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소개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소설가.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중국 호강대학 수학. 1920년 단편 “희생자”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이듬해 발표한 “빈처”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불”,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의 역작을 계속 발표해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사실주의의 기틀을 확립했으며 서사적 자아인 '나'란 일인칭의 자기 고백적 형식과 반어적 대립 구조를 즐겨 다루었다. <시대일보>, <매일신보>,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였고, 1935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 간 복역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적도”, “빈처”, “유린”, “무영탑”, 등이 있다.
◎ 줄거리
'나'는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전당포에 잡힐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처량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성은행에 다니는 T가 찾아와 제 처(妻)에게 줄 양산을 샀노라고 자랑한다. 그것을 본 아내는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그러한 아내의 모습에 '나'는 불쾌한 생각이 든다.
'나'는 6년 전 결혼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변변치 못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곱던 아내의 얼굴에는 주름이 나타나고 세간과 옷가지는 전당포에 잡혀 있었다.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밖에 모르는 '나'의 생활이었다.
처가에서 장인의 생일이라고 할멈이 데리러 왔다. 그런데 막상 입고갈 옷이 없다. 비단옷 대신 당목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를 보고 '나'의 마음은 쓸쓸했다.
장인 집에 모인 처형과 아내의 모습을 보니 너무 대조적이었다. 부유한 모습의 처형과 초라한 아내. 처형은 인천에서 기미(期米 - 쌀 투기)를 하여 돈을 잘 버는 남편을 만나 비단옷을 입고 부유하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쓸쓸하고 괴로운 생각을 잊으려 술을 마셨다. 그때 처형의 눈 위에 시퍼런 멍이 든 게 보였다.
그날 '나'는 술을 여러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처형의 멍든 눈자위 이야기를 하며, 없더라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란 아내의 말에 '나'는 흡족해 한다. 처형이 사다 준 신을 신어 보며 좋아하는 아내, 물질에 대한 욕구를 참고 사는 아내에게 '나'는 진정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표시한다. 이에, 아내의 눈과 '나'의 눈에 눈물이 넘쳐흐른다.
◎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신변 소설.
배경 : 시간(개화기 초). 공간(서울 종로)
경향 : 사실주의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자전적. 고백적
표현 : 자전적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함
구성 :
발단 - 넉넉하지 못한 생활 단면 소개
전개 - 아내와 나의 갈등
위기 - 가난과 부의 대조에서 생긴 아내와의 갈등
절정 - 물질보다는 정신적 행복에 만족함
결말 - 갈등의 해소와 부부간의 진실한 사랑
주제 : 가난한 부부의 생활고와 사랑
출전 : <개벽>(1921)
◎ 등장 인물
나 :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무명 작가. 이름이 K라고만 밝혀져 있음
아내 : '나'보다 두 살 위인 18세에 시집 온 가정 주부로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
T : ‘나’의 친구로 은행원. 경제적 능력이 있고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인물
처형 :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여인
◎ 이해와 감상
☞ 감상 1
이 소설은 현진건이 1921년 1월 <개벽>에 발표하여 문명(文名)을 한국 문단에 알려준 작품이다. 제목인 '빈처(貧妻)'란 '가난한 아내'라는 뜻이다.
1인칭 자전적인 작품으로서 특별히 극적인 어떤 사건의 전개가 없이 소설은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주요 인물은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현실적으론 전당포 신세나 지는 정신 가치 지향의 무명 작가와 그의 양순하고 가난한 아내이다. 이 작품에는 큰 사건다운 사건이 없다. 사소한 일상 생활 속의 사소한 사건을 통하여 가난한 아내의 헌신적 내조의 정신과 그가 생각하는 내적 욕구를 한 껍질씩 벗겨 가며 캐내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작중 인물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넷이다. ‘나’, ‘아내’, ‘은행원 T', 그리고 ’처형‘. 그러나 실상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동력은 ’정신(적 가치 지향)‘과 ’물질(적 가치 지향)‘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앞서의 네 사람은 각각 ’정신‘과 ’물질‘에 정확히 대응된다.
먼저 주인공 ‘나’는 소설가인데 출세와 물질주의라는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가난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지식인인 ‘은행원 T'의 물질적 가치 지향의 삶이 대비된다. 가난을 인정하면서 남편을 믿고 따르는 ’아내‘가 있고, 그 반대쪽에는 부유하지만 삶의 보람 없음을 늘 불만족해 하는 ’처형‘이 놓여 있다. 인간형만이 아니어서 그들의 외형도 선명히 대비적이다. 처가로 가는 도중 당목옷에 청록 당혜로 걸어가는 작고 초라한 아내와 비단옷에 고운 신을 신은 여자들의 자태가 ’나‘를 동시에 괴롭힌다. ’나‘의 궁색한 삶에 비하여 훨씬 ’넓고 높은 처갓집 대문‘이 ’나‘를 또 주눅들게 한다.
이와 같은 인간형의 대립과 상황의 대조 속에 ‘나’는 고뇌하며 그 고뇌의 흐름에 따라 ‘아내’의 태도도 변모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물질적 가치 지향보다 정신의 그것이 우위에 있음을 암시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나’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욕망에 의해 어느 정도 동요되고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원상을 되찾아감으로써 정신적 행복의 가치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물가의 폭등과 월급의 상승 및 주식의 이익과 같은 물질적 가치를 따지는 경쟁적 인물들을 그 주변에 배치시킴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연 중에 반영시키고 있다. 또한 물질을 초월하여 정신적 행복만 을 추구하는 것같이 보이는 ‘아내’의 내심에는 역시 물질에 대한 강한 본능적 욕망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참고 기다리는 것뿐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예술적 의욕으로 아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것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단 신 한 켤레쯤은 사다주게 되었으면…." 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결국 고등 실업자로밖에는 머무를 수 없는 지식인의 현실 소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자전적인 고백의 문학이다. 이 소설 역시 현진건의 작품의 특성 인 사실주의적 경향, 서사적 자아인 '나'란 1인칭의 자기 고백적 형식의 유형에 속한다. 묘사가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성격의 작품이다. (서주홍)
☞ 감상 2
<빈처>는 현진건이 1921년 1월 개벽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그의 문명을 한국문단에 알려준 작품이다. 작가는 무능한 작가 지망 지식인을 등장시켜 그의 삶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실랄하게 고발하고 있다.공부가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의미의 출세를 지향한다고 볼 때 일제 치하에서의 출세란 곧 친일을 배제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친일을 하지 않고 공부하는 길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을 해서는 밥을 먹고 살기에도 힘들고 벅찬 일이다. 때문에 주인공 ‘나’는 부단히 가난하고 술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가난한 작가의 애환과 아내의 내조를 사실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다. (배차수)
☞ 감상 3
이 소설은 ꡔ개벽ꡕ(1921. 1)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1920년대의 지식인의 삶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지식인이 생활에서 겪는 고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나’가 서술자가 되어서 아내와 처형 등을 관찰하여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의 자신의 심경을 나타낸 일인칭 주인공 시점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의의는 먼저 시대적인 전형성을 띤 인물들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1920년대라는 시대상황 속에 놓여 있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그 세대의 단면들을 보여주면서 서로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나’는 개인적 입신출세주의와 물질주의라는 그 사회의 가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빈궁과 함께 정신적인 고뇌를 겪어야 한 1920년대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은행원 T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재질을 수단껏 발휘하여 적응하며 살아가는 물질적 가치 지향형의 인물을 나타낸다. 이러한 대비는 아내와 처형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장래의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아내와 부유하지만 늘 만족하지 못하고 허세 속에서 살아갈 뿐 아니라, 남편과의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처형이라는 대조적인 인물들을 통해서도 당시 사회의 가치관의 대립을 엿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나와 아내와의 갈등은 전술한 것과 같아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질지향적인 태도를 부정하고 당시 사회의 경향을 인정하지 않는, 식민지 지식인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데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나의 아내에 대한 태도는 자꾸만 갈등하고 변화한다. 결국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식민지 현실에 동조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사회적 경제적 압박은 그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주인공인 ‘나’가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와 대상세계의 냉혹성의 관계에서 주인공을 갈등하게 하는 그 세계의 부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구인환, 고교생이 알아야 할 소설3, 신원문화사,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