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임레 케르테스의 대표작. 원제는 ‘운명없음(Sorstalnsag)’으로 타자에 의해 강제된 삶과 자신의 내재적 의지 사이에서 운명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경찰에 잡혀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던 소년 죄르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르지는 유대인 말살 장치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잃어버리고 전적으로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삶의 의지만을 희망의 끈으로 간직하게 된다.
이 소설의 독특한 관점은 이전에 나온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끔찍한 일들을 분노의 감정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을 통해 충격을 던진다. 작가는 여기서 많은 것에 대해 침묵하면서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언어를 발견했다. 임레 케르테스는 극한적인 상황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현실에 가능하면 충실하게 적응해 나가고자 하는 순진한 소년의 시선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작가 소개 임레 케르테스 -1929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44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이듬해 석방되었다. 부다페스트신문 <빌라고사그>에 취직했으나 해고됐고 그후 2년간 군복무 뒤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로 아우슈비츠 체험을 담은 소설「소르슈터렌서그(운명)」「길을 발견한 사람」「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가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학상, 라이프치히 서적상,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며, 유럽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소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역서로「로마문학기행」「바이마르 문학기행」「소비의 미래」「실크로드 견문록」「제우스의 이름으로」「생도 퇴를레스의 혼란」등이 있다.
모명숙 -독일 뮌스터에서 수학했고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성균관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논문으로 『하인리히 만의 소설「머리」에 나타난 지성의 문제』가 있고, 역서로「비둘기」「나자렛 예수는 누구인가」등이 있다.
책표지 글 노벨문학상 수상자 임레 케르테스의 대표작「운명」한국 입성! 피할 수 없는 운명, 아우슈비츠에도 행복은 있다 강제수용소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과연 그곳에서의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굶주림, 강제노동, 고통, 죽음을 연상시키는 불운의 현장은 행복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것은 아닐까? '20세기 1000권의 책'에 수록된「운명」에서 저자는 15세 소년 죄르지의 시선을 통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상황에서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자유가 있는 한 운명은 없다'라는 명제를 통해 우리 자신이 바로 운명임을 역설한다.
미디어 리뷰 세계일보 - "아우슈비츠 즐거웠다" 15세소년 충격 고백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 장르를 통해 지속적으로 되풀이돼 온 것들이어서 특별히 새로울 게 없을 정도다. 수용소에 갇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죽음을 면하고 돌아온 이들의 증언도 수없이 많다. 이런 마당에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작품이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새삼스럽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 조용호 기자(2002-12-05)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 장르를 통해 지속적으로 되풀이돼 온 것들이어서 특별히 새로울 게 없을 정도다. 수용소에 갇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죽음을 면하고 돌아온 이들의 증언도 수없이 많다. 이런 마당에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작품이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새삼스럽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73.사진)가 선정됐다는 외신에 접했을 때, 그것도 대학살과 강제수용소 이야기를 다룬 작가라는 소식에 접했을 때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이었다. 케르테스는 국내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은 생소한 인물이었고, 영어권에서조차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케르테스의 대표작인 '운명'(박종대-모명숙 옮김.다른우리)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책이다.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열다섯살 소년의 눈으로 그려나가는 이 작품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책의 어느 구석을 들추어봐도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 '아름다운 강제수용소'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올 따름이다. 이야기는 먼저 아버지가 수용소를 끌려가기 전날 친척들이 모여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대목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슴에 노란 별을 달고 다니는 유대인들 중의 한명인 아버지는 물론 주변의 지인들 모두 그 작별이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소년은 이러한 장면들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냉정하게 묘사한다. 아버지가 떠난 후 소년도 검문에 걸려 열차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보내진다. 소년의 아우슈비츠행은 또래의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는 분위기처럼 묘사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돼 '가스 목욕실' 대신 진짜 물이 쏟아지는 목욕을 하고 강제노동을 하는 수용소로 이송되며, 부상을 당해 의무실에서 살다가 다시 수용소로 돌아와 해방을 맞는 과정이 시종 담담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런 담담한 묘사는 작가의 의도적인 전략이다.
사람들은 수용소에서의 참상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만, 작가는 소년의 시각을 통해 삶은 수용소 안이나 바깥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과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왔기 때문에 해방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폭압적인 힘에 굴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련한 운명과 그 운명에 맞서는 자유의지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수용소에서 기다릴 모든 참혹한 과정을 다 알아버렸다면 소년은 이처럼 담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소년의 입을 빌려 '단계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의 고통과 희망은 한순간에 모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단계마다 부닥쳐서 맛보고 해결해야 할 작은 과정들이라는 얘기다. 소년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여기가 있다.
그 희망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야채 수프의 건더기 숫자에서 일희일비하는 그런 종류의 희망인 것이다. 소년이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어느 신문기자에게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고,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고 역설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핵심을 대변한다.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언설이다.
소설 속의 소년처럼 실제로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케르테스는 "강제수용소는 대부분 유대인, 나치 친위대, 반유대주의라는 일정한 틀 속에서 서술돼 왔다"며 "그러나 운명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단순한 이데올로기적인 서술을 벗어나 전체적인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년은 소설의 말미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 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 조용호 기자(200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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