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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만 허락되면 가능한 한 자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가곤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페라 감상이 아니라 그냥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거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오페라보다 더 좋습니다.
오페라 하우스 난간에 기대거나 계단에 앉아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를 눈앞에 둡니다.
연안 부두와 시드니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하버브릿지, 그리고 시드니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 한편의 자연 오페라이고, 명상입니다.
내가 시드니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의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여기만큼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울어져 자리잡고 있는 광경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여기에 나와 계단 하나에 앉아 보았습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선남선녀들 그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고 건강합니다.
근심 걱정이라곤 찾아볼수 없습니다.
정말 좋은 하루 입니다.
`매일 매일이 오늘같은 하루일 수 있으면.`
이 자리에서 이대로 잦아들고 싶어집니다.
얼마전 한국 비디오로 `거리의 수행자` 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다고 했던가요.
지금 저의 마음은 한껏 자유로운 상태 입니다.
그냥 이 자세로 여기에 마냥 있고만 싶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이냥 이렇게 하루 하루를 살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호주니까요.
그러나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답니다. 그러면 자리가 모자랄테니까요. 본다이비치로 나가 봅니다.
시드니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약 10킬로 떨어진 백사장 입니다.
남태평양을 향해 탁 트인 바다,
해운대 백사장을 연상케 합니다.
멀리서 큰 파도들이 연이어 몰려 옵니다.
하얗게 부서지면서 해안을 덮칩니다.
파도타던 아이들도 거품속에서 자빠집니다.
본다이 비치 아니라도 연안 비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들은 파도 위에서 마음껏 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파도타는 아이들은 어제도 나왔고, 오늘도 나오고, 내일도 나올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파도타는 일 이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않는아이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파도타기를 하며 평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여기는 호주니까요.
노인들이 해변에 앉아 파도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표정들이 너무도 하염없습니다.
자신들의 젊은 날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은 아이들처럼 파도위에서 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뉘 바람에 나부끼는 노인들의 은발이 차마 고와도 보입니다.
자녀들을 출가 시킨 뒤론 넓은 집이 부담스러워,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로 살림을 줄였답니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겨 그동안 해외여행도 몇차례 다녀 왔지요.
이제 두 영감 할멈만 오롯이 남아 때로는 심심하고 고적하기도 하겠지만
대과 없이 지나온 세월이 후회는 없습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의식주가 사는동안 숙제로 남고 아프면 별다른 대책이 없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수 밖에없는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내나라 어진 어버이들이여, 일찌기 당신들을 모셔오지 못한 불효가 한심스럽습니다.
곱게 늙어 갈수 있는 호주를 왜 당신들과 더불어 누리지 못합니까.
내가 아는 우리 동포노인들은 이제 늙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자유가 좋다는 것을 나이로 알았다고 합니다.
날이 밝기전부터 하루가 어서 오기를,기다린다고 합니다.
오라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습니다.
이민 초기에는 그야말로 호주는 노인들에게 심심한 천국,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
지금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민을 개척한 장년들이 이젠 노인 소리를 듣게 되었고 노부모 초청이다 해서 노인인구가 제법 늘었습니다.
노인회도 2개나 되지요.
시드니에 7개나 있는 등산모임은 노인들이 앞장입니다.
나라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아프면 돌봐주기까지 하는데, 무슨 걱정,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하루 하루가 즐겁고, 그래서 고마울 뿐이지요.
호주는 섬나라이지만, 광활한 대륙도 갖고 있습니다.
몇날 며칠을 일직선으로 달려야 하는 하이웨이도 있습니다.
달리다 보면 내가 큰 수박위를 달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구가 과연 둥글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집니다.
황량한 들판에서 황사 날리 듯 몰려온 나방이 떼가 차창 앞을 덮습니다.
제3 한강교만큼 길다란 다리모양을 한 것이 대지위에 샤워물을 뿌리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목초에 물을 주는 것이랍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융단처럼 대지를 뒤집어 썼습니다. 몇시간을 달리면 마을이 나타납니다.
마을이라야 고작 몇십가구가 될까 말까 입니다.
드믄 드믄 농가가 보이는데 , 들판엔 소 한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여기서 무얼 먹고 살까.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호주니까요.
당신이 정말로 자연을 사랑하고 그래서 시골에서 살고 싶다면.
호주는 뭐하는 나라인데 그렇게 여유가 있습니까.
돈이 얼마나 남아나길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답니까.
왜냐하면 호주는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랏돈은 국민들이 만든 돈이므로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일에 돈 좀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호주는 공평(Fair)한 나눔(Share)이 생활화 된, 정직 (Honest) 한 나라입니다.
다만 거짓말장이가 아니고, 나쁜 짓만하지않는다면,
가진 것 서로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호주에서 정직을 이기는 장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몇년전 어느 장관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가전제품 한대를 세관신고 않고 들여오다 적발돼 옷벗은 일도 있었지요.
호주 수상의 어느날 여름휴가를 사진기자가 몰래 찍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여름 민박 했던 것보다 나을 것 없는 집이었습니다.
아침에 수상이 동네 구멍가게에 우유를 사러 갔는데, 가게 주인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간 것을 알고는, 수상이라는 사람이 집무시간에 아들 도시락 갖다주러 학교에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C 형 !
호주는 풍요한 나라입니다.
호주는 무엇보다 땅이 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35배 랍니다.
그에 비해 인구는 턱없이 작지요.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정도 입니다.
호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정도 인구가 이토록 큰 땅덩어리를 어떻게 일구었는지
반만년 역사가 고작 2백년 역사 앞에 부끄러워 집니다.
땀흘려 일한 사람들 덕분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낸 정직한 세금 덕분입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더 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적게내고,
그래서 가지고 가는 돈은 큰 차이가 없는 그래서 너와 내가 불평등하지 않은 사회,
노동자와 화이트 칼라가 서로 ` 굿데이 마잇(Good day mate)` 이라고 화답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이들과 어울려 호주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은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민 역사가 짧아, 아직 말은 서툴어도 어느 소수민족보다 호주사회에 잘 적응한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힘든 일에 종사하며 고생하고 있지만 실업수당이나 타먹고 사는 것은 정말 우리 체질에는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청소라도 마다않고 또 택시 운전이면 어떻고, 철일이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주택 보유율이 어느 민족보다 높지요.
70 이 넘은 분이 아직 용접일을 하고있는데, 정말 노익장입니다..
일을 안하고 놀고 먹으니까 오래 못살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부모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잘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대학 인기학과는코리안들 차지랍니다.
이민 2세들은 모국어를 잘 못한다는 말은 옛말입니다.
한국은 이미 못살아 부끄러운 나라가 아닙니다.
코리안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고 있고, 모국어를 모르면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호주로 가신다구요 ? 아니 정말 거기에 갈수 있는겁니까 ? `
우리에게 일찌감치 소위 지상천국으로 알려졌던 호주,
17년전 당시만 해도 교과서에서 배운 백호주의가 호주로 향하는데 걸림돌이되었던 시절, 호주로 가는 비자를 들고 환전을 하기위해 은행창구에 섰을때, 은행직원이 부럽다는 듯이 되물어 보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호주란 나라는 황색인종이 발붙일 수 없는, 고약한 백인들만의 천국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다.
그러나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당시 한국교민이 이미 8천명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중동전쟁의 난민으로 온 레바니즈인 , 월남전 난민으로 온 베트남인, 아니 그보다 훨씬 전 호주의 골드러시때 꾸리로 품팔러 온 중국인 등 동양인 숫자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아직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놀림감도 되었습니다.
" 칭총"
버릇없는 젊은 애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재빨리 창문을 내리고, 아시안이면 국적불문 모두 칭총 (중국인을 멸시해서 부르는 말)취급을 하며 삿대질하고 내빼곤 했지요.
대학 담벼락에도 `Asian Go Home` 이라는 낙서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몰려오는 아시안들이 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호주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경기를 맞아 절대 노동력이 부족했습니다.
중동과 월남 등 각지로 부터 난민과 불법체류자들이 몰려든 것은 어찌보면 호주로서는 잘된 일이지요.
국제여론이 아니었더라도 [백기(白旗)]는 내려져야 했습니다.
요즘은 노랑피부의 아시안들이 마치 봇물이 터져 황톳물이 밀려들 듯 몰려와 곳곳에서 호주인들에게 황색 알러지를 일으키고 있지만 옛날처럼 함부로 `칭총` 하고 고함지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특히 80년대 중반들어서 불어닥쳤던 유사이래 최악의 불경기로 말미암아 이 황색물결은 호주인들에게 바로 생존의 골든 키 (Golden Key )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호주는 원자재나 농산물의 3분의 2 이상을 아시아국가에서 사주지 않으면 살길이 막힙니다.
오죽하면 `호주는 아시아의 일부`라고까지 정치적인 발언을 해야만 했을까요.
최근 아-태평양 국가들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유학생, 관광객, 사업가들이 호주로 몰리고 있습니다.
80년대는 교민사회에도 큰 도약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민의 문이 대폭 넓어진 것이지요. 그 덕분에 저도 이 물결을 따라 흘러들어 올 수 있었지만.
첫째가 기술-사업 이민자 유입이고, 둘째는 유학생 인구의 증가였습니다.
이 코리안들의 물결 바람에 호주사회가 몇가지 유난히 눈에 띄게 바뀐게 있습니다.
하나는 골프장의 풍속도입니다.
어떤 골프장은 아예 한인 골퍼들의 독무대와 같습니다.
할 일 없어 나오는 분도 있겠고, 스트레스나 건강을 생각해서 나오는 분도 있겠지만 , 주중 주말 언제나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프장입니다.
저는 이것도 호주에서 사는 재미이고, 또 여유라고 봅니다.
호주는 동네마다 골프 코스가 있어서 골퍼들에게는 낙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용도 아주 저렴해서 한국에서 두세번 골프장에 가는 비용으로 일년 회원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조용하고 아시안이라곤 보기 힘들었던 한 고급 주택지의 상가와 그 일대가 젊은 코리안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교민 가게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히 장관입니다.
차이나 타운 빼놓고 소수민족 그룹이 이렇게 복작거리는 곳은 호주 어디에도 흔치 않는 듯 싶습니다. 이곳 광장에 서 있으면 서로 돕고 사는 한민족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그 젊은이 들의 힘이 호주 전체로 뻗어나갈 날을 기대해 봅니다.
또 하나는 참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이든 사업이든 호주를 다녀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쨋든 힘이 넘쳐나는 듯한 우리 한국인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유학생이든 관광객이든 일시 고용이되어 왔든 사업비자로 왔든 그래도 지상의 낙원이라는데를 와서, 보고, 가도 좋고, 살러 오면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85년, 서른 여덟살때 가족을 데리고 호주로 건너 왔습니다.
그보다 2년전 호주에 공부하러 왔을 때,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호주가 제게는 편했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나 혼자만의 것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 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또, 동네마다 운동장 만한 공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마음껏 방방 뛰놀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갓 입학했던 때 입니다.
학교에 보내는 일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일학년때부터 시험이고, 경쟁입니다.
돈봉투도 경쟁적으로 낸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아버지로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등을 하라고 해야 하나. 일등을 해서 다음엔 무엇이 되라고 하나.
자라서, 반도에 갖힌 우물안의 개구리가 될 수도 있지.
내가 우리 아이들 만할 땐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일은 꿈도 못꾸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상상밖의 호주라는 나라에까지 와서 감히 이민을 생각하고 있지않은가. 세상이 이렇게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세상에 살게될지.
호주가 아니라 달나라에라도 가서 살지도모르지 않은가. 아마도, 어차피 지구가족이 될라치면 일찌감치 넓은 세상 경험을 시키는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보면 아이들의 운명일 터이고, 내가 이민을 결심하게된 것은 정직하게,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떳떳하고 자신있게해줄 수 있는 말 한마디, 호주에서는 그것이 통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C 형 !
그래서 나는 단단히 자리잡아 둥지를 틀었던 나무를 뿌리째 뽑아 낯선 땅에 옳겨다 심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옮겨심은 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소나무.
그래 나는 어쩔 수 없는 소나무입니다.
호주에서 살만큼 살았고, 앞으로도 호주에서 살만큼 살터이지만 내가 호주의 소나무인 검트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살면서 더 느낍니다.
호주의 어디를 가도 마주치게 되는 검트리, 마치 아보리진의 부시시한 머리카락 같아 처음엔 으스스하게 느껴졌던 검트리, 그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점점 정이 들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 드물게 공원 같은 데서 소나무 비슷한 나무만 보면 가슴이 뭉클, 달려가서 싸안고 맙니다.
누가 이 소나무를 여기다가 심어놨을까. 소나무가 어디 더 없을까. 소나무를 더 심었으면. 내가 소나무를 심어야 겠다. 소나무 숲이 있다면 100 km든 200km든 달려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머리속에 온통 소나무 생각뿐이었습니다.
호주.
지상낙원.
럭키 칸트리.
무공해 천국.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이 정녕 그림의 떡이라면, 우리가 가서 살수 없는 무릉도원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호주는 더 이상 인종차별이나 하는백호주의국가가 아닙니다.
호주는 미합중국처럼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다국적국가입니다.
저는 인종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왜 내형제자매가 같이 와서 살지 않는지, 왜 우리 한국사람들이 더 많이 호주로 와서 같이 어울려 살 수 없는지
안타까와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말로 호주가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C 형 !
호주가 왜 좋습니까..
그곳은 우리 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이 매일 뜨고, 내리고, 현대차 액셀이 가장 많이 팔리고, 시드니 강남 캠시에 가보면 한글 간판이 즐비하고, 낯익은 한글 간판이 강북 이스트우드에도 즐비하게 들어서고, 한국수퍼에 가보면 한국 식품 없는게 없고, 우리 음식, 김치찌개 냄새, 된장국 냄새, 갈비굽는 냄새가 길거리를 거나하게 하고, 여기 저기서 마주치는 잘생긴 코리안들 화답하는 인사말, 여기가 어디 남의 나라입니까..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면 어디나 다 우리 땅이고, 우리나라이지요.
호주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은 약 8 만명정도 입니다.
20년동안 약 10배가 늘어난 셈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미국경우처럼 서로 부비며 기대고 자생하기에는 부족한 숫자입니다.
만약 교민 인구가 50만명으로 늘어날 수만 있으면 호주는 한국인들의 판이되지않을가요.
그렇게되면 호주는 먼 남쪽나라가 아닌 `아랫마을`로 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분명 광개토대왕이래 지상과제인 우리의 영토 확장입니다.
C 형 !
호주로 오세요.
우리, 같이 소나무를 심으며 꿈을 마음껏 펼쳐 봅시다.
이런 말을 하면 왜 잘 살고 있는 동포를 해외로 빼돌리려 하느냐고 나무라는 분도 있겠지요.
제가호주에 이민간다니까 어느분이 왜 조국을 등지고 떠나느냐고 정색을 하고 추궁했습니다.
제가 왜 조국을 등지고 떠나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조국을 등에 지고 떠나는 겁니다.` 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사내 대장부는 장성하면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더 이상 집구석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지말고 넓은 데로 나가 살림을 일구어야 합니다.
땅도 좁은데. 제 밥그릇 비워주면 한식구 더 배불리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대처로 나가서 성공하게 되면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일입니다.
해외에 한번 나가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느꼈을 것입니다. 조국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왜냐, 조국이 있었기에 내가 세상 밖 구경도 해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런 내가 있기에 조국이 해외로 연장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바로 내 땅이고 조국의 연장이라고 생각을 전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속에서도 특히 호주로 눈을 크게 돌릴 때가 왔다고 생각 됩니다.
태양과 기회의 나라, 천혜의 자연조건과 일부러 조성을하지 않아도 무공해 자연식품과 가슴이 투명해 질 정도의 맑은 공기 이혼하면 이혼수당, 과부되면 과부수당 ,실업자면 실업수당, 공부하면 학생수당, 능력없어 못살면 자녀 용돈까지 주는 나라, 세상에 세상에나 늙으면 노령수당에 다가 의료보험료도 내지않았는 데 의료보험적용 이 천국 같은 나라를 외면하시렵니까.....
춤추는 마틸다의 나라 (Walchig Matilda),
다운 언더(Down Under), 호주로 오세요.
*. Walchig Matilda 는 호주의 국가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노래.
* Down Under 는 [거꾸로]라는 뜻으로 흔히 호주에서 유행하고 있는 거꾸로 그린
세계지도를 가리킨다. 남극대륙을 생략하고 호주를 제일 위에다 두고 있다.
호주가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첫댓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입니다.글쓴 이는 바로 지상에서 천국의 생활을 누리고 있군요.