한 바다는
비닐하우스를 통째로 삼키며
무서운 기세로 달겨든다
혹독한 겨울바람에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가슴에 파고드는 한기에
엉거주춤 난롯가에 둘러앉아
조개 한 바구니 연탄불에 올리니
사타구니 벌리며 오줌을 갈긴다
고막을 찢을 듯한 바람소리에
이슬로 목젖을 적시니
그제서야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가는 술잔에
겨울외투처럼 정 두텁다.
-「매향리 밤바다」전문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겨울날, 시인은 동료시인들과 더불어 매향리 밤바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바다 가운데를 돌로 막아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비닐로 지은 한 노천횟집에 들어가 모듬 조개구이에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귀청이 찢어질듯한 소음에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술이 몇 순배 돌다보니 차음 서로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처럼 크고 거세게 들리던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바람이 멈춘 건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게 되지만, 그것보다도 사람은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고 눈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은 아무리 큰 굉음일지라도 사람사이를 가를 수 없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춥고 황량한 바닷바람이라 할지라도 좋은 사람들 여럿이서 술을 마신다니 어찌 겨울외투처럼 따스하지 않겠는가?
아침 산책을 나가다 보니
채소를 방금 싣고 온 차 한대가 서있다
딸 좋아하는 반찬거리 하나 더 해놓을까
몇 푼 넣어 나온 걸 아는지
새파란 무청은 고개를 바짝 들고 활짝 웃는다
묵은 김치도 다 끝나가는데…
총각무 석 단, 쪽파 한 단
깨끗이 손질해 왕소금에 절여놓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 옆에서
'총각김치는 네 엄마가 한 게 제일 맛있다'며 태워주는
서푼짜리 비행기도 빼놓을 수 없는 맛의 하나
멸치젓국에 갖은 양념 썩썩 버무리니
총각김치는 벌써
뜨거운 밥 한 공기를 덥썩 집어간다
-「총각김치를 담그며」 전문
잘 쓴 시의 조건이 몇 가지 있으니, 그 첫째 조건을 말한다면 그림이 그려지는 시요, 둘째조건을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시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보통의 일상을 전개되는 순서에 의해 편안하고도 사실적으로 써내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금방 입가에는 미소를 그리면서 머릿속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특별히 미사여구나 어려운 시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무런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이런 시에 감동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을 토대로 경험했던 사실을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총각김치를 담가본 사람이나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사람의 대상이 아닌가? 시라는 것이 상상만으로 쓰는 것을 배제한다면, 다시 말해서 살아보지 않은 바닷가 생활을 상상만으로 쓰거나 그럴 것이란 추측으로 쓴다면 바닷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금방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이방자 시인의 시는 겪고, 보고 느낀 일만을 편안하게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양념이 벌겋게 묻은, 금방 버무린 총각김치 한 개를 손에 들고 흰 밥 한 수저를 입에 떠 넣는 것 같은 즐거운 시맛을 독자에게 먹여주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따귀를 갈기고야
불을 켜는 성냥처럼
마흔이 되어서도 아비의 주린 손만 바라보며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바라지하느라
아비는 오늘도
모스크바 하늘 한 뼘 끌어다
서울 하늘에 별자리를 띄우고
빨강 초록 노랑 신호등을 점검하며
초로의 건널목에 서있다
오늘은 아들 카드 결제일
숨 막히는 글자 위에
등짐 버거운 아비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푸른 신호등에 성냥을 그어
담배를 피워댄다
-「신호등과 아버지」전문
좋은 시는 억지로 쓰여지지 않는다. 가령 학교에서 숙제로 ‘비’라는 시제를 주고 써오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다행이도 숙제 낸 날이 비가온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맑은 날 ‘비’라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억지로 과거여행을 해야만 한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될 수 없고 그러기에 좋은 시가 나오긴 만무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방자 시인이 시를 쓰는 자세는 특별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소재를 시제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보통 시를 처음 쓰는 사람들의 노력임에 반하여, 이방자 시인은 일생생활 자체에서 시제를 찾고 있으며 억지로 노력하지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밥을 먹다가 생각이 떠오르거나, 남편을 바라보다가도 측은한 생각이 들면 바로 시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자 시인이 채택한 시어들은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히 고민한 흔적도 많지 않지만, 우리는 그녀의 시를 읽으면서 편안함과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를 읽으면 마치 우리의 일상인양 착각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시인 사진만 아는 시, 자신만 느끼는 시, 내 속에서만 작용하는 시, 즉 홀시(獨詩)를 버리고 공시(共詩)를 지향해서 시를 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방자 시인의 시들은 주관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객관화작업에 성공했다는 말로 풀이된다. 그녀의 묘사는 정말 재미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따귀를 갈기고야/ 불을 켜는 성냥처럼”이란 구절은 아비의 심정과 자식의 행동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알맞게 물 들은 단풍길
갈 냄새 들어와 발등을 적시는데
쓰발! 계집년들이 무슨 운전을 한다고…
덕지덕지 내뱉는 욕설을
옆에 앉은 나는 참는 게 미덕인양
꿀꺽꿀꺽 잘도 받아 삼킨다
쉴 새 없이 유리창에 부딪혀
발을 동동동 르며
건너편 차 들릴 리 없는 욕설들을
차 안 가득 싣고 달리는데
상큼한 가을은 뭐가 좋은지 그래도 따라온다
차창을 열자 상큼한 공기 코끝에 닿는 순간
발끝에 떨어져 뒹굴던 누명은
어느새 훨훨 날아가버렸다
「차 속에 누명을 벗기다」전문
이 작품은 월간 스토리문학 2008년 4월호에 실린 이방자 시인의 신인상 등단 작품인데 심사위원들은 ‘현대감각의 시적 기교가 돋보이는 시’라고 심사평의 제목을 달면서, “이 시인은 현대감각의 시를 많이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응모해온 작품들의 제목에서 볼 때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는 금방 드러난다. ‘가을, 수락산, 수박’ 그런 단순한 제목에서 벗어나 ‘차 속의 누명을 벗기다’, ‘에스프레소 한 잔은 말줄임표다’ 등에서처럼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여야 한다. 제목은 상품의 포장이다. 포장이 좋지 않은 상품은 싸구려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구하는 주제를 감추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기법은 체계적인 훈련 없이는 가능치 않으니 그간 습작해온 노고를 치하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상대방의 욕설을 차창을 열어 가을향기로 날려버리는 순발력은 통쾌하기가지 하다. 글을 끌어가고 전개하는 솜씨도 좋다. 다만 지나치게 감상으로 흐를 여지가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연만하신 나이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며 새로운 집을 짓는 일만큼이나 맘 설레는 일이다. 시를 통해 영혼이 윤택한 노후를 맞이하실 걸로 기대한다. 기쁨으로 추천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시인이 이처럼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체계적인 공부를 해온 결과로 그간 필자를 따라다니며 공부해온 노고에 치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