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미국추리작가 협회상(MWA)을 3회 수상한 경력의 딕 프랜시스는 <오른 손>으로 영국추리작가협회상도 수상했다. 탐정소설의 컨벤션을 따르면서, 오리지널러티가 있는 수작이다.
1920년생이니까 벌써 팔순이 넘은 노작가다. 챈들러나 샌더스처럼 마흔이 넘은 나이에 미스터리 소설 <Dead Cert>('62)로 데뷰했다. 이 작품은 74년에 토니리차드슨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그는 이력이 참 특이한 작가인데, 5세때 당나귀를 타고 점프를 하는가하면, 26세에 아마추어 기수로, 28세에는 프로기수로 경마대회에서 우승도 두차례했다. 36세에 은퇴하고 경마잡지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성공한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인 경마장 얘기를 일관되게 미스터리로 쓰고있는 것이다.
한때는 유망한 기수로서 각종 경주에서 우승한 경력이지만, 사고로 왼손을 잃고 전기로 작동되는 의수를 부착한 독보적인 탐정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시드해리. 나이는 31세. 5년간의 결혼생활후 이혼당한 위험 중독증의 사나이.
다른 탐정소설처럼 이 작품에서도 경마장 내부의 신디케이트 건을 의뢰받은 탐정이 엄청난 음모의 내막을 파헤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소재일 뿐이고 이 작품에는 캐릭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격렬한 액션을 취하는 직업의 소유자가 사고로 팔을 하나 잃었다고 가정할때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런 사람이 다시 제2의 인생으로 액션이 많고 위험도 따르는 탐정의 일을 한다고 할때 주위의 시선은 또한 어떨까?
시드해리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하나 남은 온전한 오른 팔에 대한 절단 협박을 받는다.
의지가 강한 시드는 장애인으로서 세상의 시선을 극복하고, 그나마 하나 남은 오른 손에 의지하며 탐정일을 수행해왔는데.... 이것 마저 잘린다면 세상을 견뎌낼 수 없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잠시 도피한다.
공포, 불안, 굴욕의 시간을 보낸후, 그는 다시 돌아온다.
이 일을 중단하는 것은 시드해리 자신이 죽은 것과 같은 것이므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며 조심스럽게 일을 수행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고, 시드해리 자신이 평생 몸담고 있는 경마소사이어티를 지키는 것이고, 주변 동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자신의 일임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는 시드해리의 전처인 제니의 독설, 의수와 관련된 블랙유머, 전처의 친구와의 그로테스크한 로맨스 그리고 스토리의 엉뚱한 전개등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잠깐 등장하는 기구 레이스 모험가인 존 바이킹도 재미있다. 시드는 도피 중에 우연히 그의 기구에 타게 되는데, 그 또한 시드와 마찬가지로 위험을 즐기고,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과는 달리 살인도 없고 총성도 없지만, 리얼리스틱한 전개와 디테일한 묘사로 신체장애자인 주인공에게 엄습하는 위기감이 독자를 긴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